(CNB저널 = 이성호 기자) 국민연금이 투자한 해외기업 중에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 국민을 강제동원한 일본기업(전범기업)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등에 따르면 이에 해당되는 일본기업은 총 299개다.
강제동원은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1931~1945년)을 수행키 위해 진행한 인적·물적·자금동원정책이다. 주로 자신들의 신민지에서 행해졌고, 본격적인 인력동원은 1938년 국가총동원법 제정 이후 실시됐다.
당시 강제동원 된 조선인 중 일본기업과 연관된 피해 인원은 755만4355명이다. 이들은 한반도는 물론 일본본토·남사할린·중국 관내 및 만주·동남아시아·태평양·타이완 등지의 광산, 토목공사장, 군수공장, 군시설 공사장, 농장, 항만운수, 삼림채벌장 등지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종전 후 연합군사령부는 강제동원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인정, 해당 기업을 수십 내지 수백 개의 회사로 해체했다. 하지만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이 연합군사령부로 부터의 점령에서 해제된 이후에 다시 단계적으로 재결합해 현재는 일본의 주요 재벌기업이 됐다.
전범기업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국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많은 이익을 남겼으나, 중국 등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 피해자들에게는 공식사과나 손해배상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나라 급여생활자의 주머니에서 탄생한 국민연금이 이 같은 일본 전범기업에게 투자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김승희 의원(자유한국당)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일본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투자가 활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투자금액은 2013년 51개 기업에 6008억원, 2014년 7667억원(74개), 2015년 9315억원(77개), 2016년 1조1943억원(71개), 2017년 1조5551억원(75개)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더구나 수익률이 좋은 것도 아니다. 투자기업 대비 손해발생 기업은 2013년 31.4%, 2014년 45.9%, 2015년 55.8%, 2016년 38.0%, 2017년 17.3%로 나타났다.
이에 국민감정과 부합되지 않는 투자에 메스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국정감사 때마다 국민연금의 전범기업 투자가 지적되고 있다.
지난 2013년 국감에서는 같은 해 6월말 기준으로 일본 전범기업 42개에 3억달러가 투자됐으나 이중 17개 기업에서는 손실을 기록해 명분도 실익도 없는 문제가 있다며 개선할 것을 촉구했었다.
국감 때 마다 도마 올랐지만 ‘공염불’
이어 지난해까지 매년 이어진 국감에서 전범기업 투자대상과 투자금액이 매년 증가추세에 있기에 민족적자존심·역사인식·정부투자기관으로서의 윤리의식이 부재하다며 제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아울러 국회에는 관련법안도 올라와 있다.
이명수 의원(자유한국당)이 지난 2016년 11월에 대표발의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국민연금기금의 투자대상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 국민을 강제동원한 기록이 있는 일본 전범기업으로서 보건복지부장관이 고시하는 기업을 제외토록 함이 골자로 현재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부작용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일단 기금운용의 수익성·안정성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복지위 등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주식시장이 국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7%대로 국민연금기금의 해외주식 투자가 확대될 경우, 일본 시장에 대한 투자 증대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특히 일본 주식시장에서 전범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0%로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전면적으로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 투자대상에서 제외할 경우 포트폴리오 투자위험이 증가해 기금의 수익성·안정성 저해가 우려된다는 얘기다.
또한 구체적인 기금운용방향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기금운용의 기본 원칙인 ‘운용 독립성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이처럼 여러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향후 법안논의 과정에서 어떻게 매듭을 짓게 될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CNB에 “당사자로서 가타부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