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6호 옥송이⁄ 2019.04.26 15:57:40
2017년 ‘살충제 달걀 파동’ 이후 ‘동물복지’가 주목받고 있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닭이 덜 아프고, 건강한 달걀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다. 이에 발맞춰 정부도 축산시설 관리 기준을 강화했지만, 정작 동물복지 도입을 본격화한 식품 업체는 일부다. 이에 식품 업계가 쉽게 동물복지를 도입하지 못하는 속사정을 들여다보았다.
‘동물복지 달걀’에 앞장서는 풀무원
살충제 달걀 파동 이후 약 2년. ‘달걀보다 닭이 먼저’라는 인식이 크게 늘어나면서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졌다. 살충제 달걀 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 역시 ‘복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복지가 강조되는 이유는 주로 밀집 사육이 이뤄지다 보니 닭이 좁은 환경에서 자라 건강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다. 이에 풀무원식품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케이지(밀집형 닭장) 프리’ 이행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올해는 ‘동물복지 달걀’ 매출을 300억 원 대로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회사 측에 따르면 동물복지 달걀 매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0% 내외였으나 지난해부터 23%대로 크게 성장했다. 이는 농업회사법인 ‘풍년농장’과의 협업을 통해 이뤄진 결과다. 2017년 완공된 풍년농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동물복지 농장으로, ‘유럽식 오픈형 계사’를 도입했다.
풀무원식품 관계자는 “동물복지 인증은 크게 ‘방목 사육’과 ‘평사 사육’으로 나뉜다. 방목 사육이 넓은 터에서 키우는 것이라면, 평사 사육은 닭장 안에서 풀어놓고 키우는 것”이라며 “유럽식 계사는 평사 사육에 속하지만, 개방된 3층의 단과 구조물을 만들어 닭들이 위아래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도입한 계사는 방목사육과 평사 사육의 절충안으로 보면 된다. 오히려 3층의 단과 횃대 등이 있기 때문에 조류로서 움직이고자 하는 닭의 본능적인 욕구를 해결할 수 있기에 건강한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사는 지난 2007년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5대 동물복지 기준’을 마련했을 만큼, 일찍부터 동물복지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케이지 프리 달걀’ 실천은 지난해가 돼서야 이뤄졌다.
풀무원식품 관계자는 “실행이 늦은 이유는 파트너사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농장주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뜻 있는 파트너를 늘려서, 궁극적으로는 100% 동물복지 달걀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케이지 프리 달걀 10년째가 되는 2028년에는 모든 식용란을 동물복지 달걀로 바꿔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동물복지 달걀’ 매출이 높아지고 있어 이 계획의 실현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하림, 동물복지 닭 선언
닭에 대한 동물복지에는 식품업체 하림도 나섰다. 지난 2012년 국내 최초로 동물복지생산시스템을 도입한 하림은 2017년부터 ‘그리너스’를 운영하고 있다. 닭고기 전문기업답게 사육 단계부터 닭의 습성을 고려해 스트레스를 최소화한 닭고기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그리너스는 동물복지는 물론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브랜드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제공하는 동물복지 기준보다 더 까다롭게 관리된 닭을 상품화했다는 설명이다.
하림 관계자는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 니즈가 높아짐에 따라 해당 브랜드를 출시하게 됐다”며 “높은 곳을 좋아하는 닭의 습성을 고려해 계사 내에 횃대를 설치하고, 닭의 쪼는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양배추와 각종 채소류, 나무조각 등을 제공해 닭의 본능을 최대한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맥도날드, 2025년까지 동물복지 달걀로 전환
문제는 ‘동물복지’ 닭과 달걀을 소비할 곳이 있느냐다.
대형 유통업체의 경우 이 같은 달걀을 소비하겠다는 곳이 아직 드물다. 현재는 맥도날드가 거의 유일하다. 맥도날드 본사가 지난 2015년, 10년 동안의 준비 과정을 거쳐 오는 2025년까지 동물복지 달걀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어 국내에서도 비교적 결정이 쉽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맥도날드도 현재 동물복지 달걀로 전환하기 위해 국내 달걀 공급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한국맥도날드 측은 이전에도 달걀은 최고 등급의 것을 사용해 온 만큼 동물복지 달걀 도입도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이 회사가 현재 공급 받는 달걀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기관인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매년 실시하는 전국 축산물품질평가대상 계란부문에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회 연속 수상을 한 1+ 등급의 달걀이다.
“취지는 좋지만…” 동물복지 도입 망설이는 식품업계, 왜?
이처럼 아직은 동물복지 도입이 미미한 편이지만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이를 도입하는 업체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9월 닭 사육 환경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축산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에 따르면 닭 사육 시설의 경우, 닭장(케이지)의 면적을 0.05㎡에서 0.075㎡로 상향하고, CCTV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살충제 달걀’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밀집 사육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사육밀도 기준을 유럽 등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또 효과적인 방역관리를 위해 케이지는 9단 이하로 설치하고, 케이지 사이에는 폭 1.2m 이상의 복도를 설치해야 한다.
이처럼 정부의 지원책에도 동물복지 제품이 시장의 주류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비용’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산란계 동물복지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140여 가지의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1㎡당 9마리 이하로 사육밀도를 유지해야 하고, 닭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계사 내에 횃대를 설치하는 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 같은 절차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국내 닭 농장의 경우 케이지 기반인 경우가 많다보니, 전반적인 농장 환경은 물론 시설 개선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동물복지 농장을 엄두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또한 동물복지 제품은 일반 농축산물에 비해 고가인 탓에, 소비자들이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한 몫 한다. 게다가 동물복지 달걀에 대한 홍보도 덜 돼 있어 소비자들이 차이를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롯데 계열 대형 마트에서 만난 한 주부는 “달걀을 워낙 많이 사다 보니 저렴한 것만 찾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동물복지라고 하지만, 정말로 동물복지가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믿을 수 있게 되면 그때 구매를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신세계 계열 대형 마트에서 만난 다른 소비자는 “동물도 생명이다. 동물복지 제품을 알게 된 이후, 비싸도 굳이 동물복지 달걀을 구매하게 된다”면서도 “동물복지 제품과 그 기준에 대한 홍보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구매한 제품이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동물복지 제품인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도입을 준비 중이라는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아직 국내 동물복지 농축산물은 활성화된 단계는 아니다”라며 “각 기업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동물복지 농축산물 소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