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정의식 기자) 메모리 가격 하락세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8만원이 넘던 PC용 DDR4 8G 메모리 가격이 불과 1년 사이에 절반 이하 수준인 3만원대로 떨어졌을 정도다. 덕분에 가뜩이나 실적이 급락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분기보다 악화된 2분기 성적표를 받아들 전망이다. 하반기 실적 전망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삼성전자는 회복세가 예상되지만, SK하이닉스는 반전이 쉽지 않을 거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지금이 메모리 구입 적기”, “한때 10만원도 넘던 제품이 이제 3만원대라니 격세지감”, “이러다 2만원대까지 내려갈 것 같다”
최근의 메모리 가격 하락 추세에 대한 국내 IT커뮤니티 사용자들의 반응이다.
실제로 최근 메모리(D램) 가격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7월 최저가 8만2600원이었던 ‘삼성전자 DDR4 8G PC4-21300’ 제품이 올 6월 19일 기준 3만390원이다. 1년 전 가격의 약 36%에 불과한 가격이다.
평소 메모리 부족에 시달리던 PC 사용자라면 메모리 용량을 늘릴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하지만 “좀더 기다려보는 것이 현명하다”는 의견도 많다. 메모리 가격 하락세가 적어도 올 하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에 주로 사용되는 DDR4 8(Gb) D램 제품의 가격은 5월31일 기준 평균 3.75달러로 4월 말보다 6.25%나 떨어졌다. 올 초 1월부터 4월까지 4개월 연속 이어졌던 두 자릿수 급락세에서는 벗어났지만 5개월째 큰 폭의 하락세를 이어가며 4달러 선마저 무너졌다.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USB 드라이브 등에 사용되는 낸드플래시의 범용 제품 128Gb MLC(멀티플 레벨 셀)도 4월 말(3.98달러)보다 1.26% 떨어진 3.93달러에 거래됐다. 지난 2017년 8월 5.78달러까지 치솟았던 이 제품의 가격은 지난해 12월부터 무려 6개월 연속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2016년 9월(3.75달러) 이후 2년 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디램익스체인지는 보고서에서 “최근 미중 통상전쟁이 D램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통상갈등이 격화하면서 올 하반기 D램 가격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하게 요동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낸드플래시 시장에 대해서는 “주요 업체들이 생산물량을 줄이고 있는 데다 중국 이동통신 업계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면서 “6월에도 소폭 하락하거나 보합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D램·낸드플래시 매출 모두 ‘하락세’
메모리 가격 하락으로 소비자들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 메모리 제조사들의 속은 바짝 타들어가고 있다. 메모리 시장의 2대 강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급락하고 있기 때문.
디램익스체인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매출액은 163억3200만달러(약 19조5000억원)로, 2018년 4분기의 228억8500만달러(약 26조9600억원)보다 28.6%나 감소했다.
1위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69억6800만달러로 약 26.3% 줄었고, 2위 SK하이닉스는 48억7700만달러로 약 31.7% 감소했다. 3위 마이크론의 매출액은 37억6000만달러로 약 30.0% 줄었다.
낸드플래시 역시 1분기 글로벌 매출액 107억9000만달러(약 12조8000억원)로 전 분기보다 23.8%나 줄어들었다.
1위 삼성전자 매출액은 전분기 대비 25% 줄어든 32억3000만달러(약 3조8000억원)였고, 이어 도시바 21억8000만달러, 마이크론 17억8000만달러, WDC 16억1000만달러, SK하이닉스 10억2000만달러 순이었다.
이렇듯 모든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들의 매출이 줄어든 것에 대해 보고서는 “2018년 하반기 글로벌 생산능력 확대와 재고 소진 등의 영향으로 전통적 비수기인 1분기에 D램 가격이 하락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낸드플래시 매출에 대해서는 “작년 4분기 스마트폰과 서버 고객사들이 재고조정에 주력하면서 낸드플래시 가격이 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앞으로의 메모리 가격 전망에 대해서도 “주요 모듈 제품의 평균판매단가(ASP)가 급락세를 이어가고 있고, 수요 부진으로 인해 재고도 늘고 있다”면서 “D램 가격이 평균 25% 가까이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낸드플래시에 대해서도 “스마트폰 등 제품 수요는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며 “재고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낸드플래시 가격이 멈추지 않고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시장 상황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하반기 전망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전의 계기가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적자 전환이 유력시된다는 것.
삼성전자, 하반기 회복 기대감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초 3분기부터 D램 수요가 회복되면서 가격 하락 폭이 10% 이내로 축소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경기 둔화 우려가 심화하고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일시적으로 스마트폰 수요와 D램 가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졌다”면서도 “가격 하락이 충분히 이뤄지면 다시 수급이 개선되는 게 사이클의 특성이라 연초부터 시작된 설비투자 감소 효과가 3분기부터 나타나고 가격 하락에 따른 수요 반등도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D램 종류 가운데 모바일 D램의 수익성이 가장 높은데 삼성전자의 모바일 D램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가격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 폭이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라며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따른 수혜도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반면, SK하이닉스에 대해서는 국내외에서 부정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 실적이 모두 부진한 가운데, 특히 낸드플래시 실적이 악화된 때문.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1분기 낸드플래시 매출액은 전분기 대비 35.5% 줄었는데, 이는 ‘톱5’ 업체 중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최근 보고서에서 “SK하이닉스가 올해 2∼3분기 부진을 이어가다 4분기에 적자 전환할 것”이라며 “적자 규모는 17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지난달 메리츠종금증권에서도 “이미 1년 반 이상 하락한 낸드 시장에서 수요자들의 구매 의사는 회복되지 않고 있고. D램 역시 전반적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탑재량 증가가 소극적”이라며 “SK하이닉스가 4분기에 적자 가능성이 높으며, 예상 적자 규모는 2776억원”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긍정적 전망이 우세하다. 19일 기준 증권가 컨센서스(추정치 평균)를 보면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이익은 1조1903억원으로 하반기부터 실적이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성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하반기 개선 강도가 낮아지고 있고 심지어 하반기 실적이 더 악화할 것이라는 의견도 팽배해지고 있다”면서 “3분기 소폭 개선, 4분기 1조원대 영업이익 진입을 기대하고 있지만, 불확실성은 커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