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3호 이동근⁄ 2020.08.31 09:53:56
소위 ‘삼성생명법’ 개정안 발의를 두고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가 이뤄질지 세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물산이 지주사화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삼성전자에 대한 오너와 우호지분의 지배력 약화로 이어져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전자가 자칫 ‘주인 없는 회사’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삼성생명법’ 개정되면 삼성전자 지분 매각해야
삼성생명법이란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이용우 의원이 대표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뜻한다. 현재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자회사의 주식을 총자산의 3% 이하로 보유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여기서 ‘총자산’을 평가할 때 ‘취득 당시 원가’로 정의하는 현행법을 ‘시가’로 개정하는 것이 주내용이다.
이 개정안이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 법안이 가장 크게 적용되는 회사가 바로 삼성생명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이 소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2분기 말 기준 보통주 약 5억 815만 주에 달한다. 참고로 이 주가는 1980년대에 취득해 원가가 5400억 원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주가가 5만 5000원(8월 28일 장 종료 당시 5만 5400원)이 넘는 현재, 시가는 약 28조 원에 달한다. 회사 총자산 317억 원의 약 8.8%. 따라서 ‘현재 시가’로 계산하면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5.8%, 즉, 약 20조 원 어치 이상을 처분해야 한다.
박용진 의원 등이 법 개정안을 주장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장기적으로 각 회사들의 주주 배당금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지분이 매각되면 주주와 유배당계약자의 배당규모가 커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용진 의원은 지난 8월 24일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에게 삼성생명법이 통과될 경우 주주에게 돌아가는 배당금 규모가 어느 수준인지 시뮬레이션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당시 박 의원은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삼성생명 주가가 최근 한 달 새 27% 폭등했고, 삼성화재도 폭등했다”며 법안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삼성 지배구조 무너지면 삼성물산 지주사 전환?
문제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분을 매각하게 되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안을 발의한 박 의원도 “삼성생명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주식을 3%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삼성 특혜라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며 현재 보험업법이 삼성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법안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삼성 내부의 상황 때문이다.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물산의 지분을 17.33% 지니고 있으며,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의 19.34%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시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8.51% 갖고 있고, 다. 즉,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을 지배하고 있고, 다시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을 지배하며, 이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다.
이 같은 구조에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잃게 되면 결과적으로 삼성그룹 오너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에 주목하기도 했다.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은 43.4%에 달한다. 참고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시가총액은 52조 8658억 원에 달한다. 즉 이 지분을 모두 매각할 경우 단순 계산으로 약 22조 원의 자금을 준비할 수 있다.
이 자금을 이용해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의 주식을 매입하게 되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을 지배하고, 삼성물산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삼성물산이 삼성그룹의 지주사가 될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지주사 전환시 100조 원 필요 … 지배권 약화시 R&D 위축 우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쉽게 지주사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당장 지주회사가 되려 하면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의 지분 30%를 보유해야 하는데, 국내 코스피 1위에 이르는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330조 7260억 원(8월 28일 장 종료 기준)에 달한다. 단순 계산으로도 100조 원은 있어야 한다.
참고로 8월 25일 의결된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신규 지주회사(기존 지주회사의 신규편입 자·손자회사 포함)는 자·손자회사의 지분율 요건이 상장회사인 경우 30%, 비상장회사는 50%이다.
게다가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식을 모두 판매한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배권을 잃게 된다. 즉,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주인 없는 회사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주식 판매 시 세금도 나가므로 실제로 지주사 요건을 갖추기 위한 자금을 만들기 어렵다.
결국 삼성생명법이 발의돼 현재의 지배 구조가 무너질 경우 삼성물산은 지주사로의 역할은 어렵고, 삼성전자 우호지분이 낮아져 오너의 삼성전자 지배력만 약해지는 모습이 된다. 삼성전자가 ‘주인없는 회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오너의 삼성전자 지배권이 약해질 경우 생기는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최근 IT업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삼성전자가 현재 위치를 고수하거나 시장을 더 확대하기 위해서는 상당액의 연구개발(R&D)비가 필요하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올해 상반기에 투자한 금액은 10조 585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5% 오른 것이다.
하지만 오너의 지배권이 약해지고, 기관 투자자 지분이 늘게 되면 이같은 R&D 투자는 어려워질 수 있다. 게다가 외국계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주식 배당금을 높게 잡는 편이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늘게 될 경우 R&D 투자 대신 배당을 더 늘려달라고 할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법안 취지만 보면 주주들에게 혜택이 주어지니 좋을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투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삼성전자 주식을 많이 사고 지분율을 높일 수 있는 곳은 금융업체, 특히 외국계 기관들이다. 이들 투기자본이 들어와 배당을 늘려라, R&D 줄여라 라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 정재계에서도 이같은 사실을 모를리 없다. 이미 여권 내에서도 통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개정안 취지는 이해하더라도 갑자기 자산을 매각하게 하고, 회사의 경영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