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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건희 회장, 끝없는 위기의식으로 '세계의 삼성' 만들다

취임 직후 제2 창업 … 쓰러지기 전까지 “10년 전 전략 버리자” 주마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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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동근⁄ 2020.10.27 09:34:18

“휴대폰 품질에 신경을 쓰십시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 (1995년 애니콜 품질 강화를 강조하며 이건희 회장이 남긴 말)

한국 기업사(史)의 거인인 고(故)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10월 25일 세상을 뜨면서 그의 생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그룹을 성장시키면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위기설을 꺼내들며 ‘주마가편’(走馬加鞭) 해 온 그의 족적을 회장 취임 이후부터 따라가 보았다.

 

1987년 12월 1일 오전 10시 호암아트홀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사진 = 삼성


이 회장의 취임은 1987년 12월 1일 오전 10시 호암아트홀에서 이뤄졌다. 그는 ‘삼성 제2의 창업’을 강조하며, “삼성은 이미 한 개인이나 가족의 차원을 넘어 국민적 기업이 되었다. 삼성이 지금까지 쌓아 온 훌륭한 전통과 창업주의 유지를 계승하여 이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1988년 3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다시 한 번 ‘제2 창업’을 선언하며 “이제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공존공영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어깨를 겨루게 되었고, 이런 놀라운 성장에 삼성이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크나 큰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다”며 “1990년대까지 삼성그룹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사진 = 삼성


그리고 1993년 6월,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했다. 그는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1992년 64 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생산한 뒤 이뤄진 이 선언은 지금도 세간에 회자될만큼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건희 회장의 철학이 세상에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1995년에는 유명한 ‘제품 화형식’을 벌였다. 애니콜 15만대를 불태우며 품질 향상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휴대폰 품질에 신경을 쓰십시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 비싼 휴대폰, 고장나면 누가 사겠습니까? 반드시 1명 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라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어 IMF 사태 직전인 1997년 1월, 신년사를 통해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3년뿐,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삼성은 물론, 나라마저 2류, 3류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순간”이라고 주장했다. IMF를 예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시대를 보는 눈은 정확했다.

이 신년사에서 그는 “지난 30년 동안 하면 된다는 ‘헝그리 정신’과 남을 뒤쫓아가는 ‘모방 정신’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성장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재래식 모방과 헝그리 정신만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없게 됐다”며 ‘자율적이고도 창의적인 주인의식’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의 위기의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2002년 4월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5년에서 10년 후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 땀이 난다”고 밝힌 것이다.

이같은 신경영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한 것은 10년이 지난 2003년이었던 것 같다. 그는 2003년 6월 5일 신경영 10주년 기념사에서 “신경영을 안 했으면 삼성이 2류, 3류로 전락했거나 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어 “신경영은 세기말적 상황에서 경제 전쟁에서의 패배, 일류 진입의 실패는 경제 식민지가 될 수 있다는 역사인식과 사명감에서 출발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외부 환경 탓도 있지만 과거 선진국도 겪었던 ‘마의 1만불 시대 불경기'에 처한 상황으로 신경영 선언 당시와 유사하다. 따라서 우리가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일류 선진국이 될 수도,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은 당장의 제몫 찾기보다 파이를 빨리 키워, 국민소득 만불 시대에 돌입하기 위해 온 국민이 다함께 노력해야 할 때”라는 말을 남기며 여전한 위기 의식을 강조했다.

그의 위기설은 끝나지 않았다. 2008년 김용철 전 법무팀장의 양심고백으로 드러난 비자금과 세금포털 사건으로 인해 경영에서 물러났다가 복귀한 2010년 3월 24일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 다시 위기설을 꺼내 들었다.

 

2010년 CES를 방문한 자리에서 3D 안경을 체험해 보고 있는 이건흐 회장. 사진 = 삼성


그가 복귀하기 전인 2009년까지 삼성전자는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면서 대항마로 ‘옴니아’ 시리즈를 출시하며 마케팅을 벌였지만, ‘무늬만 스마트폰’이라는 혹평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복귀한 2010년, 이 회장은 ‘갤럭시S’의 판매량을 100만 대까지 끌어올리라는 특명을 내린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실제로 출시 70여일 만에 국내 판매량 100만 대를 기록한다. 출시 7개월만에는 글로벌 판매량 1000만대를 돌파했다.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폰으로 꼽히는 ‘갤럭시’ 브랜드가 등장한 것이다.

이어 같은 해 11월 19일, 그룹 조직을 신설하는 자리에서 “21세기 변화가 예상보다 더 빠르고 심하다. 삼성이 지난 10년간 21세기 변화를 대비해 왔지만 곧 닥쳐올 변화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그룹 전체의 힘을 다 모으고 사람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 선진 제품 비교 전시회에 참관한 이건희 회장. 사진 = 삼성


그리고 2011년 7월 29일, 선진 제품 비교 전시회에 참관한 자리에서 “ 5년, 10년 후를 위해 지금 당장 (소프트기술, S급 인재, 특허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프트웨어, 디자인, 서비스 등 소프트 기술의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필요한 기술은 악착같이 배워서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부품 수를 줄이고, 가볍고, 안전하게 만드는 것 등 하드웨어도 경쟁사보다 앞선 제품을 만들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희대의 명기(名器)라는 평가를 받는 ‘갤럭시S2’가 출시 5개월 만에 1000만 대가 팔리는 기록을 세우던 시기였다.

다음 해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2012년 신년사에서 “삼성은 어려움 속에서 위기 극복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며 “기존 사업은 성장이 정체되고, 신사업은 생존의 주기가 빠르게 단축될 것이다. 동종 경쟁에서 이종 경쟁으로, 기업간 경쟁에서 기업군간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경쟁력 강화를 외쳤고, 같은 해 1월 12일 CES(국제 전자제품 박람회)에서 “정말 앞으로 몇 년, 십 년 사이에 정신을 안 차리고 있으면 금방 뒤지겠다 하는 느낌이 들어서 더 긴장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3년, 신경영 20주년 만찬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사진 = 삼성


그리고 2014년, 신년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임직원들에게 변화를 요구했다. 그는 “5년 전, 10년 전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하게 버리자.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제도, 관행을 떨쳐내자.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에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이었다.

1987년 취임 당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그의 약속은 결국 이뤄진 듯 하다. 삼성 측에 따르면 취임 당시 10조 원이었던 매출액이 2018년 387조 원으로 약 39배 늘었으며, 이익은 2000억 원에서 72조 원으로 3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 원에서 396조 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 2020년 브랜드 가치는 623억 달러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생전 강조했던 신경영에 대해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자기 반성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갖고, 질 위주 경영을 실천해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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