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국 지음, 이우영 그림 / 이불 펴냄 / 200쪽 / 1만 3000원
20년 가까이 정세균 총리의 보좌관으로 일했던 현 서울시 의원 고병국이 정세균 총리의 청년 시절부터 최근 활동까지를 담은 책을 펴냈다. 책 제목 ‘법 만드는 청소부’는, 법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보람을 느끼며 일하는 국회 청소 노동자를 말한다. 정 총리는 국회의장 시절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 청소 노동자를 용역직에서 직접고용으로 바꿔놓았다.
책은 정 총리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주경야독을 하면서 고려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되고 유신독재 반대 시위를 펼친 이야기 △김영삼 정권 당시 한국을 IMF 환란 위기라는 단군 이래 최대 위기로 몰아넣는 시발점이 된 '한보 사태' 당시 한보 정태수 회장이 "내 불법 정치자금을 유일하게 거부한 의원이 정세균"이라고 법정에서 털어놓은 이야기 △일본 아베 총리가 한국 유력 정치인을 면담하면서 한국 측 좌석의 높이를 고의적으로 낮춰놓는 못된 짓을 부릴 때 정 총리가 이를 강력히 항의해 높낮이 장난질을 못하게 한 일화 등을 전해준다.
정 총리가 6선 국회의원, 산자부 장관, 당대표, 국회의장을 거치는 동안 함께 한 고병국 의원이 털어 놓은 여러 일화에 ‘검정 고무신’의 작가 이우영이 정감 있고 따뜻한 그림을 더했다.
책 속의 내용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그는 전액 장학금을 따내고 학생회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정치인의 꿈을 향하여 첫 걸음마를 뗐다는 의미도 있었겠지만, 그에겐 학생회장으로서 남다른 포부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빵돌이’ 같은 친구들에게 함이 되는 학생회장이 되겠다는 다짐이 그것이다. (‘빵돌이, 학생회장이 되다’ 중에서)
유신 치하, 긴급조치가 발령된 상황에서 총학생회장이 된 그는 유신반대 집회를 조직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유신독재가 유화정책을 펼 시기여서 기소도 안 되고 풀려난다. 그가 대학을 떠날 무렵에는 상황이 돌변하기 시작한다. 박정희 유신 독재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그 잔혹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독재에 저항하는 후배들이 감옥으로 끌려가는, 암울한 풍경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 그는 대학을 떠나 사회를 향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돈 안 드는 선거’ 중에서)
증인으로 나온 한보의 정태수 회장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나온다. 청문회에서, 정 회장은 자신이 돈 뿌린 사람들을 일일이 거명하지 않았다. 그저 많은 사람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줬다는 사실만 순순히 시인한 상태였다. 그때, 정 회장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한마디 덧붙인다. “정치자금을 거부한 사람이 딱 하나 있다.” 그게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정 회장의 대답은 짧고도 명료했다. “새정치국민회의의 정세균 의원이다.” (‘안 받아먹은 유일한 의원’ 중에서)
그가 줄기차게 재벌개혁을 강조한 이유는 그가 재벌기업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재벌이 어떻게 움직이고, 돈이 어떻게 왔다 갔다 하는지, 그는 재벌의 빛과 그림자를 꿰뚫고 있었다. 어떤 조직을 개혁하고자 할 때, 그 조직의 생리를 제대로 모른다면, 그 개혁의 성공 확률은 매우 낮다. 그는 재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었기에 개혁의 방향을 정확히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중에서)
그는 왜 소파의 높낮이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낮은 높이의 소파에 앉아도 괜찮습니다만, 정세균 개인 자격으로 일본 총리를 접견하는 게 아니라 한국 국회의장 자격으로 일본 총리와 회담하는 자리입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은 개인보다는 자기 나라 국민들의 자존심을 생각해야 하지요. 모든 일은 국민들이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결국 우리는 같은 높이의 소파에 앉아 회담을 했습니다. 국가 간 외교는 언제나 대등해야 합니다.” 그의 소파론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소파는 가구가 아닙니다. 국격입니다.” (‘소파는 가구가 아니다 국격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