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3호 김응구⁄ 2023.08.08 14:30:18
탄소중립은 이제 기업만의 몫이 아니다. 개인도 내 일처럼 나서야 한다. 이상고온, 기록적 폭우, 가뭄 등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지구촌 어디에라도 일어나는 일이 돼버렸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을 막자는데 개인과 기업이 따로 일순 없다.
탄소중립을 다시 얘기해보자. 자연이 아닌 인간사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순배출량을 ‘제로(0)’가 되도록 하자는 말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 경제국은 저마다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그에 따른 추진전략을 발표, 행동하고 있다.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사회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자, ‘신재생에너지’라는 말이 나왔다. 한국전력의 표현을 빌리면, ‘한정된 에너지에 대한 방안으로, 미래 성장의 원동력’이다. 쉽게 말하면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합친 것이다. 신에너지는 기존 화석연료를 변환시켜 이용하거나 수소·산소 등의 화학반응을 통해 전기 또는 열을 이용하는 에너지다. 종류는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석탄액화가스화 및 중질산사유 가스화 등 3개다. 재생에너지는 햇빛·물·지열·강수·생물유기체를 포함해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변환시켜 이용하는 에너지다. 태양광, 태양열, 풍력, 수력, 해양, 지열, 바이오, 폐기물 등 8가지다.
그럼, 신재생에너지 사회에서의 에너지 활용방안은 무엇일까. 바로 전기에너지와 수소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중 친환경 에너지로 각광받는 게 바로 수소에너지다.
수소는 석유·석탄·천연가스와 달리 추출(抽出)해야 하는 2차 에너지다. 수소에너지는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그레이수소’, ‘블루수소’, ‘그린 수소’로 구분한다. 그레이수소는 석유·석탄·천연가스 등의 화석연료를 고온·고압 수증기와 반응시켜 추출한다. 현재 수소 생산 방식의 99% 이상이 그레이수소 식이지만, 그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상당하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이 블루수소다. 그레이수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捕執)하고 활용하거나 묻어버리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그레이수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85~95%를 줄일 수 있지만, 포집 비용이 비싸 채산성이 좋지 않다.
그린수소(Green Hydrogen)는 물을 전기분해해서 수소를 얻는 방법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전력원으로 활용하며, 정제수를 분해해 수소를 생산한다.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제주도 북촌리 일대에 아시아 최대 그린수소 시설 들어서
예를 하나 들어본다. 8월 6일, 정부의 30㎿(메가와트)급 그린수소 생산 실증 사업지로 제주도가 선정됐다는 소식이 여러 매체에 보도됐다. 제주의 신재생에너지 시설에서 나오는 전기로 물을 분해하는 아시아 최대 청정 연료 단지가 들어선다는 것. 향후 예비타당성 심사를 거쳐 2025년부터 2030년까지 6년간 조천읍 북촌리 일대에서 실증 사업이 이뤄진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그린수소는 버스와 청소차 연료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혼소발전소에서도 사용할 계획이다. 이번 북촌리 실증 사업과 기존 구좌읍 행원리 실증 단지까지 더하면 제주에선 모두 50㎿급 그린수소 생산 체계가 구축될 예정이다. 목표대로 그린수소 생산단지가 완성되면 2030년에는 연간 3800t이 넘는 그린수소가 생산될 전망이다.
국내 건설사들은 이제 주택사업으론 큰 재미를 보지 못한다. 재건축·재개발 중심의 주택사업은 포화상태여서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건설사가 신사업에 친환경까지 더한 그린수소 사업을 놓칠 리 없다. 가장 주목되는 건설사는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SK에코플랜트다. 최근 들어 굵직한 성과를 내고 있어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호주 그린수소 개발사업 본격화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호주 시장에서 그린수소 비즈니스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 5월 17일 일본 미쓰비시상사의 자회사인 DGA(Diamond Generating Asia)와 ‘호주 그린수소·암모니아 프로젝트의 공동 개발과 운영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 회사는 글로벌 에너지 전문 기업이다.
이 협약을 통해 두 회사는 서호주 지역에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발전 단지를 조성하고, 이와 연계한 그린수소 생산설비를 구축하는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서호주에서 생산한 그린수소를 암모니아로 변환해 한국과 일본 시장 등에 공급하면서 글로벌 협력을 지속할 방침이다.
삼성물산은 현재 친환경 에너지로 주목받는 그린수소 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개발부터 건설·생산·공급에 이르는 밸류체인의 모든 단계에 참여하는 교두보를 마련해 호주 그린수소 시장의 선두주자로 입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호주는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과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어 대규모 그린수소·암모니아 사업을 수행하는데 최적의 환경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물산 이병수 부사장(사업개발실장)은 “삼성물산은 풍부한 자원과 영토, 그리고 인센티브가 더해진 호주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이를 통해 ‘토탈 에너지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미래 성장동력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이에 앞서 3월 30일 일본 요코하마의 치요다화공건설과 ‘SPERA 수소 기술을 활용한 수소 사업 협력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은 치요다의 ‘SPERA 수소’ 플랜트 건설에 참여하고, 관련 사업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SPERA 수소’는 수소에 화학물질인 톨루엔을 첨가해 원거리 이동과 저장이 쉬운 메틸시클로헥산(MCH) 형태로 변환한 후 수소를 분리하는 방식이다. 수소가 상온·상압 상태로 유지돼 안정적인 운반·저장이 가능하다.
수소 운반·저장 신기술인 ‘액상유기수소운반체(LOHC)’ 방식의 선두주자인 치요다는 LNG·석유화학 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일본의 대표 엔지니어링사다. 삼성물산과 치요다는 향후 탈탄소 사업에 대한 협의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삼성물산은 이번 협약을 통해 기존의 그린수소 생산·공급 사업뿐만 아니라 실증이 완료된 상온·상압의 안정적인 운송·저장 기술까지 사업 범위를 확대하면서, 그린수소의 ‘생산·운송·저장·공급’ 전체 과정에 역량을 확보하게 됐다.
이밖에도 삼성물산은 재작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MISA)와 포괄적 업무협약을 통해 ‘그린수소 생산 및 인프라 확장 공사’ 등에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으며, 지난해 1월에는 삼성물산·포스코·사우디 국부펀드(PIF) 3자 간 그린수소 사업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아울러 지난해 2월에는 한국석유공사·한국남부발전·포스코·GS에너지 등과 해외에서 생산한 그린수소·암모니아를 도입·저장·공급하는 동해권역 허브터미널 구축사업 추진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SK에코플랜트, 2025년 그린수소 상용화 글로벌 프로젝트 참여
환경·에너지기업 SK에코플랜트는 그린수소 밸류체인을 앞세워 대륙 간 초대형 그린수소 상용화 프로젝트에 핵심 플레이어로 참여한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5월 17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에서 캐나다 월드에너지GH2와 45억 달러, 우리 돈 약 6조 원 규모의 ‘뉴지오호닉(Nujio’qonik) 그린수소 1단계 프로젝트’ 참여를 위한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프로젝트 주관사인 월드에너지GH2는 캐나다 뉴펀들랜드(Newfoundland) 래브라도주(州) 스티븐빌 지역에 기반을 둔 대규모 그린수소 프로젝트 개발 회사다. 2025년에 그린수소, 2026년에 그린암모니아 생산 개시를 목표로 사업부지 확보와 사전 인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앞으로 풍력발전기부터 수전해·암모니아 합성 플랜트, 항구 출하시설까지 자체 인프라 구축이 예정돼 있다. 수전해는 물을 전기분해해 고순도(99.999%)의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 프로젝트는 레브라도주 뉴펀들랜드섬에서 진행한다. 풍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로 물을 분해해 탄소 배출 없이 그린수소를 뽑아내고, 이를 다시 그린암모니아로 전환해 유럽 등 다른 대륙으로 운송하는 사업이다.
프로젝트 명인 ‘뉴지오호닉’은 그곳 원주민 언어인데,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곳’(Where the sand blows)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뉴펀들랜드섬이 전통적으로 바람의 질이 좋은 곳이라는 방증이자 프로젝트 현장이 풍력발전의 최적지로 평가되는 이유”라고 SK에코플랜트 측은 설명했다. 실제 뉴펀들랜드섬은 캐나다 최동단에 있어 유럽을 비롯한 다른 대륙으로 그린암모니아를 수출하는데 무척 용이하다.
프로젝트는 모두 3단계로 나눠 진행한다. 그중 이번 1단계 사업으로는 전기 생산을 위한 육상풍력발전 약 1GW(기가와트),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고체산화물수전해기(SOEC)와 고분자전해질수전해기(PEMEC) 등 600㎿가 구축된다. 여기서 생산하는 연간 6만t가량의 그린수소를 약 36만t의 암모니아로 전환하는 그린암모니아 플랜트도 함께 건설할 예정이다. 그린수소 생산은 2025년 3월, 그린암모니아 생산은 2026년 3월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약 15억 달러, 우리 돈 2조 원 규모의 독점적 수주기회를 확보했다. 전체 프로젝트의 기본설계(FEED·Front End Engineering Design)를 비롯해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수전해기를 공급, 설치한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5월 프로젝트 수행의 사전 절차인 개념설계(Pre-FEED)에 착수했다.
풍력발전단지 EPC(설계·조달·시공) 참여 관련 논의도 진행 중이다. 그린수소를 그린암모니아로 전환하기 위한 플랜트 EPC는 자회사 SK에코엔지니어링과 함께 맡는다.
SK에코플랜트는 이번 협약을 통해 사업개발을 위한 프로젝트 지분 20% 확보는 물론 EPC 독점적 수주기회까지 확보하면서, 그린수소 사업의 핵심 플레이어로서 대륙 간 초대형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번 협약에 따라 SK에코플랜트는 5000만 달러, 우리 돈 약 660억 원을 투자해 사업개발에 참여하고, 향후 수전해 주기기와 그린암모니아 플랜트 EPC까지 도맡으며 그린수소 사업의 전 과정을 수행한다.
그린수소를 기반으로 생산한 그린암모니아는 유럽의 여러 국가로 수출한다. 캐나다와 독일 양국 정상은 지난해 8월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수소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수소동맹’을 맺었다. 국가 간 협약인 만큼 사업 추진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기반 그린수소 생산·저장은 물론 그린암모니아 전환을 통한 북미·유럽 대륙 간 이동까지 한 번에 수행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수소 생태계를 조기 실현하는 중요 프로젝트가 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SK에코플랜트는 그간 축적한 그린수소 수전해 및 엔지니어링 역량이 이번 사업 수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다. SK에코플랜트는 일찌감치 재생에너지부터 수전해기(SOEC)를 활용한 수전해에 이르기까지 그린수소 밸류체인을 완비했다. 글로벌 해상풍력 전문개발사들과 함께 개발 중인 2.6GW 규모 해상풍력사업과 하부구조물 글로벌 탑티어 기업인 자회사 SK오션플랜트 등 풍력발전 분야 대표성도 갖췄다. 이를 바탕으로 박경일 SK에코플랜트 사장은 지난 4월 한국풍력산업협회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SK에코플랜트는 이번 프로젝트로 SOEC 기반 그린수소 상업 생산 역량을 강화해, 글로벌 그린수소·수전해 시장을 지속 선도해나갈 방침이다.
박경일 SK에코플랜트 사장은 “국내 최초로 대륙 간 그린수소 상용화 사업에 참여함에 따라 향후 더 많은 사업 기회를 확보하는 데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게 됐다”며 “SK에코플랜트의 그린수소 밸류체인과 신속한 실행력,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글로벌 그린수소·그린암모니아 선도기업으로 위치를 확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