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약사들은 별 걸 다 판다. 전문 분야인 의약품 외에 생수, 커피 등의 음료 시장에서 성공적인 안착을 한 제약사가 있는가 하면 화장품 분야에서 ‘잘나가는’ 제약사도 있다. 최근에는 다이어트 간식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곤약젤리를 판매하는 기업도 등장했다. 제약사들은 왜 이 같은 ‘별별’ 제품을 판매하는 걸까? 제약업계의 사업 다각화 트렌드와 그 이유를 알아봤다.
곤약젤리, 제약업계에서도 ‘대세’
종근당은 지난 5월 ‘깔라만시’를 활용한 곤약젤리 제품을 내놨다. 종근당 ‘참 깔라만시 곤약’은, 레몬의 30배에 달하는 비타민C가 들어있어 일명 ‘신의 열매’로 불리는 깔라만시를 15% 함유했다. 종근당은 이 점을 들어 해당 제품이 다른 곤약젤리들보다 체중 감량에 더욱 효과적임을 강조했다.
삼성제약도 지난 3월 다이어트용 곤약 제품 ‘곤약뷰티’를 출시했다. 깔라만시 외에 레몬, 히비스커스 맛이 출시됐으며, 삼성제약 측은 단맛을 내는 설탕과 물엿 대신 저칼로리 감미료인 ‘알룰로오스’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홍삼제품으로 유명한 상아제약에서도 지난해 깔라만시 곤약젤리를 내놓은 이후, 최근에는 '곤약워터젤리'를 내놨다. 석류, 풋사과 맛으로 구성된 해당 제품은 1팩 당 2Kcal로, 곤약젤리 제품 가운데서도 현저히 낮은 칼로리다.
이처럼 최근 제약사들 사이에서 곤약젤리가 인기다. 몇 해 전부터 일본 여행을 다녀온 관광객들이 대량으로 사오기 시작했고, 올해 국내 다이어트 식품계의 루키로 떠올랐다. 100g 당 5㎉ 정도의 낮은 열량에 비해 포만감이 높아 체중 감량을 원하는 소비자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식품업계가 앞 다퉈 곤약젤리를 출시했고, 제약업계 역시 건강과 직결된다는 점을 근거로 곤약젤리 생산에 뛰어들었다. 다이어트용 곤약젤리는 대부분 짜먹는 튜브 형태로, 저녁이나 야식을 대체하는 용도로 팔린다.
음료수-화장품 지나 건강 식당 개업까지
사실 제약사들이 본업 외의 부업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국내 대형 제약사 가운데 하나인 광동제약이다. 광동제약은 본업보다도 오히려 음료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제약 부문 매출은 약 21%인 반면, 음료 매출은 광동제약 전체 매출의 60%에 달할 정도다. 그 중 삼다수와 비타500의 매출이 상당하다.
‘옥수수수염차’로 차(茶) 분야에서 연달아 히트를 친 광동제약은 음료의 범위를 커피까지 넓혔다. 2013년부터 커피 전문점인 카페 드롭탑과 협약을 맺고 프리미엄 RTD(Ready to drink) 커피를 생산 중이다.
유한양행은 외식업에 진출했다.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IFC몰에 건강식품 브랜드인 ‘뉴오리진’의 레스토랑을 열고 외식 시장에 본격 출사표를 던졌다. 뉴오리진은 제약회사가 직접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첫 사례다. 홍삼·비타민·녹용 등의 식자재가 들어간 건강차, 건강식을 주문할 수 있고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뉴오리진 1호점은 오픈 한 달 만에 2만 5000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유한양행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 9월에 2호점을 오픈했다.
또 유한양행은 베이비 스파브랜드인 ‘리틀마마’를 출시하고 화장품 사업에 진출했다. 리틀마마는 유·아동 편집샵과 백화점 등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동국제약은 화장품과 제약이 합쳐진 ‘코스메슈티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2015년 출시한 기능성 화장품 브랜드 ‘센텔리안24’는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어 지난해 6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센텔리안24의 히트 상품은 ‘새살이 돋아나는’ 광고로 유명한 ‘마데카솔’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출시한 ‘마데카크림’이다. 마데카크림은 상처 연고제에 들어가는 주성분인 ‘센텔라아시아티카’의 추출물이 들어가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 외에도 대웅제약의 병의원 화장품 브랜드 ‘이지듀’, 마스크와 크림으로 유명한 일동제약의 ‘퍼스트랩’, 광동제약의 한방 피부 브랜드 ‘피부약방’ 등 약용 성분을 함유한 화장품을 내세우는 전략들이 속속 펼쳐지고 있다.
제약사들 사업 다각화 이유는?
이처럼 제약사들이 사업 다각화에 몰두하는 이유는 의약품 시장 성장세가 둔화됐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연평균 10% 이상의 고성장세를 보였던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10년부터 급격히 저성장 기조가 이어졌다. 그 이유는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 ‘리베이트 쌍벌제’ 등 규제 강화와 복제약 이익률 저하 등의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다.
제약사들은 의약품 사업만으로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사업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일부 제약사들은 다국적 제약사로부터 품목 도입과 공동 마케팅에 의해 상품 매출을 확대했고, 제약업의 특성을 살려 건강기능식품, 의료기기, 의약외품에서부터 화장품, 다이어트 식품으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에 대한 성과는 2014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품 판매를 바탕으로 한 매출액 상승세 덕이다. 2010년까지 25% 내외를 보였던 대형 제약사들의 상품 매출 비중이 2016년 46.3%를 기록했고, 2017년에는 47.7%로 상승했다.
‘본업 소홀에 대한 우려’도
제약업계의 비대해지는 ‘부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는 것도 좋지만, 제약업계의 본분인 ‘신약 개발’ 등의 의약품 사업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제약업계는 이런 우려에 대해 “걱정할 것 없다”는 입장이다. 연구개발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 실제로 연구개발비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대형 제약사들의 연구개발비는 2006년 2139억 원(매출액 대비 비율 5.5%)에서 10년 뒤 2016년 7924억 원(매출액 대비 9.7%)으로, 그리고 지난해 3분기에는 6110억 원(9.4%)으로 크게 확대됐다.
매출의 절반 이상이 생수 및 유통 영역에서 발생해 여러 차례 정체성 논란에 휩싸였던 광동제약 역시 본업에 소홀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제약과 음료 부문, 신규 사업의 동반 성장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며 “비만 치료제 신약 KD101의 임상 2상 시험을 수행 중이며, 최근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 신약 후보물질과 여성 성욕 장애 치료제 신약 후보물질의 국내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