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2호 이동근⁄ 2020.03.19 09:19:00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전자투표제를 채택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2020년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KT, CJ그룹 등 그 동안 전자투표를 하지 않던 주요기업들도 전자투표제를 도입할 것임을 밝혔다. 전자투표제는 주주권 강화를 위한 대표적인 정책이지만, 그동안 여러 이유로 적극적으로 도입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슈가 되자 의결종족수 부족을 막기 위해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
18일을 기점으로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됐다. 올해 주총은 코로나19 사태 이후라는 점에서 주주들이 대거 참석하는 행사로는 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실제로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다수 기업들은 전자투표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속속 밝히고 있다.
실제로 13일 한국예탁결제원은 2019년 12월 결산 상장법인 중 3월 15일∼3월 21일 사이에 총 477개사가 정기주주총회 개최를 위해 예탁결제원 전자투표시스템(K-eVote)을 통해 전자투표·전자위임장을 이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전체적으로 절반이 넘는 약 900여곳이 최종적으로 전자투표를 시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3월 셋째주(3월 15~21일) 한국예탁결제원 전자투표·전자위임장 이용 현황 |
예탁결제원은 이처럼 다수 회사들이 전자투표 시스템을 이용하자 지원을 위해 주주총회 특별지원반을 3월 2~31일 운영하고 있으며, 주주총회 운영현황 분석과 운영실무 상담, 주주에 대한 전자투표 독려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올해는 공인전자문서중계자를 통해 개인주주에게 모바일 알림톡으로 전자투표를 안내하는 ‘주주총회정보 전자고지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사실 전자투표 시스템을 위한 법적 조건은 2009년 상법 개정으로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한국예탁결제원 기준 2018년 정기주주총회에서는 발행주식총수 대비 3.9%, 2019년 5.04% 수준에 머무르는 등 이용률이 저조했다.
‘전자투표제’ 코로나19 창궐 특수 상황에 도입
전자투표제는 원래 주주권 강화를 위한 정책으로 소액주주·개인투자자나, 여러 주총 행사에 동시에 참여하기 어려운 기관투자자, 혹은 다양한 이유로 주총에 참가하기 어려운 주주들을 위한 정책으로 발안됐다. 예탁결제원을 비롯해 미래에셋대우, 키움증권, 삼성증권 등이 관련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거 도입은 코로나19의 창궐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의결권 정족수 확보를 위해서는 주총에 참여하지 않는 주주들까지도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302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2020년 주주총회 주요 현안과 기업애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정족수 부족 우려’가 35.1%(복수응답)로 가장 많았고, ‘감염우려 및 예방책 고심’(24.1%), ‘감사보고서 지연’ 등 준비 차질(13.2%)를 꼽았다.
특히 정족수 문제는 2017년 말 섀도보팅(shadow voting, 의결권 대리 행사)가 소수 경영진과 대주주의 경영강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폐지된 후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특히 3%룰(감사·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지분이 아무리 많아도 3%까지마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규정) 때문에 감사선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정기주총에서 1개 이상 안건이 부결된 상장사는 섀도보팅 폐지 직후인 2018년 76개에서 2019년 188개로 증가했다. 부결된 188사의 주총 안건은 총 238건인데, 감사(위원)선임이 149건(62.6%)으로 가장 많았다.
섀도보팅은 지분을 소유한 주주가 100명이라 가정한다면, 이 중에 10명이 참석하고 7명이 찬성하고 3명이 반대한다면, 여기서 참여하지않은 90명 모의 주주도 똑같은 비율인 70% 찬성, 30% 반대로 참석한 것으로 보는 제도로 주총이 무산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 제도가 없어진 뒤 의결정족수 확보를 위해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대리해 모아주는 업체도 생겨났다.
정족수 부족 문제 해결 열쇠 될까
이에 따라 이번 전자투표제 도입이 섀도보팅 폐지로 인한 정족수 부족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 소액주주 등의 주주총회 접근성 확대를 위해 전자투표제 도입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11일 성명을 통해 “그 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정기 주주총회를 3월말에 집중하여 개최하면서도 전자투표를 도입하지 않아 소액주주들의 주주총회 접근성에 큰 장애가 있었다”며 이번 전자투표제 대거 도입에 대해 “상당수는 코로나19사태로 인하여 전자투표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자투표제 도입과 주주총회일의 분산은 코로나19사태가 아니어도 소액주주들의 주주총회 접근성 확대, 이를 통한 주주총회 활성화 등을 위해 필요하다”며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기업들은 소액주주들의 주주총회 접근성 확대를 위해 이후로도 전자투표제를 유지하고, 나머지 기업들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하여서도 전자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