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기업] 화장품 광고에 꽃미녀-미남 아닌 웬 식빵?

XYZ포뮬러 비프루브-토니모리-네이처리퍼블릭 편

윤지원 기자 2017.04.03 10:13:32

▲이 광고는 XYZ포뮬러의 보습크림이 거친 환경에서 피부의 수분을 얼마나 잘 지켜주는지를 입증하는 직설적인 테스트 영상이다. 하지만, 테스트를 과학이 아닌 요리라는 일상과 접목시키고, 복고풍의 비주얼 및 사운드로 잘 장식했다. 뛰어난 제품의 효과를 확연히 보여줌으로써 천편일률적인 여타 화장품 광고들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사진 = XYZ포뮬러 광고화면 캡처)


광고대행사가 스스로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광고가 있다. 기획사 ‘디블렌트’의 관계자는 “최근 화장품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광고”라며 신생 화장품 회사인 XYZ포뮬러의 ‘세라크라운’ 보습크림 광고 영상을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온에어 2주 만에 전체 영상 조회수 670만을 넘겼다”고 자랑했다. 예쁜 화면과 모델, 듣기 좋은 음악, 그리고 뛰어난 아이디어로 주목받고 있는 이 광고는 지난 2월 초 공개된 이후 광고 전문 포털 싸이트의 ‘크리에이티브 100’ 리스트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세트 같은 핑크 파스텔 톤의 예쁜 주방. 러시아 모델 안젤리나 다닐로바가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에디트 피아프 풍의 샹송이 고급스럽고 우아한 디너 분위기를 연출한다. 

안젤리나는 예쁜 접시에 식빵 한 장을 깔고, 버터나이프로 버터를 떠서 식빵 표면에 바른다. 아니, 바르는 것은 버터가 아니라 화장품이다. 안젤리나는 XYZ크림을 식빵 한쪽 면에 발라 토스터기에 넣는다. 그리고 일부러 오버쿡(과하게 익히다)을 해 식빵 표면을 까맣게 태운다. 

안젤리나는 식빵의 타버린 면을 카메라에 보여주다가 갑자기 뒤집어 뒷면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크림을 바른 면은 익히지 않은 맨빵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자막이 뜬다. “보습의 끝판왕.”

피부 건강에 보습이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40대 중반에도 아기 피부로 유명한 배우 고현정이 한 공중파 토크쇼에서 “차에서 히터 바람을 쐬는 것은 피부를 숟가락으로 긁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기 전부터도 난방은 피부 보습의 적으로 여겨졌다. 그렇다고 한겨울에 온기 없이 지낼 수는 없는 일이고, 건조한 봄바람도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 광고는 아무리 열기가 뜨겁고 바람이 건조한 환경에서도 XYZ포뮬러가 만든 보습크림이 피부를 촉촉하게 지켜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광고가 잘 만든 광고라는 점은 한 줄 요약이 쉽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토스터 열기에 오랫동안 노출된 식빵 표면을 지켜줄 정도로 제품의 보습 효과가 뛰어나다.” 

그런데 이 한 줄은 광고의 요약이 아니라 광고의 전부다. 딱 저것만 보여주고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그런데도 이 한 줄로 제품의 놀라운 품질을 완벽하게 전달하며, 인상이 남는다. 광고 영상에 달린 댓글 중에는 화장품이나 모델의 미모에 대한 평가보다 광고의 아이디어에 대한 칭찬이 몇 배 많다. 그만큼 아이디어가 뛰어나다. 

▲비프루브의 화장품 광고는 여자 모델 대신 대세 꽃미남 박보검을 메인 모델로 썼다. (사진 = 비프루브 광고화면 캡처)

▲토니모리는 꽃미남 남자배우 서강준이 남자친구로서 좋은 화장품을 추천한다는 콘셉트의 광고를 만들었다. (사진 = 토니모리 광고화면 캡처)

▲화장품 광고들은 거의 항상 미모의 여자 톱스타를 모델로 써왔다. 송혜교는 2008년부터 10년 째 라네즈 모델로 활약 중이다. (사진 = 라네즈 광고화면 캡처)


화장품 광고 맞아?

XYZ크림 광고는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 왔던 여느 화장품 광고와는 확연히 다르다. 화장품 광고는 일단 미모의 여자 톱스타를 모델로 내세운다. 모델이 얼마나 예쁘고 피부가 고운지를 한껏 자랑하면서, 그가 어떤 제품을 쓰기 때문에 이렇게 예쁜 것이라는 식으로 광고한다. 광고 제품의 사용이 모델의 미모라는 결과를 낳기까지 그 사이에 있을 여러 단계의 인과관계가 생략되어 있지만, 소비자는 모델의 미모에 설득돼 제품을 구매한다.

최근에는 미녀 모델 대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남자 모델들이 여성용 화장품 광고의 메인 모델로 등장한다. ‘비프루브’는 박보검을, ‘토니모리’는 서강준을, ‘네이처 리퍼블릭’은 엑소(EXO)를 등장시킨다. 심지어 여자 모델은 아예 등장하지 않기도 한다. 대개 이런 광고들은 남자친구가 좋은 화장품을 추천한다는 콘셉트다. 하지만 사실 꽃미남이 여자 화장품 광고에 나오는 이유는 “이 제품을 쓰면 이런 남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설득하기 위해서다. 이 부류의 광고들은 남자친구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1인칭 시점의 카메라를 노골적으로 적용한다. 이 경우에도 제품과 사랑의 성공 사이에 많은 단계의 인과관계가 생략된 것은 마찬가지다.

XYZ크림 광고의 안젤리나 다닐로바도 뛰어난 미인이긴 하다. 그러나 이 광고에는 모델이 자기 얼굴에 제품을 바른다거나 제품 덕에 아름다워진 미모를 강조하는 장면은 없다. 식빵이나 제품을 중심에 두고 안젤리나는 아예 포커스 아웃된 채로 나오는 숏도 많다. 다른 광고라면 안젤리나의 미모를 부각시키겠지만, 이 광고에서 그녀의 역할은 제품 성능을 테스트하는 연구원일 뿐이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화장품 광고라기보다 음식이나 식당 광고, 또는 요리법 소개 영상에 더 가깝다. 유럽 감성의 복고풍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식기를 중심으로 음식과 조리 과정을 클로즈업에 담아내는 이미지는 요리 전문 케이블채널 ‘올리브TV’에서 하루 종일 볼만한 이미지다. 음식 광고인가 싶었더니 화장품을 음식에 바른다는 반전으로 호기심을 키운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왜 필요해?

이 광고는 실험을 통해 제품의 성능을 증명해 보여주는 콘셉트다. 하지만 삭막하고 지루한 실험실이나 흰 가운의 연구원이 등장하는 과학적인 이미지 대신 예쁘고 익숙한 요리의 이미지를 이용해 거부감을 줄이고 화장품 광고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실험 내용도 말할 수 없이 간단하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다. 실제로 XYZ포뮬러는 이 광고에서 진행한 토스터기 실험을 일반인이 실제로 진행한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광고에 삽입된 “본 장면은 연출되지 않은 실제 장면입니다”라는 자막이 의심되는 사람은 일반인 영상을 보면 된다. 일반인 영상은 실험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을 중단하지 않고, 편집 없이 한 숏으로 구성되어 있고, 광고와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콘셉트가 확실하고, 증명이 간단하고, 효과가 뛰어나니 대사 없이 화면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다. 이 광고에서는 제품명을 읽는 대사 외에는 아무런 대사도 나오지 않는다. 

이 광고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유려한 이미지에 담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면서도 제품의 뛰어난 효과를 보여준다는 광고 본연의 역할을 철저히 고수한다. 설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트릭도, 과장도 없다. 좋은 제품은 그 효과를 스스로 증명하고, 소비자가 체험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된다. 안젤리나가 아니라 김태희, 송혜교,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를 데려다 모델로 쓴다고 해도 결국 소비자는 간접적으로라도 체험을 통해 더 좋은 점이 확인된 제품을 선택하게 된다.

XYZ크림 광고는 소비자가 제품의 뛰어난 점을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하게 하고, 전달해야 할 정보를 최대한 돌직구로 전달하려는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비유와 장식은 있지만 변칙과 편법은 없다. 

디블렌트는 매체광고 제작보다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캠페인을 중시하는 기획사다. 디블렌트의 회사 소개 글에 “소비자들은 더 이상 브랜드가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브랜드나 제품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라고 적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수많은 제품들이 저마다 우수한 품질을 지녔다고 자랑하지만, 체험으로 증명하는 것이 말보다 효과적인 광고라는 신념이고, 이 광고를 통해 그 신념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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