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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中企 수십억 매출 대부분 날려… 줄도산 위기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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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7호 성승제⁄ 2008.10.07 17:33:08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국의 중소기업들까지 울리고 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환율이 급등할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통화파생상품 키코(KIKO)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이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급등하는 원·달러 환율로 인해 줄도산 위기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키코에 가입한 수출기업들은 수십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고도 키코 손실로 인해 정작 남는 것은 없는 실정이다. 또, 일부 기업들은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은 물론 R&D(연구개발) 비용마저 마련하지 못해 전면 스톱 상태까지 맞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 마저 배부른 소리라고 울부짖는 중소기업도 적지않다. 부도위기에 놓이거나 이미 부도 처리된 중소 기업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중간에서 수수료만 챙기는 은행들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이 회생 신청을 하면서 수천 억 원의 손실을 껴안게 됐기 때문. 또한, 환율이 올라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당초 은행원들의 말만 믿고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이 대규모 소송절차를 진행 중이어서 소송 논란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은행들은 자업자득이 아니냐는 질타도 나오고 있지만, 중소기업에 비해서는 여유가 있는 편이다. 이처럼 수출기업을 강타한 키코 사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얼마나 심각한지 그 현황을 알아봤다. #1 “은행원 말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시간만 되돌려줄 수 있다면 목숨까지도 내주고 싶은 심정이에요.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은행원들은 환율이 올라갈 가능성은 제로라고 해서 키코에 가입했는데 지금은 버는 족족 다 까먹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죠.” 경기도에서 제조업을 하고 있는 중소기업 A사 대표는 요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매분기 20억 원 가까이 실적을 내고 있지만, 키코 손실 탓에 정작 가져가는 것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정부에서 검토 중인 지원책도 미덥지 못하다. “우량 중소기업을 선별해서 지원한다는데, 어떻게 구분을 한다는 건지 답답할 따름”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2 반도체 회로 부품을 생산하는 서울 B사 경영진은 요즘 키코 관련 회의로 하루 일과를 보내기 일쑤다. 하지만, 딱히 뾰족한 대책이 없어 가슴앓이만 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상반기에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절반을 키코 때문에 날렸다”며 “올 하반기 신입사원 모집은커녕 시급히 진행해야 할 연구·개발(R&D) 투자도 전면 스톱 상태”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로 시작된 금융위기가 국내 중소기업마저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특히, 환율 급등으로 파생금융상품인 키코 피해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는데다,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중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눈에 띄게 줄이면서, 자금 사정이 열악한 일부 중소기업은 부도 직전에까지 내몰리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키코 관련 소송을 준비 중인 132개사의 손실액은 피해접수 당시(원·달러 환율 1000원) 3288억 원에서 환율이 1100원을 넘어선 최근에는 9466억 원까지 치솟았으며, 환율이 1200원으로 상승하면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키코는 환율이 특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차익을 얻을 수 있지만, 상한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약정액의 2~3배에 달러를 팔아야 하므로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돼 있다. 키코에 가입한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은행에 내는 키코 상환금 때문에 원자재 등을 제대로 구입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해외 거래처에 납품 기일을 제때 맞추지 못해 신용도마저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대기업에 비해 자금 사정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의 신용 위험이 증가하면서 시중 은행들의 대출기피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은 1조8000억 원으로 전월에 비해 67.2%나 급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기 둔화에 따른 대출 자산 부실화를 우려한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바짝 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중소기업들의 체감경기도 크게 얼어붙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154개사를 대상으로 ‘미국발 금융시장 불안이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81.8%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부문(복수응답)으론 ‘은행자금조달 곤란’을 1순위(63.4%)로 꼽았고, 이어 내수 감소(62.6%), 판매대금 회수 지연(60.2%), 수출 감소(44.7%) 등을 지목했다. 설상가상으로, 대기업들이 올 들어 급등세를 보인 원자재가격 상승분을 납품원가에 반영시켜주지 않아 중소기업들의 채산성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상당수 우량 중소기업들이 키코에 가입하면서 신용도가 크게 떨어져 자금 경색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키코 피해 기업들의 경영 상태가 건전하고 순간적인 유동성을 겪고 있다는 점을 감안,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이들 기업을 구제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키코 사태의 근본 이유 키코란,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일 경우 미리 정한 고정환율에 약정액만큼 달러를 팔 수 있어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상품이다. 즉, 환율이 일정 구간 안에서 움직일 경우엔 기업들이 환헤지 혜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환율이 하한선 아래(knock-out)로 떨어질 경우엔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고, 상한선 위(knock-in)로 치솟을 때는 오히려 기업들이 막대한 환차손을 입게 된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키코에 가입한 102개 기업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1100원까지 상승하면 62.7%, 1200원으로 오르면 68.6%가 부도 위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협력업체까지 고려하면 환율이 1200원으로 오를 때 5700여 개가 부도 위험에 처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처럼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책임공방은 정부와 은행에 몰리고 있다. 사실상, 올 상반기 산업계와 금융계에 논란을 부른 키코 사태를 둘러싼 책임공방이 변화의 국면을 맞게 된 것은 7월 24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그 동안 코너에 몰렸던 은행들의 손을 들어줬다. 키코에 대한 불공정 약관 심사에서 “약관법을 적용해 불공정한 것으로 판단하기 곤란하다”며 종결처리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공정위는 그 근거로,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고, 환율이 계속 떨어지던 지난해 말까지는 키코 계약을 한 상당수 중소기업들이 환차익을 봤다는 점을 들었다. 또, 금융 선진국에서 판매되는 통화옵션상품의 일종이라는 점도 주요한 판단 근거로 삼았다. 금융감독원은 한술 더 떴다. 금감원은 이달 초 발표한 ‘키코 거래 현황과 대책’ 자료에서 “환율이 올라 수출에서 환차익을 본 기업들이 이 점은 무시한 채 키코 거래의 손실만을 따지고 있다”고 책임을 기업 쪽에 떠넘겼다. 환차익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피해를 본 기업은 계약금액이 수출대금을 넘기는 ‘투기적’ 거래를 한 경우뿐이라는 식의 주장도 폈다. 금감원은 6월 말 현재(환율 1046원) 키코 거래손익(전체 519개사)은 수출대금 환차익을 감안할 경우 2조1950원 평가이익이 발생했으며, 중소기업 68개사의 경우에만 2533억 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중소기업계는 금감원의 논리에 분통을 터뜨린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환율이 오르면서 석유류와 철강·구리를 비롯한 각종 원자재 비용이 함께 치솟은 것은 왜 빼놓느냐”면서 “환율에 따른 기업들의 손익은 금감원이 주장하듯 도식적으로만 바라봐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유압 실린더를 연간 120억 원 규모로 수출하는 한 중소기업의 사장은 “바이어들이 요즘처럼 환율이 치솟으면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해 온다”며 “공무원들이 탁상공론만 벌이지 말고 기업을 찾아와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호소했다. ■ 정부, 뒤늦게 수습… 中企 ‘시큰둥’ 결국, 키코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후에야 정부는 뒤늦게 부랴부랴 수습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여당은 당정협의에서 중소기업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금으로 8조3000억 원을 신규로 공급하는 내용을 포함한 대책을 내놨다. 또 “국내 외환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점검한 결과, 외환보유고가 국제 권고기준을 상향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준을 확보하고 있는 것을 파악했다”고 보고했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이날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미국발 금융불안이 우리 금융시장에 상당히 영향을 주고 있다”며 “특히 금융기관 창구에서 중소기업들이 자금을 충분히 지원받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는 민원이 계속 밀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당정협의를 통해 △국가 외환보유고 점검, △은행별 외화유동성 확보를 위한 외화자금 공급체제 구축, △중소기업 유동성 8조3000억 원 신규 공급(정부 4조 원, 은행 4조3000억 원)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키코 사태로 인한 흑자도산이 없도록 4조 원 범위 내 특례보증 등 맞춤형 지원을 위한 키코 대책반 구성, △소상공인·영세 자영업자 보증한도 지원금을 1조 원에서 1조5000억 원으로 늘리고, (보증)한도를 1000억 원에서 2000억 원으로 증액 △미분양 아파트, 건설사 대책을 위한 건설부문 대책반 구성, △한국은행에서 지방 중소기업 중심 총액대출한도 확대지원 방안 마련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키코 거래가 가장 많은 한국씨티와 SC제일은행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데다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와, 여전히 지원책은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금융 지원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금융상품으로 인해 손실을 볼 경우 지원을 해준다는 선례를 남기면 나중에도 똑같은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기업활동의 하나인 자금관리를 도외시한 대가는 치르도록 해야 한다”며 “금융지원을 하더라도 벌칙성 금리와 같은 페널티를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은행들 키코 부메랑 은행들은 올 상반기에 키코 등의 파생금융 상품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길 때만 해도 휘파람을 불었다. 한국씨티은행은 상반기 중 파생상품과 관련해 약 4032억 원의 순익을 올렸다. 작년 상반기의 520억 원에 비해 8배 가량 늘어난 규모로,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 2569억 원의 1.6배에 해당한다. 키코 상품을 가장 많이 판매한 SC제일은행도 파생상품과 관련하여 1695억 원의 순익을 올려 작년 동기보다 배 가까이 급증했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은 파생상품 거래로 각각 1149억 원과 1068억 원을 벌었고, 기업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975억 원과 605억 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또, 파생상품 거래와 관련하여 각각 390억 원과 272억 원의 순익을 올린 산업은행과 국민은행을 포함한 8개 은행의 파생상품 관련 순익은 1조185억 원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의 손실이 이제 은행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하나은행은 피봇 거래를 한 태산엘시디가 회생신청을 하면서 관련 손실을 떠안게 됐다. 현재 평가손실은 약 2861억 원으로, 지난 2분기 순이익 3096억 원에 맞먹는다. 하나은행은 자금담당 부행장과 본부장을 면직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2분기 중에 키코와 관련된 기타자산이 7조3000억 원이나 줄었다. 키코로 손실을 본 업체들이 옵션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은행들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토바이 수출업체인 S&T모터스가 지난달 20일 SC제일은행을 상대로 키코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낸데 이어, 130여 개 기업들이 13개 은행을 상대로 대규모 집단소송 절차를 진행 중이어서 소송대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여파로 외화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중기 대출 연체율도 늘어 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중기 대출 연체율은 작년 말 1.0%에서 8월 말에는 1.5%까지 올랐다. 금융권의 관계자는 “키코 사태는 환율의 변동성을 예측하지 못한 기업들이 환 헤지 목적을 넘어 투기 수단으로 활용했고, 은행들도 기업이 매출이나 이익 등에 비해 과다한 규모의 파생거래를 하는데도 개의치 않고 추가 계약을 한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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