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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편에 선 어느 탐정(?) 이야기

한국판 ‘셜록홈즈’ 원린수 형사문제연구소 소장 동행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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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8호 박성훈⁄ 2008.10.21 17:18:55

이 기사는 ‘포항 이동식 씨 사망사건’과 ‘완도 노부부 의문사’ 사건을 조사 중인 원린수 씨와의 동행취재 과정에서 나눈 대화와 있었던 일들을 원 씨의 시각으로 재구성해서 쓴 기사입니다. 기사의 내용은 원 씨의 생각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 씨는 일체의 수임료를 받지 않고 사건을 위탁받아 조사하고 있음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14일 새벽 4시 반. 여느 때와 같은 시각에 일어났지만, 오늘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잠이 깨자마자 부산스럽다. 평소 같았으면 여유로운 마음으로 간편한 옷차림에 운동화 끈 질끈 매고 마라톤 훈련을 위한 뜀박질에 나섰겠지만, 오늘은 포항에서 발생한 ‘이동식 씨 사망사건’을 마무리 짓고 ‘완도 노부부 의문사 사건’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 포항까지 가야 한다. 마라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아 연습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지만, 당장은 사건이 급하다. 비행기 시간이 6시 50분이라 지체하는 일 없이 김포공항에 당도해야 한다. 나의 필수품인 사건기록이 담긴 노트북과 녹음기·카메라와 함께 사건기록부·녹취록 등 제반 증거자료를 챙겨 밖으로 나선다. 부쩍 새벽이 어두워진 요즘, 오늘따라 새벽의 찬 공기를 맞는 부담감이 깊다. 가끔은 언론도 도움이 된다 김포공항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한참 생각에 빠져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에 동행하기로 한 박성훈 기자다. 약속시간보다 20분쯤 이른 6시 10분에 도착했다고 한다. 난 원래 기자들이란 남의 불행에 파고들어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족속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언론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 1월 방영된 MBC ‘뉴스후’의 ‘사법 피해자의 눈물’에서 내가 하는 일을 다룬 보도를 보고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포항 이동식 씨 사건’만해도 아내 이명옥 씨가 방송을 보고 찾아와 접수하게 됐다. 또한, 결정적 증거인 지구대 폐쇄회로 영상을 얻으려고 찾아간 포항경찰서에서 문전박대당한 뒤 언론을 동원하려던 찰나의 SBS 취재요청은 ‘신이 보낸 기회’였다. 지난 10월 8일자 SBS ‘뉴스추적’에서 하대석 기자와의 동행조사가 없었다면 소기의 성과를 건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SBS의 유현미 작가가 찾아와 내 이야기를 듣고 갔다. ‘신의 저울’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내 캐릭터를 모델로 삼았다고 하니 고마운 일이다. 경찰서도 이번에는 언론이 보는 앞에서 문전박대를 하진 않을 테니, 박 기자의 동행에 적이 안심이 된다. 출발시각 6시 50분에 맞춰 탑승수속을 마치고 박 기자와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적법하게 증거 달랬더니 되레 욕설 이쯤에서 포항경찰서에서 문전박대당하던 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6년 12월 5일 포항의 학산지구대에서 고 이동식 씨가 사망했고, 그 사인(死因)이 묘연한 가운데,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폐쇄회로 영상과 녹취 파일을 경찰에서 2년째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적법하게 받을 수 있는 증거자료를 2년 동안 투쟁해서 법원에서 판사 명의로 문서제출명령을 얻어냈다. 동영상이 담긴 CD를 제출하라는 포항지검 검사의 구두명령도 있었다. 이도 모자라 ‘광화문-잠실 마라톤’에 참가하면서 동료 선수들 1000명에게 ‘동영상 CD 제출’을 촉구하는 프린트를 번호판에 붙이도록 했다. 잠실 메인스타디움에는 대형 플래카드도 걸었다. 이렇듯 어렵게 구한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서와 검사 녹취록을 들고 유가족들과 함께 포항경찰서장을 찾아가 “법에도 주도록 돼 있으니 CD를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포항경찰서는 막무가내였다. 서장에게 상황설명을 하던 중, 갑자기 아들뻘 돼 보이는 생활안전과 과장(경정)이 나타나더니 다짜고짜 욕을 하는 것이다. 상관인 서장이 입을 꾹 다문 상태에서 젊은 간부가 날뛰는 모습이 서로 짜고 날 내몰려는 속셈처럼 보였다. 적법하게 자료를 요구하는 내게 억지를 부려, 내가 화를 내면 공무집행방해죄로 내몰 게 뻔했다. 빈손으로 경찰서를 나서면서, 분통 터지는 심정에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동영상 CD를 받아내고야 만다는 각오로 마음을 다잡았다. 오직 진실의 편에 선다 이윽고 비행기는 포항공항에 도착했다. 굳어진 마음도 슬슬 유연해졌다. 공항에는 나의 점잖은 친구 정 씨가 차를 대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옛날 섀시 사업을 할 때 자재 거래처로 알게 된 회사의 대표이사인 그는 사업차 다망한 가운데에도 날 돕기 위해 공항까지 마중을 나왔다. 실은 그도 의뢰인 중 한 명이다. 특허권과 관련해 경쟁사와 다툼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고 이동식 씨 사건과 완도 의문사 사건이 시급한 만큼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로 하고, 의뢰인인 고 이동식 씨의 아내 이명옥 씨를 만나러 포항 시내의 한 식당으로 갔다. 이 씨와 함께 경찰서장을 찾아가야 한다. 약속장소인 해장국집 앞에 서 있던 이명옥 씨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다”며 우리 일행을 맞는다. 하지만, 웃는 얼굴 뒤로 근심이 짙게 깔린다. 다리도 절룩거린다. 물어보니 “남편을 잃은 뒤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다리가 안 좋아졌다”며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이 사건 때문에 못 받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바지를 걷으니 반창고가 잔뜩 발라져 있었다. 이명옥 씨는 “좋은 음식을 대접해야 하는데…”라며 못내 미안해했으나, 난 “전혀 미안해할 필요 없다”며 해장국을 주문했다. 난 의뢰인으로부터 식사 한 끼에 8000원 이상의 대접은 받지 않는다. 향응과 금품은 물론이다. 필요 이상의 친절도 사절이다. 그 이상의 대접을 받을 경우 제반 조사과정에 임할 때의 공정성이 나도 모르게 흩어지게 마련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향응이나 금품을 받으면 향응 제공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료수집, 증거채증 등이 이루어지게 되고 진실은 왜곡된다. 공정한 안목이 흐트러진 상태에서는 숨겨진 진실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의뢰인이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해서 그의 편에 선 조사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때로 잘못을 저지른 뒤 이를 감추거나 다른 이에게 전가하기 위해 사건을 의뢰해 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의뢰인이든 상대측이든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편도, 피해자의 편도 아닌 진실의 편에 서야 한다. 베일에 가려진 이동식 씨 사망원인 박 기자가 생전의 이동식 씨에 대해 이명옥 씨에게 물었다. 고 이동식 씨는 본래 사업을 하던 사람이다. 학산지구대의 대원들을 비롯하여 다른 경찰과도 친분이 있었다. 그러다 1997년 IMF 금융 파동이 몰아쳤을 때, 고인의 회사 역시 부도를 맞고 말았다. 그때부터 이 씨가 술을 접하는 때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던 2006년 12월 5일 만취상태에 있던 이 씨가 돌연 사망했다. 경찰의 주장은, 이 씨가 평소처럼 이날도 술에 취해 들어와 경찰들과 승강이를 벌이다 따뜻한 주취자 안정실에서 잠이 들었고, 갑자기 이상이 생겨 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2시간 뒤에 숨졌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씨가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는 이미 의식이 없었고, 고혈압성 심장비대증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명옥 씨가 아들과 확인한 결과, 경찰의 폭행으로 이 씨가 사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들이 지구대 폐쇄회로 영상으로 확인한 결과, 이 씨가 주취자 안정실이 아닌 지구대 사무실 시멘트 바닥에 누워 있었으며, 경찰들이 발길질을 한 뒤 고인을 6시간 동안 차가운 곳에 내버려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발로 고인의 상태를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영상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을 유가족들이 통사정해서 보게 된 영상은 경찰 측이 화면을 빠르게 돌려 제대로 정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씨는 “경찰이 고인을 찰 때 발이 가슴 높이에 올라올 정도로 힘껏 찼다”며 “살의적으로 찬 것이지, 확인하려고 건드린 수준이 아니다”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고인의 외상은 가슴과 등·어깨 등이었다고 한다. 영상에서는 먼저 고인을 바닥에 내친 후에, 근무하던 경찰관 한 명이 발로 가슴을 찍고, 다른 한 명이 어깨를 발로 찼다고 한다. 그리고 살려달라는 듯 애원하는 몸짓을 하며 시멘트 바닥을 기어 다니던 고인을 방치해 두었다고 한다. 정황상 더 수상한 점은 지구대장 김 모 경감이 장례식장을 찾아와 직원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500만 원의 수표가 담긴 봉투를 건넸다는 사실이다. 경찰 지구대장이 장례비에 보태 쓰라고 건넨 돈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를 평소에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의적인 취지에서 장례비와 조의금 명목으로 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사건을 무마시키려 했다는 의혹이 든다. 유가족들은 급작스러운 거금의 조의금이 찝찝해 경찰서 측에 돌려줬다고 한다. 일전에 확인한 결과, 이 씨는 병원으로 이송하기 전에 죽은 것으로 추측된다. 이 사건에 대해 수사한 검·경찰은 지구대로 최초에 출동했던 119 대원도 조사하지 않고, 병원에서 최초로 진료를 맡은 의사와 간호일지도 조사하지 않았다. 119 대원을 만나 확인해봤더니 “시신이 동사한 것처럼 차가웠고 심전도도 멈추었다”고 말했다. 간호일지에는 여러 약의 처방 내용과 36.5도로 적시된 신체 온도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으나, 확인해보니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또, 고인의 4~5번 갈비뼈가 부러진 것으로 부검결과 밝혀졌는데, 경찰에서는 과도한 심폐소생술로 부러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는 의료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심폐소생술로 부러질 수 있는 뼈는 6~7번이라고 한다. 역시 석연치가 않다. 폐쇄회로 영상 CD만 받으면 되는데… 식사를 마치고 포항경찰서로 갔다. 이제는 동영상 CD와 녹취자료만 받으면 된다. 이 증거자료가 모든 사실을 명백히 밝혀줄 것이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법에 의해 심판을 받으면 이번 사건은 해결되는 것이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심기일전하고 이명옥 씨와 서장실에 들어갔으나, 서장은 부재중이었다. 대신, 서장실에는 비서업무를 보는 경리만 한 명 있었다. 그는 “연락도 없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느냐”며 “생활안전과에 얘기할 테니 그곳 직원과 상의하라”고 말했다. 일전에 내쫓기다시피 해서 나왔는데, 연락해서 찾아온들 면담약속을 잡아주겠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이윽고, 생활안전과 계장이 들어왔다. 일전에 욕을 먹고 쫓겨날 때 그 자리에 있던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는 “올라가서 얘기하자”며 윗층 생활안전과로 안내했다. “방송 잘 봤습니다”라는 인사치레도 잊지 않았다. 사무실에 들어선 뒤 나는 119 대원과 병원 관계자, 의료전문가와 상담하고 조사한 녹취록 등 그 동안 준비해 온 증거자료를 계장에게 보여주며, 동영상 CD와 녹취 파일을 내줘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명옥 씨는 분통을 삼키며 눈을 지긋이 감고 앉아 있었다. 침착한 모습의 계장은 이전처럼 내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고 잠자코 듣고는 “영상과 녹취록 등 증거물은 7일에 이미 서울 중앙지방법원으로 등기를 통해 보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미 경찰서에서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이제 손에 동영상 CD를 넣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 빨리 내 눈으로 직접 고 이동식 씨의 사망에 대해 풀리지 않은 의혹의 해답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경찰서를 나선 뒤에도 이명옥 씨는 좀처럼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눈치였다. 그 동안의 경찰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여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다방에 앉아 더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지만, 다음 의뢰인을 만나야 하는 사정에 시간을 더 지체할 순 없었다.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경찰서 영내를 벗어났다. 이 씨와 헤어지며 나는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해 법원에 동영상 CD 등 증거자료가 있는지 확인해볼 것을 당부한 뒤, 택시를 타고 다음 약속장소인 용천지구대를 향해 출발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실망을 금할 수 없는 소식이 들렸다. 이명옥 씨가 확인해보니, 자료들이 법원에 발송된 것은 맞지만, 나는 확인할 수 없다는 확인서가 첨부돼서 갔다는 것이다. 거의 마무리됐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잘 풀리지 않는다. 이번에도 동영상 CD와 녹취 파일을 얻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부모 의문사 풀기 위해 자식들 생계 포기하기도 약속장소에 도착한 나와 박 기자는 허탈해진 마음을 털고 완도 노부부 의문사 사건의 의뢰인을 기다렸다. 이윽고 의뢰인의 가족 조모 씨가 차를 몰고 나타났다. 조 씨는 노부부 슬하의 4형제 중 둘째다. 조 씨는 원래 서울에서 섀시와 관련된 일을 했다고 했다. 뜻하지 않게 같은 업종에서 일하던 사람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조 씨는 부모님이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채 운명을 달리하면서, 생업도 포기한 채 부모님의 사망에 대한 진실 규명에 모든 정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검게 그을린 얼굴의 움푹 패인 볼이 유난히 깊게 느껴졌다. 20분 가량을 차로 달려 도착한 곳은 한 고물상. 그의 셋째 동생이 조모 씨가 운영하는 재활용 자원업체로, 조모 씨가 서울에서 일을 정리한 뒤 줄곧 이곳에 내려와 일하고 있다고 한다. 조모 씨와 면담하던 중 그의 처와 아들, 셋째 동생 내외, 그리고 사촌동생이 들어왔다. 조모 씨와 가족들에게서는 부모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지 7개월이 지났지만 뚜렷한 사망 경위 등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무마되려는 상황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경찰 조사결과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조사를 진행할 수 없어, 일단은 가족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사건인 즉 다음과 같다. 완도군 고금면의 한 마을에 살고 있는 노부부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 3월 24일 오전 10시였다. 김과 매생이 양식 등으로 살아가는 노 씨 부부가 주민들에게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3월 22일 오후 5시 20분이었다. 당시 이들은 마을 주민들과 바닷가에서 굴을 채취한 뒤 마을로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조 씨 부부는 이틀 뒤 집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TV가 켜진 안방에는 조 씨가, 현관 입구에는 부인 이 씨가 쓰러져 있었고, 부엌에는 저녁을 먹고 미처 치우지 못한 밥상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미역국이 사망 원인…자살인가, 타살인가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해 열흘 뒤 조 씨 부부의 위에서 농약 성분의 독극물이 검출된 사실이 밝혀졌다. 밥상에 남아 있던 미역국에서도 같은 성분의 독극물이 검출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들 부부가 미역국에 든 독극물을 먹고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검출된 독극물은 무색무취의 살충제 성분이며, 조금만 섭취해도 마비증상을 보이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어떻게 이들이 독극물을 섭취하게 됐는지를 조사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독극물을 섭취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했지만, 자살할 만한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 미역국을 제외한 다른 음식에서는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고, 독극물을 담았던 병 등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타살’이라고 보기에는 정황이 약하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집안에 침입 흔적이 없고 없어진 물건이 없는데다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또 사건 발생 이후 마을 주민 300여 명에 대해 모두 조사를 벌였지만, 아직껏 특별한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조씨 부부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독극물을 섭취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인 경찰은 이 부분 역시 밝히지 못하고 있다. 조 씨의 밭에서 같은 성분의 독극물 병이 발견됐을 뿐, 살충제로 쓰이는 이 농약을 최근에 사용했다는 정황이 약하고, 인근 섬에 살고 있는 조 씨의 친척이 건넨 미역에서도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완벽한 진실은 있어도 완벽한 거짓말은 없다” 약 3시간 동안 조 씨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비행기 시간이 다가왔다. 일단, 서울로 돌아가 조사계획을 세우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당장에 모든 일이 정리되지는 않는다.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경찰로부터 조사자료를 입수하고, 참고인을 만나는 등 해야 할 일이 산적했다. 아직 불확실하거나 미심쩍은 부분도 많다. 하지만, 지금도 분명하게 믿을 수 있는 점은 “완벽한 진실은 있어도 완벽한 거짓말은 없다”는 사실이다. 가장 강력한 힘은 정직에서 나온다. 정직에서 나온 힘은 스스로의 약한 부분도 끝내 극복한다. 그래서 난 오늘도 명심보감의 이 말을 되뇌인다. “迎斧鉞而正諫하며 據鼎金而盡言이면 此謂忠臣也이니라(도끼로 맞더라도 바르게 간하며, 솥에 넣어서 죽이려 하더라도 옳은 말을 다하면 이를 충신이라고 이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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