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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한국 소방공무원

소방관 평균 수명 58.8세, 5년 내 이직 5명 중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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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3호 박성훈⁄ 2008.11.18 23:01:43

영국에서는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로 소방관이 빠지지 않는다. 영국 소방관의 일상은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때때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진다는 점에서는 한국 소방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근무 조건이나 처우에서 영국 소방관과 한국 소방관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화재가 발생하면 밤낮이 따로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영국 소방관의 근무시간은 하루 평균 8시간에 불과하다. 주간 근무일 때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야근을 할 경우에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일한다. 이렇게 따져볼 때, 영국 소방관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48시간 내외이다. 급여 수준의 차이도 크다. 영국에서는 일련의 소방관 훈련을 마치고 정식 소방관이 되면 연간 2만7500파운드를 급여로 받는다. 현행 환율로 보면 약 5700만 원에 이르는 액수이다. 미국 노동부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미국 소방관의 평균 임금은 2006년 5월 기준으로 연간 4만1190달러다. 환율을 달러당 1000원으로 계산해도 4000만 원이 넘는 액수다. 연방정부에 소속된 소방관들의 평균 임금은 4만1070달러, 주정부 소속 소방관들은 3만7000달러를 받는다. 소방관이 고위험 직종인 것은 분명하지만,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고 또한 그들의 위험과 희생에 대해 그만한 대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희생과 봉사를 강조하는 선진 사회에서 소방관이 존경받는 직업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소방관의 실태를 보자. 한국의 경우, 소방공무원의 대부분이 2개조,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한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오전 9시까지 근무하고 퇴근한 다음 하루를 쉬고, 다음날 출근해서 또다시 24시간을 근무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일주일 근무시간이 84시간, 월 360시간에 달한다. 경찰의 경우에는 2004년부터 3교대 근무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지만, 소방공무원은 일부 대도시의 구급대에서만 3교대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 소방관들은 주당 평균 48시간, 일본은 42시간, 프랑스는 52시간, 독일은 54시간을 근무한다. 우리나라 소방공무원들의 연간 평균임금은 2000만 원, 위험수당은 3만~5만 원 수준이다. 지난 8월 20일 은평구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한 세 소방관이 7월에 받은 화재진압수당은 13만 원에 불과했다. 기본 위험수당 5만 원과 진압 현장에 나가는 대원들이 받는 화재진압수당 8만 원을 합친 액수다. 1인당 출동건수로 환산하면 화재 1건당 3600원을 받은 셈이다. 홍제동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 6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2001년에는 위험수당이 2만 원에 불과했다. 인구 대비 소방관 수에서도 한국은 소방관 1인당 1900명으로, 프랑스 240명, 영국 820명, 일본 818명에 비해 과도한 업무 부담을 안고 있다. ■ 최근 5년 동안 소방관 1690명 사상 소방방재청 자료에 따르면, 이렇게 순직하거나 부상한 소방관이 최근 5년 동안 순직자 39명을 포함하여 1690명이나 발생했다. 올해에도 많은 소방관들이 화재진압을 하다가 사망했다. 지난 8월 20일 새벽에는 한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화재에서 불에 타 약해진 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진화에 나섰던 3명의 소방관이 밑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월에는 경기 고양시의 119지역대에서 혼자 근무하던 소방관이 화재 진압에 나섰다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도 발생했다. ‘나홀로 소방서’라는 것은 관할지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화재·구조·응급처치 등을 소방관 혼자서 처리하는 곳으로, 이렇게 모든 소방활동을 혼자서 처리하는 119지역대가 전국적으로 444개소나 된다. 또, 지난 7월 경기 광주에서는 경운기를 타고 하천을 건너다 급류에 휘말린 노인을 구조하던 119구조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순직한 최영환 소방관은 구조대원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최강 소방관에 뽑힐 만큼 유능하고 열정적인 대원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최 소방관이 전날 밤샘근무 후 당일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인원 부족으로 추가 근무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으며, 다음 달 결혼을 앞둔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 소방관 평균수명 58.8세 소방관들의 평균 사망연령이 전체 공무원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나 열악한 근무여건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이 16일 공무원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도별 퇴직연금 수급자 직종별 평균 사망연령’ 자료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7년까지 퇴직한 소방공무원의 평균 수명은 58.8세로, ‘단명 그룹’인 경찰직(62.3), 기능직(62.3), 공안직(61.6) 등에 비해서도 3∼4년 가량 더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정년 57세를 채우고 퇴직한 소방공무원들이 평균 2년 이내에 사망하는 셈이다. 특히, 1998년 이후 올 9월 현재까지 각종 재난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 258명은 퇴직연금 수급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까지 포함할 경우 전체 소방관 평균수명은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소방공무원의 평균 사망연령이 낮은 것은 만성 인력부족으로 인한 24시간 2교대 근무 등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에 상시 노출되는 업무 스트레스 등이 건강에 치명적 악영향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교대근무로 일을 하는 업무의 특성상 소방관들은 다른 직종의 사람들에 비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국제암연구소에 의하면, 교대근무가 체내 생체시계를 교란시켜 암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체시계는 생체주기를 조절하고 세포들의 호르몬 분비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불규칙한 수면으로 생체주기를 교란하는 교대근무는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실제 소방관들에게 암이 빈번하게 발병한다는 이 연구기관의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교대근무를 하며 화재시 배출되는 유독 가스와 먼지를 흡입하는 소방관들에서 암과 심장질환 위험이 더욱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 수명단축에 포 소화약제 한몫 소방공무원의 평균수명이 이처럼 58.8세로 짧은 이유가 전세계적으로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는 소화약제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민주당 김충조 의원은 지난 10월 소방방재청 국정감사에서 “유럽 및 일본 등에서는 포 소화약제의 위해성을 미리 예측하고 친환경 소화약제를 개발해 사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소방관들을 위해성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포 소화약제는 주로 대형 유류저장 탱크 화재와 지하 케이블, 지하 터널, 지하상가 화재, 기름유출 화재, 가스 저장소 화재 등에 사용하는 물질로, 포유류에서 독성이 나타난다. 반드시 고온에서 소각해야 분해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또, 혈액 및 간의 단백질과 결합해 육식동물의 몸에 높은 농도로 축적되는 것으로 나타나 소방공무원들의 수명단축과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유해성을 인식한 유럽연합(EU)은 현재 전기·전자제품을 포함한 모든 소비재 물품에서 포 소화약재에 들어 있는 물질은 제조와 수출입 모두를 금지하고 있다. 1990년 이후 세계 주요 국가의 포 소화약제 사용실태를 살펴보면, 일본의 경우 현재 ‘미라클 폼’이라는 친환경 포 소화약제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독일도 일본처럼 친환경 소화약제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으며, 약제의 성능은 일본과 동일한 수준이다. ■ 소방공무원 이직률도 높아 소방공무원의 퇴직 비율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대해 의원 측이 소방방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최근 5년 간 소방공무원 이직 및 퇴직 현황’에 따르면, 총 1,830명 중 372명(20.3%)이 임용 이후 5년 안에 스스로 사표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퇴직한 서울시 교육 공무원의 임용 5년 이내 자진퇴직 비율은 2.72%였다. 소방관의 짧은 수명과 높은 퇴직률은 만성적인 인력부족에서 오는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에서 기인한다는 지적이다. 일선 소방현장에서는 여전히 24시간 2교대 근무체제가 작동 중이며, 예산 부족에 따른 장비 노후화 등으로 안전사고에도 그대로 노출돼 있다. 박대해 의원은 “소방공무원의 근무여건이 가장 열악하다는 사실을 통계로 증명해 보인 셈”이라며 “소방관들이 과중한 업무 부담과 안전사고 위협 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적절한 처우개선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소방관 3교대 근무 전환 중 그나마 다행인 것은 24시간 2교대의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근무하던 일부 소방관들이 3교대 근무로 서서히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까지 전면 3교대가 이뤄진다고 한다. 화마(火魔)와 싸우며 상시 위험에 노출돼 있는 소방공무원의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한 조치이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출동대 재편성과 인력 재배치를 통해 출동횟수가 많은 종로·중부·강남 3개 소방서에서 지난 9월부터 3교대근무를 시범 실시했다. 3교대 근무 방법은 주간-주간-주간, 야간-비번-야간, 비번-야간-비번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소방재난본부는 앞으로 조직진단을 통해 적정인력을 뽑아내고 이를 연차적으로 확대해 2012년까지 전면 3교대 근무를 실시할 방침이다. 매번 화재 현장에 나갈 때마다 소방관들의 마음은 천 근을 짊어진 듯 무겁다. 서울 홍제동 화재로 목숨을 잃은 고 김철홍 소방관이 당시 책상 위 유리판에 끼워 놓았다는 미국 소방관 A.W 스모키 림의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는 화재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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