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영 (화가, 색채학 강사) latecomer69@naver.com 햇빛이 찬란하게 빛나며 붉게 물들여지는 저녁노을을 보면, 나는 세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사랑스런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와 끌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와 가장 진한 붉은색 카민이다. 러시아 어를 비롯하여 많은 언어에서 빨강은 아름다움과 동의어다. 태초의 색인 빨강은 빛이 있으라는 신의 주문과 함께 탄생한 생명의 색이다. 그래서 그런지 빨강은 빛의 파장이 가장 길고 어디서든 가장 눈에 띄는 색이기도 하다. 초기의 인류는 강렬한 빨강에 너무나 매혹되어 용암도끼나 목재 창 같은 무기들을 붉게 물들였고 또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마법의 색으로 믿었다. 이런 풍습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문화에 남아있어 강렬한 빨강은 남성적인 색으로, 파랑은 여성적인 색으로 간주 되고 있다. 오늘날 빨강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상징성을 지니고 있지만, 자연의 색을 추구하는 붉은색은 대체로 태양을 의미한다. 멀리 보이는 붉은 태양의 수줍은 미소가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반짝이는 순간, 그 찬란한 색채를 모네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터너의 바다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풍경을 그대로 표현하는 그의 터치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어루만지듯 따뜻한 인간의 숨결이 느껴진다. 빛을 곧 색채로 여겼던 끌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인상, 해돋이>는 1874년 나다르(Nadar, 1820~1910,사진가)의 사진스튜디오에서 열린 ‘무명의 화가, 조각가, 판화가 연합’이라는 전시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 전람회는 명칭도 우습지만, 당시에는 세인들의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 작품들은 미완성이고 인상밖에는 그린 것이 없다” 루누아 기자의 못마땅한 기사처럼 그들의 그림들은 한순간 그려진 스케치 정도로만 보였다. 그러나 스케치 같은 이 명화는 한눈에 보기에도 붉은 태양을 자연스럽게 강조하고 있다. 태양을 둘러싼 저명도의 녹색은 은은하게 보색대비를 이루며 붉은빛의 반짝거림을 멀리 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인상파 화가들은 시각적 경험을 중요시해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은 팔레트에서 제외하고 서로 섞지 않은 버밀리언 레드, 프렌치 울트라 마린 블루, 에메랄드 그린 같이 매우 밝고 생기 있는 색을 주로 사용하였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붉은색을 ‘색의 제왕’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가끔 과감한 붉은색을 선택하여 주목받고 싶지만, 온몸을 붉은색으로 두르는 용기를 내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혹시 제왕적 스타일이 될까 두렵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을까봐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한번 시도해보자. 오늘처럼 찬란한 햇살아래 살짝 보이는 붉은색의 강렬한 포인트는 색다른 세련미를 선사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