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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내 운명과 한판 승부> 두 번째 이야기

세 생명 앗아간 절벽엔 독송 소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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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54호 편집팀⁄ 2010.02.02 16:17:14

글·김윤식 하지만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듯 둥근 보름달이 산마루 위로 두둥실 솟아오르더니, 석양을 대신하여 아미산 정상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바로 백중(百中: 음력 7월 보름)날이었다. 이날은 불교 5대 명절의 하나로서, 각 사찰마다 하루 내내 영가(靈駕: 죽은 사람의 영혼)들의 명복을 빌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염불과 목탁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나오는 날이다. 그런가 하면, 구도(求道) 중인 스님들이 하안거(夏安居: 여름 철 집중수행 기간)를 끝내고, 자자(自恣: 함께 안거에 들어갔던 스님들이 서로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일)를 수행하는 날이기도 하다. 백중 보름달이 아미산 정상의 ‘석양의 낭떠러지’를 또 다른 황홀경에 빠져들게 하는 가운데, 열 예닐곱 명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고, 지팡이를 짚은 스님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뭔가 열심히 경청하고 있다. “결국 우리 인생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인간은 결국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이요, 제법무아(諸法無我: 인생은 인연으로 왔다가 인연에 따라 소멸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을 내 뜻대로만 살 수는 없다는 것)일진대, 어리석은 중생들이여, 어찌하여 하찮은 번민으로 삶을 욕되게 한단 말인가!” 담백하면서도 쩌렁쩌렁한 강설(講說) 소리가, 달빛을 받아 구름폭포로 자태를 바꾼 운해 속으로 아스라이 퍼져 나가면서 묘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다. 반야(般若: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고, 망상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의 참모습을 꿰뚫는 지혜)의 가르침에 대한 촌철살인의 독송(讀誦)이었다. 독송을 마친 스님이 삿갓을 살짝 들어 올리자, 넓은 이마가 번쩍이면서 비로소 범상치 않은 인상이 드러났다. 이 시대의 현인(賢人)으로 알려진 바로 눌촌거사(訥村居士)였다. 눌촌거사는 담운선사의 높은 깨달음에 대한 명성을 전해 듣고, 6년 전에 한국에서 아미산으로 수행차 건너왔다. 눌촌은 유(儒)·불(佛)·도(道)에다가 기독교 사상까지 접목된 ‘통합 가르침’을 찾고 있어, 스님이라기보다는 도인(道人)이나 철인(哲人)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눌촌거사가 독송하는 동안, 담운선사는 서쪽 절벽 끝에 서서 쉼 없이 목탁을 두드리며 왠지 모를 감상(感傷)에 빠져들게 하는 염불을 외고 있다. 조금 전에 이승과 작별한 세 중생을 포함하여, 지난 1년 동안 석양의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진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천도재(薦度齋)를 올리는 중이었다. 천도재란 죽은 사람이 생전에 지은 모든 악업과 원한을 해소하고 청정한 마음을 회복하여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윤회(輪廻)를 돕고,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이러한 천도재는 매년 백중날이면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행해지는 석양의 낭떠러지의 유일한 행사이다. 이 의식은 반드시 당대 아미산 최고 고승이 주재한다. 이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아미산 전통으로서, 좀처럼 세속에 눈길을 주지 않는 담운선사가 1년에 딱 한 번 석양의 낭떠러지를 찾는 이유이다. 이윽고 염불이 멎고, 잔잔한 목탁 소리의 여운 속에 얼마간 깊은 정적이 흘러갔다. 바로 그때 아미산 정상 금정사(金頂寺)의 타종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자, 불현듯 애절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운이 절벽을 타고 스며들기 시작했다. 석양의 낭떠러지 아래로는 백중 보름달빛을 한아름 안고 눈부신 은빛으로 단장한, 아미산 망망운해의 황홀한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마도 이 영롱한 광경이 불가에서 얘기하는 이상향(理想鄕)인 극락정토(極樂淨土)가 아닐까. 석양의 낭떠러지의 비밀 아미산 정상 어딘가에 둔거(遁居)하고 있는 ‘석양의 낭떠러지’는 신비스런 전설을 간직한 비밀에 싸인 절벽으로서, 극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곳이다. 아미산은 곤륜산계 동쪽 끝 췽라이산맥 중의 한 산으로서, 사천성 성도(成都) 남서쪽 16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동남쪽으로는 민강·청의강 등 양자강의 지류가 흐르고, 북쪽으로는 성도평원이 펼쳐져 있으며, 서쪽으로는 만년설을 짊어진 대설산(大雪山)이 우뚝 솟아 있다.

아미산은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영장(靈場)으로서, 절강성의 보타산(普陀山: 관음보살 영장), 안휘성의 구화산(九華山: 지장보살 영장), 산서성의 오대산(五台山: 문수보살 영장) 등과 함께 중국 4대 불교명산 중의 하나이다. 그러한 연유로 아미산에는 복호사(伏虎寺), 만년사(萬年寺), 청음각(淸音閣), 보국사(報國寺) 등 대부분 15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70여 개 사찰이 있다. 그중에서도 산기슭에 위치한 보국사는 1615년 명나라 신종이 세운 회종당(會宗堂)을 청나라 강희 황제가 현재의 이름으로 바꾼 아미산 최대의 고찰이다. 아미산이란 명칭은 그 산세가, 가늘고 길게 굽은 ‘미인 눈썹’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수줍은 여인네처럼 누가 자신의 아미(娥眉)를 볼세라, 일년 내내 신비한 자태를 구름 속에 감추고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아미산의 볼거리로는 아미 10景이 있지만, 특히 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일출, 운해(雲海), 불광(佛光), 성등(聖燈) 또는 승등(僧燈)’ 등의 아미산 4대 기경(奇景)이 천하일품으로 꼽힌다. 불광은 아침이나 저녁에 햇빛을 등지고 절벽 끝에 서면, 기상 조건에 따라 태양 반대편 구름 위에 자신의 그림자가 비치고 그 주위에 커다란 무리가 생기는 일종의 광학현상으로서, 아미산의 보광(寶光) 또는 금정양광(金頂樣光)이라고도 한다. 아미산은 1년 중 300일 이상 운해에 묻혀 있을 만큼 구름이 많아 비도 많이 내리고 일조량이 아주 적다. 그러면서도 산 밑은 아열대, 중턱은 온대, 산꼭대기는 한대 등 3가지 종류의 기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러한 환경 조건으로 인해 식물 5000여 종, 동물 2300여 종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 보고(寶庫)로서, 1996년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은 희귀한 꽃, 고목, 수정같이 맑은 물 등으로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미산에 홀딱 반해, ‘촉국(蜀國)에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산이 많지만, 그 모두 아미산에 비길 바가 아니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진(晉)나라 시인 좌사(左思)는 청음각 언저리에서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물소리를 듣고, ‘어찌 악기가 필요할꼬, 이곳의 맑은 물 흐르는 소리로도 족하도다’라는 시를 읊으며 아미산의 정취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아미산 정상에는 금정(金頂, 3,000m), 천불정(千佛頂), 만불정(萬佛頂, 3,099m) 등 3개의 봉우리가 있다. 정상까지 가려면 보국사에서 출발하여 50킬로미터 정도에 이르는 등산로를 따라 걸어 오를 수가 있고, 또는 성도에서 해발 2,500미터에 있는 접인전(接引殿)까지 차량으로 이동한 후 거기서부터 케이블카로 금정까지 오르는 방법도 있다. 아미산 정상에 이르러 석양의 낭떠러지와 인연을 맺고 싶으면, 금정에서 천불정으로 가는 길의 중간 지점을 지날 즈음에서 접근로를 찾아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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