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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과 한판 승부> 여섯 번째 이야기

동토에 뿌리지 못한 희망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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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59호 편집팀⁄ 2010.03.02 14:38:46

글·김윤식 무애는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한 듯 한순간도 곁눈을 팔지 않았다. “무애 스님! 누구 사연부터 듣고 싶으셔요?” 미치코가 그 사이에 심리적 안정을 찾은 듯 하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는, 어린 무애한테 장난스레 깍듯한 어조로 익살 아닌 익살을 부렸다. “음~, 안타까운 맘 그지 없지만, 오늘 세상과 작별한 그분 얘기를 먼저 해주세요.” 미치코는 무애의 요청에 따라, 이 날 절망을 안고 아미산 운해로 뛰어든 젊은 청년의 사연부터 들려주었다. 그 청년은 박동원(朴東元)이라는 한국 사람이었다. 그는 손꼽히는 명문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진학하여, 법학을 전공하면서 사법고시에 꿈을 두었다. 두뇌가 명석한데다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성실함까지 갖춰, 그의 고시 합격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번번이 2차시험까지 가서는 고배를 마셨다. 그 사이 군 입대 연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대학원에 진학했고, 계속된 낙방으로 석사에서 박사 과정까지 이어졌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나는 화(禍)가 닥쳤다. 비록 중소기업이지만 제법 잘 나가는 회사였는데, 경제불황의 파고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 일로 아버지는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배임 등의 경제사범으로 구속되어 실형을 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는 아버지를 도우려고 고금리 사채까지 동원했으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결국 가정은 풍비박산 나고 빈털터리가 된 상태에서, 포악한 사채업자가 공갈·협박·폭력·모욕으로 어머니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당해보는 치욕과 고통에 몸부림치던 어머니는 급기야 아무도 몰래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청년에게는 결혼한 누나가 하나 있었다. 아버지의 회사가 어려워지자, 그녀는 남편에게 애걸복걸하여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아버지를 도왔다. 뿐만 아니라, 친정 엄마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남편 몰래 사채까지 빌리게 되었다. 하지만 끝내 아버지가 파산하자, 집을 날리고 사채업자에게 시달려 도망 다녀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일로 누나는 결국 이혼당하고 거처도 마련하지 못한 채, 사채업자가 고용한 폭력배를 피해 숨어 다녀야 했다. 아이들을 만나볼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먹고살기 위해 노래방 도우미 일이라도 찾아다녀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은 급작스런 집안의 몰락에 가장(家長) 역할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자, 청년은 고시 공부를 중단하고 취업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취업의 길은 멀고도 아득했다. 하다못해 철도침목공·환경미화원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도전했지만, 쓰라린 실패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굶어 죽을 수는 없었기에, 건설공사장 막일꾼으로 나서야 했다. 그렇게 공사현장을 전전하던 중 큰 부상을 당하게 되자, 그는 지치고 좌절하여 끝내 헤어나오기 힘든 절망감에 허덕이다 석양의 낭떠러지를 찾게 된 것이다. 어른스럽게 진중한 자세로 얘기를 듣던 무애가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나, 취직한다는 게 그렇게 큰 일이야?” “으음…. 그 사람이 나한테 말한 적이 있어. 일자리만 얻을 수 있다면 자신의 영혼이라도 기꺼이 팔겠다고.” “설마~, 영혼을 팔 생각을! 그런데 누나, 청년들이 취업을 못하는 게 도대체 누구 책임이야?” “국가와 국가 지도자의 책임이 제일 크다고 봐야지. 일자리는 국민 개개인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거든. 특히 한국의 20대 젊은이들의 취업 문제가 심각한가봐. 백수·알바·인턴으로 전전하고 있는 이들이 ‘우리의 고통을 저버리는 국가는 애국(愛國)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부르짖으면서 국가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에 분노하고 있다고 들었어.” 미치코는 일본에도 취업을 못 하고 있는 젊은이들 중에 차라리 전쟁이라도 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전쟁이 나면 군인으로라도 일할 수 있으니까. “누나, 그렇다 하더라도 죽을 용기를 삶에 쏟아 부으면 이 세상에 무엇인들 못할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래? 하지만 무애야, 앞으로 살 날이 구만 리 같고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천하의 불효임을 잘 아는 엘리트 청년이 오죽하면 삶의 꿈을 접었을까 한번 헤아려봐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당사자가 아니면서 가볍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정말 예의가 아닐 것 같아.” “하긴 그러네! 정말 산다는 게 그리 간단치는 않은가봐. 혹시 그 사람한테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보였더라면…. ” “그래, 바로 희망이야! 인간의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이 갖고 있는 위대함이지.” “그렇다면, 그 청년은 희망을 품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웠을까?” “아니지. 희망의 꽃을 가슴속에 새기고, 희망의 씨앗을 손 안에 꼬옥 쥐고 있었지. 다만 꽁꽁 얼어붙은 동토에 씨앗을 뿌려봤자 소용이 없다는 현실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음~! 결국 국가가 얼어붙은 동토를 녹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큰 죄악이고 불행이구먼.” “맞아! 그래서, 누나는 말이야! 그 청년이 세상을 등지면서 하늘을 증오하고 세상을 저주했을 비통하고 억울한 심정을 생각해보면, 이런 비극적인 결과에 대해 누구를 원망하고 무엇을 탓해야 할지 가슴이 미어지고 한탄스럽기 짝이 없어.” 미치코는 말끝을 흐리며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감추려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말문을 닫은 채, 끝없는 갈등과 번뇌에 빠져들었다. 정녕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오로지 단 한 번의 인생이고 찰나와도 같은 지극히 짧은 삶일진대, 어찌 그토록 애태우며 허겁지겁 살아야만 되는 건지. 부귀영화도 일장춘몽이라 결국 늙고 병들어 죽고 마는 인생인 것을, 다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탐욕을…. 미치코와 무애는 나란히 땅바닥에 누워, 구름 속에 숨었다 나타났다 숨바꼭질하는 둥근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깊은 회한에 잠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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