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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 ⑮]휴일이나 밤에 아프면 혼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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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39-240호 박현준⁄ 2011.09.14 14:19:30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20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필자의 부친께서 심한 천식으로 특히 밤에 심한 증세를 보여 가까운 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곤 했다. 그런데 촌각을 다퉈 처치가 필요한데도 인턴이 의식이 거의 없는 환자에게 기본 응급 처치도 없이 병력을 묻는 것이 예사였다. 할 수 없이 전문의를 찾았지만 야간에는 아무도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의 신분을 밝히고 내가 조치를 취했던 일이 기억난다. 요즘도 나는 밤중이나 휴일에 도와달라는 전화를 많이 받는다. 그러나 내 전문 분야가 아니고 우리 병원 응급실에도 전문의가 야간에는 없기 때문에 매우 곤란한 경우를 많이 접한다. 몇 년 전 일로 기억된다. 모 대학 병원에 복부 통증이 심한 환자가 왔는데 접수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인턴 전공의들이 이 환자를 살펴봤지만 복부 사진을 찍고, 혈액 검사를 받고, 복통 약을 복용하며 하루 밤을 지새우고 하루가 더 지나서야 외과 전문의의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 사이에 복막염으로 진행된 상태여서 보름 가까이 입원하면서 고생했다고 한다. 일부 병원에서 환자를 받지 않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바람에 환자가 사망했다고 병원의 ‘환자거부’를 비난하지만, 현재의 의료수가로 소형 병원이 마취 전문의까지 갖추고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여건인지도 생각해 봐야 미국에는 밤이나 휴일에도 응급실에 근무하는 외과 의사가 있다. 병원마다 시스템의 차이는 있지만 호출하면 응급실로 나가는 당직의사가 있는가 하면 응급실에만 근무하는 의사들도 있다. 그들은 휴일이나 야간에 근무하는 조건이어서 수당을 많이 받는다. 우리의 현실은? 응급실에서의 조치는 손이 많이 가는데도 의료 보험 수가는 턱 없이 모자란다. 그러므로 전문의에 대한 인건비는 엄두조차 못내는 형편이다. 국가가, 사회가,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다고 질책하기에 앞서 국가 차원에서 병원에 대한 지원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얼마 전 친척 누이가 지방으로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근처의 종합병원으로 갔으나 “치료가 불가능하니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해서 서울에 도착해보니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이를 두고 “진료 거부로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다가 늦게 치료를 시작해서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고 원망도 하는데, 필자가 그 병원에 있었더라도 서울로 보냈으리라 생각된다. 열악한 시설 그리고 진단, 치료, 마취 등 여러 분야의 전문의가 모두 있어야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명을 자동차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자동차가 고장 나서 가까운 공업사에 가면 “우리는 부품이 없으니 큰 공장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을 치료하는 일을 의사라고 해서 다 해낼 수는 없다. 그래서 각 분야별 전문의가 있는 것이고 그들의 협진이 잘 이뤄져야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가 있다. 얼마 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위중한 총상을 입고 귀국해 사경을 헤매다 살아난 석 선장…. 그가 회생하기까지는 많은 전문의들이 밤을 새웠음은 물론 첨단 의료장비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일반 환자였다면 사망했을지도 모른다. 그 후 사회에서는 우리나라도 부상환자를 치료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한동안 매스컴에서 거론되더니 금방 식어 버렸다. 반드시 필요한 시스템,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료 보험수가를 비롯한 여러 가지 비용 문제 해결이 선결돼야 한다. 지금 외과계와 소아과 등 분야에서는 전공의 지원 의사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은 병원을 개업해 수술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생긴다. 수술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조수도, 간호사도, 마취 전문의도 필요하므로 적자가 된다. 이를 보완한다고 일시적 당근이 제공됐지만 이는 해결책이 될 수가 없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야간이나 휴일에는 아프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언젠가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하게 되면 이런 것들이 옛 이야기가 될까…. 러브호텔만도 못한 병원 입원비 지금 종합병원에서 입원실을 구하기는 무척 어려운데 그 중에서도 다인실을 구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입원을 해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불만을 표시한다. 그럴 만도 하다. 나이와 성별, 병의 상태나 종류가 모두 다른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있으니…. 그런데 정부에서는 다인실을 반 이상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언제인가 회사를 경영하는 고등학교 후배가 찾아와서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입원을 시켜드리려고 하는데 병실이 없다”며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역시 “반드시 다인실이면 좋겠다”는 것이다. 알아본 결과 2인실 밖에 없어서 연락을 해줬는데 “더 기다리더라도 다인실로 부탁한다”고 했다. 자기는 1인실에 입원해 건강진단을 받고 나갔으면서 어머니는 반드시 다인실이어야 한다니…. 순서가 바뀐 것 같다. 개를 하루 입원시키는 데 10만원을 받는 동물병원도 있다고 한다. 소위 러브호텔이라는 곳도 단 몇 시간 머물다 가는데도 수 만원 씩 내야 한단다. 언젠가 골프를 1박2일로 치려고 경기 북부에 가서 낮에 하루를 머물 호텔을 찾았는데 밤 10시 후에 와야지 낮에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낮에는 ‘짧은 손님’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요사이 호텔은 최소 20여만 원은 줘야 하며 모텔급도 거의 10만 원 선이다. 그런데 병원의 다인실은 본인 부담이 하루에 1만 원…. 이건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호텔이나 모텔과 비교하면 인건비가 훨씬 더 들어가는 게 병원인데…. 1인실이나 2인실을 운영하면서 호텔 수준의 비용도 받지 못한다면 살아남을 병원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대기업은 일이 급할 때 비행기-헬리콥터를 이용한다. “치료가 느리다”고 성화지만, 그 배경을 안다면… 최근 어느 기자가 쓴 글을 읽었다. 의사나 간호사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방문객들로 시끄러운 다인실의 환경이 환자의 안정을 위해 바뀌어야 한다고 썼는데 원칙은 맞는 논리다. 그런데 이를 실현하려면 최소한 병원이 유지·발전할 수 있는 병실 요금 책정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병원 수가를 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생명을 다루는 사람들이 돈만 찾는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는 급한 업무 처리를 위해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이용한다. 응급 환자가 시간을 다투는 데 병원의 대처가 늦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의료 수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언젠가 한 대기업이 세브란스 병원의 경영 상태를 조사하고 나서 “주인도 없고 직원도 무척 많은데 이 병원이 어떻게 유지·발전하는지 미스터리”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의사들이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다른 대학병원에 지지 않으려고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며 밤낮없이 열심히 일 한 결과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대학병원은 항상 재투자해 더 발전된 최고의 병원을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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