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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에세이]기부입학제 하면? 반값등록금 된다

세금·강압으로 하는 반값등록금은 망국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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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91호 박현준⁄ 2012.09.10 11:24:40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 가보면 종종 고객을 끌기 위해 미끼 상품을 덤으로 주거나 반값 세일을 한정수량으로 판매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를 언론이나 정부가 잘못된 관행이라며 수정을 요구하고 있는데 의료계를 보면 일부지만 성형외과에서도 성형을 하러 간 사람에게 한명을 더 데리고 오면 1/3을 깎아 주고 2명을 소개하면 1/2를 깎아 준다는 상행위를 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엔 언제부턴가 반값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나돌고 있다. 반값 아파트, 반값세일 등. 이러다 보니 전 국민이 반값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값 아파트! 그렇지 않아도 재건축 아파트에 살아보니 과거에 지어진 아파트보다 허술해 2~3년밖에 안 된 아파트의 벽이 못만 박아도 떨어져 나가는 등 단단히 지어지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이대로 두면 얼마나 더 갈까하는 걱정이 앞선 적이 있었다. 요즈음 대두되는 반값 등록금은 정치인들이 치고 나온 이야기다. 반값 등록금을 내세우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젊은이들을 교육시키는 대학이 모두 사기를 치는 기관으로 치부되는 듯하다.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이 최근 10여 년 사이 많이 비싸져 서민들에게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특별한 다른 수입이 없는 대학이 등록금으로 현상 유지 정도는 가능할지 몰라도(등록금을 학생 교육 자체에만 쓴다면) 더 발전을 시키려면 턱 없이 모자란다고 본다. 또 단과대학마다 학생들에게만 실제로 들어가는 비용이 다소 다른데 의과대학의 경우는 반도 안 된다는 계산이 나온 적도 있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 일본 등에는 많은 학생들이(실제 등록금은 우리보다 훨씬 비싸다) 적은 등록금을 내고 학교를 다니게 하는 장학금 제도가 많으며, 나머지 학생들은 국가에서 대출을 받게 되는데 이 경우는 졸업해서 직장을 얻으면 일생동안 갚아나가는 방식이다. 더 중요한 것은 외국은 대기업들이 직접 대학을 운영하기보다는 기부를 하며, 정부는 기여 입학제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일본 도쿄에서 연수한 의과대학은 당시 정원이 80명이었는데 입학 시에는 2배인 160명을 선발했다. 80명은 성적순, 80명은 입찰 순이었다. 즉 봉투에 돈을 적어 넣은 후 액수 순서대로 80명을 입학시키는 방식이었다. 기부금 입학제로 정원만큼을 더 뽑는 일본 대학. 성적 좋은 학생은 반값등록금 혜택보고, 돈 내고 들어온 80명은 공부 안 하면 자동탈락 되는데… 그리고 2학년을 올라 갈 때 160명을 100명으로 그리고 졸업할 때는 80명만(졸업정원제) 졸업을 시킨다. 이렇게 하면 성적으로 들어오는 80명은 그야말로 반값 등록금을 내고, 기여 입학으로 들어오는 학생은 정상 입학금을 내게 된다. 실상 기여 입학하는 80명 중 10여 명은 상당히 큰 액수의 돈을 기여했다고 한다. 이런 재정들이 대학을 발전시킴으로서 서민들의 등록금 부담을 줄이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왜 기여 입학제를 반대하는가? 결국 졸업 정원제로 하면 일정한 수의 학생들은 등록금 혜택을 볼 수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이 기여금을 내지만 대졸자를 양산하는 것은 아니다. 즉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모두 입학이 되며 기여 입학자는 입학 정원 외로 들어와서 졸업할 때는 정원제로 졸업을 하니 공부를 안 하면 결국 80명은 사라져 가는 방식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선거 열풍에 휩싸이면서 반값등록금을 외치고 있다. 표심에 좌우되는 이런 공약이 실현된다면 누가 피해를 보게 될까? 국민의 교육세가 증가할 것이고, 대학의 자율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등록금을 내리게 강요하면 대학의 발전은 어떻게 될까? 대학들에게 장사를 해서 연구비용, 건물 증축, 좋은 교수의 영입 등을 충당하란 말인가? 교육이 발전해야 나라도 발전한다. 대학이 세계 수준에 들어야 인재가 양성된다. 국가 등급은 이제 상위권에 왔지만, 내가 객관적으로 보는 대학의 수준은 어림없이 낮은 현실인데…. 딸부자 집 외아들의 ‘딸 사냥’ 겉으론 숙맥, 뒤로는 간호사 기숙사를 쑥대밭 만드니 옛날에는 아들 선호 사상이 심했다. 오죽하면 칠거지악이라고 해서 며느리가 아들을 못 낳으면 죄인 취급을 했고 씨받이, 업둥이로라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내가 소아와 전공의 시절(197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며느리가 딸을 낳았다는 소식에 한숨을 쉬며 태어난 손녀의 얼굴조차 보려 하지 않고 발길을 돌리는 시어머니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아들도 아니고 딸을 낳았는데 선천성 심장 기형이라도 발견되면 “아들 못 낳은 것도 모자라서 병신을 낳아?”라며 며느리 집안의 혈통이 나빠서 그렇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시어머니도 봤다. 아들을 낳고 싶어 딸을 9명 내리 낳고 마지막에 아들을 얻으니 큰누나가 어머니 노릇을 하는 집안도 봤는데 막내아들이 태어났을 때 큰 누나는 30대 중반이었다. 이런 일로 해서 옛날에는 삼촌보다 나이 많은 조카도 흔했다고 하지 않는가. 아마 당시에 인구가 많았던 것도 아들을 보려고 딸을 계속 낳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내가 제대 후 근무하던 종합병원에 치과 전공의가 새로 들어왔다. 그는 누나가 위로 6명인 막둥이로 바로 위의 누나 이름이 막순이(마지막 딸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얼마나 귀하게 키웠겠는가. 한 번은 무교동의 한식집에 이어 당시 성황이던 나이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호스티스가 옆에 앉자 이 친구,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두 손을 모으고 앉아서 무슨 새신랑이 처갓집에 결혼 승낙 받으러 온 친구처럼 다소곳했다. 술을 권하자 아직 못한다는 것이다. 이 친구, 26살이 되도록 뭘 했단 말인가? 알고 보니 귀한 아들이라 매일 학교도 데리고 다니고, 나쁜 친구 사귈까봐 통금시간은 8시, 여자는 늦게 알아도 된다며 미팅도 나가지 말라고 했다는데 참 순하고 착한 막내였다. 가만히 보니 병원에서도 간호사들과 눈도 못 마주치고, 항상 최상의 존댓말만 쓰며…. 우리는 그를 보고 천연기념물이라고 놀리곤 했다. 한 6~7개월 쯤 지나서 내가 당직으로 있는데 근처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병원 의사가 통금에 걸려 있는데 와서 신분확인을 하고 데려가라는 것이다. 놀랄 일은 바로 그 친구였다는 것. 그런데 동반자는 우리 병원 간호사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기숙사 통금시간(10시)을 어긴 게 문제가 되면서 일이 알려졌는데 이 친구, 여자친구가 한 두 명이 아니었다. 그와 연계됐던 간호사들은 모두 자신만이 애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문제가 커졌다. 늦게 배운 사랑이 날 샌다고 단시간에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나중에 안 일이지만 술집에서도 우리와 있을 때만 얌전했지, 그 일대를 휘저었다는 얘기에 우리는 혀를 내둘렀다. 이 친구, 결국 병원을 그만두고 군대 행을 택했다. - 설준희 세브란스심혈관병원 심장웰네스센터장 / 운동치료클리닉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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