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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히든 챔피언 - 리바이스]젊음과 세계화 상징, 청바지…골드러시에서 성공신화 싹텄다

독일 이주민 리바이 스트라우스, 금광 광부의 애환에서 아이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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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94호 정의식 기자⁄ 2014.09.04 09:23:26

▲아큐에이트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성공신화는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금광을 찾을 때부터 잉태됐다. 그들에게 꼭 필요한 튼튼한 바지를 개발 판매해 대성공을 이룬 일화는 아메리칸 드림의 대표적인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1873년 설립 이래 세대를 이어가며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필수 패션 아이템 리바이스에 얽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리바이스의 시작은 16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계의 이슈는 ‘금광’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고, 밤낮없이 황금을 찾아 곡괭이질을 했다.

광부들을 상대로 텐트와 각종 집기를 판매하던 상인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는 1853년 어느 날, 남은 텐트 천을 들고 고심하던 끝에 놀라운 발명품을 고안해 낸다. 닳지 않고 해지지 않는 바지 ‘청바지’의 탄생이었다.

그는 독일 부텐하임에서 1829년 2월26일 태어났다. 18살이 되던 해에 뉴욕으로 이민 온 뒤, 두 명의 형이 이미 운영 중이던 직물 제품 도매 회사 ‘J.스트라우스 브라더(J. Strauss Brother & Co.)’에서 무역을 배우기 시작했다.

▲리바이스의 창시자 리바이 스트라우스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후 캘리포니아 금광 산업이 한창 성황이던 24살 때 돈을 벌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그곳에서 서부 지역의 소매업자들에게 옷을 공급하는 직물 제품 도매 회사를 설립하고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 & Co.)’로 명명했다. 이어 금을 캐는 광부들이 쉽게 해지는 바지에 불만스러워 하는 것을 알고 투박한 갈색 천막지를 사용해 최초로 ‘리바이의 바지’를 만들어 팔았다.

1872년경 고객이었던 네바다 지역의 재단사 제이콥 데이비스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그는 광물샘플을 자꾸 주머니에 쑤셔 넣는 광부들 때문에 주머니 솔기가 잘 터지는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구리 리벳을 사용해 튼튼한 솔기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제이콥은 리바이와 비즈니스 파트너로 일하기를 원했고 둘은 결국 이 방법으로 만들어낸 바지로 1873년 5월 특허를 받았다. 혁신적인 ‘청바지(Blue Jean)’가 탄생한 것이다.

▲리바이스 501


1873년 최초의 청바지 ‘리바이스 501’ 탄생

청바지에 사용된 최초의 소재는 텐트를 만들 때 사용하던 두꺼운 갈색 캔버스 지였다. 이후  프랑스 님스 지방에서 나온 좀 더 부드러운 직물을 사용해 질길 뿐 아니라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제작하고, 바지에 오염물질이 묻어 더러움이 표내지 않도록 짙은 청색으로 염색했다. 이로써 청바지는 기존의 어떠한 바지보다도 작업 현장에서의 효율을 높이면서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옷이 됐다. 당연히 노동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 클래식한 핏으로 가장 널리 사랑받고 있는 기본형(스트레이트 핏) 청바지의 전신이 바로 이 때 만들어진 ‘리바이스 501’이다. 청바지의 뜯어지기 쉬운 부분을 특허를 취득한 구리 리벳(rivet)으로 고정하고, 이중 박음질 처리를 해 강력한 내구성을 지녔다.

버튼 플라이 단추와 전통적인 5포켓을 사용해 실용성을 더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디테일이다. 5포켓 중 워치포켓은 본래 광부들이 작업 중 회중시계를 넣어둘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지금은 코인포켓으로 불리며 작은 동전과 같은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청바지인 ‘네바다 진(Nevada Jean)’은 이러한 초기 클래식 진의 원형이다. 약 120년 전에 만들어진 이 청바지는 1880∼1885년 미국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의 아모스키그 공장에서 제조된 것으로 1998년 네바다 광산타운에서 발견돼 현재 미국 리바이스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2002년 리바이스는 초기 클래식 진에 대한 향수를 가진 고객들을 위해 네바다진을 복제한 네바다 1880 모델을 제작해 500장을 한정 판매했다.

501 탄생 이후 리바이는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사회공헌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고아원 등의 복지시설의 자애로운 자선가였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28명의 학생들에게 주던 장학금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890년 수입한 데님 원단을 보관하던 창고 번호인 501을 공식적으로 청바지 명칭으로 사용함으로써, 현재의 501 청바지가 탄생했다. 지역사회 공헌에 특히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리바이는 1902년 9월26일 생을 마감했다.

▲리바이스 511 광고


1910년대부터 40년대에 이르기까지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며 리바이스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특히 십여 년 간의 전쟁을 치른 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는 물자 부족에 시달리게 됐고 모든 물자는 군수용품 제작에 우선적으로 사용됐다.

청바지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체의 장식은 사치로 간주됐다. 리바이스는 심플하고 모던한 청바지 제작이라는 전환점을 맞는 동시에 전통적인 디테일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위기처럼 보이는 이 상황이 궁극적으로는 리바이스에게 큰 기회가 되었다. 미국 정부 명령으로 군대에 청바지를 납입하기 시작해 청바지가 더욱 대중화되고 제품의 명성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전쟁 이후 재고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위기이자 ‘대중화’라는 기회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이후 1950년대부터 청바지의 유례없는 전성기가 시작됐다. 헐리우드 스타들의 영향으로 청바지가 젊은이들의 패션 아이콘으로써 자리를 잡으며 리바이스는 당시 십대가 가장 소유하고 싶어하는 브랜드로 이름을 높였다.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청바지를 즐겨 입으며 청바지는 오래된 서부개척시대 작업복의 이미지를 벗고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의복으로 자리 잡았다.

제임스 딘은 짐 스타크의 1955년작 ‘이유 없는 반항’에서 억눌리고 지친 젊은 세대를 대변했다. 그는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주인공을 표현하기 위해 몸에 꼭 맞는 티셔츠에 빨간 점퍼를 걸치고 어두운 색의 리바이스 501을 입었다.

▲리바이스 여성용 트럭커 자켓 광고


마릴린 먼로의 도발적인 청바지 포즈

말론 브란도 또한 영화 ‘와일드 원(1953)’과 ‘워터프론트(1954)’에서 터프한 신세대의 전형으로 출연하며 리바이스 청바지를 유니폼으로 입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1950년대에 청바지를 유행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콘서트 및 영화에서 꽉 끼는 진 스타일을 선보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여성들의 바지 착용이 일반적이지 못했던 1960년대에 제인 러셀, 조앤 크로포드, 바버라 스탠위크, 마릴린 먼로와 같은 헐리우드 여배우들의 청바지는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특히 마릴린 먼로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에서 몸에 꼭 달라붙는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도발적인 포즈를 취하던 모습은 기존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항하는 당당하고 독립적인 여성을 대변하며 이슈를 불러왔다.

이 시기에 리바이스는 청색 진 뿐 아니라 흰색 진, 코듀로이 아이템 등을 잇달아 개발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최고의 브랜드가 내놓는 신제품은 모두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오늘날 베이식 진스(Basic jeans)라고 불리는 상품체계가 이 시기에 확립됐다.

▲레드탭


1960년대 히피와 록의 문화가 공존하던 시기에서도 청바지의 유행은 계속됐다. 리바이스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를 공고히 했다.

혁신적 아이디어로 인류에게 청바지를 선물했던 창시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리바이스는 끊임없이 진화를 도모해왔다. 남성 청바지에 이어 첫 여성 청바지를 제작하고(1935년), 인체공학적 청바지를 디자인했다. 2010년에는 여성용 맞춤형 청바지를 선보였고 2013년에는 쉐이핑 기술을 도입한 혁신적인 여성 청바지 ‘레벨(Revel)’을 선보이며 혁신을 이어나가고 있다.

최초의 청바지 501® XX 진은 일종의 맞춤형 청바지였다. 입으면 입을수록 자연스럽게 체형을 닮아갔기 때문이다. 그 비밀은 바로 XX 원단에 있었다.

1915년부터 1950년대의 리바이스 501® 진은 콘밀 사의 XX 원단을 사용했다. XX는 최상의 품질을 자랑해 물에 넣으면 체형에 맞게 줄어드는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워싱이 거의 되지 않은 짙은 청색의 리지드 진(rigid jean)은 물에 닿으면 2인치까지 줄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핏’의 청바지가 됐다. 실제로 이 시대 카우보이들은 바지를 입은 채로 마구간의 물통에 들어가 자신의 몸에 맞춰 청바지를 줄였다.

1915년부터 1922년까지 리바이스의 모든 청바지를 독점 공급한 콘밀 사는 현재도 29인치 폭의 오리지널 셀비지 데님 501® 스페셜 에디션을 제작하고 있다.

▲리벳


LEVI’S® 레드 탭, 40년 넘은 청바지 상징

리바이스 레드 탭(Red Tab)은 1936년 로데오 경기장에서 태어났다. 세일즈 매니저 크리스 루시아(Chris Lucier)는 로데오 경기를 보던 중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청바지가 모두 똑같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멀리서도 리바이스 청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심볼이 없을까 고민했고 결국 레드 탭을 고안하게 됐다. 레드 탭이 출현하자 뒤태만으로도 리바이스가 구분되기 시작했다.

레드 샐비지(Red Selvage)로 불리는 빨간색 스티치는 1915년 리바이스가 콘밀 사의 원단을 사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청바지 원단을 직조하는 기계의 성능이 떨어져 원단 끝이 쉽게 뜯어지고는 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던 것이다.

1980년대까지의 레드 샐비지는 기능성을 위해 태어났지만 디자인 감각까지 살려준 덕분에 리바이스만의 특별한 디테일이 되었다.

아큐에이트(Arcuate)는 리바이스 청바지 뒤 포켓의 아치형 스티치를 말한다. 이 스티치는 최초의 목적도 이름도 전해지지 않고 있음에도 1873년부터 현재까지 리바이스를 대표하는 상징인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패션 트레이드마크로 불리고 있다.

최초의 아큐에이트는 마(麻)로 된 실을 이용해 만들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구리 리벳과 어울리는 튼튼한 가죽용 실로 제작됐다. 전쟁 시기에는 스티치에 사용되는 실을 아끼기 위해 박음질 대신 페인트가 사용됐다. 전쟁 이후 재봉 기술의 발달로 아큐에이트는 보다 선명해졌으며 다양한 컬러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구리 리벳(rivet)은 1873년 질긴 청바지 천을 튼튼하게 잇기 위해 개발됐다. 포켓 이음새, 밑단 아래 등 청바지가 터지기 쉬운 곳에 부착된 리벳은 실용성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리바이스의 특허 디테일이다.

청바지의 단추 여밈과 지퍼 여밈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원단이었다. 수축이 자유로운 XX 원단은 쉽게 변형되기 때문에 지퍼를 사용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청바지가 줄어들어도 구멍에 끼워 여밀 수 있는 단추는 문제가 없었다. 그 때문에 1950년대 이전까지 리바이스 청바지는 모두 버튼 플라이(button fly) 형식으로 디자인됐다.

- 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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