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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칼리닌그라드·무르만스크] 칼리닌그라드, 칸트 태어나고 잠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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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7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03.20 10:14:55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7일차 (칼리닌그라드 → 상트페테르부르크 환승 → 무르만스크 행)

칸트를 생각하다 

숙소 근처 소비에트 하우스에서 도시 탐방을 시작한다. 쾨니히스베르크 성이 섰던 자리에 거대하지만 흉측한 모습이 도심 풍경을 장악하고 있다. 괴물 같은 거대 건축물은 완성을 눈앞에 두고 구조적 안전의 문제로 방치된 것이다. 소비에트 시절의 또 다른 흔적이다. 여기서 조금만 걸으면 칸트 섬이다. 프레골랴(Pregolya) 강변에 서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성당은 거대한 가톨릭 성당으로서 이 도시에 남아있는 독일의 흔적 중 가장 강렬한 것이다. 한때 프러시아왕의 대관식이 열렸던 곳이다. 성당 내부에는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생애에 대한 기록을 담은 칸트 박물관이 있고 성당의 동남쪽 귀퉁이에는 칸트의 무덤이 있다. 오늘도 많은 독일인 관광객들이 쉬지 않고 찾아와 참배한다. 이곳에서 출생하고 사망한 칸트는 고향을 무척 사랑해서 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볼 것 많은 칼리닌그라드 

여기서 줄곧 걸어 프리드리히스부르크 게이트(Friedrichsburg Gate)까지 갔다. 이 도시를 상징하는 15개의 성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호박 박물관(Amber Museum)도 여기 입주해 있다. 한참을 더 걸어 강 건너 해양 박물관(Museum of World Oceans)을 찾는다. 해양 탐사선, 핵추진 잠수함 등 볼 것이 많다. 어린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엄마가 함께 노는 모습이 평화로운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다. 

▲프리드리히스부르크 게이트는 칼리닌그라드 시를 상징하는 15개 성문 중 가장 대표적이며, 호박 박물관도 입주해 있다. 사진 = 김현주

▲칸트 무덤에는 오늘도 많은 독일인 관광객들이 찾아와 참배한다. 사진 = 김현주

상쾌한 가로수 길

도시 탐방을 계속한다. 규모가 적절히 작은 이 도시에서는 걷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게다가 시원하게 넓은 가로수 길은 너무도 쾌적해 하루 종일이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기념비, 전승비, 성문(게이트), 공원, 연못, 성당을 지나니 이 도시의 중심 광장인 승리 광장(Victory Square)을 만난다. 멋진 각종 공공건물, 승전 기념비, 구세주 성당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중심 업무휴식 공간은 여름 햇살을 즐기는 시민들로 붐빈다. 

특별한 박물관

벙커 뮤지엄(Bunker Museum), 일명 블린다지(Blindage) 박물관은 찾기가 힘들지만 일단 들어가 보니 ‘벙커’라고 불린 이유를 스스로 말해 준다. 1944년 4월 적군 진입 시 방어하던 독일군 지역 본부가 있던 지하 벙커를 훗날 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이다. 나치로부터 도시를 해방한 소비에트의 공적을 찬양한 내용을 중심으로 전쟁화와 함께 디오라마(diorama)로 꾸며진 각 전시실이 제법 볼거리를 제공한다. 러시아 박물관으로서는 드물게 영어 설명도 잘 돼 있다. 도시 탐방을 마친다. 오늘도 무척 많이 걸었다. 그러나 기막히게 아름다운 여름 날씨 덕분인지 그다지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다. 8월 초순의 폭염으로 숨이 턱턱 막힐 서울을 생각하니 공연히 미안하다.

진짜 백야를 경험하다

항공기로 칼리닌그라드를 출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환승, 무르만스크에 도착하니 새벽 1시 반이다. 아직 어슴푸레할 뿐, 해가 지지 않는다. 하지 무렵에는 거의 24시간 낮이지만, 동지를 전후한 두 달가량은 거꾸로 24시간 밤이라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마가단(북위 60도), 미국 알래스카 페어뱅크스(북위 66도)보다 훨씬 높은 북위 69도 지점이다. 내가 밟아 본 가장 북쪽 땅이다. 택시를 타고 예약해 놓은 시내 숙소로 이동한다. 


8일차 (무르만스크)

찬란한 북방의 여름

짧은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태양은 벌써 중천으로 솟아올랐다. 하늘은 아주 파랗다. 러시아 어디를 가도 파란 하늘을 계속 만난다. 무지개도 자주 본다. 오늘 아침 최저 9도, 낮에는 19도까지 오른단다. 짧지만 북방의 여름은 찬란하다. 도시 탐방을 시작한다. 역을 중심으로 이 도시의 중심 거리와 광장이 모두 모여 있어서 이동은 편리하다. 역 부근 레닌 광장 주변으로 Azimuth 호텔(구 Artica 호텔)을 비롯해 관공서와 법원 등 도시의 중심 시설이 포진해 있다. 역사박물관을 찾아갔으나 오늘은 내부 공사로 휴관이다. 여름이 짧은 이 도시에서는 여름에 몰아서 건물, 도로 수리 등을 하느라 어디를 가도 공사 중이다. 

▲흉측한 소비에트 하우스의 모습. 동유럽 어디를 가도 소비에트의 잔재를 만날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프레골랴(Pregolya) 강변에 서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성당은 거대한 가톨릭 성당으로서 이 도시에 남아있는 독일의 흔적 중 가장 강렬한 것이다. 사진 = 김현주

전략 요충 무르만스크 

무르만스크는 제정러시아 말기인 1916년에 건설됐으나 줄곧 작은 도시에 머물다가 1920년대 중반에 들어 빠르게 성장했다.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는 큰 부동항이 필요했던 당시 소련은 무르만스크를 북양 함대(Northern Fleet)의 거점으로 키웠고 이 지역의 수도로 정했다. 마침 올해는 도시 탄생 100주년으로 도시 곳곳에는 기념 패넌트(아래가 좁고 긴 삼각 깃발)가 걸려 있다. 2차 대전 중에는 북극해를 이용한 연합군 측의 병참 군수 물자 수송으로 중요한 위치를 인정받았다. 전쟁 중에는 핀란드에 주둔하던 독일군의 맹렬한 공격으로부터 지켜냈다. 무르만스크 전투는 스탈린그라드(Stalingrad, 현 볼고그라드 Volgograd) 전투 못지않게 치열했다고 한다.

지구 최북단 부동항

인구 31만, 바렌츠(Barents)해가 깊숙이 들어오는 지점에 자리 잡은 무르만스크는 노르웨이, 핀란드와 거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북위 69도에 위치하지만 같은 위도의 세계 다른 어느 곳보다도 화려한 문명이 건설돼 있다. 추운 기후에 도시를 건설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러시아인들의 재능이 돋보이는 곳이다. 그래도 무르만스크는 바렌츠해를 흐르는 멕시코 만류(멕시코 灣流, Gulf Stream) 덕분에 지구 최북단 부동항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원자력 쇄빙선 레닌 호

시내에서 역을 가로질러 항구 지역으로 나간다. 세계 최초의 원자력 쇄빙선 레닌호가 박물관이 되어 정박해 있다. 거대한 쇄빙선은 대충 구경하는 데만 두 시간이 걸린다. 쿠바의 카스트로가 방문했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던 레닌호는 1959년 진수해서 1989년 퇴역할 때까지 무르만스크를 거점으로 바렌츠 해와 북극해는 물론 멀리 일본 홋카이도에 이르는 북양 바다를 오가며 바닷길을 개척했다. 동서(아시아-유럽) 교역에 있어서 북극 루트(polar route)가 주목받기 시작한 오늘날을 예비한 것이니 러시아의 선견지명을 읽는다. 

▲멋진 각종 공공건물, 승전 기념비, 구세주 성당으로 둘러싸인 도시 중심의 승리광장은 여름 햇살을 즐기는 시민들로 붐빈다. 사진 = 김현주

북극 통로

캐나다, 미국, 러시아, 북유럽을 잇는 북극 통로(Arctic Bridge)를 이용하면 북반구의 모든 주요 문명권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그 중심 항구 중 하나로서 무르만스크가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부산항과 대한해협도 북극 루트의 남쪽 관문으로서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항구는 무척 분주하다. 콜라(Kola) 반도 어디선가 열차에 실려 온 석탄이 여러 개의 거대한 산을 이루며 쌓여 있고, 항구 한 편에서는 석탄을 배에 싣느라 크레인 수십, 수백 기가 분주히 작업하고 있다. 

알료샤 전승 기념비

트롤리 버스를 타고 도시 외곽 언덕 알료샤(Alyosha) 전승 기념비를 찾아간다. 정식 명칭은 ‘소비에트 북극 방어자’이다. 2차 대전 중 독일의 맹렬한 공격으로부터 항구와 도시를 지킨 것을 기념해 1974년, 7m 높이 기반석 위에 35m 높이의 병사 동상을 얹어 놓았다. 기념비 앞에는 러시아 3색 국기를 형상한 수십 개의 화환이 놓여있고, 결혼식 포토 세리모니의 인기 장소인 듯 여러 쌍의 예비부부들이 촬영 중이다. ‘꺼지지 않는 불꽃’ 또한 이곳이 도시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임을 일깨워 준다.

유쾌한 산책길

알료샤 언덕 정상에서 도시와 항구를 굽어본다. 반도를 향해 깊숙이 뚫고 들어온 바렌츠해를 따라 선박들이 점점이 오가고 있다. 항구의 선적 작업하는 소리도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다. 나 같은 문외한의 눈에도 이곳이 천혜의 항구임이 금세 알아차려진다. 거대한 도시, 내가 지금 북위 69도에 와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오후의 북방 태양이 강렬하게 쏘는 길을 따라 숙소까지 산책하며 내려간다. 도시의 또 다른 상징인 정교회 교당 ‘구세주 교회’가 언덕 중간쯤 앙증맞게 서 있다. 곳곳에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산책하며 저녁을 즐기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엄마나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걷는 아기 모습, 어린이 모습을 한국에서는 이제 구경하기 어렵게 돼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칼리닌그라드 항구는 러시아 발트 해의 군사-교역 요충이다. 사진 = 김현주

잠수함 쿠르스크호의 비극

무르만스크 여행 일지를 정리하면서 잠수함 쿠르스크(Kursk)호의 비극을 떠올려 본다. 냉전 시대부터 무르만스크는 러시아 잠수함과 쇄빙선의 중심 기지였다. 지금은 무르만스크의 위성도시 세베로모르스크(Severomorsk)로 옮겨간 러시아 북양 함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2000년 8월 12일, 어뢰를 장착한 잠수함 쿠르스크호가 함체의 용접 결함으로 바렌츠해에서 수중 폭발해 선원 118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폭발은 매우 강력해 미국 알래스카에서도 지진파로 감지됐을 정도였다. 폭발 초기에는 생존자도 있었으나 당시 러시아 해군의 느린 대응과 무능으로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고 하니 2014년 4월 발생한 우리나라 세월호 참사가 생각난다. 알료샤 승전기념탑에 바쳐진 많은 화환 중에는 아마도 쿠르스크호 장병들을 추모하는 것도 있으리라. 멋진 바렌츠해 바다 아래에는 이토록 많은 슬픈 사연이 묻혀 있다. 

(정리 = 윤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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