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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한국전쟁? ①] ‘헐벗은 中’과 싸워 코피터졌던 미국이 北을 선제공격 한다고?

미-중 戰史 통해 보는 ‘2차 한국전쟁’의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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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8호 최영태 발행인-편집국장⁄ 2017.08.10 12:47:48

▲최영태 발행인-편집국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천 명이 사망한다면 그건 저쪽(한반도)에서 죽을 것이고 여기(미 본토)에서 죽지는 않을 것”이라며 북한과의 전쟁을 얘기했다고 미국의 ‘호전파’ 상원의원이 전했다지요? 

이 말을 들으니 67년 전(1950년) 중국 마오쩌둥 주석이 품었다는 생각이 떠오르네요. 

공산화된 중국이 궁극적으로 미국과 일전을 겨뤄 무승부를 만들어 놓아야만 이 세상에 존재할 권리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과 전쟁을 한다면 어디가 좋을까? 타이완, 인도차이나, 한반도 중 최고는 한반도였다. 소련과 함께 싸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와다 하루키 ‘한일 100년사’ 182쪽. 이하 이 책의 인용은 ‘와다’) 

공산화된 중국을 자본주의 종주대국 미국이 분쇄하려 덤벼들 테니 언젠가는 반드시 한판 붙어 무승부를 만들어놓아야 ‘중공’이 존재권리를 확보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쟁터로는 ‘한반도가 최고’라는 판단을 마오쩌둥이 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8월 2일자 중앙일보 인터넷판 지면.


한반도가 왜 중국군에게 유리했을까요? 미국 입장에서 한국전쟁사를 정리한 책 ‘더 콜디스트 윈터’(데이비드 핼버스탬 저, 살림, 2009)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마오쩌둥은 해전이나 공중전으로는 미국을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한국에서 미국과 맞붙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라면 대규모 육군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만 해협을 헤엄쳐서 건널 수는 없기에 중공군은 압록강을 걸어서 건너는 쪽을 택했다. 미군이 대만해협에 경계선을 긋는다면 한국은 마오쩌둥이 경계선을 긋기에 훨씬 더 편리한 지역이었다.(485쪽) 

이런 사정, 즉 사람보다는 무기가 주로 싸우는 전쟁에서는 중국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니 대규모 육군을 밀어붙여 싸우면 중국에 승산이 있다는 판단은, 67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다릅니까?

1950년 당시로 돌아가보지요. 그때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가졌고, 공군과 해군 전력은 지구를 뒤덮고도 남았습니다. 반면, 1927년부터 중국 국민당과 내전을 벌였고, 1937년부터는 무시무시한 일본 침략군을 맞아 싸운 뒤 겨우 1년 전(1949년)에야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중국은, 전투 경험이 풍부한 군인은 많았지만 공군-해군 전력은 ‘제로’였습니다. 전후복구를 시작한 소련도 힘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고, 미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강대국들이 헉헉대던 시절입니다.

1950년 당시 중국은 공군-해군도 없었는데… 

당시 사정을 중국군 대령 출신의 전쟁사 전문 작가 왕수쩡은 이렇게 전합니다.
(1950년 당시) 중국인민해방군에는 정규 공군부대가 없었고 대공 무기도 매우 부족했다. 신중국의 군대가 가진 것이라고는 좁쌀과 소총뿐이었다.(‘한국전쟁 - 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 13쪽) 

비행전단과 항공모함에 원자폭탄까지 갖춘 오로지 유일 슈퍼파워 미국과, 이제 막 전쟁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헐벗은 몸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중국. 그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 한국전쟁입니다. 전쟁의 시작은 김일성과 이승만의 싸움이었지만, 곧바로 전쟁은 김일성-이승만을 뒤로 빼고, 중국의 마오쩌둥과 미국의 맥아더 주일 사령관(또는 미국 본토의 트루먼 대통령) 사이의 싸움으로 바뀝니다. 

한국전쟁에 대해 그간 한국인은 ‘한국군의 용감무쌍한 전과’를 숱하게 들어왔습니다. 이른바 ‘국뽕(애국 히로뽕)’이라 비하되는 전쟁 영화를 숱하게 봤기 때문이지요. 그동안은 우리끼리 얘기를 많이 했으니 이제 외국 입장에서 한국전쟁을 들여다볼 필요도 있을 것 같아, 왕수쩡이 쓴 ‘한국전쟁: 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글항아리, 2013. 이하 이 책의 인용은 ‘중’)과, 미국 언론인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쓴 ‘더 콜디스트 윈터’(살림, 2009. 이하 이 책의 인용은 ‘콜’)를 읽어봤습니다. 

이 두 책을 읽고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국군의 용감무쌍함’에는 너무나도 많은 뻥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기 힘들겠구나’였습니다. 당시 객관적으로 보면 세계 유일무이 챔피언 미국과, 이에 막 나라를 세운 가난뱅이 중국의 싸움이었지만, 중국의 참전 뒤 혼쭐이 난 건 오히려 미국 쪽이었고, 미국이 제정신을 차린 뒤에는 중국도 엄청나게 혼쭐이 났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미군의 피해에 대해 왕쑤정은 

미국은 한반도에 미 육군 전체의 3분의 1, 공군의 5분의 1, 해군의 2분의 1을 집중시켰지만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1년간 지속된 전쟁에서 미국 청년 10만 명의 목숨이 날아갔다.(‘중’ 946쪽)
고 정리했습니다. 

왕쑤정은 미군의 피해가 엄청났다면서도 중국군의 피해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일본 학자 와다 하루키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추정합니다. 
‘중국 측 사망자는 공식적으로 11만 6천이라지만 실제로는 100만 명에 육박할 듯’(‘와다’ 182쪽)

자국인 100만 명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마오쩌둥

공식 발표 전사자 숫자와 실제 추정 전사자 숫자에 거의 10배 차이가 납니다. 100만 명을 죽이더라도 미국과 한판 붙어 버릇을 고쳐 놓겠다는 마오쩌둥의 선견지명에 놀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인명경시 시각에 소름이 돋습니다. 

한국전쟁은 남북한 사이 전쟁으로 시작했지만, 초반 충돌 이후에는 바로 미중전쟁이 됩니다. 개전 6개월도 안 지난 시점에서 중국의 마오쩌둥은 당시 북한군의 두 총지휘자인 김일성-박헌영의 지휘권을 빼앗아 자신이 직접 전쟁을 베이징에서 원격지휘합니다. 초전박살이 난 이승만은 아예 지휘권을 잡아본 적도 없지요. 지금은 다른가요? 북핵을 없애려면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금 한반도에서 2차 한국전쟁이 터진다면 그 주역은 곧 미국과 중국이 될 것입니다. 전작권이 없는 한국은 아예 전쟁당사자로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런 사정인데도 ‘한국군의 선제공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 애처로울 뿐입니다.  

애치슨 "헐벗은 중국이 참전한다면 그건 미친 짓"

핼버스탬은 1950년 당시의 중국 사정을 ‘중국 정치권에서는 국민당과의 대결이 아직 마무리 되지도 않았고 나라의 재정과 국가경제 전반이 파탄 직전에 이른 상태이므로 이번 (한국전쟁에의) 참전이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다’(‘콜’ 517쪽)고 정리했습니다.  

중국 내 사정이 이러니 당연히 미국 정부는 “중국은 절대로 한국전쟁에 참전할 리가 없다”고 안심했다지요. 

애치슨(당시 미 국무장관)은 아무리 생각해도 중국이 미국과 유엔에 맞서 싸우려 할 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오랜 기간 소련과 대치하는 중이었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시기에 전쟁에 발을 디딘다는 것은 "완전히 정신이 나간 짓"이나 다름없었다.(‘콜’ 512쪽)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당시 마오쩌둥은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미국과 싸워야 한다. 헌데, 기왕 싸울 거면 한반도에서 싸우면 딱 좋다’고 생각했답니다. 

소련의 스탈린도 당시 미국을 무지 무서워했습니다. 스탈린은 김일성과 마오쩌둥에게 “한국전쟁 고(go)” 사인을 내려놓고도 소련의 참전 사실이 미국이 알려지면 치도곤을 당할까봐 소련군 전투기 조종사에 북한 인민군복을 입혀 출전시키는 몸조심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줄곧 유지하지요. 

▲모스크바에서 1949년 열린 스탈린(군복 차림)의 71번째 생일 잔치에 참석한 마오쩌둥(앞줄 인민복 차림). '능력이 있는' 마오쩌둥을 스탈린은 싫어했고, 모스크바의 싸구려 호텔에 마오를 머물게 하고는 며칠 동안 만나주지 않고 기다리게만 해서 마오로 하여금 원한을 품게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미-중 양측의 한국전쟁사(史)를 읽고 제가 느낀 바를 우스꽝스럽게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돈 많고 첨단연장(무기)에 똘마니까지 왕창 갖춘 골목대장 짱(미국)은, 나이또래(남한)에게 선방을 날린 땅꼬마 일성이(북한)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큰주먹 한 방을 날린다. 땅꼬마 일성이는 이내 깨갱했지만 그에게는 형 쩌둥이(중공)가 있다. 일성이나 쩌둥이나 워낙 가난한 집안살림인지라 제대로 못 먹어 헐벗고 깡말랐다. 온몸이 근육인 짱에게 쩌둥이가 찍소리도 못할 줄 알았지만, 쩌둥이는 야음을 틈타 주먹을 날려 짱의 코피를 터뜨린다. 놀란 짱은 쩌둥이를 무지막지하게 패주려 했지만 쩌둥이가 제법 맞주먹질을 하는지라 도저히 완승을 거둘 수 없고, 짱의 코에서는 코피가 멈추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골목에서 개망신을 당할까 싶은 상황이 되자 짱은 “야, 쩌둥아 이제 그만 싸우자”고 악수를 청했지만 쩌둥이는 악수를 2년 동안이나 안 받아주면서 계속 실랑이를 벌인 끝에 마침내 1953년이 돼서야 “정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머” 이러면서 악수를 받아줬다.

한국전쟁이 왜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이 됐는지를 추적한 핼버스탬 기자

미국이 혼난 사정을 샅샅이 들춰낸 게 핼버스탬의 책입니다. 헐벗은 중국과 싸우면서 크게 혼이 난 전쟁을 미국 정부와 언론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했고, 그래서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통합니다.   

이제 거의 70년이 흘러 헐벗었던 땅꼬마 쩌둥이는 온몸에 근육을 붙였고, 첨단연장이나 똘만이 숫자도 짱보다는 적지만 만만치 않게 갖췄습니다. 이른바 양대 짱 시대(G2)가 된 것이지요.

▲1955년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오른쪽)을 맞이하는 펑더화이 전 조선인민지원군 총사령관. 종전 뒤 이렇게 웃고 있지만 1950년 인천상륙작전 뒤 중국 측은 전쟁지휘 능력이 떨어지는 김일성의 지휘권을 빼앗고 전격적으로 2선으로 후퇴시켜 김일성으로 하여금 중국 측에 원한을 품게 만든다.(사진=위키미디어)


67년 전의 마오쩌둥과 트루먼은 '남의 땅(한반도)'에서 한판 붙는 거 좋아했는데… 지금은 다른가?
 
67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중 두 나라는 “한판 붙을 테면 한반도에서 붙자”는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원래 강대국은 자기 땅에서 안 싸우는 게 원칙입니다. 자기 집에서 싸우면 세간이 부서지고, 와이프나 얘들(국민)로부터 핀잔을 받을 수도 있으니 남의 땅(제3국)에서, 그것도 똘만이들을 시켜 한판 붙게 하는 게 강대국들의 전매특허입니다. 그렇게 싸우면서 첨단연장(최신형 무기)도 자랑해 팔아먹을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고지요. 역대 전쟁을 봅시다. 유럽 강대국들끼리 자기들 땅에서 직접 싸운 건 나폴레옹 침략전쟁이 마지막 아닌가요? 1차대전의 신호탄이 된 전투는 ‘주변 약소국’ 사라예보에서 시작됐고, 2차대전은 독일이 주변 약소국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됐지요. 2차대전 종전 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 진영이 단단히 뭉친 다음에는 미국과 소련이 항상 으르렁거렸지만 자기들끼리 직접 붙은 적은 없고, 한반도-쿠바-베트남-아프가니스탄-이란-이라크 등 접경 지대에서 아랫것들을 시켜 힘겨루기를 했지요. 그럴 때마다 해당 지역과 사람들은 쑥대밭이 됐고….

사정이 이렇게 뻔한데도, 한반도의 짝퉁보수들은 “핀셋처럼 김정은만 골라 처단하면 된다” “평양 주석궁으로 탱크를 몰고 들어가자”며 외쳐대니…. 마오쩌둥과 트럼프의 “거기(한반도에서)서 한판, 아주 좋아” 발언이 귀에서 쟁쟁 울리지 않나요? 

미-중 양측의 한국전쟁 전사(戰史)를 읽어보면 한국인의 기존 상식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정리해보지요. 

◇ 맥아더, 한국에선 軍神, 미국 현지 평가는 “정신나간 장군”

한국전쟁 전반부에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는 한국에서 ‘군사의 신’으로 통하지요. 그를 신으로 기리는 사당도 있다니 말입니다. 작년 개봉된 영화 ‘인천상륙작전’(이재한 감독)에는 미국의 미남 배우 리암 니슨이 맥아더 역으로 나와 멋진 모습을 또 한 번 연기했지요(원래의 맥아더가 연기 전문가였다는 게 핼버스탬의 평가입니다. 항상 거울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대머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항상 모자를 쓰고. 기자들 앞에서의 연기에 최적화된 장군님). 

▲선상에서 멋진 복장을 갖추고 인천상륙작전을 지켜보는 맥아더(오른쪽 두번째). 오른쪽은 '맥아더의 최고 간신이면서 지휘능력은 형편없는' 것으로 핼버스탬 기자가 연신 고발하는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사진=위키미디어)


다음은 핼버스탬 책의 구절들입니다. 
미군이 20세기에 범한 최대의 실수는 맥아더가 군대를 압록강까지 몰아붙인 거였다.(베트남 전은 민간 정부가 나서서 계획한 일이므로 정치적인 실수에 가까웠다)
인민군의 물자 보급로가 약해져 있다는 이유로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자고 주장했던 그가, 이번에는 자기 부대를 몰아붙였고, 통제권을 벗어난 지역에서 갈수록 높아만 가는 위험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혹독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겨울 날씨를 견디며 전투를 벌이는 일이 없도록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며 인천이 공동 상륙작전의 적지라고 말했던 그가 이번에는 한반도를 넘어 겨울이 이미 시작된 만주 지역까지 군대를 보낸 것이다. 40년 뒤 매튜 리지웨이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총사령관을 용서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콜’ 564쪽)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치면서 압록강까지 적군을 추격한 일이었다.(‘콜’ 974쪽) 

▲장진호 전투에서 겨우 살아남은 미군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후퇴하고 있다. 뒤쪽으로 팔을 싸맨 병사의 모습도 보인다.(사진=위키미디어)


▲미 해병대의 'Chosin Few' 관련 그림. 개마고원의 험준한 산 속으로 가늘게 뻗어가는 길은 양쪽 산 위에서 공격하면 그냥 '몰살의 길'이 돼버린다. 이런 길밖에 없는 지역을 "최대한 전속력으로 두만강까지 전진하라"는 명령을 맥아더 총사령관은 내려 미군을 몰살 직전으로 몰아 넣는다.(사진=위키미디어)


▲미군 1 해병사단의 올리버 스미스 소장이 맥아더의 명령을 어기고 일부러 천천히 진격하면서 하갈우리에 설치한 임시 비행장의 모습. 아스팔트도 없이 맨땅에 설치한 임시 시설이었지만, 이 비행장이 없었다면 1 해병사단은 아마도 장진호 전투에서 전멸했을 것이며, 문재인 대통령 일가도 포함된 원산 철수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전사가들은 평가한다.(사진=위키피디아)


‘제 정신과는 거리가 먼’ 맥아더를 트루먼 대통령이 해임시키고, 한국에 파견된 미 8군 사령관 월튼 워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후임으로 파견된 매튜 리지웨이 장군의 전열정비가 없었다면 한반도에 배치된 미군은 더욱 큰 피해를 봤을 거라고 핼버스탬은 전합니다. 리지웨이는 장군이면서도 항상 수류탄을 가슴에 매달고 다닐 정도로 영민하고 용감한(맥아더와는 달리 전투 현장에 직접 헬기를 타고 뛰어들어 병사들을 격려하는) 군인이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대학생은 저리 가랄 정도로 '마마보이 사관생도'였던 더글러스 맥아더

핼버스탬은 맥아더의 육사 시절까지 쫓아갑니다.

▲미 육군사관학교 시절의 멋쟁이 맥아더. 그의 어머니 핑키는 육사 인근 최고급 호텔에 머물면서 '마마보이' 아들의 학점을 관리해줬지만, 워낙 친구가 없어 그의 '첫 번째' 결혼식에는 사관학교 친구가 딱 한 명만 참석했단다.(사진=위키피디아)

핑키 맥아더(맥아더의 어머니)는 육군 사관학교 4년 동안 더글러스 맥아더가 기대 이하로 도태되거나 평범한 생도로 전락하지 않도록 현지 최고급 호텔에 거처를 마련하고 아들을 지켜봤다. 웨스트포인트(미군 사관학교)는 미국에서 가장 엄격한 4년제 교육 기관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학교 감독관이 자기 아들에게 소홀하거나 그가 얼마나 뛰어난지 몰라줄 때 몸소 나서서 일깨워주었다. 
맥아더의 첫 번째 결혼식은 친구와 동료 하객이 너무 적어서 주목을 끌 정도였다. 결혼식에 참석한 친구는 한 명뿐이었다. 마음속에 동료의식이라고 눈곱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관계에 서툴 수밖에 없었다. 늘 완벽하거나 적어도 완벽해 보여야 한다고 배운 맥아더는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오류를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콜’ 165쪽) 

요즘 한국 대학생들을 대신해 엄마가 교수에게 전화해 “우리 애 학점이 왜 이 모양이냐?”고 최순실처럼 따진다지만,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이미 성인이기에 자식과 부모가 ‘바이바이’를 하는 미국에서, 더구나 사관학교에 들어간 아들 맥아더를 돌보려 엄마 맥아더는 사관학교 근처 최고급 호텔에 진을 쳤다니 참말로 대단한 마마와 보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엄마 덕인지 실력 덕인지 어쨌든 사관학교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맥아더는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을 총지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부관-참모들을 모조리 아첨꾼으로 채웠다고 책은 전합니다. 

▲1919년 미국 육군사관학교 교장 당시의 맥아더. 엄청 깔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에서 '멋을 최고로 쳤다'는 그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사진=위키피디아)

맥아더가 "제 참모가"라고 말을 꺼내자 마셜은 그의 말을 끊으면서 "참모가 아니라 신하겠지"라고 비꽜다.
(‘콜’ 569쪽) 

여기서 마셜은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육군 참모총장을 지내고 그 후 국무장관, 국방장관을 역임하며 유럽 부흥계획인 ‘마셜 플랜’을 실행에 옮긴 뛰어난 군인-정치가지요.

찰스 윌로비(맥아더의 정보참모)가 모시고 있던 뛰어난 상관 맥아더는 심리적으로 유약해 항상 자기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끊임없이 달콤한 말로 안심시켜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콜’ 577쪽) 

마마보이로 자랐기에 왕처럼 대접받아야 하는 맥아더였다는 것입니다. 

백인우월주의자에, 주변을 '신하'로 채우고, 
도쿄에서 원격지휘만 한 맥아더

최근 첫 방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장진호전투 참전비에 헌화해 화제가 됐지만, 이 전투(1950년 10~12월)는 맥아더의 잘못된 명령 때문에 미국 1 해병사단 1만 2천 병사가 개마고원에서 전멸할 뻔한 전투였습니다. 앞에서 한국전쟁이 미국에서는 잊혀진 전쟁이라고 했지만, 신기하게도 이 장진호 전투는 미국에서 꽤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Chosin Few’이라는 문구를 보고(‘Chosin’은 장진의 일본어 발음) “선택된(chosen) 소수가 잘 싸운, 미군이 자랑스러워하는 전투로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장진호에서 겨우 살아남은 정말 소수'를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너무나 치욕적이고 공포스러웠던 전투였기에 미군, 특히 미군 해병대가 아프게 기억하는 전투입니다. 

백인 이외의 인종을 ‘인간 밑’으로 본 맥아더 사령관은 멋지게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뒤 곧이어 미군 10군단과 1 해병사단을 ‘요란스레’ 원산에 상륙시켰습니다 그러나 꼴은 우스웠지요. 인민군이 다 도망간 원산항에 함포사격과 공군폭격을 눈부시게 펼친 뒤 미군이 원산에 상륙했지만, 정작 원산에 먼저 진입한 것은 서쪽에서 걸어간 한국군이었다니 말입니다. 

어쨌든 한 판의 대형 코미디였던 원산상륙작전 뒤 맥아더는 올리버 스미스 소장이 이끄는 1 해병사단에게 “두만강까지 최고 속도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도쿄 사령부의 따끈한 난로 곁에서 내립니다. 하지만 스미스 소장은 ‘외길만이 뻗어 있는 개마고원에서 명령대로 전속력 진격을 했다가는 몰살당할지도 모른다’고 자체판단하고 고의로 전진 속도를 늦춥니다. 지연 진격을 하면서 장진호 인근 하갈우리에는 임시 비행장까지 깔아놓습니다. 후퇴시 항공기의 도움 없이는 큰일 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스미스 부대의 느린 전진에 도쿄 사령부에선 명령불복종이라며 난리를 쳤지만….  

'거지 발싸개'를 신고 참전 초기에 미군을 혼비백산시킨 중국 조선인민지원군

한겨울 두만강 국경선을 몰래 넘은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 제9병단(7개 사단 병력, 12만 명)은 미군 해병대의 측면을 소리도 내지 않고, 항공사진에 찍히지도 않은 채 귀신처럼 스쳐 지나간 뒤 완전히 포위해 몰살 작전에 돌입합니다. 하갈우리 임시 비행장이 없었다면 1 해병사단 1만 2천 장병은 12만 중공군에 몰살 당했을 것입니다. 그 지옥 같은 전장에서 그야말로 선택된 소수(chosen)만이 살아난 게 장진호(Chosin) 전투였습니다. 맥아더의 막무가내 명령을 스미스 소장이 어겼기에 문재인 대통령 일가도 살아난 것이지요.

▲장비라고는 솜을 누빈 외투에 소총 한 자루씩만 들고 압록강-두만강을 몰래 넘어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공군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 이들은 혹한 속에서도 소리도,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미군 뒤로 돌아가 완전 포위를 한 뒤 꽹가리를 치고 피리를 불며 공격을 시작해, 중공군 참전 초기에 미군은 이 소리만 들려도 혼비백산했다는 기록이 미-중 양측의 한국전쟁사에 나온다.(사진=위키피디아)


‘더 콜디스트 윈터’의 저자는 이렇게 고발합니다. 

맥아더가 오만하고 고집이 세기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대답하자 마오쩌둥은 아주 흡족해 했다. “좋아, 좋아. 맥아더가 고집과 오만을 부릴수록 우리에겐 유리하지. 오만한 적은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니까.”(‘콜’ 569쪽) 

맥아더는 일본 전투기가 미 공군을 성공적으로 제압했을 때 일본군 조종사들이 백인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했다.(‘콜’ 173쪽) 

“감히 한국인이 어떻게 미국인은 이긴단 말인가”라는 생각에 빠져 있던 미군(‘콜’ 199쪽). 

한국전 참전 당시 중공군은 장비라고는 소총 한 자루에 솜을 누빈 윗도리가 다였다고 합니다. 방한화도 없이 미군이 보기엔 ‘거지 발싸개’나 다름없는 신발을 신고, 아니면 그 신발마저 닳아 없어져 맨발로 한겨울의 눈덮인 개마고원을 달려다녔다니, ‘부자 미군’ 입장에서는 토인들과 싸운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요. 헌데, 그런 중공군에게 67년 전에 코피를 줄줄 흘린 미군이, 21세기 G2로 올라선 중국과의 전쟁을 “진정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짝퉁보수 언론들이 흘리며 한국 국민들을 겁에 떨게 만들고 있으니 그저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리지웨이 장군이 없었다면 한국전쟁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수도…

미군은 역사적으로 아시안, 특히 유교권 국가와의 전쟁에서 단 한 번도 중동 또는 남미에서와 같은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중국 인민군, 일본 제국주의 군과의 전쟁에서 호되게 고생한 것은 물론이고, 월남에선 심지어 패전까지 했습니다. 그런 미국입니다. 

▲총사령관이면서도 가슴에는 "유사시를 대비해" 항상 수류탄 한 발을 장착하고 다닌 매튜 리지웨이 장군(왼쪽). 맥아더의 지휘로 완전 궤멸 상태에 빠진 한국전쟁 참전 미군을, 리지웨이 장군은 자신이 직접 전쟁터에 뛰어들어가 장병들을 독려하고, 중공군의 공격-작전 패턴을 면밀히 분석해 대세를 반전시키는 계기를 만든다. 리지웨이 장군이 없었다면 한국전쟁은 전혀 다른 판도로 전개될 수도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사진=위키피디아)


주한 미군을 ‘중공군에 대항할 만한 군대’로 겨우 다시 일으켜세운 리지웨이의 공을 맥아더가 잽싸게 인터셉트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리지웨이가 세운 주요 공격작전이 막 시작될 무렵이면 갑자기 맥아더가 몇몇 측근을 이끌고 도쿄 본부에서 한반도로 날아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계획에 대한 언론의 찬사를 빼앗아 갔다. 맥아더가 수원에 와서 이번 공격을 지시한 사람이 자기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리지웨이는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작전에 맥아더나 그 측근들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분개했다. 맥아더는 자신의 공식적인 이미지를 항상 최고로 유지하는 데만 급급한 속물이었다.(‘콜’ 915쪽) 

연기를 잘해서 성공한 장군이라…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기를 잘해 대한민국의 최고 자리에 올라갔던 그분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공의 공식은 '연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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