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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유쾌-경쾌해진 명품들…'스스로 짝퉁' 조크에 게임룸 설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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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82호 윤지원⁄ 2018.04.06 11:36:35

이탈리아 명품 진 브랜드 '디젤'이 지난 2월 뉴욕 브로드웨이 카날 스트리트에 개점한 '데이젤' 팝업스토어(위)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3월 말 서울 마포구 홍대앞에 개점한 '코코 게임 센터' 팝업스토어. (사진 = 디젤 홍보영상 캡처 / 윤지원 기자)

콧대가 한없이 높을 것만 같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쿨하고 재밌어졌다. 재작년, 루이비통이 뒷골목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Supreme)과 깜짝 콜라보레이션을 발표한 것이 전 세계 패션 업계에 파란을 일으킬 일이었는데, 어느덧 콜라보는 흔한 일이 되었다. 요즘 럭셔리 브랜드의 프로모션은 더욱 과감해졌다. 디젤(DIESEL)은 지난 2월, 디젤 ‘짝퉁’으로 흔히 볼 수 있던 ‘다이젤’(DEISEL)을 로고로 사용한 의류를 직접 만들어 팔았다. 샤넬은 최근 메이크업 라인의 신제품 프로모션을 위한 팝업스토어를 도쿄, 토론토, 서울 등에서 돌아가며 열었는데, 그 콘셉트가 1980년대 분위기의 오락실이어서 눈길을 끈다.

 

디젤의 '다이젤' 팝업스토어에서 디젤 측 점원(오른쪽)과 고객이 상표 진위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 = 디젤 홍보영상 캡처)

①디젤: 짝퉁도 우리가 만들면 오리지널

 

“상표가 틀리잖아요”, “디젤 맞다니까요”

 

디젤이 뉴욕 시민을 상대로 몰래카메라 이벤트를 연출한 것은 지난 2월 초, 바로 2018 뉴욕 패션 위크가 막 시작하던 때였다.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보세 의류 시장인 카날(Canal) 스트리트에 새 점포가 문을 열었다. 주변 가게들과 마찬가지로 허름하게 꾸며진, 영세한 점포로 보였다.

 

이 집은 특이하게도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인 ‘디젤’의 간판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점원은 행인들을 향해 디젤 정품이며 한정판을 판다고, 심지어 디젤 매장 가격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떠들었다. 지나가던 시민은 대부분 코웃음을 쳤다. 간판과 의류에 붙은 디젤 로고의 스펠링이 ‘DIESEL’이 아닌 ‘DEISEL’이었기 때문이다.

 

한 고객은 점원에게 “디젤이 아니라 데이젤”이라며 “철자가 틀렸는데 무슨 정품이라는 거냐”고 지적하며 티셔츠 가격을 흥정했다. 그런데 점원은 뻔뻔하게도 “여기서 파는 옷들은 디젤 정품이며 한정판이 맞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스마트폰으로 디젤을 검색해서 보여줘도 그는 ‘디젤 한정판 정품’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고객 표정에는 “누굴 바보로 아나”라고 써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티셔츠는 진짜 디젤 정품이다. 심지어 진짜 한정판이다. 이 점포는 디젤이 뉴욕 패션 위크를 맞이해서 마련한 팝업스토어이고, 여기서 파는 제품은 모두 디젤이 일부러 ‘짝퉁’ 로고를 붙여 절반 가격에 판매하는 한정판 진품인 것이다. 이날 이 점포에서 싸구려 위조품을 구매한 고객들은 디젤의 데이젤 한정판 제품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수집가들 사이에서 디젤 한정판 아이템 거래에 붙는 웃돈은 수십만 원에 달한다.

 

디젤(DIESEL)의 직원이 의류에 가짜 상표인 '데이젤'(DEISEL) 상표를 부착하고 있다. (사진 = 디젤 홍보영상 캡처)

진짜‧가짜 증거보다 명품다운 태도가 중요

 

이 이벤트는 자신들을 표절하는 가짜에 다시 표절로 대응한 재치있는(fun) 패러디로 우리가 짝퉁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의미 있는 캠페인이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럭셔리 브랜드는 위조품을 만들어 파는 업체를 디자인 도용으로 고소하거나 무시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가짜는 진짜를 베끼고, 그 가짜를 다시 진짜가 베낀 이 이벤트에서 디젤은 명품 브랜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과 신뢰,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attitude)라는 진리를 강조했다.

 

디젤 외에도 많은 브랜드가 짝퉁에 패러디로 대처하는 일이 최근 많아졌다. 구찌(GUCCI)는 지난해 GUCCY, GUCCIFY, GUCCIFICATION 등의 다양한 짝퉁 로고들을 부착한 제품들을 내놓아 인기를 끌었다. 이 프로젝트는 평소 ‘구찌 고스트’라는 예명으로 짝퉁 구찌를 만들어 왔던 아티스트와 진행한 콜라보 프로젝트였다.

 

프랑스의 명품 베트멍(VETEMENTS)은 자사 레인코트와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10분의 1가격으로 파는 베트밈(VETEMEMES)이라는 짝퉁 브랜드를 상대로 아무런 소송도 제기하지 않겠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베트멍의 대표 디자이너인 뎀나 바잘리아는 “우리가 베트멍 옷을 만들며 즐기는 만큼, 대빌 트랜(베트밈 운영자)도 자신의 프로젝트를 즐기기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프랑스의 명품 스트리트 브랜드 '베트멍'의 오리지널 레인코트(왼쪽)와 페이크 브랜드 '베트밈'이 10분의 1 가격으로 내놓은 레인코트. (사진 = mytheresa.com / 베트밈 홈페이지)

패션에서 가짜와 진짜의 구분을 무의미한 논의로 만든 것은 패셔니스타들이다. 일부 스타들은 ‘나이스’(NICE, NIKE의 가품)나 ‘파마’(PAMA, PUMA의 가품)처럼 스펠링이 틀려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짝퉁 로고가 그려진 옷을 일부러 자랑스럽게 입기도 했고, 이런 모습이 언론과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페이크 패션’(Fake Fashion)이 글로벌 트렌드로 유행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도 인정하는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권지용)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약 5년 전 럭셔리 브랜드 지방시(Givenchy)의 스펠링에 자신의 이름을 합쳐 패러디한 ‘지용시’(Giyongchy)라는 로고가 새겨진 비니를 착용한 사진으로 화제가 됐다.

 

지드래곤처럼 유행을 선도하는 국내외 스타들은 명품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자신을 멋있게 꾸며내고, 자신감을 드러낼 줄 안다. 패션에서 중요한 것은 진짜 가짜 여부가 아니라 태도라는 철학을 명품 브랜드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먼저 입증했던 셈이다.

 

루이비통과 슈프림의 관계도 좋은 사례다. 루이비통은 7년전 슈프림이 스케이드보드 데크(판)에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로고를 도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슈프림의 브랜드 이미지와 수많은 콜라보 작업에 열광했던 젊은 소비자들은 루이비통을 비웃었고, 슈프림의 인기는 오히려 더 올라갔다. 결국 루이비통은 태도를 바꿔 재작년 슈프림과의 콜라보 제품군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샤넬이 지난 3월 말 홍대 인근에 개장한 '코코게임센터' 팝업스토어 내부의 모습. (사진 = 윤지원 기자)

②샤넬: 젊은 고객 흡수 위해 오락실 차려

 

샤넬은 지난 3월 30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 ‘코코게임센터’(COCO Game Center)라는 팝업 스토어를 개장했다. KT&G상상마당 옆 건물이며, 지상 1~2층에 1980년대 스타일의 오락실을 연상시키는 콘셉트로 꾸며졌다. 코코게임센터는 4월 22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코코게임센터는 샤넬 코스메틱 신제품 ‘루쥬코코 립 블러쉬’(이하 루쥬코코)의 프로모션을 위해 기획된 공간이다. 가장 먼저 3월 2일부터 11일까지 일본 도쿄의 메이지신궁 앞에 팝업 스토어로 열린 뒤 다른 나라로 확대 설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22일에는 캐나다 토론토 블로어 스트리트에도 개점했다.

 

홍대 코코게임센터는 블랙과 화이트 컬러의 바탕에 루쥬코코의 여섯 가지 색깔을 테마로 꾸며졌고, 샤넬 로고와 ‘코코’(COCO)라는 제품 로고가 여기저기 큼직하게 박혀있다.

 

1층은 예전 오락실 스타일의 키 큰 비디오 게임기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고, 드라이빙 게임기 형태의 ‘뷰티 라이드’ 포토 존, 루쥬코코 샘플을 이용해볼 수 있는 테스트 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은 앉아서 쉴 수 있는 라운지 공간을 중심으로 화장대가 설치된 메이크업 존, 포토 존, 테스트 존 등이 벽쪽에 마련되어 있다. 메이크업 존에서는 샤넬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방문객들에게 리터치 서비스와 함께 루쥬코코 활용 팁을 알려준다. 2층은 오후 시간에만 운영되며, 파티 이벤트나 메이크업 시연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샤넬의 팝업스토어 '코코게임센터'의 모습. (사진 = 윤지원 기자)

샤넬과 게임이 무슨 관련 있길래?

 

코코게임센터의 게임기는 사실 화장대의 변형이다. 게임기 상판의 조작부는 테스트용 샘플 제품을 진열한 테이블 역할을 겸한다. 게임 모니터는 버튼 조작 한 번으로 커다란 거울로 바뀐다.

 

드라이빙 게임기 모양의 포토 존도 마찬가지다. 대시보드에는 테스트용 샘플이 진열되어 있고, 거울은 자동차 룸미러 형태로 만들었다. 1층 공간을 가득 채운 여섯 대의 게임기와 두 대의 포토 존은 결국 여덟 개의 커다란 화장대 겸 테스트 존인 셈이다.

 

게임기 한 대에서 두 종류의 게임을 선택할 수 있다. 게임은 기존에 있던 게임이 아니라, 기존 게임에 샤넬 루쥬코코 테마를 녹여 새롭게 만든 것이다. 그 중 ‘스매시’는 1972년 아타리(Atari) 사가 출시한 최초의 스포츠 비디오 게임 ‘퐁’(Pong)을 응용한 게임이다.

 

퐁은 테니스처럼 두 사람이 공 하나를 서로 튕겨내 상대가 뒤로 흘리게 하면 득점하는 단순한 게임이다. 조작은 단지 자신의 라켓을 위 아래로 이동시키는 게 전부다. 그래픽은 게임 규칙보다 더 단순하다. 막대기는 라켓이고 점은 공이다. 막대기 라켓도, 굵고 커다란 사각형 픽셀 몇개를 세로로 이어붙인 게 전부인, 가장 단순한 단계의 그래픽이다.

 

1972년 출시된 게임 '퐁'을 응용한 샤넬의 게임 '스매시'. (사진 = 코코게임센터 웹페이지 캡처)

스매시는 루쥬코코의 제품 디자인이 퐁의 라켓처럼 길고 네모난 막대기 모양이라는 데서 착안한 게임이다. 게임을 시작할 때 플레이어는 먼저 자신이 사용할 라켓(막대기)을 고르는데, 바로 루쥬코코 6개 컬러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

 

그래픽의 퀄리티도 ‘퐁’처럼 픽셀이 크고 해상도가 낮다. 루쥬코코의 심플한 외형을 표현하는 데 굳이 고해상도 그래픽은 필요가 없고, 굵은 픽셀이 오히려 이 게임의 복고풍 스타일을 돋보이게 한다.

 

복고풍 게임처럼 굵은 픽셀로 표현한 제품 그래픽을 잘 들여다보면, 코스메틱 숍의 진열대에 많은 컬러의 팔레트가 펼쳐져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래서 게임센터 곳곳에, 또한 게임센터 홍보용 웹페이지에 픽셀로 표현한 제품 이미지들이 그려져 있다.

 

또 다른 게임 ‘사운드’는 음악의 리듬에 맞춰 제시되는 버튼을 올바른 타이밍에 눌러 득점하는 전형적인 리듬 게임이다. 두 플레이어가 각각 세 개의 버튼을 사용하는데 루쥬코코의 여섯 개 컬러가 각각의 버튼에 응용됐다. 그리고 버튼이 흘러갈 때 배경에는 마치 가로등처럼 루쥬코코가 세워져 있다.

 

샤넬의 팝업스토어 '코코게임센터'의 모습. (사진 = 윤지원 기자)

젊은 고객 만나려면 변해야 한다

 

드라이빙 게임기를 모티브로 한 포토 존 ‘뷰티 라이드’는 방문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공간이다. 핸들과 브레이크 등에는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나 아우디의 로고가 아니라, ‘여자들의 로망’이라는 샤넬 로고가 커다랗게 달려 있다. 샤넬이 자동차를 만든다면 어떤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보다 예쁘고 스타일 좋은 차를 만들 것임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인형 뽑기처럼 크레인을 이용해 샤넬 코스매틱 샘플 제품이 들어있는 버블을 뽑는 게임기도 매장에 마련되어 있다. 사전에 온라인으로 등록하고 모바일 초청장을 받으면 입장할 때 이 게임기를 이용할 수 있는 코인을 한 개 준다. 버블을 성공적으로 뽑아보면 안에는 샤넬의 르블랑, 립팔레트, 아이세럼 샘플 중 하나가 들어있다.

 

친구들과 함께 온 방문객이 번갈아 뽑기를 하는데, 누군 뽑고 누군 실패하면서 비명과 탄성,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나가다 들른 외국인 관광객들은 스매시 게임으로 대결을 한다. 역시 득점이 이루어질 때마다 상반된 반응이 즉각 터진다. 이들의 게임 조작을 도우며 매장을 안내하는 직원들의 표정도 밝다.

 

게임센터 테마의 팝업스토어는 젊고, 유니크하고, 즐거운 공간이다. 샤넬 코스메틱은 고가의 고급 화장품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이 팝업스토어는 그런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해 보인다. 위치가 홍대 앞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홍대 일대는 유동인구 중 젊은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아 올리브영, 롭스, 왓슨스 등 2030 여성 고객들이 자주 찾는 대형 드럭스토어가 100미터 당 하나 꼴로 밀집해 있다. 더 낮은 연령층의 고객들 안으로 직접 파고들어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샤넬의 야심찬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십여 년 전부터 명품 시장은 젊은 세대가 신규 고객층으로 흡수되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이대로라면 명품은 올드(old)하다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위기감이 명품을 변하게 하고 참신한 마케팅에 도전하게 만드는 것 같다”라고 최근 명품 브랜드의 변화의 배경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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