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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1도 낮추면 180억 이익…하이트진로-롯데주류, 더 낮추는 속내?

"음주 트렌드 변했다"는 게 공식 이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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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84호 윤지원⁄ 2018.04.20 15:10:05

하이트진로의 '참이슬'과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이 브랜드 리뉴얼과 함께 알코올 도수를 낮춘다. (사진 = Pixabay)

 

국산 소주가 더 순해진다. 국내 소주 시장의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는 4월 중순부터 각각 주력제품인 참이슬과 처음처럼 브랜드를 리뉴얼하고, 알코올 도수를 0.5~0.6도 낮춰서 출고했다. 소주 업계의 알코올 도수 낮추기 경쟁이 벌어질 때마다 고개를 드는 원가 논란은 이번에도 불거졌다. 업체는 시장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고 밝히지만, 생산 단가를 아끼고 추가 구매를 유도하려는 상술이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참이슬후레쉬-처음처럼, 알코올 도수 낮춘다

 

16일 하이트진로가 알코올 도수를 17.8도에서 17.2도로 0.6도 더 낮추고 패키지 디자인을 새롭게 한 ‘참이슬 후레쉬’를 출고하기 시작했다. ‘참이슬 오리지널’은 라벨 디자인만 변화하고, 알코올 도수는 기존의 20.1도를 유지한다.

 

경쟁사인 롯데주류도 20일부터 ‘처음처럼’ 브랜드의 도수를 전반적으로 내리고 리뉴얼한다. 처음처럼의 주력제품인 ‘부드러운 처음처럼’의 도수는 17.5도에서 17도로 0.5도 더 낮추고, ‘진한 처음처럼’은 21도에서 20도로, ‘순한 처음처럼’은 16.8도에서 16.5도로 각각 1도, 0.3도 낮춘다. 바뀐 처음처럼은 기존 제품의 재고 회전에 따라 4월 말부터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1998년, 23도의 참이슬이 나오면서 25년간 유지되던 25도의 벽이 무너졌다. 참이슬은 출시 첫해부터 소주 시장을 장악했고, 이후 소주는 20년 동안 점점 더 순해졌다. 4년 전만 해도 소주 알콜도수의 마지노선은 18도라고 여겨졌지만 요즘 대세는 17도 전후다. 이제 20.1도의 참이슬 오리지널은 ‘독한 소주’로 통한다.

 

하이트진로 '참이슬 후레쉬' 새 지면광고. (사진 = 하이트진로)

"소비자가 저도수 소주 선호하니까"

 

소주 제조업체는 소주의 도수가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이유를 소비자 트렌드의 적극적인 반영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저도화 요구는 강화되고 있는 추세”라며 “지난 2년간 수집한 제품 선호도 조사의 결과를 반영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도수를 낮추게 된 배경을 밝혔다.

 

롯데주류 측도 “처음처럼은 ‘부드러운’ 제품 속성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계속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앞으로도 소비자의 트렌드를 적극 파악해 소주 시장에서 ‘부드러운 소주’ 이미지를 더욱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도 소비자의 저도 소주 선호는 다양한 문화적 트렌드가 반영된 결과로 본다. 기존의 독한 소주를 즐겨 마시던 20세기 후반과는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가 더 순하고 부드러운 소주를 만들게 한다는 것이다. 25도의 소주가 처음 23도로 낮아지던 1990년대에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고, 이후 20년에 걸쳐 17도 이하로 낮아지게 된 것도 시장의 요구가 먼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독한 소주를 즐기던 지난 세기의 문화는 어땠을까? 1924년 진로 소주가 처음 출시됐을 때 알코올 도수는 35도였다. 1960년대에 정부는 식량난을 이유로 양곡을 원료로 한 증류식 소주의 생산을 금지했다. 이에 소주 제조방식은 감자와 타피오카 등을 증류해 만든 고순도의 주정을 물에 섞고 첨가물로 맛을 내는 희석식으로 바뀌었다.

 

희석식 소주의 도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술이 정립된 1965년에 소주는 먼저 30도로 출시됐다. 그리고 8년 뒤인 1973년에 25도의 소주가 출시됐고, 이때부터 25년간 25도를 유지했다. 25도 소주는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존 주류 시장의 8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던 탁주를 누르고 ‘국민 술’로 통할 만큼 대중화됐다.

 

하이트진로 소주 패키지 변천사. (사진 = 하이트진로 홈페이지)

열악한 노동 환경이 소주를 ‘국민 술’ 만들어

 

소주의 인기 비결은 탁주 못지않은 저렴한 가격과, 별다른 특징 없는 향, 그리고 적당히 높은 도수였다. 간이 센 한식 요리에 잘 어울리고, 맥주나 탁주처럼 배부르지 않으며, 조금만 먹어도 취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여겨졌다.

 

소주는 느긋하게 맛과 향을 음미하며 즐기는 기호품이 아니다. 산업화가 가속화되던 영국에서 브랜디가 급격히 대중화됐던 것처럼, 소주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느라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에 허덕이던 한국 노동자들이 피로와 스트레스를 쉽고 빠르게 잊고 싶을 때 찾는 술로 각광을 받았다. 늦게 퇴근한 아버지가 아홉시 뉴스를 보며 늦은 저녁을 드실 때 반주를 하거나, 아니면 술 냄새를 풍기며 귀가해서 자녀들 얼굴에 턱수염을 부비는 것은 그 당시 도시 노동자 가정의 흔한 저녁 풍경이었다.

 

일터 동료들과의 회식에서 소주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회식에서는 삼겹살이나 탕 음식 등 평소 식사보다 간이 세고 무거운 요리를 먹는 경향이 있으니, 곁들이는 술로는 배가 부르지 않은 소주가 선호됐다. 특유의 빨리 취하는 특성 때문에 동료들 간에 소속감을 고취한다는 회식의 취지와 어울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먹고 죽자”는 구호에 따라 다 같이 건배를 하고, 상대에게 잔을 부딪치고 비우기를 강요하는 ‘짠’ 매너 등 열외는 없고 시키면 해야 하는 군대식 조직 문화를 닮은 회식 문화가 빚어진 것은 소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고 20~30대 젊은 여성이 음주 시장의 새로운 타깃으로 부상하면서, 독한 소주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기존 남성 중심의 술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졌다. 집단을 우선시하기보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직장 회식은 물론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등의 많은 조직에서 음주 문화가 바뀌게 됐다. 여성은 물론이고 해마다 새로 음주 가능 연령에 진입하는 신규 타깃 소비자들에게 기존의 독한 소주가 다가설 기회가 줄어든 것이다.

 

독한 소주에 대한 불호와 음주를 강요하는 문화에 대한 반성이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낮추는 배경으로 분석된다. (사진 = 영화 '오싹한 연애' 홍보용 스틸)

새로운 음주 인구, 달라진 음주 문화가 소주의 변화 촉구

 

따라서 소주는 필연적으로 변화해야 했다. 참나무통, 죽염 등을 이용해 부드럽고 고급스런 소주를 만들려는 다양한 공법이 시도됐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경쟁적으로 도수를 낮추기 시작했다.

 

저도수 소주는 거의 매번 성공을 거뒀다. 현재 각 소주 업체의 주력 제품이 참이슬 후레쉬, 부드러운 처음처럼, 좋은데이 등인 것이 그 증거다. 하이트진로의 ‘빨간 뚜껑’처럼 예전의 높은 도수를 유지한 제품은 저도수 소주에 대세의 자리를 물려주고 진열장 구석으로 물러났다. 신규 타깃 고객 뿐 아니라 “독하지 않은 게 소주냐”며 투덜댔던 주당들의 입맛도 변화시킨 것이다.

 

2010년대에도 소주는 꾸준히 도수를 낮췄다. ‘저도수=성공’이라는 전례가 충분하긴 했지만 소주 도수의 마지노선이라는 개념이 늘 거론되던 시장에서 저도수 소주 경쟁은 매번 논란을 일으켰다. 그때마다 다양한 문화적 트렌드가 원인으로 제기됐다.

 

현재 처음처럼의 광고 모델은 '국민 첫사랑' 수지, 참이슬의 광고 모델은 '국민 여동생' 아이유다. (사진 = 롯데주류)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주가 17도보다 낮아지는 이번 변화의 원인에 대해 웰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여전히 높고, 최근 욜로(YOLO) 트렌드가 대세가 되면서 한국인의 평균 음주량 자체가 줄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또, 쿡방·먹방의 유행이 만든 미식 문화 트렌드,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혼술 트렌드 등으로 선호하는 술의 종류나 음주 문화가 다양해졌고, 이런 점이 소주 제품군의 다양화를 촉발한다고 분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국산 술과 수입 술을 합친 국내 술 출고량은 399만 5000㎘로, 전년보다 1.9% 줄었다. 2년 전인 2014년과 대비하면 소주가 2.7%, 맥주가 3.7%, 막걸리가 7.2% 줄어드는 등 대부분의 주종이 고르게 줄어든 결과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주종의 소비가 감소해 380만㎘에 못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와중에 소주의 출고량 감소가 눈에 띈다. 소주는 2008년 100만㎘를 넘으며 정점을 찍었지만 2016년엔 93만 2000㎘로 감소했다.

 

혼술과 욜로 트렌드는 편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으며 건강에도 부담 없는 술에 대한 선호로 나타나고 있다. 업계는 2018년 주류 트렌드에서 주목할 점은 도수 뿐 아니라 용량과 칼로리를 모두 줄인 술이 잘 팔리는 점이라고 분석한다. 기존의 ‘독한 술’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소주 제조 과정. (사진 = 하이트진로 홈페이지)

원가 낮추고 소비량 늘이기 위한 꼼수?

 

한편, 일각에서는 소주의 저도수 경쟁이 소비자 입맛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한 것보다 수익성 개선을 위한 철저한 계산의 결과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같은 용량, 같은 출고가의 소주가 도수만 낮아진다는 것은 원료인 주정의 양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는 곧 비용 절감을 의미한다.

 

2015년 14도짜리 리큐르 소주 시장이 열렸을 때에도 소주 원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당시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희석식 소주의 도수를 1도 낮출 경우 병당 6원 정도의 주정 원료비를 아낄 수 있다. 이 매체는 연간 소주 판매량을 30억 병으로 잡을 경우 1도를 낮출 때마다 기업은 180억 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원료비 외의 물류비, 용기, 마케팅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임의로 추산한 금액이다.

 

소주의 도수가 낮아지면 평소만큼 취하기가 어려우니, 소비자는 한 병 마실 것을 두 병 마시게 되고, 소주 판매량이 늘어나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 확대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저도수 소주를 내놓는 업체는 음주 문화가 크게 변했다고 하지만, 그런 것에 비해 국내 시장에서의 소주 매출은 거의 변화가 없고, 일부 통계에서는 오히려 증가했다고 나타난다는 점은 이런 비판적 시각에 힘을 실어준다.

 

주류업계에서는 마침 올해 주정의 가격이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따라서 이번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의 제품 저도화는 곧 있을 생산비용 인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맥주 시장 점유율 1위의 오비맥주는 수입맥주의 급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주력 제품인 카스 광고 모델로 스코틀랜드 출신 스타 셰프 고든 램지(사진)를 기용하는 강수를 뒀다. (사진 = 오비맥주)

하이트진로-롯데주류의 각별한 사정

 

한편, 주류업계 관계자는 이번 소주 저도화의 배경으로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가 맥주 시장에서 동반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최근 국산 맥주업계는 수입 맥주와 수제맥주 인기의 급등으로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맥주 전체 매출은 전년대비 20% 성장했으나, 이는 수입 맥주의 매출이 37%나 뛰어오르고 수제맥주의 열풍에 힘입은 결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맥주의 출고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국산 맥주업계는 통상 1~2년 주기로 신제품을 출시해왔지만, 수입 맥주의 성장세에 위협을 느낀 지난해에는 업체마다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이는 등 활로를 모색했다. 맥주시장 60%를 점유하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오비맥주조차 호가든 체리, 호가든 레몬, 믹스테일 아이스 등 신제품을 3종이나 내놓는 등 지난 2년간 7종의 신제품을 내놓았을 정도다.

 

오비맥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카스 출시 후 23년 만에 병과 라벨 등을 대폭 교체하고, 스코틀랜드 출신의 인기 요리사 고든 램지를 기용한 광고를 연달아 내보내고 있다. “국산 맥주는 맛없다”는 프레임을 전환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1위 업체가 기울이는 노력이 이 정도니 다른 업체의 사정도 알만하다.

 

맥주시장에서 하이트진로(왼쪽)와 롯데주류는 고전하고 있다. (사진 = 해당 기업)

맥주시장 2위인 하이트주류는 점유율이 해마다 하락하며 4년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소주 매출은 1조 345억 원, 영업이익 1164억 원을 기록한 반면 맥주 매출은 7736억 원, 영업손실 289억 원을 기록한 것이다. 2013년 맥주시장에서 35.2%를 기록하던 점유율이 지난해 25.2%로 10%포인트나 하락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락세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한 다양한 시도가 대부분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주력 맥주인 하이트의 잦은 리뉴얼 때문에 브랜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랐으며, 국내 최초 몰트 맥주로 내놓은 ‘드라이 피니시 d’의 실패도 뼈아팠다.

 

결국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3월 5년여 만에 직원 300여 명과 임원 10여 명에 대한 희망퇴직을 진행했고, 9월에는 3개 맥주공장 중 한 곳의 매각을 추진하기도 했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발포주 ‘필라이트’를 출시해 시장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것만으론 맥주 부문에서의 반등이 간단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롯데주류의 사정도 비슷하다. 롯데주류는 지난해 6월 맥주 신제품 ‘피츠 수퍼클리어’를 야심차게 출시하고, 막대한 마케팅비를 투자했다. 하지만 피츠는 출시 초기에만 반짝 실적을 기록했고, 이후 부진에 빠졌다. 게다가 상표와 광고 표절 논란까지 뒤따르는 악재를 겪었다.

 

이처럼 커져가는 맥주 시장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은 두 회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나마 잘나가는 소주 부문에서 수익성을 개선해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 회사가 이번에 나란히 소주의 도수를 낮추기로 결정한 것도 그런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이런 세간의 의혹에 대해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참이슬 후레쉬의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에서 원가 절감의 목적으로 리뉴얼을 단행할 필요는 없다"면서, "도수는 낮아졌지만 그에 맞춰 원료들이 조정되었고, 이번에 정제 과정에 사용하는 대나무 숯을 국내 청정지역에서 자라는 대나무만을 사용하는것으로 변경한 만큼 원가의 변화는 크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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