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진출 30년을 맞이한 한국맥도날드가 심상치 않다. 최근 한국맥도날드는 시내 번화가의 대형 매장들을 연달아 폐점하고 메뉴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바꾸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맥도날드가 높은 임대료와 극심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바라보지만, 소비자들은 가장 큰 장점이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역행하는 변화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운영권 매각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한국맥도날드가 다시 매각에 나서기 위해 수익성 개선에만 올인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신촌점·관훈점 등 상징적 매장마저 문 닫아
올 봄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의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맥도날드 신촌점의 폐점이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오거리에 위치했던 맥도날드 신촌점이 지난 4월 11일 문을 닫았다. 1998년에 문을 열었으니, 약 20년가량 영업하고 사라진 것이다.
연세대, 서강대를 비롯한 신촌 일대 대학교 학생들은 물론 이 주변의 수많은 학원 수강생들에게 맥도날드 신촌점은 가성비가 좋은 레스토랑으로 사랑받아 왔다. 신촌에서 약속을 정할 때면 복잡하게 말하지 않고 ‘신.삼.맥’이라고만 하면 알아서 지하철 2호선 ‘신촌역 3번 출구 맥도날드’ 앞에서 만날 수 있는, 만남의 광장 역할도 했다. 동호회나 스터디 모임이 자주 열리는 사교의 장소였으며, 때로는 자습실의 역할도 했다.
이처럼 맥도날드 신촌점은 단순한 패스트푸드 햄버거 매장이 아닌, 이 지역 상권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로 여겨졌던 장소였다. 업계와 소비자들이 맥도날드 신촌점의 갑작스러운 폐점에 놀란 이유다.
신촌점 외에도 올해 문을 닫는 맥도날드 매장 중에는 광화문, 강남, 사당, 부산서면 등 대도시 핵심 상권의 대형 매장이 적지 않다. 심지어 인사동 센터마크 빌딩 1층의 관훈점도 4월 말에 영업을 종료한다. 관훈점은 근처 종로3가 맥도날드 매장이 2년 전 문을 닫은 뒤 종로 상권을 홀로 책임질 것으로 여겨졌을 뿐 아니라, 맥도날드 본사가 2012년까지 같은 건물에 있었기에 상징성이 커서 더욱 그 속사정이 궁금해진다.
이들 매장을 포함, 맥도날드에서 올해 폐점 계획이 결정된 매장은 전국적으로 20개다. 반면, 올해 신규 출점하는 매장은 단 1개에 불과하다. 2016년 맥도날드는 서울에 122개 매장을 운영했으나, 이달 기준 104개만 남았다. 지난해 8월에도 서울 메가박스 강남 건물 1층에 있던 맥도날드 강남점이 문을 닫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1988년 압구정 1호점을 내며 한국에 진출한 한국맥도날드는 1995년 100호점을 돌파하며 1020 세대의 열광 속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한때는 역세권을 응용한 '맥세권'이라는 말까지 유행했다. 주요 번화가 대로변의 건물 몇 개 층을 통째로 쓰면서 주변 상권을 이끌었다. 그러나 맥도날드의 빨간 간판이 있던 자리는 이제 화장품 전문점 올리브영이나 부츠(boots) 점포로 바뀌고 있다.
매출은 좋았지만 높아진 임대료 감당 안 돼
한국맥도날드 관계자는 “이 지점들의 임대료가 매출 규모에 비해 너무 높아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유동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핵심 상권 대로변에 건물 2~3개 층을 계속 임대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판단됐다”고 설명했다.
높은 임대료에 발목 잡힌 프랜차이즈는 맥도날드만은 아니다. 국내 치킨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밀린 KFC는 서울 지역 매장이 72개까지 줄어 맥도날드보다 더 심각한 규모로 감소했다. 국내 커피 전문점 최초로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던 스타벅스도 지난해 상반기 서울 강남점을 폐점한 바 있다. 스타벅스 강남점 역시 매출은 좋았지만 임대료 상승을 감당할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폐점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높아진 임대료나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롯데리아를 비롯해 여러 브랜드에서 주문과 결제를 고객이 직접 하는 무인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매장이 늘고 있다. 맥도날드 역시 많은 매장에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업계에서는 본질적인 해결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경쟁업체에 시장 양보? 매각설도 나와
하지만 업계에서는 수익률이 중요하다고 해도 핵심 상권을 경쟁업체에 순순히 내주고 철수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흔히 패스트푸드점이라고 하는 퀵서비스레스토랑(QSR: Quick Service Restaurant) 업계 1위인 롯데리아는 전국에 135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치킨 다리살로 만든 히트작 ‘싸이버거’를 앞세운 국산 프랜차이즈 맘스터치는 지난해 말 전체 매장 수 1100개를 넘어서며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이다. 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맥도날드가 빠져나간 지역의 매출을 나눠 갖게 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피자나 햄버거 등 QSR 프랜차이즈 소비자는 친숙한 브랜드를 반복적으로 찾는 경향이 있어 한 자리에서 인지도와 신뢰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무리 외식 트렌드가 바뀌었다지만 이처럼 여러 도심 매장을 한꺼번에 철수하는 건 임대료 부담만으론 설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매출 및 영업이익 하락을 겪고 있는 맥도날드가 수익률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바라봤다. 그 근거로 최근 한국맥도날드가 본사 직원 10%를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상징적인 매장을 줄폐점하면서까지 비용을 줄여야 할 정도라면 별도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 일각에서 맥도날드 매각설이 다시 올라올 정도의 변화라는 것이다.
"줄폐점은 우연…맥드라이브 위주로 바뀌는 것뿐"
이에 대해 한국맥도날드 관계자는 “그동안 맥도날드는 입점한 건물과의 재계약 협상 결과에 따라 매년 여러 매장을 폐점해 왔다”면서 “올해 재계약 대상이 된 매장들 중에 우연히 이름난 매장이 많았는데, 그동안 임대료 상승폭이 너무 커서 폐점 결정이 많았던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신촌역점이나 관훈점은 이번에 폐점하지만 3~4년 전 이들 점포 가까이 오픈한 연대점과 안국역점이 있으니 핵심 상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틀린 말”이라고 반박했다.
맥도날드 신촌점의 폐점은 20년 장기 계약이 이달로 만료된 결과이며, 다른 핵심 매장들도 맥도날드가 적극적으로 대형 매장 수를 늘이던 1990년대 후반에 장기 계약 방식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재계약 시점이 겹치게 됐다는 설명이다.
또한 맥도날드는 도심 상권의 매장 수와 규모를 줄이는 대신 임대료가 싼 교외에 드라이브스루(Drive Through) 방식으로 운영되는 ‘맥드라이브’ 매장을 늘여 왔다. 지난해 신규로 문을 연 18개 점포 중에도 16개가 맥드라이브 매장이었다. 그 결과 현재 맥드라이브 매장은 약 450개에 달하는 맥도날드 전체 매장 중 절반이 넘는 252개까지 늘어났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교외 맥드라이브 매장은 같은 면적의 도심 매장보다 30~40% 정도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어 수익성 개선 효과가 확실하다”며 “(교외 맥드라이브 매장은) 유동인구가 적고 접근성이 떨어지기는 해도 싼 임대료 덕분에 매장을 훨씬 쾌적하게 운영할 수 있어 소비자 만족도가 매우 높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