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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 뭐가 문제? ②] 승무원 워라밸은 없다? 잦은 일정 변경에 “개인삶 엉망”

"대한항공에 특히 문제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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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윤지원⁄ 2018.05.31 14:50:41

비행기 객실 승무원. 사진은 본문 내용과 무관함. (사진 = 에어부산)

'일과 생활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지만 항공 승무원들에게는 남의 얘기다. 월간 스케이 일정치 않고, 특히 대기일에 갑자기 배정되는 스케줄 탓에 인해 일정이 어긋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보장된 휴가도 마음껏 쓸 수 없는 승무원들은 근무 여건 개선을 요구하지만 업계와 당국은 소극적이기만 하다.

 

일정치 않은 스케줄, 가족 행사는 꿈도 못 꿔

 

워라밸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기업들도 달라졌다. 정부에서 시작해 기업들이 근무시간 단축, 탄력근무 제도, 자유롭고 유연한 휴가 제도 등을 도입하면서 개인의 삶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자연스레 여행 수요도 늘어났고, 이에 국내 항공사들은 새로운 노선에 신규 취항하고, 기존 노선을 증편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항공사 승무원들이 워라밸 트렌드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 탓에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리고, 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했던 항공 승무원들은 늘어나는 비행 스케줄에 비명을 지르고픈 심정을 직업용 미소 뒤로 애써 감추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 청원 글은 이런 워라밸 바람의 사각지대에 놓인 항공 승무원들의 현실을 대변해주고 있다.

 

자신을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이라고 밝힌 작성자는 '대한항공의 불법적인 인권 침해를 신고합니다'라는 글에서 개인 시간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불규칙적인 스케줄 통보 시스템의 불합리를 고발했다.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의 청원 글. (사진 = 웹페이지 캡처)

이 승무원에 따르면 객실 승무원은 매일 일정한 스케줄대로 근무하는 사무직과 달리 매달 월간 스케줄에 따라 근무한다. 회사는 매달 21일, 각 승무원의 다음 달 스케줄을 배정한다. 스케줄 표를 받은 승무원은 남은 9~10일 동안 다음 달의 개인사를 계획할 수 있지만, 스케줄 표 곳곳에 'RF'라는 대기 스케줄을 넣어놓기 때문에 계획 짜기가 절대로 쉽지 않다.

 

RF는 '스케줄이 생길 수 있으니 대기할 것'(Ready For Flight)을 지시하는 일정이다. 그날 하루만 일이 생기면 상관없지만, 대개 이후의 일정이 모두 영향을 받는다. 작성자는 "다음날 어디로 비행을 가게 될지는 그 전날 저녁에야 통보받는다"며 "병원 예약, 아이들 학교 모임, 가족 모임, 각종 시험 등의 계획했던 중요한 일들은 언제나 회사 일에 밀려 지킬 수 없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이는 이 승무원만의 주장이 아니다. 이보다 앞서 1월에 올라온 다른 글 중에는 한 객실 승무원의 남편이 동의하며 쓴 댓글이 있다. 이 댓글에는 "가족 행사 일정은 차치하고...(중략)... 개인적인 생활은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저녁 시간에 다음날 새벽 비행을 통보하는 경우도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글을 쓴 승무원은 스케줄의 불안정, 그에 따라 살인적으로 늘어나는 비행 시간과 노동 강도 등에 지쳐간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결 방안을 회사에 요청하면 "우선 일을 하고, 추후에 CDO(보상 휴일)를 신청하라"고 회답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회사 홈페이지에는 CDO를 신청하는 객실 승무원의 글이 가득 차 있고, 그 CDO도 바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력이 부족하지 않은 그 언젠가 회사에서 정해주면 받는 것"이라며 그조차도 제대로 보상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1월의 청원글을 작성한 승무원의 가족은 맞벌이 부부로 5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내가 "아직 어린아이를 집에 두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눈물 쏟으며 출근한다"고 호소했다.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들이 5월 18일 열린 조양호 일가 퇴진 촉구 3차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병가자 포함한 승무시간 평균으로 "초과 사례 없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승무원 인권이 주목받기 시작했던 지난 2015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부소장은 '항공사 승무원 감정노동,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글을 통해 항공 승무원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와 지나치게 긴 노동 시간 등을 지적했다.

 

이 글에 따르면 항공 승무원의 노동 조건과 관련한 논란의 주요 쟁점은 근무시간과 휴식시간 문제다. 현재 항공업계 승무원의 총 근무 시간은 원칙적으로 승무, 편승, 대기근무, 교육, 훈련, 지상근무 및 휴일을 포함해 구성되고 있다.

 

한 명의 승무원은 보통 한 달 평균 70(80)~100시간의 비행을 하게 되며, 한달 CDO는 최소 8일 정도가 원칙이고 평균 9.6일이 있어야 한다. 객실 승무원의 승무시간은 1개월 120시간, 분기 350시간, 연간 120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특히, 연간 최대 승무 시간은 과거 1000시간이었으나 2015년 무렵에는 최대 1200시간까지 가능하도록 명시되었다.

 

외국 항공사의 경우 월 승무 시간은 80시간 정도이며, 매월 본인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휴가를 3~5일 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사정은 어떨까? 국토부는 지난 4월 초 항공사 승무원 '비행 근무시간 초과'와 관련해 9개 국적 항공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특별점검 결과 지난해 11월부터 1월까지 객실 승무원의 월평균 승무시간이 82.7시간으로 법정 상한의 69%수준이었다고 발표했다. 국토부는 이 조사 결과를 근거로 언론에 보도된 승무시간 초과 사례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연착에 따른 일부 휴식시간 위반, 인력 여력이 없어 개인 연가 사용 제한의 사례 등이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공항 로비의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사진 = 아시아나항공)

이중 FSC(Full Service Carrier)로 장거리 국제노선이 많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만을 두고 평균을 내면 월간 승무시간은 85.5시간 정도다. 나머지 저가항공사들은 모두 78시간 이하였다. 그리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객실 승무원은 월 평균 9.6일의 휴식일을 갖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국토부 조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직장인 익명 SNS인 '블라인드'가 국토부 발표 직후 3일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항공업계 현직자 1002명 중 15.6%가 '법정 근무시간을 초과해 근무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토부 조사 결과에 대해 "병가자·교육자·보직자 등 실제 비행을 하지 않는 인원을 포함해서 낸 평균"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풀타임 근무하는 객실 승무원의 경우만 따지면 1인당 한 달에 90시간 이상 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성수기에 비행이 몰릴 때는 120시간 가까이 비행하는 일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승무원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은 현행법의 규제 기준 자체가 지나치게 느슨하고 업계가 이를 악용하고 있다는 점인데, 국토부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이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대한항공 승무원 스케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진 = 웹페이지 캡처)

RF 일정에는 집에서 쉬면서도 비행 대비해야

 

국민청원 게시글을 비롯해 다수의 승무원이 스케줄 표에서 적지 않은 불만을 제기한 것이 RF, 또는 스탠바이(Stand-by)라고 하는 근무 대기 일정의 변칙적인 운용이다. 항공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적 항공사 가운데 대한항공은 RF 일정을 스케줄 표에 배정하고 있으며, 아시아나항공은 '스탠바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승무원 스케줄에 반영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항공사는 승무원들이 개인 사정, 건강 문제 등으로 본인 스케줄을 소화하지 못할 경우, 또는 연착이나 정비 문제로 항공기 기종이 바뀌는 경우 대체 투입될 대기 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항공기 안전에 관한 규정에 정해진 인원이 탑승하지 않으면 운항 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에 대기 인력의 운용은 반드시 필요하다.

 

대기 일정은 LCC보다는 FSC에서 많이 운용한다. FSC는 취항 노선이나 운항 회수가 LCC보다 많고, 중장거리 노선과 단거리 노선, 다양한 크기의 항공기 기종이 섞여있어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LCC는 현재 대부분의 노선이 당일 왕복이 가능한 단거리이며, 승객 규모도 일정해 운항 스케줄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어 대기 일정을 따로 마련하는 경우가 드물다.

 

대한항공의 승무원은 월간 스케줄 표에 3회 가량의 RF 일정을 배정받는다. 대개 이틀 가량의 비행 스케줄 또는 현지 체류일이 포함된 중장거리 비행과 이후 주어지는 이틀의 휴식일(Day-Off) 다음에 RF가 배정된다. 아시아나항공의 스탠바이 일정은 월 1~2일 정도다.

 

대기 일정의 문제점을 제기한 승무원들은 대부분 대한항공의 승무원들이었다. 대한항공의 RF는 '자택 대기' 제도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나의 승무원은 스탠바이 일정에 본사로 출근해서 대기하며, 이는 근무일에 포함된다. 반면 대한항공의 RF는 스케줄이 발생하지 않으면 휴식일로 소모된다. 휴식을 취하는 것은 좋지만 RF일에는 스케줄이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휴식일이 될지 아닐지 모르는 RF 일정 때문에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연차를 쓰는 데 눈치를 보게 된다.

 

항공업계는 승무원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스케줄에 구멍이 생기는 경우에도 안전 운항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휴식일인 승무원들에게 대기 일정을 맡기고 있다. 사진은 임신·육아 등에 의한 장기 휴직을 마치고 복직 교육을 받은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 = 대한항공)

넉넉한 인력이면 RF 문제 줄어들 것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는 대기 일정의 특성상 당일 어떤 스케줄이 잡힐지 전날 저녁 7시 전에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한항공의 RF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만일의 사태보다는 승객 규모에 맞춰 승무원 수를 탄력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방안으로 RF를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한두 명의 승무원이 갑작스럽게 빠져도 부족하지 않은 수의 승무원을 해당 운항에 배정해 두었다면 RF가 그렇게 자주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승무원들은 RF에 중장거리 비행 스케줄이 잡히는 경우가 특히 곤란하다고 말했다. 현지 체류를 포함해 3일 이상의 스케줄에 투입되는 경우 애초 잡혀있던 이후의 스케줄이 줄줄이 바뀌게 된다. 예정된 휴무일에 잡아둔 병원 예약이나 개인적인 약속을 모두 취소해야 되는 상황이 생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다른 승무원들의 RF가 소모되는 계기가 된다.

 

아시아나항공의 스탠바이도 갑자기 장거리 일정이 생기면 이후 스케줄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그런 일이 대한항공처럼 자주 일어나지 않아 승무원 불만은 비교적 적은 편인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국내 항공사 중 가장 여유 있게 인력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스탠바이가 승무원들의 스케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잦지 않다"며 "승무원들로부터 스탠바이 제도에 대한 개선 요구 의견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LCC에서 대기 인력을 운영하는 방식 역시 휴식일을 활용한 자택 대기다. 다만 대한항공보다는 스케줄 투입 상황이 적게 발생하므로 승무원들은 예정대로 휴식을 취하고 본래의 스케줄을 지속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국토부는 최근 승무원의 피로를 경감시키기 위한 근무시간 개선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겠다며 모기지(Home Base)에서의 출퇴근 시간(최소 1시간)을 휴식 시간에서 제외하고, 비행 종류 후 잔여 근무 시간을 최소 20분으로 반영하는 등의 제도를 올 상반기 내에 항공사 운항 규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국토부의 대책이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애초 지난해에 국토부가 조종사협회와 국내 항공사에 제안한 대책의 초안에서 승무 시간 1시간 단축, 야간·새벽 비행시 비행 시간 단축, 연속 28일 승무 시간 20시간 단축 등의 방안이 빠져, "국토부가 업계의 반발에 밀려 후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이처럼 변경이 잦은 스케줄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기회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관계자는 항공업계의 스케줄 문제와 관련해 "현재의 항공법 및 운항기술기준에 따르도록 각 항공사에 권고하고 위반하는 경우 행정처분을 내리고 있으나, 세부적인 스케줄 작성 기준 등은 각 항공사가 사정에 맞춰 자율적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 지난 기사 보기

 

① ‘항공기 1대 늘면 +100명’이 국제기준…한국은 ‘6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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