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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는 기업문화 ① HDC현대산업개발] 퍼실리테이터 키워 ‘상사 갑질 없는 회의’

패스트&소프트 기업으로 대변혁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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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7호 윤지원⁄ 2018.07.20 08:35:24

HDC현대산업개발 로고. (사진 = HDC현대산업개발)

HDC현대산업개발그룹이 사내 퍼실리테이터 양성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초 정몽규 회장이 미래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구조적 변혁 추진을 부르짖으며 시작한 BT(Big Transformation: 대 변혁)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조직 문화 혁신을 추진하는 다수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에서 성공한 여러 제도들을 빌어 적용하지만 기업 문화로 정착된 사례가 많지 않은 가운데, HDC현대산업개발의 사내 퍼실리테이터 양성은 팀 회의 문화부터 개선하고 이를 지속시킬 수 있는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19일 HDC현대산업개발그룹은 수평적 토론과 자발적인 회의 문화 구현을 위해 HDC퍼실리테이터를 선발·양성하고 있으며, 이달부터 다음 달까지 포니정 홀에서 '조직문화 개선 워크숍'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란 회의나 교육 등의 진행이 원활하게 촉진되도록 돕는 전문가를 말한다. 회의에서 퍼실리테이터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들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와 깊은 논의를 이끌어 원활하고 효과적인 합의 형성이 이루어지도록 진행하는 역할을 한다.

 

HDC그룹 관계자는 "기존의 수직적인 의사소통 체계를 수평적으로 개선하고, 모든 임직원이 문제 해결과 의사결정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참여형 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는 목적에 따라 지난해부터 HDC 퍼실리테이터 양성에 힘쓰고 있다"며 "지난해와 올해 팀마다 선발된 HDC 퍼실리테이터들은 일정 시간의 전문 퍼실리테이터 교육을 받고 팀에 돌아가 팀 회의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HDC그룹은 이들이 지속적인 교육을 거쳐 퍼실리테이터 협회의 공인 자격을 취득한 후 사내 전문 강사로 나설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각종 회의, 워크숍, 교육 등 그룹의 다양한 집단 지성 도출 프로세스 및 수평적 조직 문화 개선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길 예정이다.

 

HDC 퍼실리테이터가 조직문화 개선 워크숍에 참석해 교육을 받고있다. (사진 = HDC현대산업개발)

퍼실리테이터의 효과

 

퍼실리테이션 전문가들에 따르면 조직의 리더, 즉 상급자가 진행하는 기존의 회의에서는 강한 의지를 가졌거나 남들보다 큰 발언권을 가진 소수(주로 상급자)가 의견을 강력하게 내면, 나머지 사람은 다른 의견이 있어도 말할 의지를 잃거나 자신의 의견을 뒤로 물리게 된다.

 

이런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은 구성원들의 이행 의지가 낮으므로 업무 추진이 난항을 겪기 십상이고, 업무 효율 저하로 인해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 회의 구성원이 그 결과에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것도 당연지사다.

 

따라서 최근 많은 기업들은 이런 일방적인 회의의 불합리와 비효율을 깨닫고 다양한 개선 방안을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퍼실리테이터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해법이다.

 

퍼실리테이터는 기존 회의의 약점인 참여자 간 상하관계를 벗어나서 모두가 동등한 발언권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조율한다. 퍼실리테이터의 중립적인 진행에 따라 회의는 수직이 아닌 수평적 소통으로 변하고, 위로부터의 일방적 지시를 밑에서 이의 없이 수용하고 이행하는 소극적인 결정 과정이 아니라 참여자 전원의 합의를 거친 결정 사항을 모두가 이해한 가운데 이행하는 적극적인 결정과정이 된다. 합의 사항은 상사의 지시 사항보다 더 강한 구속력을 갖게 되고, 구성원 모두가 그 사항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된다.

 

퍼실리테이터가 진행하는 회의에서 참여자들은 자신의 의견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상사와 의견이 달라도 불이익이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되고,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 방안을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기존의 회의보다 새롭고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으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많이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또, 적극적인 의사 소통을 통해 업무 효율을 저하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미리 걸러지게 되므로 예기치 못한 외부 요인 변화와 같은 리스크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HDC 퍼실리테이터가 조직문화 개선 워크숍에 참석해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 HDC현대산업개발)

"내부 퍼실리테이터 키워라"의 장단점

 

전문가들이 말하는 퍼실리테이터의 필수 덕목은 다양하다. 우선 회의 프로세스에 관한 전문 지식이 요구된다. 퍼실리테이터는 아이스 브레이킹, 이슈 도출, 발산과 수렴, 성찰과 마무리 등 회의 각 단계와 상황별로 진행 방법을 적절히 선택해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을 통해 프로세스를 이끌어 가야 하므로 명료한 의미 전달 능력, 경청하고 핵심을 정리하는 능력, 적절한 질문을 던져 필요한 의견을 유도하는 능력 등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필요하며, 다양한 구성원의 전문적인 의견들을 이해하고 이를 큰 구도에서 파악할 수 있는 폭넓은 식견도 요구된다.

 

해당 조직의 성격에 대한 이해와 조직 구성원에 대한 신뢰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특정 참여자의 돌출 행동을 통제하고 소극적인 참여자를 적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관계 기술도 중요하다. 그리고 참여자들의 이해관계나 상하관계에 따라 치우치지 않는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존의 위계 질서를 탈피해 수평적 소통 문화를 만들려는 기업들이 특히 중요한 덕목으로 보는 것이 바로 퍼실리테이터의 중립성이다. 이를 위해 많은 기업은 중립의 위치가 보장된 외부에서 전문 퍼실리테이터를 고용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경우 시간당 50만 원을 지불하고 외부 전문 퍼실리테이터를 고용하기도 한다고 알려졌다.

 

외부에서 고용하는 전문 퍼실리테이터는 중립성이 보장될 뿐 아니라 풍부한 경험과 전문적 기술을 갖추고 있다. 조직 외부의 시선에서 새로운 관점과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조직의 고유한 특성이나 전문적인 회의 주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참여자들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며, 높은 비용을 매번 지불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다.

 

HDC그룹은 퍼실리테이터를 임직원 중에서 선발해 내부에서 양성한다. 내부 퍼실리테이터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육성하고, 충분한 경험이 쌓일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조직 내의 이해관계에서 중립을 유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고, 또한 조직 내부의 관점에 갇혀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단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조직과 구성원 개개인의 특성과 문화, 전문적인 주제 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으며, 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소통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 또 한번 육성하고 나면 기업에서 필요한 크고 작은 모든 퍼실리테이션을 모두 수행할 수 있어 추가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HDC그룹은 지난해 처음으로 HDC 퍼실리테이터 양성에 나섰고, 올해 4월에도 추가로 선발했다. 이들은 현재 자신들의 소속 팀 안팎의 각종 회의에서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HDC 퍼실리테이터 제도는 아직 도입 초기 단계지만, HDC그룹이 미래를 위해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Big Transformation, 즉 '대 변혁'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지난 6월 5일 용산 CGV에서 열린 BT프로젝트 워크숍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HDC현대산업개발)

HDC "미래 위한 변화 가속 중"

 

지난해 초 정몽규 회장은 그룹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꾀하고 미래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구조적 변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Fast & Smart 기업’으로 변화하기 위한 BT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했다. 정 회장은 이에 따라 BT 프로젝트 전담 팀을 구성해 개발, 시공, 운영 및 제조 등 그룹 포트폴리오 목표를 구체화했다.

 

올해 초 HDC그룹은 이러한 포트폴리오 전략에 맞춰 3본부-3실-36팀 체계로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직원 스스로 경영 마인드를 가지고 자율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에자일(agile) 구조를 적용해 자기완결형 조직 체계를 강화했다. 특히 위계질서를 해소하고 민첩성과 자율성을 확보해 수평적 조직 구조로 탈바꿈하는 데 조직 개편의 중점을 두었다.

 

올해 HDC그룹은 BT 프로젝트가 고민한 방향성에 대한 실천과 실행에 방점을 찍고 있다. 올해 초에는 정몽규 회장과 임직원들이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의 대형 개발프로젝트를 둘러보며 개발 운영 사업 역량 강화를 고심했다.

 

2월에는 부동산 정보기업인 부동산114를 인수, 전후방 밸류 체인을 강화했다. HDC그룹은 부동산114를 통해 그룹이 보유한 다양한 사업 역량을 연결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특히 종합 디벨로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빅데이터 분야에 대한 투자 및 전문 역량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부동산114 인수를 통해 HDC그룹은 종합 부동산·인프라 그룹이라는 중장기 전략 목표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딛은 셈이다.

 

장기적 관점에서의 미래 혁신을 위해 디지털 혁신, 비즈니스 모델 및 생산체계 혁신, 브랜드 및 디자인 연구 등 전사 차원의 혁신 과제를 수행할 '미래혁신실'을 신설했다. HDC그룹 관계자는 미래혁신실 신설에 대해 "기존 건설 사업에 대한 핵심 역량과 성공 방식을 넘어 새로운 미래가치 창출을 위해 생산성을 재정의하고 경쟁력을 차별화해 나가기 위한 전략"이라고 밝혔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 6월 5일 용산역 CGV에서 본사 전 임직원이 참석한 BT 프로젝트 6차 워크숍에서 "과거의 성공 방식과 경영 프레임을 넘어 새로운 미래 가치를 창출하려면 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기업 경쟁력과 조직 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임직원 모두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BT 프로젝트 추진과 함께 HDC그룹은 지난 5월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효율적인 그룹 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하고 그룹 중장기 성장 전략과 포트폴리오 목표를 효과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토대 마련을 위해 지주회사인 HDC와 사업회사인 HDC 현대산업개발로 인적분할을 단행했다.

 

HDC그룹 정몽규 회장과 HDC현대산업개발 김재식 고문, HDC현대산업개발 김대철 사장 외 계열사 대표와 관계자들이 지난 6월 BT프로젝트 6차 워크숍을 열었다. (앞줄 왼쪽 다섯 번째부터 HDC현대산업개발 김재식 고문, HDC그룹 정몽규 회장, HDC현대산업개발 김대철 사장, 그 외 계열사 대표) (사진 = HDC현대산업개발)

소통 문화 개선이 그룹 체질 개선 이끌 것

 

이처럼 HDC그룹은 BT프로젝트와 지주회사 전환을 양대 축으로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구조적 변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그룹 차원의 목표를 임직원 모두가 제 일처럼 공감하고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활하고 자발적인 소통문화 구축이 선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HDC그룹은 지난해부터 수시로 기업문화 및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워크숍을 여러 차례 개최하고 있으며, 현재도 지난달부터 다음달까지 '조직문화 개선 워크숍'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HDC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정 회장은 거의 모든 사내 워크숍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며 임직원을 격려하고, 소통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초 열린 조직문화 혁신 워크숍에서 "경청, 솔선수범, 피드백 등은 사실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이지만 이러한 기본을 실천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라면서 “각자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회사에서 소통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지만 수평적 토론 문화를 만들어 소통이 잘 이뤄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HDC 퍼실리테이터 양성 프로그램은 정 회장이 강조한 수평적 토론 문화 정착과 조직 개편에 따른 자율적 의사결정 구조 정착을 위한 가장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실천 방안으로 보인다. 이 제도가 과연 제 기능을 다 발휘해 그룹이 기대하는 새로운 조직 문화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게 될 지 앞날이 주목된다.

 

HDC그룹의 한 임직원은 "지난해와 올해 선발된 HDC 퍼실리테이터들은 아직 전문 퍼실리테이터만큼 숙련되지 않았지만 팀 회의를 거듭할수록 회의 문화와 사내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체감할 수 있다"며 "도입 초기인데도 이런 분위기라면, 결국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조직 문화를 바꾸고 그룹 목표를 성취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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