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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개발자 사망 ‘파문’… “구태 개발 풍토가 비극 초래?"

산업은행 프로젝트 참여했다가 변… '빅뱅 방식' 개발 문제점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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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정의식⁄ 2018.12.14 12:10:35

KDB산업은행 여의도 본사 사옥. 사진 = 연합뉴스

KDB산업은행의 차세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IT 개발자가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업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12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통해 이 사건이 알려진 후 불과 이틀 만에 서명자가 1만 1000명을 돌파했을 정도다. 청원인은 자신이 경험한 은행 IT 프로젝트들이 대부분 ‘빅뱅 방식’으로 진행돼 개발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업무량과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프로젝트에서 원청사인 산업은행이 하청업체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반프리’ 방식을 채택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두 아이의 아빠, 화장실에서 쓰러지다

“2018년 12월 10일 6시 30분 산업은행 별관 2층 화장실에서 한 사람이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망 추정 시간은 오후 1시 30분. 누구도 그 사람이 함께 점심을 먹고 돌아와 화장실에서 생명을 잃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반차를 썼겠거니 생각했고 혹은 오래 자리를 비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했다.”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어느 IT 개발자의 죽음’이라는 청원의 서두다. 청원인은 동료 개발자의 갑작스런 사망 사고 경위를 담담하게 서술했다.

그에 따르면, 사망한 개발자는 ‘두 아이의 아빠였던 나이 마흔의 신 모 차장’이다. 산업은행 차세대 정보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맡은 주 수행사 SK C&C의 외주 개발사 중 하나인 대원씨앤씨 직원이다. 아직 경찰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단계라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사망 원인은 ‘지병’ 혹은 ‘과로사’로 추정된다. 

산업은행 IT 개발자 사망 사건을 고발한 청와대 청원 게시물. 사진 = 청와대

하지만 청원인과 수많은 서명인들은 고인의 사망 원인이 ‘과도한 프로젝트 일정’과 이로 인해 강요된 ‘초과 노동’ 때문이라고 간주하는 분위기다.

빅뱅 방식이 개발자 쥐어짜… ‘반프리’ 꼼수

청와대 청원인은 금융권의 과도한 프로젝트 일정을 사망 원인으로 주장했다.

그는 “나도 몇 번의 은행 프로젝트를 경험했고, 그 중에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사람과 죽음에 이른 사람들을 보고 들었다”며 “모든 프로젝트는 기한 내에 끝내야 하는 빅뱅 방식이었다. 쫓기고 쫓기는 중압감은 상상을 넘어선다. 수행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개발자들을 쥐어짠다. 수행사의 수익은 개발자들을 쥐어짠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프로젝트에 투입된 IT 개발자들은 온갖 스트레스와 공황장애, 뇌졸증, 심근경색 등의 위협에 노출된다는 것.

청원인이 문제점으로 지목한 ‘빅뱅(Bigbang) 방식’이란 모든 시스템을 새로 개발해 한 번에 동시 오픈하는 개발 방식을 말한다. 그간 국내 금융권의 차세대 시스템 개발이 대부분 채택한 방식이지만, 개발자는 물론 은행 조직에 미치는 피로도가 지나치게 높고,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도 커서 해외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특히 이번 산업은행 차세대 정보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의 경우 인터넷뱅킹·모바일뱅킹·외환·금융공동망 등 무려 156개에 달하는 업무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는데, 이 중 117개 업무가 신규 개발 업무여서 프로젝트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을 받았다.

 

산업은행 차세대 정보시스템 구성도. 사진 = 산업은행 

이번 프로젝트에 적용된 ‘이상한 고용 방식’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청원인에 따르면, 일반적인 개발 프로젝트는 IT 개발자들을 개인사업자 혹은 프리랜서 방식으로 포괄임금계약을 맺고 투입시키지만, 이번 프로젝트에는 하청업체의 정규직인 개발자만 투입됐다. 이에 따라 모든 하청업체들은 프리랜서 개발자들을 최저임금으로 정규직 고용한 후 부족한 임금은 개인사업자 등록을 통해 매출을 발생시켜 지급했다는 것.

속칭 ‘반프리’라 불리는 이 고용 방식에 따라 프리랜서들은 하청업체의 정규직이 됐고, 이 조치를 통해 원청업체인 산업은행이 이들의 처우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났다는 것. 하지만 그는 “정규직으로 고용을 한 하청업체들은 인력소개소일 뿐, 아무 기능도 하지 않는다”며 “피만 빨아 없애는 십이지장충과 같다”고 고발했다.

끊이지 않는 ‘갑질’ 논란… 근본적 해결책 필요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의 차세대 프로젝트 개발과 관련해 논란이 일어난 것이 이번뿐만이 아니라며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 1월에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 산업은행 외주 개발자가 ‘차별 논란’을 지적한 바 있다. 이 청원인은 “산업은행 정규 직원들과 달리 외주 직원들은 비상계단을 이용할 수 없다. 보안상 이유 때문이라는데, 만약 불이 나면 외주 직원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거나 창문으로 뛰어내릴 수 밖에 없다. 또 외주 직원들은 정규 근무시간보다 출근은 30분 일찍, 퇴근은 30분 늦게 하는 암묵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해당 사안은 “논란이 불거진 후 바로 해결된 상태”다. 이번 개발자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 경찰이 수사 중이어서 정확한 사인이 나오지 않아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저희가 할 수 있는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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