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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별세·박삼구 사임…항공업계 빅2 퇴장 불구 ‘오너 경영’ 변함 없을까?

한진그룹의 새 총수 지정, 3세로의 경영 승계 앞두고 관심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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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4호 윤지원⁄ 2019.04.09 10:40:16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더이상 항공업계 수장이 아니다. (사진 = 연합뉴스)

국내 항공업계 부동의 양대 산맥이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지휘부에 큰 변화가 생겼다. 먼저 대한항공의 조양호 회장이 지난달 정기 주총에서 사내이사직을 박탈당한 데 이어 8일 새벽(한국시간) 숙환으로 별세했다. 아시아나항공의 박삼구 회장은 만성화 된 그룹 유동성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회장직을 비롯한 계열사 임원직을 모두 내려놨다. 20년간 국내 항공업계를 이끌어온 양대 거물의 동반 퇴장은 업계 뿐 아니라 재계 전체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하지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오너 경영인의 영향력은 약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갑작스런 별세… 주총 패배 ‘쇼크’ 때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현지에서 별세했다. 그는 얼마 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주 LA에 있는 가족 소유의 별장에 머물고 있었으며, 폐질환으로 이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고(故) 조양호 회장의 거취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지난달 27일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다. 그는 이날 대한항공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날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는 전체 의결권 중 73.84%가 참석했다. 지난달 17일 임기가 만료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은 찬성 64.2%, 반대 35.9%로 찬성이 3분의 2에 못 미쳐 부결됐다.

그 결과 조 회장은 1992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이후로 27년 만에 대한항공 임원직을 잃어버렸다.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KCGI, 일명 강성부펀드와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한 결과다.

조 회장은 총 270억 원 규모의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또한 2010~2012년 인하대학교 병원 인근에 사무장 약국을 차명 운영해 1522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도 기소됐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4년 큰 딸 조현아의 ‘땅콩 회항’ 사건부터 지난해 둘째 딸 조현민의 물컵 갑질, 아내 이명희의 상습적 갑질, 명품 밀수 등등 일가까지 수많은 논란을 일으켜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추락시켜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갑질과 횡령, 배임 등 부도덕한 경영으로 논란이 된 총수는 조 회장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주주들이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총수를 퇴출시킨 사례는 찾기 어렵다.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그룹 오너의 지배력이 지나치게 거대하기 때문이다.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주주권 행사 시민행동' 기자회견에 참여한 박창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오너의 그룹 지배력은 여전

이번 대한항공의 주주총회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공격적으로 나서고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를 천명하고 앞장서면서 주주의 권한을 입증했다. 재벌 갑질, 오너리스크 문제를 일으킨 총수에게서 주주의 힘으로 임원직을 박탈한 첫 사례였다.

사실상 이번 조 회장의 대한항공 임원직 상실은 특수한 경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룹 오너와 특수 관계자 지분이 타 그룹에 비하면 경영권 방어에 취약할 정도로 적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가능했다.

실제로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주주총회에서는 국민연금과 KCGI 측이 조 회장 측근인 석태수 대표이사의 연임을 막아내지 못했다. 조 회장 측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역시 30%에 미치지 못하지만 조 회장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는 충분했던 것이다.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대한 지배력은 곧 대한항공에 대한 지배력이다. 때문에 주주총회 이후에 조 회장 일가의 영향력이 축소되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 일반적이었다.
 

지난해 7월 4일 열린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관련 기자회견에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자진 사퇴’ 박삼구, 지배력은 그대로

대한항공 주총 다음날인 3월 28일에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회장직과 모든 계열사 이사직을 내려놓는다고 발표했다. 20년 가까이 양대 국적 항공사를 이끌어 온 라이벌 조 회장과 박 회장이 하루 차이로 퇴장을 이어간 셈이다.

박 회장의 퇴진은 자의적인 결정이라는 점에서 조 회장 사례와는 다르다. 하지만 스스로 화를 자처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보인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주요 외신들도 두 항공사 수장의 동시 퇴진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한국 항공업계의 부끄러운 패배”라고 지적했다.

박 회장 퇴진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회계법인의 한정의견 감사보고서 제출이 발단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은 올해에만 1조 7천억 원의 부채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보유한 현금이 턱없이 부족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됐고, 이에 감사보고서 한정 의견에서 촉발된 회계 문제가 그룹 전체의 위기로 번지게 됐다. 이에 박 회장이 책임을 지고 기업의 신용도 회복을 위해 자진 사퇴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 회장의 퇴진 이후로 생길 경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원태 부회장이 이끄는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하고 외부 인사를 회장으로 선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 박 회장의 사퇴를 두고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회장이 여러 임원직을 내려놓은 것으로 현 사태에 대한 책임을 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룹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고속을 권력의 정점에 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박 회장과 총수 일가는 금호고속 지분의 57%를 소유하고 있다. 금호고속은 금호산업 지분 45.3%를,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7%를 각각 갖고 있는 구조다. 따라서 그룹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박 회장은 임원 자격 없이도 막후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여러 결정에 관여할 수 있다.

이러한 지배구조가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 또한 이러한 그룹 지배구조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박 회장에게 지분 사재 출현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삼구 회장이 지난해 9월 9일 '한일 축제 한마당'에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10년 전의 데자뷰…이번에도 복귀할까?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지금은 물러난 것처럼 보이지만 머지않아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비슷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금호그룹은 박 회장의 주도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하느라 10조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자금난의 늪에 빠져들게 됐다. 2010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에 돌입했고,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을 맺어야 했다. 그리고 박 회장은 대주주 지위를 상실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그해 11월 금호 명예회장으로 슬그머니 복귀했다. 그리고 박 회장은 2014년 겨우 워크아웃을 졸업한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등을 두고 또다시 막무가내 식 경영 행보를 보였다. 자금난을 벗어나기 위한 내실 다지기가 아니라 그룹 재건을 위해 또다시 무리한 투자로 금호산업 인수에 올인 했던 것이다.

그 때 박 회장의 복귀 대신 합리적인 전문 경영인이 그룹을 경영했다면, 중요한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재정 상황이 지금처럼 더 악화되는 결과는 오지 않았을 수 있다.

따라서 이번에도 박 회장의 사임보다 이후의 행보가 더 주목받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3일 “(아시아나항공이) 어려운 배경은 지배구조에 있다고 본다”며 “박 회장이 한 번 퇴진했다가 경영 일선에 복귀한 적이 있는데 또 반복되면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왼쪽)와 박세창 아시아나IDT 대표이사. (사진 = 연합뉴스, 금호아시아나그룹)


양강 구도, 아들 세대로 이어질까?

한편, 두 그룹의 위기 상황에도 오너 경영이라는 구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또 있다. 조 회장, 박 회장의 퇴장 이전에 두 그룹의 오너 3세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이미 궤도에 올라갔기 때문이다.

먼저 조 회장의 아들 조원태 사장은 이미 대한항공의 대표이사와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그는 조 회장 별세에 따라 다음 회장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지고 있다.

다만 조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상속세 및 지분 이양 등의 숙제를 풀어갈 시간이 부족하고, 상속세율 단순적용(50%) 시 28.95%였던 한진칼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20.03%로 줄어들게 되어 KCGI와 국민연금의 합산지분 20.81%보다 낮아진다는 점이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 회장의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박 사장은 지난해 9월 그룹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인 아시아나IDT의 수장을 맡게 됐다. 당시 이 인사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해 7월 발생한 기내식 대란에 대한 책임을 박 회장이 아닌 김수천 전 아시아나항공 사장이 지고, 그에 따른 일련의 경영진 인사 과정에서 아들의 실리를 챙기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금호고속의 지분 21.02%를 보유해 최대주주인 박 회장 뒤를 이은 2대 주주로, 지분 구조만 보면 언제든 3세 경영 체제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2005년 금호타이어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한 이래 지금까지 보여준 경영 성과가 미미해 위기의 그룹을 재건할 중책을 맡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앞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한진그룹의 총수로 누구를 지정할지, 활동반경이 더 커진 국민연금이 중요 사안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 등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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