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도기천 기자) 올해 ‘3대 빅딜’ 중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이, 롯데카드는 하나금융이 각각 인수를 진행 중인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은 아직 안개속이다. 몇몇 후보군이 언론의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손사레를 치고 있다. 인수가격을 낮추려는 눈치보기일까, 매물 자체가 매력이 없는 걸까. CNB가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재계에서 ‘빅딜’로 꼽히는 롯데카드 인수전은 하나금융그룹과 사모펀드 2곳이 최근 본입찰에 참여한 가운데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탄탄한 금융인프라를 갖춘 하나금융을 유력한 인수후보로 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지난 3월 본계약을 체결해 실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매각설이 돌았던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1조6천억원의 파격적인 금융지원을 약속했음에도 아직 뚜렷한 인수 후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관심을 보이는 곳이 전무한 가운데 각종 설만 난무하고 있다. 증권가와 언론의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곳은 대략 5~6곳이다.
우선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형제지간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의 2대 주주(11.98%)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찬구 회장은 최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검토하지도, 계획하고 있지도 않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는 두 사람 간의 불편한 관계가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두 사람은 형제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지만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견해 차이를 보이며 틀어졌다.
이후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의 계열분리를 시도하면서 지분 경쟁이 벌어졌고 2009년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둘 사이는 더 악화됐다. 결국 2011년 박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계열에서 제외해 줄 것을 신청하면서 형제는 완전히 등을 돌렸고, 이후 수년에 걸쳐 서로 간에 소송과 고발, 고소가 이어졌다.
한화그룹은 롯데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되면서 매물로 내놓은 롯데카드의 인수전 참여를 포기했다는 점과 맞물려 아시아나 인수 후보군에 거론되고 있다. 롯데카드 유력 인수 후보로 꼽혀왔던 한화생명은 지난달 마감된 롯데카드 본입찰에 불참했다.
이를 두고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사용될 실탄을 비축하기 위해 롯데카드를 포기한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017년 저비용항공(LCC) 에어로케이에 160억원을 투자하는 등 항공업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점이 배경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한화그룹은 인수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항공엔진 제조(한화에어로스페이스), 물류 사업(한익스프레스) 등이 항공업과 연관성이 있지만 사업특성과 규모를 감안하면 국적항공사를 인수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말이 나온다.
한화·SK·신세계 “번지수 틀렸다”
SK그룹은 지난해 7월 최규남 전 제주항공 대표를 그룹 최고의결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총괄부사장으로 영입한 이후, 아시아나 인수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현금성 자산이 11조원(작년말 기준)이 넘는데다 SK이노베이션이 항공유를 공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SK하이닉스)와 차세대 통신(SK텔레콤)에 그룹의 사활을 걸고 있는 터라 연관성이 거의 없는 항공업에 뛰어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최태원 SK 회장의 복심으로 통하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최근 한 언론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해) 검토한 바 없으며, 우리는 기술적인 기업이 더 맞다”고 밝혔다.
신세계그룹은 면세점과의 시너지 측면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항공사를 운영할 경우 항공과 면세점을 연계한 마케팅을 펼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룹 내 상장사 7곳의 현금성 자산을 모두 합쳐도 약 7700억원에 불과해 최대 2조원으로 예상되는 매각가격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이커머스 사업에 2조원 넘는 투자를 예고한 상태라 인수전 참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CJ그룹은 CJ대한통운의 물류사업이 항공업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회자되고 있다. CJ헬로비전을 LG유플러스에 매각해 마련한 자금이 8000억원인데다 현금성 자산이 1조원이 넘어 실탄은 넉넉한 편이다. CJ측은 인수설을 부인하고 있다.
부채·유가·환율 ‘트리플 악재’
이밖에 애경그룹은 제주항공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롯데그룹과 호텔신라는 현재 영위하고 있는 면세점과 호텔사업이 항공업과 연계성이 있다는 점에서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선을 긋고 있다.
이처럼 모든 기업들이 약속이나 한듯 ‘아시아나’에 대해 입을 다문 이유는 뭘까. ‘함구령’이라도 내려진걸까.
이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의 불확실한 재무구조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월 작년 당기순손실이 104억원이라고 발표했지만, 3월 22일 정정공시를 통해 드러난 실제 당기순손실은 1050억원이었다. 이 과정에서 삼일회계법인은 ‘감사 범위 제한으로 인한 한정의견’이라는 감사의견을 내놨다. ‘한정의견’은 회계장부 부실 등으로 인해 적정의견을 낼 증거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회계법인 측은 충당 부채 및 에어부산의 연결재무 등에 관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최대 1000%를 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면서 매각이 불투명해지자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최근 1조6천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약속했다. 5천억원 상당의 영구채 매입을 통한 현금지원과 함께 ‘마이너스통장’ 개념인 신용한도대출을 8천억원까지 늘려주고, 항공기 리스 등에 필요한 신용보증 한도(스탠바이 L/C)도 3천억원까지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채권단이 5천억원 상당의 영구채(후순위채보다 변제순위가 후순위)를 매입해주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700%대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영구채 또한 채권이라는 점에서 재무구조가 나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 더구나 아시아나항공은 올해만 9578억원 규모의 차입금을 상환해야 한다. 이같은 불안정한 재무 상태가 투자자들을 망설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국제유가 상승과 원화 약세 등 글로벌 사업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지난달 30일 기준 원달러 환율(미국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1163원으로 지난해 4월 2일 1057원에 비해 1년여 만에 100원 넘게 올랐다. 항공기 도입과 원유 수입은 달러화로 결제하기 때문에 달러화 강세, 원화 약세 흐름은 항공사에 치명적이다. 증권가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의 최근 1년간 환차손(환율변동에 따른 손해)이 2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잘못하면 물릴라 ‘눈치작전’
국제유가 상승으로 항공유 가격이 오른 점도 악재다. 미국의 이란 경제제재로 국제유가가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65달러 안팎까지 상승했다. 배럴당 45달러 수준에서 움직였던 지난해 말에 비하면 45% 이상 폭등한 가격이다.
이밖에 대한항공과 달리 항공기 대부분을 리스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서 수익률이 낮다는 점도 투자자들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같은 악재들로 인해 아시아나항공의 실적이 지난해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여러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결국 실사가 끝나야 입질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채권단은 조만간 실사에 착수해 1~2개월 안에 실사를 마무리 짓고 7월 안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 연말께 본계약을 체결한다는 목표를 세워둔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아시아나의 부실 규모가 큰데다 재무상황이 복잡해 현 상태에서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은 없다고 보면 된다”며 “회계구조와 경쟁력, 전망분석 등이 종합적으로 나와야 인수 후보군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채권단 바람과는 달리 올해 안 매각이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실사는 채권단과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산업)이 선정한 매각 주관사가 진행하는 것이라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지만, 인수 기업(우선협상대상자)이 선정된 후에는 다시 까다로운 실사가 진행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부실이 드러날 경우 매각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