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도기천 기자) 단군 이래 최대규모의 신도시 건립이 수도권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건설사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매머드급 개발 프로젝트가 동맥경화를 겪고 있는 건설업계에 단비 같은 소식이긴하지만 자칫 공급 과잉으로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기 신도시가 건설업계에 독이 될까, 약이 될까.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수도권 3기 신도시는 과거 정권 시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규모다.
작년 9월 1차(3만5천가구) 계획 발표를 시작으로, 12월 2차(15만5천가구), 지난 7일 3차(11만가구)까지 총 30만 세대 규모다. 남양주 왕숙(6만6천가구), 하남 교산(3만2천가구), 인천 계양 테크노밸리(1만7천가구), 과천 과천동 지구(7천가구), 고양 창릉(3만8천가구), 부천시 대장(2만가구) 등이다.
30만호가 전부 완공되면 100만명(3인가족 기준) 가까운 인구가 입주하게 된다. 정부는 오는 2022년 7만 가구를 시작으로, 2023년에 6만7000가구, 2024년 5만8000가구, 2025년 6만1000가구, 2026년 이후 4만4000가구 등 순차적으로 분양을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가장 최근 발표된 고양시 창릉 신도시의 경우 813만㎡로 1기 신도시 중 평촌(511만㎡), 중동(545만㎡), 산본(420만㎡) 뿐 아니라 2기 신도시 위례(677만㎡)보다도 크며, 서울 은평구와의 직선거리가 1킬로미터 남짓해 접근성이 가장 뛰어나다.
CNB가 3기 신도시의 대표 주자로 여겨지는 이곳을 지난 15일 돌아봤다. 국토부 발표에 따르면 창릉 지구는 경기도 고양시 창릉·용두·화정동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이곳에는 오래된 주택과 각종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비닐하우스, 화훼단지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주민들은 아직 신도시 계획에 무덤덤한 모습이다. 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주민은 CNB에 “토지보상에 대한 기대감이 있지만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니 앞날이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동네 공인중개업소들도 한가한 모습이었다. 2시간 가량 일대를 돌아보는 동안에 부동산을 찾는 손님을 보기 힘들었다. 고급승용차들이 공인중개업소를 드나들던 과거 개발지역의 풍경이 이곳에는 없었다.
창릉지구의 끝자락에 위치한 삼송·원흥 신도시로 가봤다. 이곳에 4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직장인 변모(51) 씨는 “바로 옆에 대규모 신도시(창릉)가 들어서는 만큼 집값이 하락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아직은 먼 얘기라 큰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전했다.
미분양 털기도 전에…커지는 R의 공포
건설사들은 희비가 엇갈린다. 대규모 물량을 수주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반기는 분위기지만, 수도권 곳곳에 산적해 있는 미분양 물량이 소화되지 않은 상황이라 ‘물량 폭탄’의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실례로 창릉 신도시 지정의 최대 피해지로 꼽히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경우, 기존 악성 미분양 물량들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지역에는 신동아건설이 지은 하이파크시티의 278가구, 요진건설산업의 ‘요진 Y-HAUS’ 89가구 등 수백여 세대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대방건설이 경기도 화성에서 분양한 ‘화성송산그린시티 대방노블랜드’는 967가구 중 556세대의 불이 꺼져있다. 우방(SM그룹)의 ‘화성 우방 아이유쉘 메가시티’ 1·2단지도 최근 참패를 맛봤다. 총 1152가구 모집에 신청자는 전순위를 합쳐 297명에 불과했다.
경기도청의 ‘민간 미분양주택 현황’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경기도의 미분양 아파트는 모두 6769가구에 달한다. 전월인 지난해 12월 4968가구 대비 36.3%(1801가구)나 증가한 규모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경기도 이천·평택·화성·안성시, 인천 중·서구 등 수도권 6곳을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한 상태다.
특히 3기 신도시보다 입지여건이 떨어지는 인천 검단, 파주 운정3, 화성 동탄2, 김포 한강 등 2기 신도시에 주택 공급을 진행하고 있는 건설사들의 미분양 공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들 지역에는 GS건설, 삼성물산, 현대건설, 롯데건설, 대림산업, SK건설, 대우건설, 호반건설, 금호산업, 부영 등 내로라하는 대형건설사들이 시행·시공·컨소시엄 등 음으로양으로 얽혀있다. 당장 인천 검단신도시에서만 올해 1만2천여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라 건설사들은 시장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CNB에 “30만가구가 한꺼번에 쏟아짐에 따라 3기 신도시 내에서도 분양이 전부 성공할지 의문”이라며 “교통·교육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은 사업을 포기할 지를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이미 공급이 넘치는 상황에서 계속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고 있어 당황스럽다”며 “경기도 내의 수요가 받쳐주지 않아, 서울 시민이 얼마나 경기도로 넘어올 것인지에 대해 면밀히 모니터링 하고 있다”고 말했다.
1,2기 신도시 주민들의 반발로 공사가 지연될 가능성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들은 가뜩이나 집값이 약세인데 추가로 신도시가 진행되면 지역이 슬럼화 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3기 신도시 백지화 국민연합’을 결성해 청와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집단행동에 돌입한 상태다. 이로 인해 지난해 신도시 계획이 발표된 남양주 왕숙 지구 등 일부 지역은 아직까지 사업에 진척이 없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분양의 승패를 좌우하는 게 교통인데 자칫 주민들의 반발로 각종 교통대책이 지연될 경우, 신도시 개발에 참여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토부의 계획대로 교통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2기 신도시 때처럼 ‘미분양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인프라사업이 아파트보다 매력?
반면 건설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30만호 신도시’는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다는 긍정론도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 12일 발표한 ‘건설·주택경기 긴급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건설투자가 지난해 3분기 이후 올해 1분기까지 계속 감소했다. 작년 3분기에 8.9%, 4분기 5.9%, 올해 1분기에 7.4%가 각각 줄었는데, 3분기 연속 5% 이상 감소한 것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주택 분야를 중심으로 민간 건설경기가 빠르게 하락한데다 공공부문의 실적도 부진했던 탓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CNB에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물량이 적은데다 민간택지 개발 분양도 시원찮은 상황이라 공공택지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데, 최근 3기 신도시 계획이 나와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신도시가 과거와 달리 교통대책 등 자족기능을 중심으로 설계됐다는 점에서 주택분야와 별개로 수익성을 노리는 경향도 있다.
국토부는 종전에는 지구계획 수립 단계에서 세웠던 교통대책을 이번 3기신도시에는 지구지정 제안 단계부터 수립해 입주 시기에 맞춰 도로, 지하철, 광역급행철도(GTX) 등 교통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도시권 광역교통위원회 최기주 위원장은 지난 7일 고양 창릉, 부천 대장 개발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입주민에게 편리한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건설사 입장에서 보면 설령 주택분양이 실패하더라도 도로망 등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실례로 고양 창릉지구 교통대책으로 제시된 고양선 신설 계획은 서부선 새절역부터 고양 향동지구, 창릉지구를 통과해 고양시청까지 14.5㎞ 구간에 지하철을 놓는 매머드급 계획인데, 국토부는 입주 시점에 맞춰 개통하겠다는 플랜을 세워뒀다. 이렇게 되면 지하철 공사에 따른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지하철 개통과 거의 동시에 분양이 이뤄지므로 미분양 우려도 덜 수 있다.
한편 서울 분양시장은 신도시 계획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신도시를 건설하는 목적은 서울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서지만 아직 ‘탈(脫)서울’을 대거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원주민 토지보상과 택지조성 및 분양까지 최소 4~5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서울에 영향을 주기 힘든데다, 서울을 선호하는 대기 수요가 여전히 넘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3기 신도시 계획에 포함된 사당역 복합환승센터(1200가구), 창동역 복합환승센터(300가구), 왕십리역 철도부지(300가구) 등 서울권 택지 1만가구 분양은 수도권과 달리 건설사들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