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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인데 종이서류? 보험청구 전산화 논란

‘병원·보험사 온라인망 구축’ 찬반 팽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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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46호 이성호 기자⁄ 2019.08.12 10:30:58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를 놓고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교 병원 모습.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이성호 기자)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중요한 민생 문제다”

최근 경실련, 금융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서울YMCA, 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 소비자교육중앙회, 소비자와함께, 소비자정책교육학회, 소비자교육지원센터 등은 공동으로 이 같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소비자 편익을 위해 실손보험료 청구 절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

실손 보험은 실제 발생한 사고로 입은 손해액을 평가해 보상금을 지급하는 보험을 이른다. 질병·상해시의 입원비·치료비, 교통사고를 보상하는 자동차운전보험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보험의 대부분이 이에 해당된다. 특히 국민건강보험에 포함되지 않는 의료항목을 보장(실손의료보험) 해주다보니 가입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에 한화생명·흥국생명·ABL생명·삼성생명·교보생명·라이나생명·오렌지라이프생명·AIA생명·DGB생명·미래에셋생명·KDB생명·동양생명·DB생명·메트라이프생명·푸르덴셜생명·신한생명·처브라이프생명·하나생명·KB생명·NH농협생명·메리츠화재·한화손해·롯데손해·MG손해·흥국화재·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DB손해·AXA손해·에이아이지손해·더케이손해·농협손해보험 등 대부분 생명·손해보험사에서 취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실손의료보험 보유계약건수는 2016년 3330만건, 2017년 3359만건, 지난해 6월 기준 3396만건에 달한다.

문제는 미리 정한 보험금 액수만큼만 지급하는 ‘정액형 보험’과는 달리 사고 건별로 보험료가 책정되다보니 구비서류가 복잡하고 청구 과정이 까다로워 소비자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소비자가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진료비 계산서 등 필요·증빙서류를 요양기관으로부터 직접 발급받아 보험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다보니 아예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사)소비자와함께 실태조사에 의하면 가입자의 32.1%만 보험금을 청구하는 현실이다.

또한 보험연구원의 보험소비자 설문조사 결과(2018년 7월 전국 20세 이상 성인 남·여 2440명을 면접 조사, 조사기관 코리아리서치) 실손의료보험 공제액을 초과한 본인부담진료비에 대해 입원의 경우 4.1%, 외래의 경우 14.6%, 약 처방의 경우 20.5%가 보험금 청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금 미청구 이유는 90.6%가 소액이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국회에는 개선책을 담은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더불어민주당 고용진·전재수 의원 각각 대표발의)’ 2건이 제출돼 있다.

이 개정안들은 실손의료보험금의 청구를 위해 의료기관에 진료비 계산서 등의 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즉 병원 등에서 환자에게 서류로 제공했던 증빙자료를 전자문서로 직접 보험회사에 전송토록 한 것.

개정안 내용은 대동소이하지만 고용진 의원안은 요양기관의 서류 전송업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고, 전재수 의원안은 전문중계기관에 관련 사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이 같은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도입을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가 시급하다고 강력히 촉구하고 있는 상태다.

배홍 금융소비자연맹 대외협력위원은 CNB에 “그동안 소비자 편익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해 왔지만 10년째 표류 중”이라며 “관리·감독해야 할 보건복지부도 손 놓고 있는 상황에서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순 없어 뜻을 같이하는 단체들과 연대해 보다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강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0년 국민권익위원회가 보험사별 보험금 제출양식을 간소화하고 공통 표준 양식 마련을 권고하고, 2016년 금융위원회·보건복지부 등 정부 합동으로 온라인을 통한 간편하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었다는 것.

그러나 아직까지 실손보험의 청구간소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잉진료·과다청구 사라질까

반면, 의료계는 결사반대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 등에서는 민간보험사 행정업무의 의료기관에 강제전가, 환자 개인정보 유출 우려 및 민간보험사 이익으로의 활용 가능성 등을 이유로 보험업법 개정안을 아예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손보험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국민건강보험과 달리 개인의 필요도와 경제 능력 등에 따라 가입 여부를 선택하는 민간보험이고, 의료기관은 실손보험사나 실손보험 가입자와 어떠한 법적·계약적 의무나 제한을 받지 않는 독립적 지위를 가진 경제주체라는 전제다.

이러한 의료기관에 건강보험과 같은 굴레를 씌워 실손보험 진료비 대행 청구를 강제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의료기관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입법이자 보험사 특혜 법안이라는 얘기다.

특히 실손보험 가입자의 진료비 내역과 민감한 질병 정보에 대한 보험회사의 진료 정보 축적의 수단으로 악용될 개연성이 높고, 보험금 지급률을 낮춰 실손보험사들의 배만 불리기 위한 것이라고 고개를 젓고 있다.

이 같은 의료계의 반대는 무엇보다 비급여 부문의 속살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처럼 찬·반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한 축인 보험업계에서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법제화를 기대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과잉진료·과다청구를 막을 수 있고, 보험사에서의 대고객 지급서비스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개정안에 대해 관계 기관에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실손의료보험의 청구 불편을 해소하고 청구 포기 등을 방지하려는 법률안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청구 불편 해소방안에 관해서는 요양기관, 보험회사 등 이해관계인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를 충분히 거친 후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역시 개정안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서류의 전자적 전송을 요청받은 요양기관에게 이를 따라야 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고, 특히 의무를 부과 받게 될 요양기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는 견해다.

따라서 보험소비자의 편의 등 긍정적인 측면과 더불어 요양기관에 대한 의무 부과의 타당성 및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우려 문제 등이 종합적으로 논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법안을 심사해야할 정무위는 아직까지 가동하지 않고 있다. 무소속 손혜원 의원의 부친 관련 자료 제출을 놓고 여야 대립 속 정지 상태로 보험업법 개정안뿐만 아니라 처리해야 할 법안은 무수히 산적하다.

파행이 장기화되면서 링 밖에서의 싸움만 치열해 지는 꼴인데 정무위 재개는 아직 기약이 없어 실손보험 청구간소화가 또 다시 요원해질까 시민사회단체·보험업계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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