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송이⁄ 2019.11.05 16:06:05
술병에서 연예인 얼굴이 사라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가 음주 미화를 방지하기 위해 주류용기에 연예인 사진을 부착할 수 없도록 관련 규정을 개선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강력해진 정부 지침에 따라 주류업계의 음주문화 개선책도 주목된다.
‘음주 소비 개선’ 칼 빼든 정부, 왜?
“술이나 담배나 둘 다 문제 되지 않나. 뭐가 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담배는 의무적으로 혐오 사진을 넣게 하면서, 술 광고는 연예인을 기용해 상큼하거나 밝은 이미지로 광고한 게 생각해보면 이상하긴 하다. 말하자면 마시고 싶도록 권장한 건데, 그동안 아무런 터치가 없었던 게 말이 안 된다” “물론 이런 조치 취해도 마실 사람은 마시겠지만, 연예인 사진 빼도록 하는 것은 어린 나이의 소비자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조치인 것 같다”
지난 4일 복지부가 술병 등 주류용기에 연예인 사진을 넣지 못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소비자들이 보인 반응이다. 이처럼 호의적인 반응이 많지만, 정부의 음주 관련 조치 자체가 늦었다는 ‘뒷북’ 논란도 있다. 그동안 주류 제재에 느슨한 태도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조치는 지난달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명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광고로 인해 청소년이나 임신부가 술을 마시고 싶다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고 성인들에게도 과음을 유발할 수 있다”며 광고 규제의 필요성을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가 금연정책은 갈수록 강화하는 반면 절주 정책에는 손 놓고 있다는 지적이 일자 복지부는 국내외 현황을 파악하고 시행령 개정 작업에 착수하게 됐다. 이번 조치의 핵심 골자는 ‘발암물질 제재에 대한 형평성’과 ‘음주 미화 방지 ’두 가지다.
국제암연구기관(IARC)에 따르면 담배를 비롯해 소주 등의 술 또한 1급 발암물질이다. 정부는 담뱃갑에는 폐암 환자 사진을 붙여 흡연의 위험성을 경고하도록 조치했지만, 주류용기에 버젓이 부착된 여성 연예인 사진과 관련 마케팅에는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국가금연사업과 음주 폐해 예방관리 사업의 예산과 담당부서 운영에도 차이가 크다. 올해 기준 국가금연사업은 1388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지만, 음주 폐해 예방관리 사업 예산은 100분의 1 수준인 13억 원이다.
한편 연예인들이 주류 마케팅에 활용될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은 음주가 지나치게 미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류 광고의 기준은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제10조에서 규정한다. 해당 규정은 음주 행위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음주가 체력·운동능력을 향상하거나 질병 치료에 도움된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 등을 금지하고 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술병에 연예인 사진을 붙여 판매하고 있는 경우는 한국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주 개선책 첫 사례 아니야…주류업계 사회적 책임 필요
일각에선 주류 소비 및 음주문화 개선과 관련된 대책이 처음이 아닌 만큼 실효성 문제가 제기된다.
지자체의 경우, 서울시가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지난 2012년 청소년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술 광고에 아이돌 연예인 모델 기용을 자제해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는 주류 광고를 통해 자주 노출되는 연예인(2012년 기준) 22명 중 72%가 아이돌으로, 10대들의 우상인 아이돌이 주류 광고에 출연하면 청소년들이 술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하에 진행됐다. 권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 세무조사까지 요청하겠다며 강력한 제재를 시사했지만 바뀐 점은 없다. 올해까지도 아이돌 혹은 아이돌 출신의 주류 광고 모델 열풍은 이어졌다.
주류업계에서는 29개 주류업계를 대표하는 주류산업협회가 지난 2004년 알코올 치료 및 재활 전문 ‘카프병원’을 설립한 바 있다. 정부와 국회가 주류에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음주 피해자를 위한 공익사업을 하겠다며 매년 2010년까지 50억 원의 출연금을 지원키로 하고, 공익재단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와 해당 병원을 연 것이다.
카프병원 개원으로 연간 5000명 이상의 알코올중독 환자들이 전문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2010년이 되자 한국주류산업협회는 지원 규모를 35억 원으로 축소하고, 2011년 지원을 중단하면서 사실상 2013년 병동 폐쇄를 맞았다. ‘지원 발 빼기’로 인해 100여 명의 환자가 강제 퇴원해야 했다.
이후 환자와 보호자들이 지속적으로 재개원을 요구했고, 지난 2015년이 돼서야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운영 주체로 선정되면서 정상화 절차를 밟았다. 현재는 ‘카프성모병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음주 개선책을 두고 주류업계의 ‘발 빼기’ 사례가 한 차례 있었지만, 이번 개선책을 통해 정부가 발암물질 제재에 강력한 의지를 시사한 만큼 주류업계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주류업계의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