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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기생충’의 가난 냄새와 그걸 죽어도 못 참는 부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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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69호 최영태 편집국장⁄ 2020.02.17 09:13:58

(CNB저널 = 최영태 편집국장) 이번 호에는 대보건설 등 건설업체들의 서울 역세권 청년 임대 주택에 대한 기사를 다뤘습니다(10~11쪽). 사통팔달 이어지는 전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대중교통과 각종 창업-취업 인프라를, 서울 한복판 충정로역 바로 앞에 위치한 청년주택 ‘어바니엘 위드 더 스타일’ 같은 곳에 살면서 이용하게 한다는 서울시의 구상은, 청년의 활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대환영할 만합니다. 비록 한국의 모든 활력이 서울에 집중돼 있어서 지방 도시에서는 이런 이점을 청년들에게 줄 수 없다는 점은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 있고, 앞으로 꼭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런 청년 주택 문제를 얘기하면서 세계적 화두가 된 영화 ‘기생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요. 저는 ‘기생충’이 아카데미 상을 휩쓸기 바로 전날 이 영화를 보고, 영화의 영상이 생생히 머릿속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엄청난 수상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4DX 아니면서도 냄새를 느끼게 한 영화

그리고 이 영화가 남긴 큰 화두 중 하나인 ‘냄새’의 문제를 생각해 봅니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데칼코마니’, 즉 엄청난 부자 4인가족과, 반지하에 사는 가난뱅이 4인가족을 데칼코마니처럼 대비한다는 의미에서 원래 이런 제목을 구상했었답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족(저택)과 빈자가족(반지하)은, 일부 덜컹거리기는 해도 서로 잘 지내는 듯 싶지만, 이 둘을 결정적으로 가르는 요인으로 바로 ‘냄새’가 등장합니다. 특히 부자가족의 가장 박 사장(이선균 분)과, 빈자가족의 가장 김기택(송강호 분)을 날카롭게 가르는 분수령은 냄새입니다.

 

영화 ‘기생충’의 충격적인 ‘냄새’ 장면에서 김기택(송강호 분)의 표정.

냄새가 왜 중요한가? 사회가 선진화될수록, 개인이 부자가 될수록, 냄새처럼 ‘1차원적인-동물적인’ 감각에 더욱 예민해지기 때문입니다. 미국 오피스 빌딩에서 놀라운 점은 연중 실내기온을 칼 같이 화씨 70도(섭씨 21도) 정도로 유지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필자가 LA 윌셔의 오피스 빌딩에서 근무할 때는 정말로 여름에는 반드시 긴팔, 겨울에는 반팔을 속에 입고 출근해야 했습니다. 섭씨 20도 초반의 실내 온도가 여름에는 너무 춥고, 또 겨울에는 차가운 밖에서 실내로 들어가면 덥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번은 빌딩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꼭 여름에 이렇게 춥게 실내온도를 유지해야 하느냐?”고 물어도 봤지만, 대답은 “예외 없다. 우리는 연중 동일한 실내 온도를 유지한다”는 차가운 대답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잘사는’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쾌적하다고 느끼는 온-습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참기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냄새에 대해서는 이런 기억이 있습니다. 평생을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에 가서 10년 살고 왔을 뿐인데, 2008년 오랜만에 서울에 돌아온 첫날 느낌 중 가장 강렬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냄새’였습니다. 10년 전보다 훨씬 화려해진 서울이었지만, 종로 거리 하수구 구멍 등에서 후끈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는 “아, 내 고국은 이렇게 냄새가 나는 나라였나?” 하는 감정을 느끼게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영화에도 잘 나오지만 한겨울 뉴욕이나 워싱턴DC의 거리에선 지하 하수구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지만 그렇다고 하수구 냄새가 나지는 않습니다. 요즘의 서울 하수구 구멍에서도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한국인도 잘살게 됐고 하수구에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서울시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봉준호 감독과 인터뷰한 손석희 jtbc 전 앵커의 작년 6월 앵커 브리핑 장면. 부자와 빈자는 서로 냄새 맡을 기회가 없듯, 남과 북 역시 서로의 냄새를 못 맡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선진일수록, 세련될수록 냄새 못 참는 이유

최근 한 부자가 저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집에 가면 참을 수 없는 게 냄새다”라고. 그 가난하다는 게 기생충 영화 속 반지하 집 정도의 절대 가난이 아니라 서울 한복판 몇 억씩이나 하는 전세 집 등에서 사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일지라도, 세련된 부자에게 가장 큰 생활상의 문제는 바로 냄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멘트였습니다.

2월 13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건축가 김진애 박사는 “영화 ‘기생충’은 공간의 냄새를 시각화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영화를 통한 냄새(가장 원시적인 감각이라서 또한 가장 충격적이기도 한. 못 생긴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있어도 냄새 나는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없는 게 인간의 본능)의 전달이라고 해봐야 4DX 영화에서 인공 냄새를 좌석을 통해 뿜어내는 정도였지만(아무리 그래 봐야 나쁜 냄새는 뿜어낼 수 없지만), 봉준호 감독은 보여주는 것만으로 냄새를 생생하게 화면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연출력을 과시했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합정역 인근에 세워질 청년주택 ‘효성 해링턴 타워’의 조감도. 사진 = 효성중공업

여태까지의 한국 정부처럼 부동산 가진 자들(유산자)을 우대하고, 부동산을 통한 소득에는 거의 과세를 않고(국제적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은 정말로 부동산 소유자들의 천국이지요), 사회적-언론적으로도 빌딩소유주-땅주인을 부유-고상-우아한 사람들의 표상으로 대우해준다면(그러니 잘나거나 못나거나 한국인 최고의 꿈이 “강남 빌딩주 되고파”가 되는), 할아버지부터 부자라서 이러한 유산자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청년들은 영화에서처럼 반지하 방으로, 창문도 없는 고시원 단칸방으로 내몰리면서 자기도 모르는 ‘냄새’를 몸-옷에 지니게 되겠지요.

이런 차원에서 최근 일고 있는 ‘역세권 등 좋은 입지에 최신 청년 주택을 지어 젊은이에게 싼 값에 빌려주기’ 운동은, 역세권을 통한 활력 부여와 함께, 가난한 주택 조건에 달라붙게 마련인 가난의 냄새를 빼주는 부수 효과도 거둘 것 같습니다. 물론, 가난한 공간의 냄새를 청춘들에게서 완전히 제거하는 건 경제-시대 상황 상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시도조차 않는 건 AI(인공두뇌)의 결론일 수는 있어도, 사람의 결론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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