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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코로나가 앞당긴 신기술과 해고걱정의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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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78호 최영태 편집국장⁄ 2020.06.29 14:16:44

(문화경제 = 최영태 편집국장)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영악한 병’ 코로나19은, 신기술의 현실적용을 크게 앞당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경제 이번 호는 경제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기술의 도입 양상, 그리고 동전의 뒷면이랄 수 있는 대량 해고 걱정과 그에 대한 도움의 손길들을 모아봤습니다(12~35쪽).

제주도 영리병원의 설립 허가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 바 있기에 한국에서 영리병원 또는 대기업이 추진하는 원격 의료의 도입은 영원히 미래 과제로 밀리는가 싶었지만, 코로나19 광풍과 그에 따른 ‘언택트’ 대세는 원격 의료를 우리 코앞으로 바짝 밀어놓았습니다. 원격 의료 관련 기사(19~25쪽)에서 알 수 있듯 적극 추진에 나서는 쪽은 삼성, LG, 네이버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입니다. 반면 원격 의료에 반대하는 의사협회 소속 의사들은 자영업자 격이지요.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대결이라는 양상이 원격 진료라는 구상에 포함돼 있고, 그래서 원격 의료의 실현이 항상 벽에 부닥쳐 왔던 것인데, 코로나19라는 영악하고도 무서운 병이 이 장벽을 허무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지요.

‘비대면 = 無노동자’ 안 되란 법 없으니

사람끼리 접촉하면 안 되니까 △로봇이 노동 현장에 더 적극적으로 나타나고(14~18쪽) △화장품 판매도 종전의 살가운 대면 설명에서 증강현실(AR) 등을 이용한 첨단 IT기술 활용 방식으로 바뀌고(28~30쪽) △승무원의 친절이 중요시되던 항공운항 업계에서도 비접촉이 새 기준(뉴 노멀)이 돼가는 현실(26~27쪽)이 모두 그렇습니다.

그렇잖아도 신기술은 대개 기계화-로봇화-IT화를 중심으로 추진되기에 노동자가 관여할 여지가 점점 더 줄어드는 판이었는데(4차산업혁명),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가세하니 이제 “신기술이 최고다. 인간 노동자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쪽으로 급히 연결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지요.

상황이 이러 하니, 신한금융그룹과 중기부가 손잡고 ‘희망으로 같이가게’ 프로젝트를 펼치는 것이며(34~35쪽), 실업난에 첫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여성-장애인을 돕자는 기획에 롯데홈쇼핑·롯데푸드·하이트진로가 나서고 있는(31~33쪽) 이유이기도 하지요. 역사상 기계와 사람의 대결에서 사람 쪽은 항상 ‘막강하고, 지치지 않으며, 대체가 가능한’ 기계-로봇에 대해 공포감을 품어왔으며, 이러한 두려움은 산업혁명 초기의 러다이트 운동(1810년대 영국 노동자들의 기계 부수기 운동)에서부터, 수백 명 인부의 노동력을 간단히 대체하는 포크레인의 위력에 대한 노동자들의 거부반응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이어져 왔지요.

하지만 이런 기계의 노동자에 대한 습격은 역사상으로(즉 아직까지는) 대개 해피엔딩으로 끝나왔습니다. “포크레인 앞에서 삽질 한다”는 말이 부질없는 행동을 묘사하는 대표적 비아냥거림으로 사용되는 데서 알 수 있듯, 기계가 절약해준 시간만큼을 인간은 그간 다른 일을 하면서 더욱더 생산성을 올려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2013년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운동 추진세력이 스위스 인구 총숫자에 해당하는 동전 800만 개를 모아 베른 광장에 쏟아 붇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런 운동에 힘입어 스위스에서는 전국민에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안이 국민투표에까지 붙여졌지만 결국 부결됐다. 사진 = Stefan Bohrer

그러나 21세기의 ‘4차산업혁명 + 코로나19’ 연합 침략세력의 힘은, 과거 증기기관이나 포클레인 정도와는 차원을 달리 합니다. 증기기관이나 포클레인이 수백, 수천 명의 노동자를 일자리에서 몰아냈지만, ‘근육의 힘에서 기계의 힘으로의 대체’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면서 이뤄졌기에 삽질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이 다른 일을 배우고 적응하면서 발전을 이뤄온 것에 비교하자면, 현재의 ‘4차산업혁명 + 코로나19 침략군’은 노동자가 다른 일을 배우고 적응할 시간여유를 거의 주지 않으면서 매몰차게 인간을 내몰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빵을 먹고 싶은데 살 돈이 없다면 그 사람한테 무슨 자유가 있겠느냐”라는 말이 앞으로 나타날지도 모를 ‘기계에 패배한’ 인간의 비참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기본소득이라는, 그 출발 배경을 알고 나면 우울해지기도 하는 개념에 이르게 됩니다.
 

빵과 자유를 논한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의 발언을 전하는 YTN의 화면. 

스스로를 휘젓는 기계-인공지능의 등장

이재명 경기도 지사 등이 지난 2016년 이후 본격적으로 거론해 온 기본소득 논쟁이 다가올 20대 대통령 선거의 한 중요한 화두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과연 기본소득 말고는 인간이 ‘4차산업혁명 + 코로나19 침략군’에 대항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과거 중국과 한국의 왕조시대에는 ‘하늘을 쳐다볼 수 있게 직립한 인간’과 ‘오로지 땅만을 쳐다볼 수 있고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는 몸 구조를 갖고 있는 동물’을 대비하는 논리가 있었다고 하지요.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꿈과 이상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지녔지만, 개나 고양이 같은 네발짐승은 오로지 땅만을 바라보도록 골격이 구조화돼 있다는 비하의 개념이겠지요. 직립 인간은 쉽게 하늘을 볼 수 있지만, 개나 고양이도 들어눕거나 하는 방식으로 쉽게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조선 시대 양반의 ‘도를 넘은 동물 비하’ 사상으로 웃어넘길 수도 있겠습니다.

더 옛날로 되돌아가면, 동물과 비동물(물질)을 나누는 철학적-과학적 개념으로 이런 것도 있습니다. 욕조의 물(물질)은 한 번 사람이 휘저어주는 힘으로 일정 시간만 물결치다가 잔잔해지기 마련(피동성)이지만, 사람 같은 동물은 한번 태어나기만 하면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흡수-생산하면서 수십 년 간 지속적으로 계속 세상을 휘젓고 다닌다는(능동성) 비교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리 첨단이라도 컴퓨터-로봇은 ‘인간이 휘저어주지 않으면(즉, 에너지를 공급하고, 명령어를 넣어주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존재’였지만, 이제 인공지능(AI)이 세상만물의 이치를 스스로 공부하고 깨달으면서 ‘인간이 휘저어주지 않아도 독자적으로 영원히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AI 개발 과학자들끼리는 필수 수칙으로서, AI의 두뇌(CPU)에 ‘인간에 해가 되는 일로 판단되면 즉시 멈춘다’ ‘인간을 죽이지 않는다’를 지상명령을 심어주기로 약속했다지만, 날로 지능이 높아가는 AI가 인간 과학자들의 이런 어쭙잖은 지배 시도를 곧 간파 못할 리가 없겠지요.

그래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능력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완전히 뛰어넘은 다음에도 ‘인간을 모두 죽이지는 않을 거’라는 데 희망을 거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람이 애완동물을 키우듯, 인공지능 역시 애완동물 키우듯 인간들에게 적당한 먹을 것(기본소득?)을 주면서 인공지능과 로봇의 영원한 지배에 무해한 수준에 묶어놓고 인간이란 종자를 유지해 나가지 않겠냐는 희망이지요.

코로나19의 끝 모를 횡포에 넌더리를 치면서, 또한 코로나19 위기를 업고 강력하게 전면에 나서는 신기술들을 보면서 “세상이 참 무서워지는구나”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하루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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