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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대출해줄 돈 말랐다고? ‘뒤죽박죽 사기치는’ 언론과 다가올 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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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 편집국장⁄ 2020.08.14 07:39:47

최영태 편집국장

[너도나도 대출 받더니.."은행에 돈이 없어요"] 어제 머니투데이 기사 제목이다. 기업 대출도 많았지만 주택 관련 대출도 많았고, 그래서 주택-가게 대출과 관련한 은행들의 태도를 측정하는 ‘대출태도지수’가 2분기에 -7에서 3분기에는 –17로 떨어졌다는 내용이 위 기사에 나온다.


최근 어지러운 부동산 기사들을 보면서 “정말 한국 언론들은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동산 기사를 모아놓은 한 포털의 ‘부동산’ 섹션을 보면 국내 언론들이 입을 모아 한다는 소리들은 대체로 “집값 올라라” “정부 정책은 못 믿겠다” “정부 정책이 아무리 나와도 집값은 오르고야 만다” “왜 집주인에게 불이익을 주나?” 등으로 모아지는 듯하다.

 

8월 13일자 머니투데이 온라인 기사 화면 캡처. 

그래서 이런 기사들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공포에 휩싸인다. 집을 지금 당장 안 사면 큰일날 듯 하고, 강남에 집이 없는 필자 같은 사람은 이제 완전 망조가 든 것이고, 영혼이라도 끌어서 강남 근처라도 서울 시내에 집을 한 채 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들고….

소비자들이 공포에 휩싸일수록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박이다. ‘공포 마케팅’처럼 좋은 장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는 쪽이 공포에 휩싸이면 지갑이 마구 열리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이니까 아무리 비싸도, 빚을 내서라도 사고야 만다. 죽고 사는 문제니까.

이런 한국 언론들의 태도에 대해 한양대 신방과 정준희 교수는 12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사기’라는 단어까지 사용했다. 관련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김어준: 기사들이 잘 읽다 보면 업자의 이익에, 결과적으로는 업자의 이익에 복무하는 기사가 많지 않습니까?
정준희 : 굉장히 많죠. 그게 이제 속으로 그런 속내를 숨기고 그런 식으로 사기를 치는 건지 아니면 몰라서 속아 넘어가는 건지 이 부분은 불분명한 측면들이 있는데요. 아마 신문을 뒤져보시면 아시는데 우리나라 신문들이 지금 광고가 굉장히 부족하기 때문에 부동산이나 건설에 의해서 광고를 굉장히 많이 수주합니다.

정 교수는 이에 앞서 “사기”라는 단어 사용 전에 “뒤죽박죽”이란 용어도 사용했다. 이런 맥락에서였다.
정준희: 집값이 올라간다거나 또는 떨어진다거나 할 때 입장이 확실하게 나오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올라가도 문제, 떨어져도 문제로 나오게 되면 자신의 본마음이 뭔지가 명 확하지 않게 나타나는 것이죠. (중략) 나쁜 말로 하면 여러 가지가 뒤죽박죽이 되는 거죠.
 

8월 13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언론의 부동산 기사를 비판한 정준희 교수(오른쪽). (tbs 유튜브 화면 캡처)

뒤죽박죽-사기라는 용어를 들으니 필자의 경험이 생각난다. 까마득한 옛날 얘기지만 80~90년대에 ‘우루과이 라운드’라는 국제 통상 협상이 있었다. 무역자유화 추진을 위한 이 다국적 교섭에서 미국은 한국의 쌀 시장을 개방하려고 들었고, 한국은 농민 보호를 위해 “절대 반대” 입장이었다. 당시 중앙지 경제부 기자로서 농림수산부를 출입하던 필자는 당시 농림부의 입장에 따라 “우루과이 라운드 쌀 개방 절대 안 돼”라는 방향의 기사를 줄곧 썼다. 헌데, 다자간 협상이 잘 안 되자 미국은 ‘다자간 → 양자간 대화’로 방향을 바꿨고, 필자를 비롯한 기자단은 바로 “양자 협상 절대 안 돼” 식의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창피해졌다. “우루과이 라운드 안 돼”라고 줄곧 외치다가 불과 며칠만에 “미국이 무섭다. 우루과이 라운드라야 한다”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기사의 방향이 서질 않았기 때문에 당장의 사태 변동에 즉각적으로(생각 없이) 반응했고, 그러다보니 “도대체 어쩌란 소리야?”라고 독자들이 질책을 해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 당시의 모습. 이 다국간 협상에서 미국은 한국 쌀 시장의 개방을 강력히 밀어붙였고, 한국 언론은 우왕좌왕했다.


시간은 3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한국의 기사들은 이런 뒤죽박죽 수준을 못 벗어난다는 말인가? 정 교수의 지적대로 집값이 올라도 큰일이고 내려도 큰일이라면 도대체 정책은 어째야 한단 말인가? 세입자를 보호 안 한다고 난리더니, 임대차 보호 강화법이 통과되면 또 ‘집주인도 죽고 세입자도 죽는다’는 기사를 써대면 도대체 임대인과 임차인 중 누구를 보호하란 말인가? 이래도 큰일이고 저래도 큰일이라면 이건 그저 아무 때나 “늑대가 나타났다”고 고함을 쳐대다가 결국 마을에서 퇴출되고 만 ‘늑대 소년’ 꼴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과장-침소봉대 해서 쓰는 공포 마케팅 기사는 늑대소년의 거짓 외침처럼 당장은 ‘언론 장사’에 효과적이지만, 그게 지나치면 퇴출이 다가온다는 점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이래서 중요한 게 ‘자기 입장’을 밝히는 일이다. 정 교수의 말이다.

정준희 : 그런데 우리는 부동산을 다루시는 분들이 자산에 대한 어떤 투자를 조언해 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정치의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또 복지를 걱정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이래요. 그러다. 보니까 입장이 (중략) 정치는 비판해야 되고, 복지는 마치 걱정하는 척해야 되고, 자산에 대해서는 투자에 조언을 해야 되는 사람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상당히 난장판이 되어 버리는 그런 기사들이 나오는 거죠.

‘집값이 오르는 게 좋다’는 편에 서는 보수지-경제지의 입장이 있을 수 있고, ‘집값이 내리는 게 좋다’는 진보지의 입장이 있을 수 있는데 우리 언론들은 이런 입장이 있기 있되 드러내놓고 밝히지 않기 때문에 보수지-경제지이면서도 ‘집값이 올라서 큰일났다’는 둥 ‘세입자 복지가 큰일났다’는 식의 걱정하는 ‘척’을 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한국에는 온통 이런 ‘척’ 투성이다. 익히 알려졌지만 미국 언론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아예 밝혀놓고 시작한다. 선거 때만 되면 미국 주요 언론들은 “우리는 이러저런한 이유로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른바 인도스(endorse) 보도를 한다. 입장을 밝히면서 특정 후보를 드러내놓고 지지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 방식에 대해 “선거에 언론이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도 있긴 하지만, 한국처럼 불편부당의 외피를 쓰면서 특정 정치 집단을 노골적으로(물밑에서 또는 언더 테이블로) 지원하는 방식보다는 훨씬 깨끗하고 정정당당하다.

 

뉴욕타임스가 그동안 드러내놓고 지지(인도스먼트)를 한 주요 정치인들. 

언론사의 입장을 미리 밝히는 것은, 미로 같은 뉴스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실오라기라도 풀어놓은 것 같은 행동방식이다. 긴 호흡의 방향을 미리 설정해 놓았다면, 당장의 사안에 따라 이번 주에는 "집값이 올라서 큰일났다"고 했다가, 다음 주에는 "집값이 떨어져서 큰일났다"고 하는 자기당착-오리무중에 덜 빠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우루과이 라운드 쌀개방 얘기를 했지만, 당시 기자나 한국 정부나 경험이 부족했기에 원칙-입장을 분명히 정해놓고 협상에 임하지 못했다. ‘쌀개방은 안 되지만 그래도 미국과 1대1로 맞붙는 것보다는 다자간 협상이 낫다’는 내부 입장을 명확히 정해놓고 시작했더라면 당시와 같은 뒤죽박죽은 없었을 것이다. 이래서 연륜-경험이 중요하다.

필자는 20대 때 경제부 기자로 미국 행사장에 갔다가 50~60대 미국 경제 담당 기자들로부터 “너는 천재가 분명하구나”라는 소리를 들었다. 주요 언론의 경제 담당 기자이 되려면 자기들처럼 초년병 때는 사회부 기자부터 시작해 경륜과 실력을 쌓아야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20대인데 한국 주요지 경제 기자를 하냐?”며 놀라서 하는 소리였다. 몇 초 동안은 우쭐하기도 했지만 곧 이어 창피해졌다. 경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이런 오해를 사다니, 정말 내 실력 없음이 '국제적으로' 창피했다.

비단 부동산 기사만이 아니다. 정치, 통일 등 거의 모든 분야 기사가 ‘그때그때 달라요’ 식으로(똑같은 노력이라도 보수 정권이 하면 ‘통일은 대박’이라며 칭찬하고, 진보 정권이 하면 ‘퍼주기’가 되는 식)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다. 세계 10대 경제국 안에 들었다면 이제 언론의 ‘나이’도 10위권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기자의 ‘경험 나이’도 미국의 경제 기자나 백악관 출입기자처럼 ‘경험을 충분히 쌓은 중장년 기자’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필자는 하고 싶다.

 

언론인의 윤리를 다룬 책의 표지. 잘못된 보도에 책임(특히 금전적)을 묻는 MAS에 대한 논의와 법제화가 한국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단발성 보도로도 충분한 사건-사고 기사(미국 기자의 경우 초년병이면 무조건 거친다는)와 달리 정치-경제 기사는 줄을 잘 그어놓고(원칙을 잘 정해놓고) 쓰지 않으면 필자의 오늘은 "우르과이 라운드 나빠" 하다가 내일은 또 "아니, 우루과이 라운드가 알고보니 나쁜 것도 아니었네" 따위의 오락가락 기사가 써지게 되고, 그러면서 나라의 정치-경제는 엉망진창이 되기 쉽다. 기사의 줄을 잘 긋는 게 쉽지 않고, 또 서 있는 진영에 따라 전혀 다른 줄을 긋기 마련이므로, 미국 언론들은 “우리는 이런 줄을 그었다”고 미리 설명하고 시작한다. 그래야 읽는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는다.

만약 현재 식의 뒤죽박죽-사기 기사를 계속 한국 언론들이 써댄다면, 그 결말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실행된다는 MAS(Media Accountability System: 언론의 오보나 무책임한 보도에 엄중한 금전적 책임을 묻는 시스템. 특히 수십 억 단위의 큰 벌금에 초점이 맞춰진다)의 빠른 도입, 아니면 “기사는 최대한 안 보는 게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유익해”, 즉 언론의 무덤을 향해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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