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7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1.04.13 11:16:08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 갤러리 이번 회에서는 관계와 공간을 탐구하는 설치 작업을 보여주는 민예은, 안소현 작가와의 대화를 싣는다.
‘말로 전달되지 않는’ 것들이 주는 낯섦
민예은 작가
- 개인전 ‘인천아트플랫폼 창·제작 발표 프로젝트 - 민예은, 말로 전달되지 않는’(2021)에서 동명의 작품인 ‘말로 전달되지 않는’(2021)을 발표했다. 관객이 직접 들어가 머물 수 있는 집의 형태를 한 꽤 큰 구조물이었다. 작품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그동안의 작업에서는 일상에서 발견한 구체적인 사물들을 수집해 재구조화했기에 일정 부분에서 재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 전달되지 않는’은 얼핏 재현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무언가에 초점을 맞췄다. 구조물 안에 들어가면 주변에 설치된 네 개의 조명 때문에 마치 네 개의 태양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재현을 벗어나기 위해서 조명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 구조물 안에서는 햇빛처럼 인지되다가 밖으로 나오면 조명임을 인식하게 되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 근거한 재현의 형식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조명은 구조물 밖의 공간에 놓인 독립된 하나의 설치물로 존재한다. 실제지만 실재하지 않는 무언가라는 점은 발코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안에서는 발코니 같아 보이지만 밖에서 보면 진짜가 아닌, 발코니처럼 보이도록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이용해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 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 ‘말로 전달되지 않는’은 통일되고 단일한, 완결된 형태를 보여준다. 물론 ‘가구 오두막’(2013)처럼 단일한 집의 형상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었지만, 민예은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구조물은 ‘이제 막 큐레이터 기획 전시 - 횡단하며 흐르는 시간’(2021)에 전시된 ‘백색 위에 2015 다잇쏘 두 개, 특별한 티비, Chris Giliberto, 벽지, 고무리브 , 대범마트까지 180, 180, 180’(2020)처럼 안과 밖이 혼재되고 파편화된 공간, 열린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둘 사이의 차이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면 좋겠다.
이전 작업과 시각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맞다. 엄밀히 말하면 ‘House(es)’(2017)나 ‘라비하마하마hyun추추happyj33아토마우스에뽄쑤기제트블랙병뚱껑...’(2019)과 같은 작품과 ‘다 드러나지 않으니까?’(2021)의 사이에 존재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팬데믹 이전과 이후의 작업이라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이전의 작업은 수집한 물건들을 자르거나 재조합한 것을 내가 만든 구조물과 조합해 완성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런 공간이 존재하지 않을까? 이렇게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은 질문을 하면서 예측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는 예측할 수 있는 일상적 물건들로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팬데믹 이후 보다 추상적인 형태의 조형물을 제시하게 되었다. ‘말로 전달되지 않는’은 바닥, 벽, 천장이 구분되어 존재하는, 일정 부분 완결된 공간이지만 전제 자체가 네 개의 빛이 동시에 비추는, 네 개의 빛이 마주하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라서 더 완결되어 보이는 구조물로 만들고 싶었다. 빛이 들어오는 커튼이 쳐진 창 역시 익숙한 광경이지만 익숙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말로 전달되지 않는’ 안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커튼이 쳐진 창밖으로 다른 관객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흐릿하게 볼 수 있는데 이는 관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닥에 점토를 깔아 점점 마르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 것도 마찬가지다. 전시 첫날의 점토는 푹신한 듯 질퍽한 느낌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깨지고 금이 간다. 점토의 금은 자연건조와 함께 생겨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무게로 인해 만들어져 움직임을 기록한다. 언제 전시장을 방문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하며 관계를 맺게 된다.
- ‘백색 위에 2015 다잇쏘 두 개, 특별한 티비, Chris Giliberto, 벽지, 고무리브, 대범마트까지 180, 180, 180’ 앞에서 관객이 음악을 재생하면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전시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즐겨 듣는 음악이 울려 퍼지니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띠며 전시를 감상하게 되었다.
관객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작가가 제작하거나 선정한 음악을 제공하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에게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인 동시에 작가인 나를 관객으로 만들어주는 존재이다. 나는 관객이 개입하고 작가와 관객이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관계의 작업을 보여주고, 눈에 보이진 않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을 찾아보고 싶다.
- ‘다 드러나지 않으니까’는 코로나19로 인한 한계 상황에서 작가가 찾아낸 대안과도 같은 작품이다.
팬데믹으로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었던 지역에 아예 갈 수 없게 되었고 온라인 전시로 대체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온라인 전시로 진짜 경험을 얼마나 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어떻게든 관객들과 실제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전시 방문을 희망하는 관객은 전시장에 입장시키는 한편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도 작품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안과 밖을 연결하는 조형물을 생각하다 하나는 안쪽에, 다른 하나는 밖에 연결된 모서리를 떠올렸다. 그러면 전시장 안에서도, 전시장 밖 거리에서도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 드러나지 않으니까’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작품은 한 번에 그 전부를 파악할 수 없다. 한쪽은 건물 밖으로 나가야 볼 수 있고, 다른 한쪽은 건물 안에서만 볼 수 있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양쪽 모두에서 동일한 형태를 보게 되지만 한눈에 볼 수는 없는 조형물이다. 밖에서 볼 때는 작아 보이지만 안에서 보면 상당히 커서 공간을 점령한 것처럼 침투하는 모서리이자, 또 하나의 기준이 되어 공간을 채워나갈 수 있는 모서리이기도 하다. 나는 관객이 보내준 사진이나 영상을 온라인에 게시해 오프라인에서 직접 관람하지 못한 관객도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이 작품을 통해 관람과 참여, 관객과 예술가, 안과 밖의 오래된 관계, 그리고 추상과 구상의 유기적 관계에 대해서 실험하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흰색으로 추구하는 사진과 조각의 사이
안소현 작가
- 꽤 오랫동안 ‘화이트’를 모티브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흰색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의 개인전 ‘Another White’(2020)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순수성에 대한 의문, 이중적이거나 모순적이고 대립적인 상황, 고정관념으로 결정된 이미지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에게 흰색은 어떤 이름 하에서든 쉽게 정당화되는 색처럼 느껴졌다. 흰색은 순수와 순결, 민족에 대한 것 등 당위성을 강요받는 색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그렇게 받아들이라고 강요당할 수 있는 불안정하면서도 약한 색이 흰색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화이트’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일상에서도 흰색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청주창작스튜디오에 머물 때 산책을 자주 했는데, 어느 날 페인트칠이 진행되는 건물 주변에서 흰색 페인트가 묻어 있는 나무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무의 페인트칠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관찰하고 촬영했는데, 그것을 도큐먼트처럼 보여주고 싶어 ‘Another White S #1-7’(2020)에서 내가 찍은 사진 중 7점을 선택해 연작처럼 설치했다. 대형 설치 작업인 ‘Another White’는 현장에서 채집한 나뭇가지를 찍은 사진이다. 총 4점의 작품으로 나뭇가지만 있는 이미지,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두 개의 이미지, 하얗게 칠해진 손만 등장하는 이미지로 구성된다. 전시 ‘Another White’에 작품을 선보일 때, 빛의 효과를 주고 싶어 조명지에 인화한 뒤 뒤에 조명을 설치했다. 조명지는 그 특성상 빛을 받으면 이미지가 선명하고 밝게 드러난다. 또 조명지는 일반적인 인화지와 달리 액자나 지지대 없이도 단독으로 설치 가능해 설치와 사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작품을 선보이는 데에 적합했다. ‘Another White’는 내가 지금까지 지속해온 작업과 접근 방식이 조금 다름을 의미한다. 대상을 선택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포착함으로써 하얀 일루전을 추구했던 이전의 작업에 만남(encounter)의 의미가 더해졌다.
- ‘Another White’에 전시된 작품들을 이야기하면서 대화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만남이란 키워드를 염두에 둔 것인가?
그동안의 작업에선 사물이든 꽃이든 내가 원하는 대상을 가져다가 나의 의지대로 흰 칠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어찌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대로만, 인위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연히 발견한 흰 칠이 된 나뭇가지에 어울리게 내 손을 칠했다. 그 과정에서 흰색은 나와 대상의 연결고리가 되었고, 나를 다른 대상과 만나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그동안 흰색을 내 안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도구로만 여겼었는데 이번엔 내가 대상과 무언가를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안에서 나 혼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만남과 선택, 어울림의 과정을 통해 대상과의 거리감을 인지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조명은 빛의 효과를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로 기능하고 있다.
나는 조각과 사진(이미지)과의 관계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과정 중에 있다. 현실을 포착하는 사진의 특성과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조각을 연결하고자 사진을 이용한 설치의 방법을 선택했다. 사진에 빛을 더해 여백(검정)과 대비되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한편 공간 속에서 사진을 체험할 수 있는 연극적인 요소를 제공하고자 조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2017년의 전시 ‘Beyond White: Illumination’에서부터 빛이라는 요소를 더해 조각적인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여태까지의 작업을 보면 꽃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가장 순수한 에센스에서부터 폭력, 강요까지도 담아내는 다양하고 복잡한 흰색의 의미를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이미지가 꽃이라 생각했다. 나에게 꽃은 축하, 애도와 같은 대비되는 의미를 모두 전달할 뿐만 아니라 진정성을 가진 오브제이다.
- 사진에 손을 같이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손은 인체를 상징하는 소재로 인간, 나아가 보다 근원적인 것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신체의 일부인 손이 화이트, 하얀 대상과 만나는 과정 모두는 실재하는 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표현한 것이다. 대상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한편 고정된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오브제(대상)만을 품고 있던 공간은 하얗게 칠해진 손과 만남으로써 행위를 포함하는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