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 갤러리’ 이번 회는 ‘새처럼 하늘을 날며 세상을 내려다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란 상상을 작품에 담아낸 김승환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 스스로 작가 김승환을 소개한다면?
나는 ‘Bird Pit’이라는 이름으로 그림과 오브제를 발표하고 그것들을 상품으로 제작하거나 아트북으로 출판하는 사람이다. 이런저런 매체를 넘나들면서 작업하지만 주로 일러스트레이션의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새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그리는 편인데, 현대인들이 새장에 갇혀 있는 새와 유사하다는 생각에 착안했다. 사람과 동물 등을 둘러싼 환경, 그런 환경에서 생기는 부조리나 역설, 웃음이 나는 상황을 희화화해서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드로잉을 많이 하는 편이다. 전시장뿐만 아니라 SNS 플랫폼, 엄밀히 말하면 인스타그램이 가진 성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 김승환의 드로잉은 항상 책으로도 출간되는가? 2015년 출간된 ‘Furred’(Pimple)를 시작으로 ‘Bird pit’(Pimple, 2017), ‘I used to be your neighbor ♡’(Pit Press, 2019)에 이르기까지 총 9권의 책이 발표되었고, 그중에는 일반적인 책의 크기나 형태를 벗어난 것도 있다. 그저 작품이 실리는 화집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처럼 다가왔다.
대체로 책의 형태로 작업의 마침표를 찍는 편이긴 한 것 같다. 원래는 책이라는 매체에 더 관심이 많았다. 전공이 시각디자인이기도 했고, 특히 책의 만듦새나 인쇄 방식에 흥미를 갖고 시작한 작업이었는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었다. 책을 만들다 보니 내가 전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담아내고 표현하는 그릇으로 드로잉의 방식이 더 적합하다고 느끼는 전이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작업이 책으로 만들어지면 그것이 또 하나의 원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화이트 큐브에 거는 것도 매력적인 방식이지만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공간을 이동하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 책이라는 매체가 갖는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동안 전시장, 전시에 대해 여러 담론이 만들어져왔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주제를 고민하고 있다.
- 그림의 주재료가 색연필과 오일파스텔이다. 실제로 보면 크레용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많이들 사용하는 유성 색연필인데, 꾹꾹 눌러 칠해서 색연필보다 두껍게 느껴지고 크레용으로 그린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표현적인 측면에서 의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형 작업을 색연필로 완성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오일파스텔을 사용하게 되었다. 작은 크기의 드로잉들은 색연필, 캔버스 천에 그린 큰 작업들은 오일파스텔을 사용했다. 건식재료를 많이 쓰는 편이다.
- 모든 그림이 매우 꼼꼼하게 그려졌다. 작은 그림들도 그려진 이미지가 섬세하고 성실하다. 윤곽선은 무엇으로 그린 것인가?
홀더 연필(2B)을 쓰는데, 연필심을 계속 날카롭게 깎아가며 그린다. 연필로 그린 형상을 색연필로 칠하다 보면 그 둘이 겹쳐져 스며들 듯이 뭉개지기도 하는데, 섬세함과 거침이 상호작용을 이루며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
- 스페이스몸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Portraits of the ugly’에 전시된 작품 속 사람들의 표정이 흥미로웠는데 그중에는 입 모양이 ‘∩’인 사람들이 꽤 많았다.
매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담으려 했다. 이번에 전시 제목과 동명인 ‘Portraits of the ugly’(2017) 시리즈도 전시되었는데 못난이들을 그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하나의 패턴처럼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표정이 꼭 부정적인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울상처럼 보이지만 기분이 좋아도 그와 같은 표정이 나올 수 있다.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게 느껴져 그런 식으로 많이 그렸다. 못난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못난이라는 단어에 애정이 담기기도 한다.
- 작품의 가장자리에 마치 무슨 색이지 확인한 것 같은 흔적들이 보인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고, 당시 색연필이란 재료를 많이 안 써봤던 상황이라 테스트해본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쌓이다 보니 시각적으로 매력적이었다. 완성되지 않은 흔적을 남긴다는 점이 내가 하려는 이야기와도 잘 맞아 보였다. 그래서 그 드로잉 연작으로 아트북을 제작할 때 낙서했던 흔적들도 그대로 살려 출판했다. 내가 작업을 진행하면서 고민했던 흔적들이 불만족스러워하는 불완전한 군상 드로잉을 향해 새똥을 싼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 개별 작품마다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등장한다. 눈으로 보면서 머릿속으로 어떤 상황인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수학 공식을 적는 사람이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제프 쿤스(Jeff Koons) 등의 작품이 그려진,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그린 드로잉이 기억에 남는다. 전시장에 놓인 바나나 오브제는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하다.
일단 수학 공식은 인터넷에서 찾은, 실재하는 공식이긴 한데 나도 잘 모른다. ‘낙서하고 있는 사람도 그게 무슨 공식인지 알고 있을까?’란 우스운 상상을 하면서 그렸다. 그림 속 작품들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끝없이 소비되는 이미지들이어서 가져왔다. 바나나는 ‘I used to be your neighbor(2019)’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오브제로 만든 것이다. 그림이 공간으로까지 확장되는 방식을 실험해본 것이다. 파편화된 해프닝을 그린 거라 그림 속 이미지 하나하나의 의미를 분석하기보다 그냥 편하게 감상하면 될 것 같다. 나는 어떤 상황을 관망하기도, 풍자하기도 하고 싶다. 그러나 내러티브와 의미는 열려 있는 작품이다. 애초에 이야기를 확정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가 없다. 오일파스텔로 그린 큰 작품의 경우 밑그림을 그려 화면 구성을 계획하기도 하지만 작품 대부분은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그리는 편이다. 나는 점과 점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떠오른 이미지를 하나 그리고 그것을 보며 떠오르는 또 다른 이미지나 상황을 그리는 방식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행위 자체에 재미를 느낀다. 또 전체적인 줄거리는 있지만, 시각적인 이미지 조합에 더 신경을 쓰면서 그림을 그리는 편이다.
- 색채 선택도 비계획적인가?
그렇다. 색채도 즉흥적으로 선택한다. 그러나 미술 교육을 받았고, 관련된 훈련이나 경험이 쌓인 상태라 조형적인 요소나 균형 등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선에서 작업하는 것 같다. 공식이나 계획 등에 근거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작업하지만, 그동안의 학습과 경험이 담긴 감각과 취향에 근거한 선택을 따른다.
- 전시장에는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사람, 비둘기 등의 모습을 한 오브제가 함께 놓였다. 모두 다 직접 제작한 것인가?
사람, 비둘기, 곰, 개미, 바나나 등이다. 모두 ‘I used to be your neighbor’에 등장하는 존재이다. 곰의 경우 이웃이 버린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귀여운 인형이 될 수도 있는 대상이다. 모두 펠트로 만들었는데 내가 천이라는 재료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방식의 드로잉을 위한 매체 실험의 측면도 있었다. 천 위에 즉흥적으로 드로잉하고 그것을 가위로 오려 솜을 채워 넣고 바느질해 완성했고, 그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우연성에 근거한 놀이처럼 진행했다.
- 작품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만한 평범한 모습이 담긴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상상 같기도 하다. 일상과 상상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가?
두 가지가 혼재해 있는 것 같다. 우리의 머릿속 기억도 출처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어제 본 것일 수도 있지만, 영화나 꿈속에서 본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기억의 잔상들을 끄집어내서 스케치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 바나나를 밟아서 넘어진다는 상황은 실제로 있을 법한 상황이지만 누가 어떻게 넘어질지, 그와 관련해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럴 때 상상이 가미되어 실제와 교차한다. 관찰한 것과 기억, 상상으로 구성된 작업이다.
- 그동안 제작했던 작품 중에 전시 ‘Portraits of the ugly’를 위해 일부를 골랐다. 전시 작품의 선택 기준은 무엇이었는가?
섬처럼 떠도는 개개인을 펼쳐놓고 마치 새가 보듯이 내려다보면 모두 소소한 이야기 같다. 그러나 자세히,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 특별한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상반되는 상황의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들, 특히 사람과 사람, 사람과 군중(집단)이 담긴 작품 위주로 선택했다. 매우 심각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별 것 아닌 세상인 것 같다. 나는 ‘진리 혹은 진정으로 언제나 옳다고 할만한 것이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계속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며 살고 있다. 또한 나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냉소적인 태도를 갖지만 냉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삐뚤어진 시선을 가지면서도 내 작업이 삐뚤게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도 사랑스럽게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