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2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1.11.29 10:47:26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 갤러리 이번 회에는 일상 속의 예술과 청년 작가 지원이라는 두 개의 목표를 위해 올해부터 시작된 전시 ‘커브2410’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은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김유리 대구문화재단 창작·창업지원팀 주임과의 일문일답이다.
- ‘2021 아트랩(ArtLab)범어 청년 키움 프로젝트’의 일환인 전시 ‘커브2410’에 대구 지역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신진 작가인 강혜진, 권민주, 김윤태, 정연진이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동안의 성과는 어떤 것이었는지 듣고 싶다.
‘아트랩범어’는 지하철역과 연결된 예술복합공간으로 2012년 ‘범어아트스트리트’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는데 올해 하반기부터 ‘아트랩범어’로 명칭을 바꾸었다. 사람들이 출퇴근하며 매일 오가는 지하도(지하 거리)에 쇼윈도의 형태를 한 공간이 12칸 있다. 그중 세 면이 유리인 오각형 형태의 전시장인 ‘스페이스5’에서 ‘커브2410’가 진행 중이다. 지하도의 번지수가 2410이고 전시장이 모퉁이에 있어 ‘커브2410’라고 이름 지었다. ‘커브2410’은 사회초년생인 작가들에게 개인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작가 활동의 시작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올해 처음 시작했다. 전시뿐 아니라 전문가와의 매칭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해 작업과 전시에 대한 생각을 심화할 수 있도록 했다. 참고로 ‘아트랩범어’에는 예술창작과 예술창업 프로그램이 있으며 예술창작에서는 ‘청년 키움 프로젝트’, ‘범어 입주작가 프로그램’, 융복합 프로그램인 ‘범어길 프로젝트’ 등이 있다.
- 전시장이 투명한 유리로 이뤄진 쇼윈도와 같은 형태이다. 이는 흥미로운 동시에 어려운 환경이다. 전시 기획 및 진행에 있어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세 면이 유리인 오각형 형태의 전시장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필수적인, 쉽지 않은 공간인 것은 맞다. 작가들이 ‘커브2410’에 지원할 때 포트폴리오와 전시 기획안을 함께 제출했는데, 아무래도 첫 개인전이다 보니 자신들의 계획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 매칭을 진행해 공간 해석이나 작품 설치 등에 관한 조언을 받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네 작가 모두 처음 계획보다 확장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전시장이 가진 특성이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적응하는 데에 도움이 된 측면도 있다. ‘커브2410’를 비롯해 ‘아트랩범어’에서 진행되는 전시들은 지하도라는 장소성과 쇼윈도 같은 특성 덕분에 일상에서, 심지어 전시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감상할 수 있다. 실제로 작품을 설치할 때도 이런 부분을 고려했다.
- ‘커브2410’ 외에 소개하고 싶은 ‘아트랩범어’의 프로그램이나 전시가 있다면 무엇인가?
2019년부터 시각예술과 공연을 결합한 ‘범어길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 없이 전시만 선보였었는데 올해 하반기부터 다시 융복합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다.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아트 상품을 판매하는 ‘미술점빵’도 소개할만하다. 참여한 관객들이 배지(badge)나 그립톡을 구매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 해당 작가를 알게 되고 작업 세계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아트 상품 구매자 중 일부는 자연스레 전시장을 향하거나 작품을 소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예술 공간이라는 ‘아트랩범어’의 정체성에 집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할 예정이다. ‘아트스트리트’ 대신 ‘아트랩’이란 이름을 선택한 이유는 그만큼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정형화된 전시나 행사가 아니라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네 참여 작가가 말하는 “나와 내 작품은…”
‘커브2410’에 참여한 신진 작가들에게는 두 개의 공통 질문에 대한 답변을 부탁했다.(답변은 가나다순.)
1. 자신이 어떤 작업을 하는 작가인지 소개해주길 바란다.
2. 이번에 진행한 개인전(주제)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강혜진 - ‘Dance’
1. 나는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억압, 사회적으로 쉬쉬하는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한다. 이를 위해 욕망을 대신하는 무의식이나 환상이 재현되도록 내 주변의 사물들을 마치 처음 바라보듯 주의 깊게 읽어낸 뒤 그 사물들을 변형시켜 설치한다. 아마 관객들은 작품을 보며 어떤 사물을 표현한 것인지 정확히 인지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관객들이 작품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로 연상된 내용과 생각들을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솔직하게 답해 보기를 바란다.
2. 춤의 기원은 최초의 언어적 행위이자 인류가 행한 의사소통이었다. 나는 ‘Dance’의 어원적 의미를 가져와 상호 간 소통을 담아냈다. 전시장의 중심에 놓인 작품인 ‘박자가 맞아야 해’(2021)에서는 메트로놈이 소리를 내고, 그 주위로 다른 작품들이 설치된다. ‘완벽한 퍼즐’(2021), ‘jenga’(2020), ‘모종의 음모 같지 않아요?’(2019)는 메트로놈 박자에 맞춰 춤추듯 서로 공명하며,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업으로 구축한다. 그렇게 작품들이 하나의 내러티브가 되어 관객에게 함께 춤추기를 제안한다.
권민주 - ‘헤테로토피아: 일상’
1. 나는 한 장소(전시장)에 일상을 소재로 한 추상적 형상들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평면 속 조형요소들은 캔버스 밖 입체물로 연결되어 확장된 회화를 보여준다. 실제로 존재하는 구체적 대상을 바탕으로 하지만 추상화되었기 때문에 나의 회화(평면)와 설치(입체)는 실체와 다른 모습이다. 그것들을 통해 현실과 이상, 궁금함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장소를 표현하는 한편 내가 경험했던 유의미한 장소를 관객에게 제시하고 싶다. 관객들이 내가 재현한 장소를 감상하기보다 체험했으면 좋겠다.
2. 내 작업은 실체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헤테로토피아에 가깝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를 뜻하는 유토피아와 달리 헤테로토피아는 장소성과 시간성을 갖고 있다. 내가 공간을 꾸미고 작품들을 설치하는 것은 나의 헤테로토피아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한 시간의 길_2021’(2021)에서는 전시를 준비했던 반년 동안 반복적으로 오가던 공간을 표현했는데, 나의 추상적 형상들은 회화(평면)를 넘어 확장된 공간에 재현된 일상을 보여준다.
김윤태 - ‘Personal Space’
1. 나는 공간을 시각화한 설치와 내부에 조명을 넣은 사진을 통해 나의 감정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진실되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사진과 영상으로 구현하고,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에 맞는 작업을 보여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
2. 사람들은 행동이나 취미가 독특하다는 이유로 내가 평범하지 않다며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또 사진 촬영을 할 때 거리낌 없이 다가와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일은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데, 나에게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타인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 스스로 벽(Personal Space)을 만들었다. 그렇게 벽을 만든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타인들도 나와 같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사진을 통해 Personal Space를 시각화하게 되었다. 개인에 초점을 맞춰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혼자만의 공간을 더 중요시하게 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도 멀어졌다. 결과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Personal Space는 단순히 심리적이고 물리적 공간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정체성이라는 생각에서 ‘Personal Space’를 시작하게 되었다.
정연진 - ‘자본주의의 우산’
1. 나의 작업은 순간을 담아낸다. 사실 나는 한 가지 목표를 정해 작업하지 않고 순간을 담아내듯이 매 순간 나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타인에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서로에게 피곤한 일이기에 나는 나의 감정을 그림으로 해소한다. 또한 섬세한 작업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감정에 잠식되지 않도록 나와 감정을 분리한다. 순간의 감정(생각)을 표현하기에 빠른 건조 속도를 가진 아크릴 물감이 적합하다고 생각해 사용하고 있는데,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물감으로 평범하지만은 않은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2. 현대인들이 보여주는 필요 이상의 소비와 관련해 그 대상이 되는 물건들이 가진 속성을 생각했을 때, 명품이라 불리는 고가의 상품이 떠올랐다. 그래서 명품의 가치와 의미를 상징하는 명품 회사들의 로고를 선사시대의 생존 도구에 그려 패러디했다. 필수적인 생활 도구였던 사물들의 가치와 그것이 전도된 오늘날의 가치를 비교하며 현대인의 소비 욕망이 과연 인간의 본성인지, 경쟁과 비교를 부추기는 사회구조 때문인지 고민해봤다. 인기와 유행에 함몰되어 물욕으로 경쟁하는 현실 속에서 겉으로 보기 좋은 것들로 치장만 한다면 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력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