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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국문과생들 큰일났다"...항일운동 의병장 면암 ‘최익현’ 고택서 고문헌 2만여 점 나와

문화 개발 사업용 선비충의문화관 건립 추진 중 유물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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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민주⁄ 2022.01.07 15:48:05

최근 청양군 면암 최익현 고택에서 발견된 병풍 12폭. 각 그림에서 면암 최익현의 생애를 엿볼 수 있다. 사진 = 청양군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19세기 말 문신이자 항일운동 의병장인 면암 최익현(1833~1906)이 지냈던 청양 고택서 옛 문헌 2만여 점을 발견했다고 5일 밝혔다. 특히 그의 일대기를 12폭의 수묵화에 수놓은 병풍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헌들은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송암리 ‘모덕사’의 사랑채인 중화당에 비치된 나무 궤짝 안에서 나왔다. 모덕사 내부엔 사당과 영당, 안채, 중화당, 춘추각, 대의관이 있으며 중화당은 최익현이 충남 정산(현 청양 목면)에서 거주했던 곳이다.

유물은 그가 작성한 공문서뿐만 아니라 중앙관료 시절의 생활 기록 및 흑산적행일기·탐적일기·남중일기 등도 포함한다.

또한 제주·흑산도 유배 시절 최익현이 아버지·형에게 보낸 편지, 고종이 최익현에게 내린 칙명도 함께 발견됐다. 최익현의 일대기가 담긴 수묵화 병풍과 최익현의 장남인 최영조와 후손들이 남긴 문서도 여기서 나왔다.

 

청양군 모덕사 전경. 사진 = 청양군 

 

다량의 유물은 1945년 광복 전후로 최익현 선생의 증손 최병하가 정리했다고 알려졌다. 고서와 중요 간찰(편지) 7000여 점은 춘추각에, 생활 유품은 대의관에 보관됐다.

충청도의 단일 고택에서 이처럼 많은 유물이 나온 건 논산의 명재(윤증의 호) 윤증 고택 이후 최초라 유의미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SNS에서 한 유저는 “사학과·국문과생들 큰일났다”며 우스갯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해석 과정을 거친 뒤 학술 자료로 세상에 나오게 되면 수험생과 학과생은 공부할 양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편 청양군과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은 문화개발사업을 위해 선비충의문화관 건립을 추진하다가 유물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조한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은 “면암 선생이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소홀히 취급된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청양군 관계자는 선비충의문화관 사업과 면암 기념관 전시 콘텐츠를 활성화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청양군과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은 모덕사 안에 ‘면암기념관’을 세워 이번에 나온 문헌을 분류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거친 뒤 전시할 예정이다.

 

면암 최익현의 초상. 사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면암 최익현 선생은 19세기 최고 권력자였던 흥선대원군이 체결한 일본과의 통상조약에 반대하다 제주도·흑산도 등에 유배됐다.

이후 1906년 약 400명의 의병을 이끌고 항일의병운동을 전개했지만 일본군에게 체포됐다. 그는 대마도에서 단식 투쟁을 했고 그해 병을 얻어 끝내 숨졌다. 그의 영정과 위패는 생전 그가 머물던 고택 옆 모덕사에 안치됐다.

 

<문화경제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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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익현  최익현 고택 고문헌  선비충의문화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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