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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친환경 변기’를 만든다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삼성전자·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저개발국 위한 ‘RT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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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2호 김금영⁄ 2022.09.06 11:22:34

8월 16일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빌 게이츠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의 모습. 사진=삼성전자

전자회사가 변기를 개발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복권) 이후 광폭 경영 행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최근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자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이하 게이츠재단) 이사장인 빌 게이츠와의 첫 협업 성과물이 나와 주목받았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게이츠재단과 협력해온 ‘RT(Reinvent the Toilet·재발명 화장실) 프로젝트’를 끝내고 8월 25일 경기도 수원시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종료식을 열었다. 삼성종합기술원은 2019년부터 게이츠재단과 RT 개발을 위해 협력해 왔다.

 

이날 종료식에는 진교영 삼성종합기술원장(사장), RT 프로젝트 참여 임직원, 듀레이 콘 게이츠재단 부(副)디렉터, 선 김 게이츠재단 RT 담당, 이용재 게이츠재단 사외고문 등이 참석했다.

삼성이 개발한 신개념 친환경 화장실 모델. 사진=삼성전자

종료식엔 이 부회장과 게이츠 이사장도 참석했다. 이들이 만난 것은 지난 2013년 이후 9년 만이다. 당시 두 사람은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서 2시간가량 만찬을 갖고 IT(정보기술)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바 있다.

이번엔 글로벌 사회공헌활동을 위해 힘을 모았다. 종료식에 앞선 8월 16일, 이 부회장은 한국을 방문한 게이츠 이사장을 만나 RT 프로젝트 개발 결과를 공유했다. 이날 면담에서 게이츠 이사장은 게이츠재단의 비전과 현재 추진 중인 사회공헌활동 현황을 설명했으며, 이 부회장은 “삼성의 기술로 인류 난제 해결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RT 프로젝트는 게이츠재단이 저개발국을 위해 추진해 온 신개념 위생 화장실 보급 프로젝트다. 2020년 기준 세계보건기구(WHO)·유니세프에 따르면, 물과 하수 처리 시설이 부족한 저개발국에는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약 9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야외에서 대소변을 해결하고 있다.

 

이로 인한 수질 오염으로 매년 5세 이하의 어린이가 36만 명 넘게 설사병 등으로 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자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인 빌 게이츠(위)는 2019년 삼성에 RT 프로젝트 참여 요청을 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의 기술로 인류 난제 해결에 기여하겠다”고 답했다. 사진=삼성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화면 캡처

게이츠 이사장은 평소 “화장실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지키는 성소다. 하지만 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이 그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게이츠재단은 저개발국 화장실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억 달러(약 2671억 원) 이상을 투입해, 별도의 물이나 하수 처리 시설이 필요 없는 신개념 화장실의 개발 및 상용화를 2011년부터 추진해 왔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과 대학을 통해 관련 기술 개발을 시도했지만, 기술적 난제 등으로 사회공동체용 대형 화장실만 개발했을 뿐, 가정용 RT 개발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김기남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은 RT 프로젝트에 대해 “이 과제는 좋고 싫고를 떠나서 뭔가를 위해서 해야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진=삼성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화면 캡처

이에 게이츠재단은 삼성에 도움을 요청했다. 여기엔 특히 삼성전자의 중앙연구소인 삼성종합기술원의 역할이 컸다.

 

삼성은 그동안 ‘함께 가요 미래로! 인에이블링 피플(Enabling People)’이라는 사회공헌 비전 아래 ▲감염병 극복 ▲의료공백 해소 ▲청년 일자리 제공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극복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 중심엔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87년에 설립한 연구개발(R&D) 허브, 삼성종합기술원이 있다. 현재 삼성종합기술원에는 17개 연구소에서 1200여 명의 연구원이 ▲인공지능 ▲환경 ▲에너지 ▲헬스 ▲나노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미래 혁신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RT 프로젝트, 저개발국 질병 확산 효과적으로 막는 ‘슈퍼 백신’ 역할 기대

 

김낙종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은 “우리의 기술을 이용해서 봉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고 RT 프로젝트 진행 과정을 설명했다. 사진=삼성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화면 캡처

8월 29일 삼성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삼성전자, 신개념 화장실로 지구의 난제 해결에 동참’ 영상에 따르면, 게이츠재단은 ‘한번 이걸 사업화할 수 없겠냐’며 2019년 삼성에 RT 프로젝트 참여 요청을 했다. 해당 영상에서 김기남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은 “이 과제는 좋고 싫고를 떠나서 뭔가를 위해서 해야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는 현장에서 더욱 여실히 느껴졌다고. 김기남 회장은 “게이츠재단 사람들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초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며 “아주 맑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이 화장실을 쓰는데, 거의 변이 사람 앉는 자리까지 차 있더라. 그곳에서 아이들이 볼일을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RT 프로젝트를 보고받은 이 부회장은, 삼성종합기술원에 기술 개발을 위한 T/F(전담팀) 구성을 지시했다. 또, 코로나19 펜데믹으로 만남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게이츠 이사장과 이메일, 전화, 화상회의 등을 통해 진행 경과를 챙겼다.

삼성은 3년간의 연구개발을 거쳐 ▲구동 에너지 효율화 ▲배출수 정화 능력 확보에 성공했다. ▲배기가스 배출량 저감 ▲내구성 개선 ▲RT 소형화 등 게이츠재단의 유출수 및 배기가스 조건을 만족하는 요소기술 개발에도 성공했다. 사진=삼성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화면 캡처

삼성에 따르면, 당시 게이츠재단은 삼성전자에 과제 수행 비용 수천만 달러 지원도 제안했으나, 삼성은 이 부회장의 뜻에 따라 이를 정중히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2019년부터 가정용 RT 구현을 위한 ▲기초 설계 ▲부품 및 모듈 기술 개발 ▲성능 구현 ▲양산화 위한 프로토타입 개발에 착수했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됐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김낙종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은 “우리의 기술을 이용해서 봉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며 “어려운 과제를 진행할 때 보통 전 세계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를 모으면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RT 프로젝트에 대해 된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RT 개발에는 어렵기로 소문난 고체역학, 정역학, 유체역학, 동역학, 열역학 이론을 적용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이 개발한 가정용 소형 RT 프로토타입. 사진=삼성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화면 캡처

사용자 시험 단계에선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기도 했다.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들은 “갑자기 탈수기 앞부분이 호박씨로 막혔다”는 연락을 받고 놀란 가슴을 부여잡기도 했다. 개발 과정에서 오물이 넘쳐 냄새가 나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중간중간 답이 안 보여서 상당히 방황도 많이 했고, ‘이거 진짜 안 되나? 안 되는 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기도 했다고.

그렇게 열두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RT를 성공시키기 위해 ▲소량의 물로 액체와 고체를 분리하는 ‘화장실 모듈’ ▲분리된 대소변을 빠르게 정화시키는 ‘바이오 정화처리 모듈’ ▲분해되지 않은 찌꺼기를 건조하고 연소시켜 재로 제거하는 ‘고체처리 모듈’ 등 세 가지 모듈을 분리 개발했다.

결국 삼성은 3년간의 연구개발을 거쳐 ▲구동 에너지 효율화 ▲배출수 정화 능력 확보에 성공했다. ▲배기가스 배출량 저감 ▲내구성 개선 ▲RT 소형화 등 게이츠재단의 유출수 및 배기가스 조건을 만족하는 요소기술 개발에도 성공했다.

또, 열처리 및 바이오 기술을 활용해 환경에 무해한 유출수를 배출하는 기술을 개발했으며 처리수 재활용률 100%를 달성했다. 삼성은 이를 바탕으로 10인용과 5인용 RT 개발에 성공했으며, 최근 실사용자 시험까지 마쳤다고 설명했다.

게이츠재단은 앞으로 RT 양산을 위한 효율화 과정을 거쳐, 이를 하수시설이 없거나 열악하고 물이 부족한 저개발국에 제공할 계획이다. 삼성은 RT 프로젝트 기술 특허를 저개발국 대상 상용화 과정에서 무상으로 다른 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사진=삼성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화면 캡처

삼성과 게이츠재단의 이번 성과는 저개발국 빈민의 열악한 위생 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듀레이 콘 게이츠재단 부디렉터는 지난해 7월 기고문 ‘위생의 미래: 화장실 재창조 10년(The future of sanitation: 10 years of reinventing the toilet)’에서 RT가 치명적인 질병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는 ‘슈퍼 백신’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게이츠재단은 앞으로 RT 양산을 위한 효율화 과정을 거쳐, 이를 하수시설이 없거나 열악하고 물이 부족한 저개발국에 제공할 계획이다.

삼성은 RT 프로젝트 기술 특허를 저개발국 대상 상용화 과정에서 무상으로 다른 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프로젝트 종료 이후에도 게이츠재단에 양산을 위한 컨설팅 지원을 지속할 방침이다.

김기남 회장은 “묵묵히 이렇게 오랜 기간, 각자 역할을 했기 때문에 RT 완성도가 올라갔다. 우리 기술을 활용해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거기에 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음 세대에 미래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기술, RT는 우리가 세상에 쏘아 올리는,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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