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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컬러 마케팅②] 시각은 곧 미각, 색은 곧 맛… 주류업계의 재미난 컬러스토리

카스=투명, 테라=초록, 클라우드=갈색, 소주병은 점점 투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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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6호 김응구⁄ 2022.11.18 17:43:26

주류는 수없이 많은 컬러를 사용한다. 어떨 땐 시그니처 컬러가 되고, 어떨 땐 이벤트 컬러가 된다. 사진=김응구 기자

흔히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 어둡거나 밝은색보다 화려한 색이 인기를 끈다. 원색 계열의 옷이나 진한 색 화장품이 잘 팔린다. 그 같은 구매심리로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이다.

기업들의 컬러 마케팅은 오래전부터 있던 일이다. 1920년대 미국의 한 만년필 회사는 까만색 만년필을 빨간색으로도 만들었다. 남성들의 전유물을 여성들과도 공유하겠다는 의도였다. 결과는 대성공. 색깔은 그렇듯 판매전략의 중요한 요소다.

주류는 색깔에 특히 민감하다. 몇몇 제품은 특정 색을 아예 시그니처 컬러(특징적인 색)로 내세운다. 아니면 이벤트성 제품이나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할 때 색을 강조한다. 시각적인 효과를 믿는 것이다.

시작부터 작정했든 우연히 떠올렸든, 술과 색은 한몸처럼 움직인다. 시각은 곧 미각이다. 주류업계의 ‘컬러 스토리’, 어떤 것들이 있을까?

컬래버로 색을 더욱 강조한 샴페인

세계 유명 주류 브랜드들은 때에 따라 강렬한 컬러 마케팅을 펼친다. 주로 뮤지션이나 디자이너 등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 또는 색다른 콘셉트의 장치 중 하나로 컬러를 앞세운다. 그중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쪽은 샴페인이다.

먼저, 프랑스의 명품 ‘파이퍼 하이직(Piper Heidsieck)’을 보자. 이 브랜드는 유명 패션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와 함께 굉장히 놀라운 샴페인 두 가지를 선보인 적이 있다. ‘장 폴 고티에 스킨 패키지’와 ‘장 폴 고티에 보디가드 패키지’가 그것이다.

스킨 패키지는 1850년대 프랑스 파리의 ‘물랑루즈’(음악당)에서 볼 수 있었던 무희의 춤인 ‘캉캉(Cancan)’을 샴페인 병으로 표현해낸 ‘작품’이다. 검은색 라텍스(latex)로 병을 감싸고, 이를 또다시 검은색 망사스타킹으로 감쌌다. 병목은 ‘쾌걸 조로’가 쓰는 마스크 모양의 빨간색 보타이(나비넥타이)로 장식했다. 병 자체만으로 무도회를 떠올리게 한다.

라텍스와 망사스타킹은 실제 장 폴 고티에가 자주 사용하는 재료다. 당시 이 제품이 출시됐을 때 전 세계 주류업계와 패션업계에선 “파이퍼 하이직의 레드 레이블이 장 폴 고티에를 만나 매혹적인 블랙을 입었다”는 호평을 얻었다.

실제 나일강 악어의 가죽을 12일간 밤낮으로 가공해 병에 입힌 보디가드 패키지도 꽤 인기를 끌었다. 짙은 빨간색이 너무도 강렬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프랑스 샹파뉴(Champagne)의 유명 샴페인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는 해마다 핼러윈 시즌이 되면 전 세계에서 ‘옐로윈(Yelloween) 파티’를 연다. 뵈브 클리코를 상징하는 색은 노랑이다. 여기에 핼러윈을 합쳐 ‘옐로윈’이 됐다.

지금의 우리에겐 그 단어조차 입 밖으로 꺼내기 조심스러운 핼러윈이 돼버렸지만, 뵈브 클리코의 이 행사는 매년 시즌 때마다 미국, 영국, 프랑스, 홍콩 등에서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까지 서울 청담동 등에서 열렸지만, 당분간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돼버렸다.

샴페인 ‘파이퍼 하이직’은 유명 패션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와의 협업으로 물랑루즈를 연상시키는 제품을 선보였다. 블랙과 레드의 조화가 뛰어나다. 사진=문화경제 DB

보드카, 강렬하거나 혹은 아무 색이 없거나

미국 ‘스카이(SKYY)’ 보드카는 코발트블루의 병 색깔로 유명하다. 여느 보드카가 그렇듯 길쭉하면서도 곧게 뻗은 병을 온통 코발트블루가 휘감고 있어 무척 강렬하게 느껴진다. 빨간색과는 또 다른 강렬함이다.

스카이는 마케팅 차원에서 처음부터 이 색깔을 작정한 건 아니다. 오히려 우연에 가깝다. 첫 출시 전인 1992년,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의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파란 하늘에서 영감을 얻어 이 색을 선택했다. 덧붙여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을 상징하는 ‘SKY’에 ‘Y’ 하나를 더 보태 SKYY로 이름 지었다. 이전까지 쉽게 볼 수 없었던 병 색깔과 모양에 소비자들은 환호했고, 이후 각종 홍보와 마케팅에 색깔을 강조한 전략을 삽입하며 효과를 극대화했다.

보드카를 얘기할 때 스웨덴의 ‘앱솔루트(ABSOLUT)’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 보드카는 광고 마케팅이 기가 막힐 정도로 뛰어나다. 그 중심은 흔히 병원에서 보는 링거 모양의 앱솔루트 병이다. 형태는 단순하면서도 모던하다. 그런데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다. 이 병의 레이아웃만을 따서 도시, 자연, 사물 등에 입힌 광고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대개 보드카 제품이 그렇듯 앱솔루트도 다양한 플레이버(flavour) 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레몬라임, 바닐라, 감귤, 복숭아, 서양배 등의 맛과 향을 강조한 제품들은 병마다 그 이미지에 맞는 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앱솔루트는 종종 캠페인성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인다. 그중 ‘앱솔루트 세상에서 편견 따위는 없다(In an ABSOLUT world, There are no lavels)’는 메시지를 담은 캠페인이 압권이다. 이는 ‘외모, 직업, 인종, 성(性), 사회적 지위 등 세상에 존재하는 각종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앱솔루트는 그러면서 과감하게 벌거벗은 병을 내세웠다. ‘앱솔루트 노 레이블(No Label)’이다.

병에는 편견과 선입견을 상징하는 로고와 라벨을 없앴다. 라벨이 곧 선입견이라는 얘기다. 아무것도 없이 그대로 바라보자는 의미다. 병 하단에는 작은 크기의 캠페인 선언문 라벨이 붙어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 앱솔루트의 ‘편견 없는 세상’ 캠페인에 동참하도록 한 것이다.

남들이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을 두르고 화려하게 새 제품을 데뷔시킬 때 앱솔루트는 오히려 거꾸로 행보를 보였다. 투명한 것도 색에 포함할 수 있다면 과감히 그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의 울림이 얼마나 큰지도 보여줬다. 대단한 마케팅이 아닐 수 없다.

보드카 ‘앱솔루트’는 캠페인성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이며 무색 투명한 병을 선보이기도 했다. 사진=문화경제 DB

짙은 빨간색 왁스로 봉인한 미국 버번위스키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한때 프랑스 론와인생산자협회(Inter-Rhône)는 국내에서 해마다 와인 행사를 열었다. ‘발레 뒤 론 와인 시음회’라는 이름의 행사다. 발레 뒤 론(Vallée du Rhône)은 석회질 토양의 프로방스(Provence) 지방의 중심 지역이다. 일조량이 뛰어난 기후 덕분에 이곳에서 21개의 포도품종을 재배한다.

이 협회는 레드와인을 선호하는 한국의 와인소비자 혹은 와인애호가를 고려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생산량의 85%가 레드와인인 발레 뒤 론 와인은 이를 강조하고자 1999년부터 해외 주요 시장에서 ‘싱크 레드, 싱크 론(Think Red, Think Rhône)’이라는 테마를 앞세워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행사장의 주요 공간이나 소품을 빨간색으로 물들이고, 홍보의 도구에도 이 색깔을 집어넣는다.

북미지역의 슈퍼 프리미엄 버번위스키 ‘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는 최근 국내에서도 바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위스키는 까다로운 수작업 생산공정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 소량만 생산한다. 국내에는 지난 2008년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

메이커스 마크는 병 모양도 개성 있지만 흐르는 모양의 빨간색 왁스 병마개가 상징이다. 이 왁스 봉인은 사람의 지문처럼 병마다 각각의 고유한 모습을 띠고 있다. 제품마다 왁스의 모양이 다 다르다는 얘기다. 뜨거운 왁스가 장인들의 스타일과 몸 움직임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버번위스키 ‘메이커스 마크’는 짙은 빨간색 왁스로 병을 봉인한다. 사진=문화경제 DB

이제 국내 맥주 3사의 병색은 모두 다르다

국내 맥주업계 ‘빅3’인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는 대표 맥주의 병 색깔이 모두 다르다. ‘카스’, ‘청정라거-테라’, ‘클라우드’는 각각 투명, 초록색, 갈색이다.

색깔을 논하기 전에 우선 맥주병 색깔이 오랜 시간 갈색이었던 이유부터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맥주는 빛에 닿으면 색과 맛이 변한다. 맥주 재료 중 하나인 홉(hop)이 빛에 반응하면서 새로운 물질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맥주 안의 단백질이 응고되면 침전물도 생긴다. 당연히 소비자는 시각적으로 불쾌하다. 이 같은 이유로 대부분의 맥주 브랜드는 갈색 병을 선택했다. 갈색은 햇빛을 거의 차단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공식은 깨졌다. 먼저, 하이트진로는 2019년 3월 테라를 처음 출시했다. 사람들은 그 맛을 보기도 전에 확 달라진 테라의 색에 시선을 집중했다. 갈색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색을 차별화하면서 ‘청정’하고 ‘신선’하다는 이미지를 앞세우려는 전략이었다. 청정지역인 호주 골든트라이앵글의 황금보리를 맥주 원료로 사용하며 청정을 강조하고, 기존 갈색의 틀을 깨고 초록색을 선택해 신선하게 다가가겠다는 점을 어필한 것이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3월 투명 병의 ‘올 뉴 카스’를 새롭게 출시했다. 당시 회사 측은 투명 병을 도입해 소비자가 추구하는 심플함과 투명성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그와 함께 시각적으로도 생생하게 카스의 청량감과 신선함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새 디자인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새롭게 진화하고자 하는 카스 브랜드의 의지를 상징한다”고 밝혔다. 오비맥주도 초록색 병은 있다. 2020년 7월 출시한 ‘한맥’의 색이 그렇다.

이에 반해 롯데칠성음료는 ‘클라우드’의 병 색깔을 기존 갈색으로 계속 유지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출시 7주년을 맞아 패키지 디자인을 리뉴얼했을 뿐이다. 새롭게 다듬은 라벨은 골드, 화이트, 블랙으로 맥주의 주재료인 보리를 더욱 두드러지게 표현하며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그러나 주류업계는 앞으로 좋든 싫든 투명 병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환경부의 ‘자원재활용법’ 시행에 따른 조치 때문이다. 현재 국내 음료업계는 투명한 페트병만 사용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음료업계는 대부분의 용기를 투명한 색으로 교체했다. 음료와 달리 주류는 앞서 밝힌 대로 산화(酸化) 등의 이유로 2025년까지 유예기간을 받아놓은 상태다. 결국, 갈색 맥주병도 앞으로는 전부 투명한 색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앞서 테라와 한맥의 초록색을 얘기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입맥주도 있다. 네덜란드 ‘하이네켄’과 중국 ‘칭따오’다. 하이네켄의 시그니처 컬러가 초록이고, 칭따오 역시 초록과 빨강이다. 칭따오의 경우 폴링카트나 쿨러백 등 굿즈에 초록과 빨강을 십분 활용한다.

국내 대표 맥주 3사의 맥주병 색깔은 모두 다르다. 카스는 투명, 테라는 초록, 클라우드는 갈색이다. 사진=문화경제 DB

초록색에서 투명으로 서서히 바뀌는 소주업계

소주업계에서도 은근한 색깔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오래전 소주제조업체 대부분은 투명한 소주병을 선보였다. 지금의 초록색 병은 30년 전이 시작이다. 1993년 두산경월은 ‘그린소주’를 출시하며 깨끗함을 강조하기 위해 초록색 병을 처음 시도했다. 두산경월은 당시 두산이 강원도 강릉의 경월소주를 인수하면서 만들어진 회사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고 인기를 끌자 다른 브랜드들도 속속 초록색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각 소주는 병 색만 같았고 병 모양은 모두 달랐다. 각자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9년 들어 환경부와 소주제조업체들이 ‘소주 공병 공용화를 위한 자발적 협약’을 체결하면서 소주병의 색과 모양을 통일시켰다. 소주제조업체 모두 ‘360㎖ 용량의 초록색 소주병을 표준 용기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주병의 재활용도 쉬워졌다.

하이트진로가 2019년 ‘진로이즈백’을 내놓으면서 소주업계에 병 색깔이 화두가 됐다. 1970년대의 ‘진로’를 현대적인 감성으로 리뉴얼한 제품인데, 병 모양이나 라벨을 다르게 하면서 색깔 역시 푸른색을 띤 투명 병으로 바꿨다. 알코올도수까지 낮춘 이 제품은 대히트를 쳤다. 지난 3년간 누적 판매만 10억 병을 돌파했다.

이쯤 되니 롯데칠성음료도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올해 9월, 16년 만에 소주 신제품 ‘새로’를 출시했다. 병 색깔을 아예 투명하게, 거기다 도자기를 연상케 하는 유연한 곡선까지 집어넣으며 맞불을 놨다. 더불어 과당(果糖)을 사용하지 않은 ‘제로 슈거(zero sugar)’임을 표방하며 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집중 홍보했다. 이후 판매 시작 한 달 만에 680만 병을 팔아치우며 일단은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경남을 기반으로 한 주류제조업체 무학은 지난 2015년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를 출시했다. 유자·석류·블루베리·자몽·복숭아·파인애플 향과 맛의 이 시리즈는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출시 일주일 만에 200만 병, 이어 두 달 만에 2500만 병 넘게 팔리며 국내 주류시장에 리큐르 열풍을 일으켰다.

무학은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곧바로 중국 수출을 시작했다. 고도주(高度酒) 문화인 중국에 과일소주 같은 제품이 있을 리 만무지만, 당시 무학은 처음으로 중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고, 이후 지금까지 연평균 45% 성장세를 올리고 있다. K-팝 인기와 맞물려 지난해에는 70만 상자를 팔아치웠다.

무학은 지난해 11월 이 컬러 시리즈를 업그레이드한 ‘좋은데이 톡’ 시리즈를 내놨다. 그 가운데 석류와 블루베리는 기존과 달리 상큼한 과즙에 탄산과 컬러를 입혀 소비자의 이목을 끌었고, 출시 3개월 만에 300만 병 이상 판매하는 성과를 거뒀다.

색은 곧 패션이다. 만져보고, 냄새 맡고, 마시기 이전에 보는 것으로 느낌을 미리 알아챈다. 그만큼 시각적인 효과는 매우 중요하다. 술 역시 마찬가지다. 주종과 상관없이 색과 모양은 첫인상을 좌우한다. 맛만으로 승부를 거는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좀 더 강렬하게, 때론 은은하게 색을 표현해내며 소비자의 선택을 종용한다. 색을 좇는 디자이너들에겐 피곤한 일이지만, 색을 즐기는 소비자들에겐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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