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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난 카메라 중독자”…잡스·히치콕 인생사진 남긴 알버트 왓슨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인물·풍경·패션·정물 넘나드는 방대한 작업 세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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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38호 김금영⁄ 2022.12.20 14:09:58

알버트 왓슨 작가. 사진=화목 커뮤니케이션즈

“그는 사진촬영을 위해 처음 만났을 땐 다소 까칠했어요. 이미 어시스턴트를 통해 그가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었죠.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1시간 촬영 시간이 주어졌어요. 1분, 1초도 더 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저는 30분이면 충분하다고 했고, 그는 표정이 밝아졌어요. 사진촬영을 하며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에게 ‘스무 명의 임원과 아침회의 중이라고 생각해 봐요. 내 의견을 반대하는 그들 사이에서 내가 옳다는 것을 확신에 차서 말하고 있는 본인을 상상해서 포즈를 취해봐요’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그가 답했죠. ‘그런 거라면 아주 쉽겠네요. 그건 내가 매일 아침 겪는 일이니까요.’”

알버트 왓슨이 촬영한 애플 창립자 스티브 잡스 사진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패션 포트레이트(인물사진) 대가인 알버트 왓슨 작가가 애플 창립자 스티브 잡스와 만났을 때의 일화다. 2006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 특집 기사용으로 애플 본사에서 촬영이 이뤄졌고, 그 결과 한 손가락으로 턱을 괸 채 정면을 날카롭게 응시하는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사진이 탄생했다.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이라고 흡족해한 스티브 잡스는 해당 폴라로이드 사진을 자신의 책상에 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진은 2011년 10월 5일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당일 애플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실렸고, 이에 따라 왓슨의 존재 또한 사람들에게 더욱 부각됐다.

털이 뽑힌 채 크리스마스 장식 리본을 단 거위의 목을 쥐고 뚱한 표정을 지은 히치콕의 사진은, 왓슨의 커리어와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한 작품이다. 사진=김금영 기자

비단 스티브 잡스뿐 아니라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모델 나오미 캠벨, 배우 우마 서먼·조니 뎁, 예술가 앤디 워홀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 인사가 왓슨의 카메라에 담겼다.

특히 털이 뽑힌 채 크리스마스 장식 리본을 단 거위의 목을 쥐고 뚱한 표정을 지은 히치콕의 사진은, 왓슨의 커리어와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한 작품이다.

스티브 잡스뿐 아니라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모델 나오미 캠벨, 배우 우마 서먼·조니 뎁, 예술가 앤디 워홀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 인사가 왓슨의 카메라에 담겼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 때의 경험은 훗날 왓슨이 특유의 미니멀하고 강렬한 인물 사진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왓슨은 “사진작가로서 유명인을 촬영한 첫 미션으로, 작업 전엔 굉장히 걱정했다. 하지만 히치콕은 굉장히 친절했고, 덕분에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다고 왓슨이 유명인의 사진만 찍은 건 아니다. 모로코 마라케시를 여행하다가 만난 다소 겁먹은 표정의 소년, 마치 목도리처럼 뱀을 목에 두르면서 자유자재로 뱀을 부리던 남자 등 유명 인사가 아닌 일반인의 다양한 삶에도 주목했다. 이 사진들 또한 강렬함이 특징이다.

알버트 왓슨은 모로코 마라케시를 여행하다가 만난 다소 겁먹은 표정의 소년, 마치 목도리처럼 뱀을 목에 두르면서 자유자재로 뱀을 부리던 남자 등 유명 인사가 아닌 일반인의 다양한 삶에도 주목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왓슨이 만난 사람은 다양하지만 촬영할 때의 태도는 동일했다. 피사체와의 소통이다. 왓슨은 “사진을 찍을 땐 대상자와 대화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피사체가 유명인사일 경우 그를 이해하기 위한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유명인사 또한 사진 찍힐 때 걱정을 많이 하기에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긴장을 풀어주는 자세를 유지하려 한다. 히치콕을 찍기 전에도 그의 철학, 영화 등에 대해 조사했고, 그래서 그를 만나 대화할 때 이미 친숙한 느낌을 받았다”며 “일반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촬영할 때 모델이 마라케시 시장의 짐꾼이든 모로코의 왕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친절한 마음을 갖고 모두를 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버트 왓슨은 패션 사진으로도 유명하다. 1977년 패션 잡지 '보그'의 첫 표지 촬영을 시작으로 활동 거점을 뉴욕으로 옮긴 그는 2022년까지 보그의 표지를 촬영한 횟수만 100회가 넘는다. 사진=김금영 기자

그렇기에 왓슨의 사진엔 단지 결과가 아닌 사진을 찍는 과정, 스토리가 담겨 있다. 예컨대 모로코에서 만난 소년을 찍은 사진은 카메라를 쳐다보려 하지 않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소년의 할머니가 그의 얼굴을 잡고 렌즈를 똑바로 쳐다보게 하려 했지만, 셔터를 누르기 직전 움직인 아이 때문에 예상치 못한 특별한 인물 사진이 완성됐다. 소년은 다소 긴장한 모습이지만, 그만큼 순진무구하고 연출되지 않은 솔직한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왓슨, 소통으로 사진에 기억 녹여내다

알버트 왓슨은 당시 모델 유망주였던 케이트 모스의 우아함을 강조하기 위해 누드 사진을 찍기로 결정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광만 활용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왓슨은 패션 사진으로도 유명하다. 1977년 패션 잡지 ‘보그’의 첫 표지 촬영을 시작으로 활동 거점을 뉴욕으로 옮긴 그는 2022년까지 보그의 표지를 촬영한 횟수만 100회가 넘는다. 보그뿐 아니라 ‘롤링스톤’, ‘타임’, ‘하퍼스 바자’ 등 유명 매거진의 커버도 수도 없이 장식했고, 프라다, 아르마니, 리바이스, 레브론 등 주요 명품 브랜드의 광고 사진 촬영도 진행했다. 이번 전시에 마련된 ‘왓슨 연대기’에서도 왓슨의 패션 사진작업을 두루 살필 수 있다.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이 시선을 사로잡는가 하면 흑백의 단조로운 모노톤의 사진도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모델 케이트 모스의 누드 촬영 사진이 있다. 왓슨은 당시 모델 유망주였던 케이트 모스의 우아함을 강조하기 위해 누드 사진을 찍기로 결정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광만 활용했다. 평소 모델로서 화려한 착장을 걸쳐온 케이트 모스는, 왓슨의 사진에서 솔직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며 또 다른 차원의 패션 사진으로 화제가 됐다.

알버트 왓슨은 아프리카, 모로코, 스코틀랜드, 로스앤젤레스 등 경이로운 자연을 포착한 풍경 사진도 찍었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처럼 왓슨은 50년 넘게 인물, 패션 사진 대가로 활동했지만 그의 포트폴리오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아프리카, 모로코, 스코틀랜드, 로스앤젤레스 등 경이로운 자연을 포착한 풍경 사진도 찍었다.

풍경사진 또한 인물, 패션 사진을 찍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장시간 관찰,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전시에서도 볼 수 있는, 스코틀랜드의 스카이섬을 찍은 사진은 바람과 비와 안개를 6주 동안 찾아다닌 끝에 포착한 결과물이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고자 일부러 기상 상태가 좋지 않은 10~11월 방문 일정을 잡은 왓슨은 바람이 물의 흐름을 바꾸기를 기다려 호수의 표면을 촬영하는 데에만 3일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전시장에 설치된 영상에서도 “사진작가는 주변을 끊임없이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코틀랜드 태생의 왓슨에게 사막의 기후와 모래의 색,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자연은 동경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마치 일기를 써 내려가듯 자연을 기록했고, 그 기록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롤링스톤지의 25주년 특별판은 먼저 표범을 촬영한 뒤 카메라의 필름을 되감아서 표범의 눈 위치에 배우 믹 재거의 눈 위치를 맞춰 이중노출 방식으로 다시 촬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또, 이번 전시에서 주목되는 건 왓슨이 사진 촬영할 때 이어오고 있는 다양한 실험 방식이다. 왓슨은 이중 노출, 디자인 툴 등을 활용한 실험적인 사진 및 영상 등을 모두 아우른다.

일례로 롤링스톤지의 25주년 특별판은 먼저 표범을 촬영한 뒤 카메라의 필름을 되감아서 표범의 눈 위치에 배우 믹 재거의 눈 위치를 맞춰 이중노출 방식으로 다시 촬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마치 표범인 듯 사람인 듯 오묘한 얼굴이 탄생했다. 이는 사진을 따로 촬영한 뒤 바로 합성해서 완성하는 디지털 방식과는 대조되는 방식이다. 사진이 촬영됐을 당시는 1992년으로, 아직 디지털 촬영이 흔하지 않을 당시 이미 왓슨은 혁신적인 촬영 방식을 시험해 왔던 것이다.

디지털 촬영이 일상화된 지금도 왓슨은 45년이 넘는 세월 아날로그 작업을 병행해 오고 있다. 왓슨은 “나는 아날로그 사진을 좋아한다. 이번 전시에 나온 사진 모두를 내가 직접 인화했다”며 “수동변속기 차량이나 자동변속기 차량의 운전 방식은 다르나 모두 목적은 동일한 것처럼 내게 아날로그, 디지털 촬영 방식은 큰 차이가 없다. 아날로그 사진 인화를 위한 암실의 냄새도, 디지털 촬영에 중요한 컴퓨터도 좋아한다. 모두 창조를 위한 자유를 부여해준다”고 말했다.

영화 '킬빌'의 배우 우마 서먼을 찍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왓슨은 “나쁜 소식은 사진작가는 은퇴가 없다는 점이고, 좋은 소식 또한 사진작가는 은퇴가 없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그는 “난 작업을 굉장히 좋아하고 카메라에 중독돼 있어 하루에 12~16시간 작업을 해도 좋다. 현재 80살이지만 나는 여전히 매일 일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준비하고 있다. 젊은 사진작가도 많은데 여전히 보그로부터 의뢰를 받고 있고, 이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사진을 찍을 때 기억을 녹여내도록 노력한다. 단지 스쳐지나가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 이미지를 소중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그런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한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관점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알버트 왓슨의 초기작부터 2022년 현재까지 이르는 작품들을 다양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사진=김금영 기자

2019년 왓슨의 도쿄 전시를 방문해 3년여의 준비 끝에 이번 전시를 선보인 호정은 큐레이터는 “왓슨은 알면 알수록 장르를 하나로 한정지을 수 없는, 끝없는 매력의 작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왓슨을 유명하게 한 건 히치콕, 스티브 잡스 등 유명인사 사진이지만, 그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어느 순간엔 풍경사진을 찍으러 거대한 자연 속에 가 있고, 화려한 파리 패션쇼에 서 있는가 하면, 또 어느 순간엔 정물과 인간군상을 포착하고 있다”며 “왓슨은 상업, 예술 사진 프로젝트를 가리지 않고 카멜레온처럼 밀도감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 텐션을 유지한다. 이런 그의 다양한 커리어처럼 당장 내일의 행보를 알 수 없는 변화무쌍함을 이번 전시의 주요 콘셉트로 잡았다”고 말했다.

전시 현장을 찾은 알버트 왓슨 작가. 사진=화목 커뮤니케이션즈

전시 첫 섹션엔 왓슨의 초기작부터 2022년, 현재까지 작품 세계를 알 수 있는 연대기적 구성이 눈길을 끈다. 대체적으로 사진전은 인물, 풍경, 오브제 식으로 카테고리를 지정, 분리해 작품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전시는 작가의 사진 철학과 인생을 바탕으로 기획됐다. 그래서 유명 배우 사진 바로 옆에 모로코의 광활한 사막 풍경이 펼쳐지고, 어린아이가 등장했다가 다음엔 박물관 전리품 사진이 등장하는 등 예측할 수 없는 진폭이 강한 울림을 준다. 그 조화가 사뭇 이색적이다.

전시 뒷부분은 앞부분의 연대기적 구성과 다르게 8개의 방이 만들어졌다. 왓슨의 작업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프로젝트를 비롯해 사진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 수 있는 일화와 영상 등을 선보이며 왓슨의 작업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내년 3월 30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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