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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탐방] 모빌리티쇼 표방한 서울 모터쇼, 기술의 역동성 없이는 모터쇼 종말의 전철 밟을 것

월드IT쇼와 모터쇼 사이의 모빌리티쇼, 이름뿐인 진화가 아니려면… 모빌리티 분야의 신기술 발표에서 기술적 우위를 차지하거나, 공간을 변혁한 역동적 모빌리티 현장을 구현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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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47호 김예은⁄ 2023.04.27 17:41:39

하만(HARMAN)의 마커스 퍼털립(Marcus Futterlieb)이 CES 2023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새로운 차원의 차량 내 경험을 선사하는 ‘레디 케어(Ready Care)’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자동차는 전자제품이다”라는 1997년 고 이건희 회장의 혜안은 25년이 지난 현재의 현대사회를 여전히 뒤흔들고 있다. ICT와 모빌리티의 기술 경계가 모호해지며, 전 세계적으로 모터쇼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미국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등의 IT 전시회가 대체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수년 전부터 IT 가전 쇼와 모터쇼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던 모터쇼의 위상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모터쇼의 종말이라는 위기감에 행사의 명칭은 ‘모빌리티쇼’로 변화했으나, 대상 범주만 자동차를 넘어 이동 수단으로 다변화됐을 뿐 전시의 기능은 여전히 기존의 틀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세계 최대 규모의 ICT 융합 전시회라는 위용으로 글로벌 기술 트렌드를 좌우하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Consumer Electronics Show)의 진화 과정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1967년 미국에서 시작된 CES는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제품에 초점을 맞춘 가전제품 위주의 전시가 주를 이루었다. 차별화 요소가 없던 CES는 당시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이 높았던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Internationale Funkausstellung)’나 ‘미국 컴덱스(Comdex: Computer Dealers Exposition)’에 비해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CES는 IT산업 변화가 불러온 시장 변혁을 새로운 기회로 적극 활용하며 동반 성장했다. 2010년에 들어서면서 당시 TV를 위시한 가전제품들이 급격하게 발달한 ICT(정보통신) 기술과 결합하기 시작했고, CES 주최 측은 이 변화에 대응하여 전시회 자체의 테마를 ‘제품’에서 ‘기술’로 변화시켰다. 이것이 현재의 CES가 ICT 분야의 최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 및 기관들이 이뤄낸 기술적 성과들을 매년 초 공개하는 기술 전시회로 변모하게 된 이유이자, 신기술 트렌드의 중심이라는 위상을 갖게 된 이유다.


이 같은 변화는 현재 자동차 시장이 내연기관으로부터 나아가 전동화 기술과 모빌리티로의 확장하면서 재편을 요구받는 모터쇼에 많은 교훈을 제시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전시회의 개념이 변화되지 않으면, 그 전시회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과거 CES보다 높은 위상을 자랑했던 전시들이 CES나 MWC(Mobile World Congress)에 그 자리를 내주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점도 시대적 변화에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확장성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CES는 이제 모빌리티 기술마저 그 ICT 범주로 포함하며 모터쇼 존재 이유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CES2023 전시에서 하만과 함께하는 전장사업을 소개했다. 올리버 집세 BMW 회장은 CES 2023 개막 첫날인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 있는 삼성전자 부스를 둘러봤다. 사진=연합뉴스

CES2023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300여 개의 자동차 브랜드가 참여했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퀄컴 등 우리에게 IT기업으로 친숙한 이들은 CES 2023 현장에서 ‘모빌리티’ 부문에 명함을 내민 기업들이다. 구글은 차량 운용체계 ‘안드로이드 오토’의 신규 기능을,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를 기반으로 자동차 관련 데이터를 저장하고 이를 분석해 차량 결함 시기 등을 예측하고 사고를 방지하는 차량용 소프트웨어 기술을 선보였다. 또한 아마존은 음성인식 서비스 알렉사(Alexa)를 차량 맞춤형으로 심화하고 있는 서비스를, 퀄컴은 AI 기반 저전력 디지털 새시 솔루션을 공개하며 모빌리티 업계로의 ICT 기업의 기술 확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모빌리티 쇼를 표방한 서울모터쇼 전시에서는 모빌리티 분야의 앞선 기술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2023 서울모빌리티쇼’에 전시된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의 쇼카 ‘프로젝트 몬도 G(Project MONDO G)’. 패션 브랜드 몽클레르와 협업해 벤츠 G클래스와 몽클레르의 디자인 코드를 결합했다. 사진=김예은 기자

서울모빌리티쇼가 지루했던 이유

 

Static(변화나 움직임 없이 고정된). 이번 모빌리티 쇼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이렇다. 모빌리티를 표방한 전시임에도 ‘기술의 역동성’이 제거된 채 표피만 가만히 앉아있는 전시 차량을 보아하니 기시감과 지루함이 몰려왔다. 앞서 지난 1월 서울모빌리티쇼 조직위원회는 모빌리티쇼를 “전시 관람 외에 B2B의 (Business to Business) 성격을 늘려 기업 대 기업 간 기술교류의 장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으나 눈에 띄는 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웠다. 모빌리티 기술이 제시하는 가까운 미래의 구상, 변화된 전기차량의 비전 등은 대부분의 현장에서 부각되지 않거나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했다.

 

대신 몽클레어를 입은 벤츠 G클래스 쇼카, 테슬라가 제시하는 로봇인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등이 그것을 대체했다. 기술은 배제된 채 시각적 즐거움에 치중된 현장은 화려한 위용만 자랑하며 그 자리에 그렇게 멈춰있었다. 모빌리티의 미래를 좌우하는 기술의 역동성 또는 모빌리티가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 등도 현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모빌리티 신기술은 이미 앞선 CES 현장 등에서 발표된 기술이 재전시 되거나, 기술 구현은 배제된 채 차량의 틀만 전시공간 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히려 자동차 전장도구로 자동차의 형태를 새롭게 구현한 KG모빌리티의 SUV들이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피앤씨솔루션이 개발한 AR Glass ‘METALENSE(메타렌즈)’ 체험 부스에 관람객이 체험을 위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김예은 기자

Dynamic(역동성). 반대로, 3주 간격으로 개최된 월드IT쇼 현장에는 현장 곳곳에 기술의 역동성이 살아 움직였다. 옆에서 보면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손을 갖다 대면 터치가 인식되는 홀로그램 기기, 평범해 보이는 종이 위에 휴대폰 카메라를 비추면 핸드폰 화면 안에서 종이 위로 움직이는 캐릭터가 등장해 상품을 마케팅하는 영상 기술, 사람의 동공을 찍으면 3대 실명 질환을 예측해 주는 AI 기술까지 공간을 뛰어넘는 기술의 역동성은 전시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선 기술의 확장 가능성을 관람객들에게 제시했다. 대기업 부스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업체 부스에도 겹겹으로 관람객들의 긴 줄이 이어졌다. 그들은 ‘브랜드 네이밍’이나 화려한 전시부스가 아닌 새롭고 역동적인 ‘기술의 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관람객도 기술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중고등학생부터 기업 임직원,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4월 2일 2023 서울모빌리티쇼가 열린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네시스 부스에 제네시스 X 컨버터블 콘셉트카가 전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모빌리티쇼, 종말인가 새로운 기회인가


현재 모터쇼의 종말은 세계 모터쇼 시장의 재편 또는 멸실의 기로를 뜻한다. 세계 4대 모터쇼로 꼽히는 독일 뮌헨 모터쇼(옛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 프랑스 파리 모터쇼 등 세계 주요 자동차 전시회 위상의 추락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추세가 됐다.
과거부터 글로벌 위상을 자랑하던 4대 모터쇼와 서울모터쇼는 원점 경쟁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모터쇼는 국제ICT 전시회와 차별화된 모빌리티쇼의 존재 이유를 재규정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그 위상을 재구축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국제 전시가 글로벌 위상을 갖게 하는 것은 차별성에 있다. CES가 기술 가능성에 주목해 차별화된 글로벌 위상을 갖게 된 것이 그러하다. 현재의 모빌리티 쇼는 이제 모빌리티 쇼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모빌리티 분야에서 모빌리티 기술, 배터리, 반도체 등을 포괄해 관련 신기술 발표에서 CES에 뒤처지지 않을 확장성과 기술적 우위를 차지하거나, 공간을 혁변한 역동적 모빌리티 현장을 구현해 모빌리티쇼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해야 하는 등 차별화된 모빌리티 전시의 가능성을 제시해야 할 갈림길에 서있는 것이다.


독일 전략 컨설팅 업체 '롤랜드버거'에 재직 중인 신선호 씨는 DBR을 통해 IFA(Die Internationale Funkausstellung in Berlin,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 IAA(Die Internationale Automobil Ausstellung in Frankfurt am Main, 프랑크푸르트 오토쇼), FBM(Die Frankfurter Buchmesse,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등의 콘텐츠를 가진 박람회의 나라 독일의 차별점을 분석했다. 그는 “훌륭한 전시박람회를 위해서는 세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한다”며 3가지 요소를 들었다. “첫째, 무엇보다 주제가 되는 산업의 영향력 있는 업체들이 많이 참가해 콘텐츠 측면에서 재미가 있어야 할 것이고, 둘째, 따라서 많은 관람객들이 전시박람회장을 방문해 큰 파급효과를 낳아야 하며, 셋째, 참가업체들과 방문객들이 박람회 기간 동안 불편함 없이 머무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 세 가지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요소는 전시업체의 역량에 의해서 결정되는 부분이다.


이번 서울모빌리티쇼의 성과로 주최 측은 51만여 명(잠정치)의 관람객이 참여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하지만 상술한 3가지 요소 가운데 ‘산업의 영향력 있는 업체들이 많이 참가해 콘텐츠 측면에서 강점을 부각하는 것’과 ‘그에 따른 시장 파급효과’ 측면에서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 모빌리티쇼에 참가한 업체는 전 세계 12개국 163개로 완성차 제조사는 현대자동차, 기아, 제네시스, 르노코리아자동차, KG모빌리티(쌍용자동차), BMW, 미니(MINI),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 테슬라 등 10여 개 사에 불과했다. 마케팅 측면에서의 파급력, 혹은 B2B 기술 교류를 통한 성과 역시 이렇다 한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신선호 컨설턴트는 독일의 Messe Company들이 만들어 온 박람회 산업의 성과를 사회과학의 ‘Matthew effect(마태효과)’라는 용어에 빗대었다. 마태효과는 성경의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더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더 빼앗기게 되리라’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역량과 경험의 축적을 통해 충분한 전문화와 대형화를 이루고, 이를 기반으로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고, 다시 더욱 높은 수준의 전문화를 이루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다. 현재 CES가 가전에서 나아가 모빌리티와 헬스케어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사태를 빗대어 볼 수 있다. 반면, 전문화를 이루지 못한 업체들은 영세화-비(非)전문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CES와 IFA 등 내로라하는 가전박람회가 글로벌 시장에서 모빌리티의 영역을 위협하는 가운데 서울모빌리티쇼의 성과 자평은 위기감의 회피에 불과하다. 지금 변화하는 시장에서 모빌리티쇼에 대한 재규정과 변혁이 없으면 모빌리티쇼는 영세화-비(非)전문화에서 나아가 그 존재 이유를 소실 당할 것이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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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쇼  모터쇼  CES  테슬라  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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