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설립된 국내 제약업계 최장수 기업 동화약품이 ‘4세 경영자’ 윤인호 대표를 중심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활명수, 후시딘, 판콜 등 인기 의약품을 보유한 국내 최장수 브랜드 ‘부채표’의 역사가 21세기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3월 26일 동화약품 이사회는 윤인호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날 동화약품은 유준하, 윤인호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전문경영인과 오너가 회사 경영에 공동 책임을 지는 형태다. 동화약품 측은 유 대표와 윤 대표가 업무 구분 없이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설명했다.
1984년생인 윤인호 대표는 1937년 동화약품을 인수해 ‘제2의 창업자’로 꼽히는 보당 윤창식 선생의 증손자이며, 윤도준 현 동화약품 회장의 장남이다. 그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2013년 8월 동화약품 재경부에 입사해 12년 동안 전략기획실, 생활건강사업부, OTC 총괄사업부 등 주요 부서를 거쳤으며 최근까지 동화약품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최대주주인 디더블유피(DWP)홀딩스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디더블유피홀딩스는 2022년 9월 30일부터 동화약품 지분 15.22%를 차지하고 있는 최대주주 겸 지주사다. 윤 대표는 디더블유피홀딩스의 대표이자 최대주주로 이 회사 지분 60%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동화약품 지분도 6.43%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다. 그간 동화약품 주식을 꾸준히 장내매수하고, 기존 최대 주주였던 부친 윤도준 회장의 보유 지분도 증여받은 결과다.
이날 윤 대표는 “국내 최장수 제약회사로서 쌓아온 역량과 신뢰, 업계 최고 수준의 공정 거래 및 윤리경영 원칙을 바탕으로 사업다각화에 힘써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나아가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과연 윤 대표는 제약업계 최장수 기업을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변모시킬 충분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을까?
신약 개발·신사업 진출 앞장
제약업계에 따르면, 윤 대표는 동화약품 합류 이후 10여년의 기간 동안 꾸준히 신약 개발 및 신사업 발굴에 앞장서며 바이오벤처 투자와 의료기기 사업 진출을 진두지휘한 경영자로 평가된다.
먼저, 윤 대표는 신약 개발을 동화약품의 핵심 성장 전략으로 삼았다. 2015년 동화약품은 국산 23호 신약 ‘자보란테(Zabofloxacin)’를 개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의 세균성 급성악화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자보란테는 중국, 중동, 북아프리카 12개국에 라이선스 및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로도 동화약품은 연구개발(R&D) 비용을 꾸준히 늘렸다. 2020년 169억원, 2021년 173억원, 2022년 192억원, 2023년 약 200억원을 돌파하며 R&D에 약 1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했다. 그 결과 최근 3년간 총 8건의 신약 임상 승인을 획득했으며, 2024년에만 5건이 집중되는 등 신약 개발은 가속화되고 있다.
주요 파이프라인은 당뇨병 치료제(DW6014), 항암제, 코로나19 치료제(DW2008S) 등이며, 2023년 당뇨병 치료제 ‘DW6014’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1상 임상 승인을 받았다. DW2014는 동화약품 신약 파이프라인 중 핵심 프로젝트로, 개량신약 3종과 함께 당뇨병 치료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윤 대표는 바이오벤처 투자에도 집중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비비비에 10억원, 에스테틱 기업 제테마에 50억원, 모바일 헬스케어 기업 ‘필로시스’에 20억원 등 여러 스타트업에 약 130억원을 투자했는데, 이들 투자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해 동화약품의 재무 건전성 강화에 기여했다.
의료기기 사업 분야에서도 2020년 척추 임플란트 국내 1위 기업인 메디쎄이를 196억원을 투자해 인수하며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메디쎄이는 2024년에 매출 255억원, 영업이익 32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정형외과, 신경외과는 물론 미국, 칠레 등 해외법인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을 확대해 지난해 해외매출 1000만 달러를 돌파했다.
해외 시장 진출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2023년 12월 베트남 약국 체인 중선파마(TRUNG SON Pharma)를 374억원에 인수하며 베트남 시장에 본격 진출, ‘활명수’, ‘잇치’, ‘판콜’ 등 히트 제품을 현지 시장에 유통하며 동남아 시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신약 개발·해외시장 진출로 도약 노린다
윤 대표가 부사장 직을 맡으며 경영 전면에 나선 2020년 이후 동화약품은 외형 성장과 체질 개선을 동시에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먼저, 매출이 크게 성장했다. 2022년 동화약품은 매출 3404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16.2% 성장했다. 이는 2019년 이후 처음으로 연매출 3000억원을 돌파한 성과다. 2023년에는 매출 3611억원을 넘어섰으며, 2024년에는 464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28.7% 증가한 수치다.
다만, 영업이익은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영업이익은 299억원으로 전년 대비 33% 증가했으나, 2023년 188억원, 2024년 134억원으로 하락세를 띠고 있다. 이에 대해 동화약품은 “베트남 의약품 유통체인의 연결손익 계상에 따른 것”이라 설명했다. 올해 중선파마를 중심으로 한 베트남 사업이 안정화될 경우 영업이익률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제일약품의 재무 건전성은 양호한 편으로 평가받는다. 2024년 말 기준 동화약품의 부채비율은 54%로, 제약업계 평균(약 60%)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매출 비중에서 일반의약품(OTC, Over the Counter) 비중이 약 70%로 큰 반면, 전문의약품(ETC, Ethical Drug)과 신약 비중이 낮고, 주요 제약사 대비 매출 규모가 작은 것은 한계로 지목된다. 윤 대표는 이같은 한계를 ‘DW6014’ 등 신약 파이프라인의 성공과 신사업,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극복한다는 계획이다.
제약업계 전문가는 “윤인호 대표는 그간 과감한 투자와 신사업 추진력으로 동화약품의 4세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베트남 시장 진출, 의료기기 사업 확장, 바이오벤처 투자, 신약 개발 가속화 등이 대표적 사례”라며 “동화약품은 국내 최장수 제약사로서 브랜드 파워와 안정적 재무 구조를 강점으로 보유한 만큼 윤 대표의 리더십이 성과를 거둔다면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충분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