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식⁄ 2025.05.02 09:23:25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25년 들어 글로벌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고성장 지역을 직접 방문해 현장 경영에 나선 그는, 식품과 유통을 중심으로 한 해외 확장 전략과 함께, 그룹 전반의 구조조정을 병행하며 ‘글로벌 체질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인도 푸네에 ‘빙과 전초기지’ 준공…“단일 생산라인 최대”
가장 주목받은 일정은 지난 2월 6일 인도 마하라슈트라 푸네에서 열린 하브모어(Havmor) 신공장 준공식이다. 하브모어는 롯데가 2017년 인수한 인도 대표 빙과업체로, 인도 빙과 시장 2위 점유율을 자랑한다. 이번에 가동을 시작한 푸네 공장은 연면적 6만㎡, 단일 기준으로는 인도 최대 규모의 빙과 생산시설이다.
당시 신 회장은 현장을 둘러보며 “이번 투자는 단순한 공장 증설을 넘어, 인도 시장에 대한 롯데의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하브모어는 향후 2028년까지 총 16개 생산라인으로 확장할 계획이며, 이와 병행해 ‘빼빼로’ 등 한국 인기 제품도 현지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 중이다. 롯데는 인도 내 빙과 외에도 제과, 음료, 간편식까지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으며, 인도 전역 유통망 확보를 통해 ‘K-푸드 플랫폼’으로 성장시킨다는 구상이다.
신 회장은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인 무케시 암바니를 비롯한 현지 경제계 주요 인사들과 면담을 갖고, 협업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릴라이언스는 인도 최대 유통망을 보유한 기업으로, 롯데의 식품 및 유통 제품 현지 확산의 전략 파트너로 주목받고 있다.
베트남·인도네시아서 ‘복합개발+유통’ 선제 공략
신 회장의 행보는 동남아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주요 시장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다. 롯데는 베트남에서 백화점 3개, 마트 15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는 백화점 1개, 마트 48개가 있다.
신 회장은 지난 4월 28∼29일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사절단 단장 자격으로 고위급 기업인 24인을 이끌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찾았다. 신 회장은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에너지, 물류, 관광, 식품 등 다방면에서 사업 기회를 모색했다. 특히, 니켈·코발트 등 광물자원 공동 개발, 친환경 패키징 소재 협업 등이 논의됐다.
메르데카 대통령궁에서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주최로 열린 오찬 간담회에서 신 회장은 “롯데는 대규모 석유화학단지 조성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다운스트림 화학제품 생산 역량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며 “해당 프로젝트가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사례로 약 1만4000개의 직접 고용 창출이 기대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일정이 끝난 뒤 신 회장은 귀국하지 않고 30일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해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의 운영 상황을 직접 점검했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연면적 35만㎡ 규모로 베트남 최대 복합쇼핑몰 중 하나다. 지난 2023년 9월 공식 개점 이후 354일 만에 1000만명의 누적 방문객을 돌파하는 등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쇼핑과 문화, 호텔, 오피스, 레지던스까지 아우르는 복합단지로, 개장 이후 빠르게 지역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롯데는 하노이를 중심으로 복합개발 모델을 호치민, 다낭 등지로 확대할 계획이다. 동시에 베트남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디지털 전환, 온라인 유통망 강화 등의 분야에서도 공동 과제를 추진 중이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해외 유통 사업 확장은 올해 대대적 전환점을 맞을 예정이다. 동남아 사업을 총괄할 IHQ를 상반기 내 싱가폴에 설립해 사업확장을 위한 투자유치, 차입 등 자금조달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동남아 사업 확장 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롯데쇼핑 해외사업 매출을 3조원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는데, 이는 2023년 해외사업 매출의 2배 수준이다.
“내수그룹에서 글로벌 소비재기업으로”…신동빈의 승부수
신 회장의 글로벌 경영 드라이브는 국내 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인식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2025년 상반기 열린 그룹 전략회의(VCM)에서 그는 “국내 시장의 성장 정체를 고려할 때, 미래 성장을 위해서는 해외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은 저출산·고령화, 내수 위축 등으로 인해 소비재 그룹의 성장 한계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다만, 공격적인 해외 확장에만 집중하는 건 아니다. 그룹 내부 구조조정도 병행하고 있다. 신 회장은 2025년 상반기 전략회의에서 “글로벌 성장 기반 확보와 동시에 내부 체질을 바로잡아야 지속가능한 경영이 가능하다”고 언급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현재 롯데는 지주사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 정리를 단행 중이다. 롯데케미칼과 롯데정밀화학, 롯데물산 등 중복 사업 영역을 조정하고 있으며, 롯데건설은 부실 PF 정리에 따라 자산 매각과 인력 효율화가 진행되고 있다. 백화점·마트·홈쇼핑 등 유통 계열사들도 중복점포 폐쇄, 온라인 전환 등 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단기 수익성 개선을 넘어, 향후 대규모 글로벌 투자를 위한 재무 안정성 확보와도 직결된다. 실제로 롯데는 2024년 말 기준 부채비율을 100%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해외 투자 여력도 이전보다 확대된 상태다.
이처럼 신동빈 회장의 글로벌 행보는 단순한 시장 다변화를 넘어, 롯데그룹 전체의 체질을 ‘글로벌 소비시장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근본적인 전략 변화로 읽힌다. 특히, 인도와 동남아는 인구 구조와 소비 성향에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식품·유통 중심의 롯데가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롯데’ 전략과 내부 효율화를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브랜드 시너지와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노리고 있다는 것.
유통업계 전문가는 “내수 중심 소비재기업이었던 롯데가 신 회장의 리더십 아래 투자와 혁신 양면에서 뚜렷한 방향성을 확보하고 있다”며 “글로벌 사업 확장이 실질적 매출 전환으로 이어질 경우, 롯데는 완전히 새로운 그룹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