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아날로그가 주는 행복③ 술의 아날로그 소환, 생각보다 짠하네

‘고길동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너도 어른이 된 거야’

  •  

cnbnews 김응구⁄ 2025.05.09 10:51:27

밴드 ‘잔나비’의 최정훈과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이 출연한 ‘백세주’ 브랜드 필름은 이 시대 어른들의 자화상이다. 최정훈은 백세주의 브랜드 앰배서더다. 그가 지난해 11월 열린 ‘백세주막’ 팝업스토어를 방문했다. 사진=국순당
 

1982년 10월, 육영재단이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 발행을 시작했다. 숱한 명작이 이 잡지로 데뷔했고,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지금의 어린 친구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작품도 몇 있다.

‘아기공룡 둘리’도 그중 하나다. 1983년 5월 시작해 1993년 8월까지 10년간 연재했다. 빙하시대 때 얼어붙은 공룡 둘리가 어느 날 서울 도봉구 쌍문동 고길동 집에 날아들어 한집 식구가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나중에 군식구로 합류한 도우너와 또치까지 합세하며 집안 골칫거리는 더 늘어나고, 이 집의 가장(家長) 고길동은 날마다 이들과 전쟁을 벌인다.

“둘리보다 고길동이 불쌍해 보이면 너도 어른이 된 거야.”

온라인에서 간혹 보이는 밈(Meme)이다. 국순당 ‘백세주’의 브랜드 필름은 여기서 시작됐다. 고길동은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간다. 사장한테 낼 보고서를 준비해야 한다. 먹고 사는 일은 늘 힘들다. 30대가 된 어른 최정훈(잔나비)이 고길동의 하루를 따라간다. 그러면서 고길동의 하루,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영상은 실사와 2D 애니메이션을 적절히 섞어 잔잔한 감동으로 이끈다. 그런 가운데 배경 음악으로는 잔나비의 ‘꿈과 책과 힘과 벽’이 흐른다. 이는 진정한 어른이 됐음을 알게 된 20~30대의 마음을 부드럽게 두드린다.

근데, 왜 최정훈일까. 이를 알려면 백세주의 리브랜딩(rebranding)부터 건드려야 한다. 국순당은 지난해 9월 새롭게 리브랜딩한 백세주를 재출시했다. 세상에 처음 선보였던 1992년부터 32년의 세월을 담아, 향후 100년을 이어갈 맛과 디자인으로 새단장했다. 그래서 리브랜딩 콘셉트가 ‘백세주, 백 년을 잇는 향기’다.

이어 다음 달에는 밴드 ‘잔나비’의 최정훈을 백세주 앰배서더로 발탁했다.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현대 음악을 선보이고 있고, 백세주 역시 우리 전통주를 현대인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선보이고 있다. 더구나 최정훈과 백세주가 1992년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게 선정 이유다.

 

최정훈은 ‘백세주막’ 팝업에서 ‘잔나비’ 노래 몇 곡을 부르며 그 자리에 참석한 팬들과 소통했다. 사진=국순당


백세주와 최정훈이 함께하는 브랜드 캠페인은 ‘어른이 된 청춘을 위해 백세주, 다시 태어나다’를 주제로, 어른이 된 청춘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내용으로 꾸몄다. 이번 브랜드 필름 역시 그 같은 맥락에서 제작됐다.

“어릴 땐 둘리 보면서 주스 마셨는데, 지금은 길동 아저씨랑 나란히 반주를 즐기는 나이가 됐구나” “퇴근하고 혼자 밥 먹으면서 보다가 펑펑 울었다” “어딘가에서 버티며 살아가고 있을 이 세상 모든 고길동들에게 응원을”

올린 지 7개월 된 유튜브 영상에 5월 9일까지 달린 댓글 1026개 중 세 개만 추려 모아봤다. 대개 칭찬 일색이다. 한마디로 ‘광고빨’이 잘 먹혔다. 그러니 상(賞) 운도 따른다.

먼저, 지난해 12월 열린 ‘2024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온라인영상 롱필름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한국광고총연합회가 주최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광고 시상식이다. 31회째인 작년에는 2100편이 출품됐다. 올해 1월에는 ‘서울영상광고제 2024’에서 크리에이티브 부문 최고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 역시 22년째 열리고 있는 국내 최대 영상 광고제이며, 서울시와 뉴욕페스티벌이 후원한다. 3월에는 한국광고학회가 주최한 ‘올해의 광고상’에서 온라인·모바일 부문 대상에 선정됐다. 광고상이란 광고상은 죄다 휩쓰는 중이다.

호기심에 찾아보니 41세다. 고길동의 나이 말이다. 그러니까 대략 42년간 41세로 살고 있다. 이 나이에 아내 박정자와 아들 고철수, 딸 고영희는 물론 갓난쟁이 조카 희동이, 거기에 둘리·도우너·또치까지 먹여 살리는 ‘슈퍼맨’ 역할을 하고 있다. 내 나이 41에 이렇게 살아보라면,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

그래서 그의 축 처진 어깨, 얼굴의 주름살, 입가의 한숨이 내 것인 듯싶고, 서로 위로하고도 싶다. 내 어린 시절, 모든 부모는 이렇게 살았을까? 그러고 보면 1980년대는 따뜻하고 포근한 것만이 아니라 아프고 시리기도 하다. 물론, 이 역시 소중한 추억이자 기억이다.

조금, 아주 조금은 ‘배신감’ 느낄 설정 하나를 얘기하며 마무리한다. 바둑, 클래식, 양주, 화초, 서예, 보석…. 고길동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한강 근처 마당 있는 이층집에서 산다. 당연히 자가(自家)다. SUV 차량도 소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500만원 상당의 희귀 레코드판 50장과 100만원짜리 도자기가 파손됐는데도 화만 내고 끝냈다. 사실, 그는 재력가였다.

‘고길동 맥주’도 있다

 

2022년에는 수제맥주 업체 더쎄를라잇브루잉이 ‘어른이’ 맥주로 ‘고길동에일’을 출시했다. 사진=더쎄를라잇브루잉
 

고길동 얘기가 나온 김에 ‘고길동 맥주’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3년 전인 2022년 5월, 수제맥주 업체 더쎄를라잇브루잉은 ‘어른이’(어른+어린이) 맥주 ‘고길동에일’을 출시했다. ‘어쩌다 어른이 돼버린 어른이를 위한 맥주’라는 슬로건도 알렸다. 패키지의 고길동 머리 위에는 ‘당신은 어른이 된 것이다’라는 문구도 보인다.

서울 감성을 담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서울메이드’ 그리고 ‘아기공룡 둘리’를 만든 ‘둘리나라’와의 협업으로 고길동의 이야기를 담은 맥주다. 자몽·망고·파인애플 등 기분 좋은 트로피컬 향을 담은 페일에일(Pale Ale) 타입이다.

‘그 시절’로 돌아간 술들

 

오비맥주는 아예 초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갔다. 1948년 동양맥주주식회사(Oriental Brewery)로 상호가 변경된 후 60년대에 판매됐던 ‘OB맥주’의 초기 패키지 디자인을 복원한 레트로 제품을 한정판으로 선보인다. 로고 등 디자인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현해냈다.

100% 맥아(麥芽)로 양조한 올 몰트(all malt) 라거 맥주이며, 알코올도수는 4.6도다. 용량은 330㎖. 5월부터 전국 대형마트에서 판매한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초창기 OB맥주에 향수가 있는 소비자를 위해 이번 한정판을 기획했다”며 “대한민국 맥주의 역사와 함께한 오비맥주는 전통과 품질을 바탕으로 전 세대가 공감하는 브랜드 경험을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비맥주는 ‘OB맥주’의 초창기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레트로 제품을 5월 중 출시한다. 사진=오비맥주

 

오비맥주는 앞서 2019년 9월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OB라거’를 선보였다. 비교적 많이 알려진 캐릭터 ‘랄라베어’와 복고풍 글씨체를 패키지 전면에 내세워, 대놓고 레트로 제품임을 알렸다. 랄라베어는 술을 즐기지 않아도 어릴 적 동네 호프집 간판이나 프로야구 ‘OB 베어스’(지금의 두산 베어스)를 기억한다면 모를 리 없는 캐릭터다. 2021년에는 영국의 유명 매거진 ‘모노클’이 선정한 ‘디자인 어워즈 톱 50’에서 ‘최고의 마스코트 상’을 받기도 했다.

오비맥주는 지난해에도 1980년대 OB 브랜드 디자인을 재현해낸 ‘오비라거 리미티드 에디-숀’을 출시했다. 당시 초도 물량 16만개가 5일 만에 완판됐다.

하이트진로는 1980년 출시 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아케이드 게임 ‘팩맨’과 손을 잡았다. 패키지에는 정보무늬(QR코드)가 부착돼 있다. 성인 인증 후 AR(증강현실) 기능으로 테라 라벨을 인식하면 팩맨 게임에 접속할 수 있다. 전국 랭킹 시스템을 통해 100위까지 순위도 매긴다. 게임은 두 달간 운영한다. 제품은 7일 한정 수량 출시했고, 유흥 채널용 500㎖ 병과 가정 채널용 453㎖ 캔 제품으로 선보인다.

어떻게 그 시절 게임을 끄집어내 협업까지 이뤄낼 생각을 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이트진로는 1980년대 유명 아케이드 게임 ‘팩맨’과 손을 잡고 지난 7일 한정판 제품을 선보였다. 사진=하이트진로


2022년 5월에는 BGF리테일과 협업한 ‘크라운맥주’를 편의점 CU에서 단독 판매했다. 크라운맥주는 하이트진로의 전신(前身)인 조선맥주가 1952년 출시한 상품으로, 40년 넘게 판매됐다. 새 크라운맥주는 그 당시의 추억을 상당 부분 가져왔다. 크라운맥주의 상징인 왕관을 활용해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패키지가 그래서 낯설지 않다. 촌스러운 ‘후리미엄맥주’와 ‘오리지날에일’이라는 글자도 옛날 느낌 그대로다.

흔한 라거 맥주가 아니어서 더 주목받았다. 당시 하이트진로는 “회사의 유일한 에일(ale) 타입 맥주로, 아로마홉 100%로 만들었으며 풍부한 시트러스 향이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과거 프로야구단을 패키지 전면에 내세운 맥주도 잠깐이지만 등장했었다.

2021년 7월 이마트24가 ‘슈퍼스타즈 페일에일’을 선보였다. 500㎖ 캔맥주다. 이 패키지에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스코트가 야구배트와 큰 맥주잔을 들고 있는 모습을 새겨 넣었다. 삼미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여섯 개 팀 중 하나였다. 지금의 ‘SSG 랜더스’처럼 인천이 연고지였다. 1세대 수제맥주 브루어리 카브루와 함께 만들었으며, 페일에일 타입의 맥주다.

다음 해인 2022년 4월에는 GS25가 한국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기념해 ‘MBC 청룡 맥주’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MBC 청룡 팝콘’과 함께 선보였다. ‘MBC 청룡’ 역시 여섯 개 팀 중 하나로, 지금의 ‘LG 트윈스’ 전신이다. 크래머리브루어리와 협업했으며, 스페셜몰트를 사용해 맥아의 진한 풍미를 잘 살린 황금빛 라거 맥주다.

 

보행양조는 지난해 소주 ‘잎새주’와 영화 ‘택시운전사’의 컬래버레이션 한정판 제품을 광주·전남 지역에서만 판매했다. 사진=보해양조


소주 쪽에선 보해양조의 ‘잎새주’가 참신했다. 지난해 1월 복고 느낌 가득한 잎새주 한정판을 내놓으며 애주가들의 옛 감성을 자극했다. 잎새주 출시 12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이 제품은 1970년대와 1980년대 풍의 라벨을 전·후면에 부착하고, 그 안에는 투박한 글씨체의 제품명과 강렬한 원색으로 가득 채웠다.

지난해 4월에는 의미 있는 잎새주 한정판도 출시했다. 1200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영화 ‘택시운전사’(2017)와 협업했다. 이 영화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취재한 독일기자 힌츠 페터와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보해양조는 이 한정판의 슬로건인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용기’를 함께 기억하고자, 라벨 하단에 ‘잎새주의 자리를 잠시 내어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아쉽게도 서울·수도권까지 올려보내지 않고 광주·전남 지역에서만 판매했다. 보해양조는 목포 기업이다. 덕분에 수집가들은 그곳까지 내려가 어렵게 구해야 했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

관련태그
아날로그  국순당  백세주  최정훈  고길동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