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식⁄ 2025.06.20 09:17:20
SK그룹이 최근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고와 반도체·배터리 사업 부진 등 악재로 경영 위기를 맞이하자 ‘기본으로의 회귀’를 선언하며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룹은 이해관계자 신뢰 회복과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중심축으로 위기 극복 전략을 본격 가동 중이다.
SK그룹은 지난 6월 13~14일 이천 SKMS 연구소에서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신뢰·AI·본질’을 핵심 키워드로 한 위기 대응 전략을 공유했다.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최재원 수석부회장,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주요 경영진 2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사이버 침해 사고, 글로벌 경기 둔화 등 대내외적 위기를 공유하며, 그룹의 경쟁력 약화 원인을 ‘기본과 원칙의 소홀’에서 찾았다.
경영진은 고객과 사회의 신뢰 회복을 그룹의 존재 이유이자 최우선 가치로 삼고, 실행력을 강화해 이해관계자의 질문과 우려에 책임감 있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운영의 기본과 원칙을 소홀히 하는 것이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며, “고객의 신뢰는 SK그룹이 존재하는 이유인 만큼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기업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본질을 다시 살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해킹 수습·정보보호 체계 전면 재점검
위기 대응 전략의 첫번째 핵심 축은 당면한 SK텔레콤 해킹 사태의 조기 수습이다. SK텔레콤은 유심 해킹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전체 가입자 2300만 명을 대상으로 무상 유심 교체를 시행하고 있으며, 그룹 차원에서는 정보보호혁신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보안 체계를 전면 재점검하고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특별위원회는 첫 실행 과제로 그룹 모든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모의 침투 테스트(모의 해킹)’를 추진하기로 했다. 실제 해킹 기술을 활용해 시스템 취약점을 점검하고 보완하겠다는 전략이다.
정보보호 체계도 글로벌 수준에 맞춰 재정비한다. 모든 관계사의 현재 보안 수준을 정밀 분석하고, 모의 해킹 테스트 결과를 반영해 지능형 학습 기반의 보안 솔루션을 확대 도입하는 등 맞춤형 개선 과제를 도출해 실행한다는 전략이다. 또, 지능형 지속 위협(APT), 산업보안, 인공지능(AI) 보안 등 최신 보안 기술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다.
한편, SK텔레콤은 지난 16일부터 전국 2600개 T월드 매장에서 이심(eSIM) 기반의 신규 영업을 재개했다. 물리 유심을 통한 신규 가입도 조만간 재개될 전망이다.
포트폴리오 재편…반도체·AI 중심 재투자 확대
그룹은 위기 대응의 또 다른 축으로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전략’의 강화를 제시했다. 중복 사업 정리, 우량 자산 내재화, 성장 사업 간 시너지 극대화를 통해 단기 이익보다 장기 생존과 성장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겠다는 것.
핵심은 반도체와 AI다. SK하이닉스는 오는 2028년까지 총 103조 원을 투자하고, 이 중 82조 원은 AI 분야에 집중할 예정이다. 특히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협력해 울산에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를 구축, 동북아 AI 허브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밸류체인 정비도 속도를 내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반도체 소재 자회사 4곳(SK트리켐, SK레조낙 등)을 편입해 반도체 종합 서비스 기업으로의 체질 변화를 꾀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합류한 SK에어플러스, 에센코어, SK테스까지 더해진 구조다.
AI 인프라 구축도 본격화되고 있다. SK텔레콤이 AI 사업을 이끄는 가운데, SK브로드밴드와 SK AX는 데이터센터 등 기반 시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 SK브로드밴드는 SK C&C로부터 30㎿ 규모의 판교 데이터센터를 약 5000억 원에 인수하며 총 9개의 데이터센터를 확보하게 됐다. 이는 클라우드와 AI 수요 급증에 대비한 핵심 전략으로 풀이된다.
또, SK C&C는 최근 사명을 SK AX로 변경하고, 10년 내 글로벌 톱10 AI 전환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SK AX는 고성능 GPU 자원을 활용한 차세대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에너지 부문에서도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으로 출범한 통합 SK이노베이션은 석유, 화학, LNG, 전력, 배터리, 신재생에너지를 아우르는 105조 원 규모의 포트폴리오를 확보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민간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 중이다.
“시장과 이해관계자가 체감하는 변화 만들 것”
비핵심 자산 매각 및 구조조정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도 병행되고 있다. SK스페셜티(2조 7000억 원), SK렌터카(8200억 원), 크래프톤 지분(2600억 원) 등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했으며, SK실트론 지분 매각도 검토 중이다.
그 결과, 2023년 말 기준 83조 원에 달했던 순차입금은 2024년 말 75조 원으로 약 10% 줄었고, 부채비율도 134%에서 118%로 하락했다. 그룹의 재무구조가 실질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 관계자는 “경영진은 그룹의 실질적인 변화를 시장과 이해관계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실행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