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경기도 성남시에 문을 연 창고형 약국 ‘메가팩토리’가 개업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연일 방문객으로 붐비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저렴한 가격과 자유로운 쇼핑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의약품 오남용 등의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도 많다.
메가팩토리 약국은 진통제와 감기약 등 일반의약품을 비롯해 건강기능식품, 생활용품 등 약 2500여 종을 진열해 판매한다. 고객은 대형마트처럼 카트를 끌고 매장을 자유롭게 둘러보며 필요한 상품을 고를 수 있다. 넓은 공간에 대량으로 진열된 상품 구성은 대형 유통매장을 연상케 한다.
이 약국은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개업 직후부터 소비자들의 발길을 끌었지만, 동시에 약사회와 각종 의료단체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창고형 약국의 등장에 소비자와 약국, 두 진영의 목소리는 뚜렷이 엇갈리고 있다.
소비자는 편하게 쇼핑…약국은 “공공성 훼손” 우려
메가팩토리 약국은 대량 구매를 통해 일부 품목에서 시중 약국보다 약 2000원 정도 저렴한 가격대에 제품을 판매한다. 감기약·진통제 등 상비약을 중심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소비자 입장에선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상품 구성도 기존 약국보다 훨씬 다양하다. 일반 약국이 의약품 위주로 소량의 의약외품을 취급했다면, 이곳은 일반의약품은 물론 동물의약품, 건강기능식품 등 다양한 품목을 폭넓게 판매한다. 특히 진통제와 감기약 등 상비약 위주로 판매가 많은 가운데, ▲타이레놀(켄뷰) ▲이지엔6(대웅제약) ▲판콜(동화약품) 등이 대표적인 인기 품목으로 꼽힌다.
제품은 감기약, 영양제, 생활용품 등 카테고리별로 진열돼 있어 소비자는 동일 성분의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직접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다. 약사의 상담과 추천에 의존했던 기존 약국과 달리, 창고형 약국은 소비자 중심의 선택 구조를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정두선 메가팩토리약국 대표약사는 “상비약 위주로 구매가 많고, 소비자들이 유효기간을 확인하고 사기 때문에 대량 구매는 드물다”며 “아이를 둔 가정은 해열제나 모기패치를, 여성소비자는 에크논크림(동아제약)같은 여드름 치료제나 파스, 미용제품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상품을 한 곳에서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창고형 약국의 확산이 기존 약국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동네 소규모 약국들이 창고형 약국의 낮은 가격 경쟁력에 밀려 폐업할 경우, 필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 공공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특히 취약계층이 밀집한 지역에서 약국이 사라질 경우 의료 사각지대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대한약사회는 지난 6월 발표한 입장문에서 “약사들의 전문 복약지도 없이 의약품을 공산품처럼 판매하는 창고형 약국은 약사의 전문성과 약국의 공공성을 훼손하며, 의약품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약사가 단순 판매원으로 전락하고, 공공재인 의약품이 상품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메가팩토리 약국은 약 7~8명의 약사가 상주해 고객 응대와 복약안내를 병행하지만, 방문객이 몰릴 경우 상담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고객이 이미 구매할 제품을 선택한 후 복약지도를 받는 구조라는 점에서 약사의 전문성이 충분히 발휘되기 어려운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더 큰 문제는 약물 오남용 가능성이다.
최근 일본에선 진정 성분이 포함된 감기약·기침약 등을 10대 청소년들이 과다복용하는 사례가 사회문제로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국립정신·신경의료연구센터(NCNP)가 실시한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이내에 시판 약물 남용 경험이 있는 국민이 약 65만 명에 달했다. 이 중 10대의 약물 남용 경험률은 1.46%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일본 10대 청소년 1000명 중 약 15명이 약물 남용을 경험한 셈이다. 남용된 약의 구입처는 전체 응답자 중 ‘약국・드럭스토어’가 36.0%로 가장 많았다.
이는 한국보다 약 30년 앞서 드럭스토어가 확대된 일본의 사례지만, 창고형 약국이 규제 없이 확산될 경우 한국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메가팩토리를 시작으로 유사한 형태의 약국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한 제도적 대응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식품 아닌 ‘약품'…오남용 규제 마련 시급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3년 응급실 기반 중독 심층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독 환자 3명 중 2명은 자살 목적, 의도적 오용 등 의도적으로 중독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대의 경우 80.5%가 치료약물에 의한 중독으로, 이 중 ‘아세트아미노펜이 포함된 진통해열제․항류마티스제’가 175건으로 가장 많았다. 해당 성분이 들어간 대표 의약품으로는 타이레놀이 있으며 일반의약품인 타이레놀은 의사의 처방 없이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청소년의 약물 오용이 심각한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별도의 규제 없이 창고형 약국이 확산된다면, 일반의약품에 대한 무분별한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 구매 제한, 약사 상담 강화, 구매 기록 관리 등 청소년의 일반의약품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창고형 약국의 등장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가격 부담이 줄어드는 등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약국에서 판매되는 의약품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만큼, 약물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 마련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약사의 전문적인 복약지도나 상담 없이 무분별한 할인과 가격 경쟁을 앞세워 의약품을 대량 판매하는 방식은 오남용과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경제 한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