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시리즈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쯤으로 이어졌으면 끝날 법도 한데, 신기할 정도로 계속 이어진다.
이제는 ‘K-헤리티지’다. 좀 더 풀어 쓰면 ‘K-전통문화’다. 맞다. 전 세계적 인기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일명 ‘케데헌’ 효과다.
넷플릭스 구독자가 아녀서 인기 대열에 동참하지 못하다, 최근 우연히 볼 기회가 생겼다. 수저 밑에 깔아두는 냅킨이라든지 재료들이 바깥으로 툭 튀어나온 김밥이나 자꾸만 손이 가는 새우과자는 예상 밖 디테일과 퀄리티였다. 실제로 흉내 내면 큰일 나겠지만, 김밥 한 줄을 그대로 입에 넣는 장면은 소셜미디어(SNS) 챌린지로까지 이어졌다. 찜질방에서 수건으로 양머리를 하고, 밥 먹을 때 한쪽 다리를 올리는 한국인만의 버릇은 또 어떤가. 이를 본 전 세계 시청자라면 한국이 크게 궁금할 법도 했다. 이 같은 호기심은 그 나라의 전통문화로도 이어진다. 작품 속 호랑이 캐릭터 ‘더피’의 모티브가 된 민화(民畵) ‘호작도(虎鵲圖)’라든지, 아이돌 그룹 ‘사자보이즈’가 쓰고 다니는 갓에 쏠린 관심도 대단하다.
국가유산들은 굿즈로 재탄생되고, ‘한국 팬’들은 이를 하나둘 사 모은다. 그래서 문화는 무섭다. 무섭게 스며든다.
없어 못 파는 ‘뮷즈’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뮷즈(MU:DS)’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뮷즈는 ‘뮤지엄(museum)’과 ‘굿즈(goods)’를 합친 단어로,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소장품을 활용해 만든 문화상품을 뜻한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의 소장품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미니어처나 차가운 음료를 부으면 선비의 얼굴이 붉게 변하는 술잔 등이 대표적이다. 앞서 말한 호작도 호랑이 배지는 나오는 족족 매진이다.
지난 10일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뮷즈 매출액은 약 217억1300만원으로, 지난해 연간 매출액인 212억8400만원을 넘었다. 이는 2004년 재단이 설립된 이후 역대 최고 실적이다. 이 기세대로라면 올 연말에는 30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뮷즈 매출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2022∼2023년에는 연이어 100억원대를 기록했다. 뮷즈 소비자도 계속 늘고 있다. 올해 들어선 지난 8월까지 역대 최다 인원인 56만4381명이 구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온라인 구매자는 12만3120명으로, 2016년의 2만625명과 비교하면 거의 여섯 배에 달한다. 재단 홈페이지 누적 가입자 수도 18만명대로 늘었다.
해외 시장에도 진출한다. 재단은 지난 11일부터 주홍콩 한국문화원에 뮷즈 상설 홍보관을 열고 반가사유상·백제금동대향로·청자 등을 주제로 한 상품 74종을 선보인다. 아울러 이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기념해 만든 상품도 볼 수 있다.
정용석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사장은 “뮷즈는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K-컬처’의 새로운 매개체”라며 “홍콩을 시작으로 북미와 유럽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전 세계에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하이브(HYBE)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세 기관은 한국의 문화유산과 K-컬처 확산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은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의 지식재산(IP)을 활용한 뮷즈를 개발해 선보일 예정이다. 재단과 하이브는 지난해 BTS의 브랜드 가치와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담은 반가사유상, 백자(白瓷) 달항아리 등 ‘달마중’ 시리즈를 내놓아 큰 호응을 얻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전통과 현대가 만나 한국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전하고 K-컬처의 지평을 한층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케데헌’을 얘기하자니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을 빼놓을 수 없다. 작품 속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Golden)’의 인기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6일(현지시간)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에서 8주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역대 애니메이션 OST 최장 기록이다. ‘핫 100’에서 8주 넘게 1위를 지킨 K-팝은 10주를 기록한 BTS의 ‘버터(Butter)’뿐이다. ‘핫 100’ 순위는 미국의 라디오 방송, 스트리밍, 판매 데이터 등을 총합해 집계한다.
일본 현지 한일(韓日) 부부 유튜버가 “저흰 ‘1일 1골든’이 생활이에요”라는 말이 허언이 아녔음을 늦게나마 알게 됐다.
지난 기사들을 뒤져보니 우리의 전통문화를 녹여낸 기업 마케팅이 적잖다. 그들의 손을 거쳐 포장되니 전통은 힙하고 세련된 상품이 된다. 너도나도 갖고 싶은 소장품이 돼 버린다.
〈문화경제 김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