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11.04 13:15:32
이용훈 극작의 <모노텔>이 국립극단(단장 겸 예술감독 박정희) 2025년 창작희곡 공모 대상을 수상했다.
국립극단은 지난 31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2025년 창작희곡 공모 수상작 3편을 시상했다. 당선경쟁률 58.3대 1을 기록하며, 신청작 175편 중 대상작 1편과 우수상작 2편이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선정됐다. 지난 6월부터 90여 일 동안 진행된 심사에서 18편이 심사위원 추천작으로 특선했으며 최종 본심에는 6편의 작품이 올랐다.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 심사위원회는 “희곡은 세상에 대한 대답이자, 세상을 향한 질문이다. 동일한 세상을 딛고 서 있어도 작가마다 질문과 대답은 다르게 드러난다”라고 총평을 열었다. 이어 “이번 공모에 접수된 작품들로 세상과 마주하는 동시대 작가들의 태도와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라며 “우리 곁에 놓인 주제를 향한 성찰이 있었고 전통적 구조를 따라가 보려는 작품도, 낯선 실험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한 작품도 있었다. 그 다채로운 가능성들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자리”라고 2025년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 심사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대상작 <모노텔>은 내년 낭독공연과 작품 개발 과정을 거쳐 후년도 국립극단 라인업으로 편성돼 명동예술극장 무대에서 관객 앞에 선다. ‘모노텔’이라는 낡은 모텔을 배경으로 머물다 떠난 흔적들을 따라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작품이다. 청소원과 프런트직원, 중년의 동성 연인, 조선족 부부, 알코올중독자, 침대 밑에 버려진 아기 등 다양한 인물군을 비추며 희곡은 극단적인 고독과 단절된 언어, 사회적 침묵의 지층을 드러낸다.
<모노텔>은 “매력적인 언어와 작가의 과감한 선택이 돋보이는 희곡이다. 작가는 동시대의 극단적 고독을 본 희곡만이 가진 고유한 양식과 함축적인 장면들로 적절히 녹여냈다. 익숙한 틀을 벗어나면서도 쉽게 비약하지 않고, 드라마적 개연성을 놓치지 않는 점 또한 본 작품의 미덕이다”라는 심사평을 받았다.
대상작 <모노텔>를 쓴 이용훈 작가는 2023년 국립극단 창작희곡 개발 사업에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으로 당선되면서 연극 무대에 데뷔했다. 건설 현장의 잡부 때로는 물류창고 상하차 일을 하며 희곡과 시를 쓰는 이 작가는 시집을 구매하러 찾은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희곡집 『베르나르 알바의 집』을 읽고 희곡 쓰기를 시작했다.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이 세상의 빛을 본 당시에도 이용훈 작가는 건설 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 있는 이야기로 희곡 쓰기의 재능과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2025년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 시상식에서 이용훈 작가는 “국립극단에서 수상 연락을 받았을 때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라며 “제가 쓴 이 희곡은 국립극단의 창작희곡 공모로 발굴한 <만선>, <가족> 등을 비롯해 그 앞선 한국 희곡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희곡을 써주신 작가님들께 감사드린다”라고 대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우수상은 윤미현 극작의 <옥수수밭 땡볕이지>와 김정윤 극작의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에 돌아갔다. <옥수수밭 땡볕이지>는 부조리한 한국 노동사를 그린다. 열심히 ‘일’했던 세대, 그 이전 세대의 부모가 그랬듯 그 아이들도 공장에 나간다. 열심히 일하지만 생활은 별반 나아지지 않는 기현상. 가족 드라마의 형식을 빌려 연극보다 더 극적인 현실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은 <옥수수밭 땡볕이지>를 꼽으며 “과거의 고통을 토로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그 고통이 세대를 건너 오늘의 현실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환기하는 희곡”이라는 평가와 함께 “전승되는 폭력과 질긴 부조리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 시선과 잘 어우러지는 단단한 극적 구성, 안정적인 무대 상상력이 확인되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윤미현 작가는 “<옥수수밭 땡볕이지>는 집필한 작품 중에 쓰는 데 가장 어려웠던 희곡이자, 여기까지 오는 데 가장 오래 걸렸던 작품이다. 작품에 발이 달렸으면 어딘가로는 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 희곡의 손을 잡아준 국립극단과 심사위원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라며 “시를 쓰듯 대사 한 음절, 한 음절 아끼면서 희곡을 쓸 것”이라고 덧붙여 수상에 대한 마음을 말했다.
단 두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2인극으로, 우수상을 받은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는 기억을 복원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한 요리 복원 연구가가 실종된 옛 연인이 개발한 콘솔 게임을 손에 넣게 되면서 기억의 저편을 깨우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희곡은 게임과 현실을 오가며 기억과 복원이라는 상징을 뻗쳐낸다. 노스탤지어를 끌어안는데 타인을 경유하는 형태를 통해 작품은 ‘닳아 없어지는 것’들을 깊이 사유한다.
서사적 줄기에 게임, 요리 등의 요소를 가지 치고 덧붙여 특별하게 발현된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타인에게 다가가는 여정이 또 다른 타인을 경유하는 가운데 이뤄질 수 있음을 독창적 서사로 구현했다”라며 “‘게임’을 단순한 소재에만 머무르게 두지 않고 서사를 주도하는 형식으로 끌어들이거나, 설정해 둔 SF 세계관을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냈다는 점 등 동시대적 소재를 참신한 설정과 연극적 형식으로 풀어낸 점에 주목할 만하다”라고 호평했다.
김정윤 작가는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는 이 희곡이 명동예술극장에 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오롯이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를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라며 “전업 작가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어서 다음에 또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했었는데 이 수상으로 그 힘을 얻은 것 같다”라고 말해 시상식 현장에 감동을 안겼다.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 대상에는 3천만원, 우수상에는 각각 1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총 5천만원을 수상하는 국내 최대 상금 규모의 미발표 희곡 공모다. 관객들은 내년 2월에 출판되는 희곡선으로 수상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3편 모두 낭독공연의 형식으로 내년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무대에도 오를 예정이다.
한편 수상작으로 호명되지는 못했으나 <반틈 사이 문틈>, <모의법정>, <방구석 요새>, <박신장>, <한 여자>, <그늘 속의 꽃> 등이 최종 심사작에 올라 한국 동시대 희곡들이 영글어 낸 단단한 지형도를 보여줬다.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는 편향성을 최소화하고 공정한 선정을 위해 작품 심사 시 극작가들의 이름을 지운 채 익명의 작품으로 평가를 진행한다.
올해 2회차를 맞은 국립극단 창작희곡 공모는 2026년 6월, 다시 뜨거울 여름과 함께 돌아와 3회차 접수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15년 만에 창작희곡 현상 공모를 재개한 국립극단은 한국 연극계의 극작가 등용문으로서 정통성을 부활하고, 우수한 창작극 개발과 안정적인 레퍼토리 수급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